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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여자세례명 3가지

피어나네 2023. 10. 12.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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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멘나, 테오도라 게랭, 총 3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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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3일 남자세례명 도미니코 스파다포라, 디오니시오, 루치오, 막시미아노, 바오로, 베드로, 에발도(검은), 에발도(금발의), 에우세비오, 제라르도, 카이레몬, 카이오, 칸디도, 파우스토, 프로일라노, 헤시키오, 총 16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0월 3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3가지

 

 

 

 

10월 3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2. 멘나

  3. 테오도라 게랭

 

10월 3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3가지

 

 

1.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 가톨릭 성인 이름
    Mary Josepha Rossello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11-1880년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리, 미르얌, 미리암, 요세빠, 요셉파.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 자료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Liguria)의 사보나(Savona)에서 가까운 알비솔라 마리나(Albisola Marina)에서 짐꾼의 아홉 자녀 가운데 하나로 태어났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Maria Josepha Rossello)는 어려운 가정 형편 때문에 어려서부터 집안 살림을 돕기 위해 여러 가지 일을 하였다.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찍이 수도생활을 원했으나 건강 등의 문제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고, 16세 때에 작은 형제회의 3회원이 되었다.

1837년 그녀의 재능을 알아 본 사보나 교구의 주교가 그녀에게 집을 한 채 주고 소녀와 처녀들을 가르치는 일을 하도록 하였다. 이렇게 소규모로 출발한 이 단체는 나중에 병원과 학교 등을 거느린 ‘자비의 모후 수녀회’로 크게 발전하였다.

성녀 마리아 요세파 로셀로는 40년 이상 이 수녀회를 운영하는데 헌신하였다. 그녀가 설립한 수녀회는 이미 그녀의 생전에 이탈리아와 라틴 아메리카 등으로 활발히 퍼져 나갔다.

1880년 12월 7일 선종한 그녀는 1938년 11월 6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49년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멘나

 

  • 가톨릭 성인 이름
    Men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395년 로렌

 

 

멘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만나.

 

 

멘나 자료

프랑스 북동부 로렌 출신의 동정녀인 성녀 멘나는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와 성 엘랍티우스(Elaptius)와 관련되어 있으나 그녀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그녀는 종종 만나(Manna)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테오도라 게랭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Guerin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원장,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98–1856년

 

 

테오도라 게랭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렝, 구에린, 데오도라,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라,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로, 테오도루스.

 

 

테오도라 게랭 자료

성녀 테오도라 게랭(Theodora Guerin)은 1798년 10월 2일 프랑스 서쪽 브르타뉴(Bretagne) 반도의 이타블리 쉬르 메르(Etables-sur-Mer)라는 마을에서 안느-테레즈 게랭(Anne-Therese Guerin)이란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녀의 부모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 휘하에서 해군 장교로 근무한 로랑 게랭(Laurent Guerin)과 르페브르(Lefevre) 가문 출신의 이자벨 게랭(Isabelle Guerin)이었다.

안느-테레즈가 태어난 때는 프랑스 혁명(1789-1794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기였다. 혁명의 여파로 프랑스는 갈가리 찢어졌고, 학교와 성당들이 강제로 문을 닫고 사제들이 추방되거나 단두대에서 희생됨으로써 가톨릭교회 또한 위기에 봉착한 시대였다.

로랑과 이자벨은 네 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안느-테레즈와 마리-잔느(Marie-Jeanne)만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아남았다. 안느-테레즈는 어릴 때부터 하느님과 가톨릭교회에 대한 애정을 갖고 있었다. 그녀는 10살 때 첫영성체를 허락받았는데, 당시 본당신부는 그녀가 언젠가는 수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린 안느-테레즈는 종종 집 근처의 해안가 바위에서 홀로 오랜 시간 동안 묵상과 반성 그리고 기도에 열중하는 모습으로 발견되곤 하였다. 아버지 로랑이 나폴레옹의 해군에 복무하며 몇 년 동안 집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자녀들의 교육은 주로 어머니 이자벨에 의해 집에서 이루어졌다.

이자벨은 신앙과 성경을 중심으로 자녀들을 하느님의 사랑으로 양육하였다. 안느-테레즈가 15살 때 아버지가 가족을 방문하기 위해 집으로 오다가 강도에게 살해당하는 불행한 일이 발생했다. 남편을 잃고 큰 충격을 받은 어머니를 위해 안느-테레즈는 여러 해 동안 어머니와 어린 여동생을 돌보는 책임뿐만 아니라 가사와 정원 일까지도 감당해야 했다. 이런 고난과 희생을 겪으면서도 그녀의 신앙은 흔들리지 않았고,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하신다는 사실을 굳게 믿었다.

25살 무렵에 안느-테레즈는 루이에 쉬르 루아르(Ruille-sur-Loir)의 천주 섭리의 수녀회에 입회하여 테오도라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어린이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들을 돌봄으로써 하느님을 섬기는 젊은 수녀 공동체였다.

그녀는 1825년 9월 8일 첫서원을 하고 이어서 1831년 9월 5일에 종신서원을 발했다. 수련기 중에 성녀 테오도라 수녀는 프랑스 중부의 프레이이 쉬르 클레즈(Preuilly-sur-Claise)로 파견되었는데, 그곳에서 천연두로 추정되는 병에 걸려 거의 죽을 뻔하였다.

다행히 병은 나았지만 소화 계통에 심각한 손상을 입어 평생을 부드러운 음식과 액체만을 소화할 수 있었다. 그 후 성녀 테오도라 수녀는 렌(Rennes)의 생토뱅(Saint-Aubin) 본당 학교와 앙제(Angers) 교구의 술렌느(Soulaines)에서 병자와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고 교육하였다. 이 기간에 그녀는 앙제 학술원의 장학사로부터 교육적 공로에 대한 훈장을 받기도 했다.

프랑스에서의 활동에 이어 성녀 테오도라 수녀는 일단의 수녀들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인디아나(Indiana) 주(洲)의 빈세네스(Vincennes) 교구에서 학교를 설립하고 개척자들과 함께 하느님을 사랑을 나누기 위해 수녀원의 미국 모원을 설치할 책임자로 사명을 부여받았다.

겸손하며 자신의 능력을 한없이 부족하게 느꼈던 성녀 테오도라 수녀는 자신이 수행하기에는 너무 벅찬 사명으로 생각했다. 또한 자신의 허약한 육체적 조건 역시 수녀원의 요청을 수락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테오도라 수녀는 오랜 기도와 원장 수녀와의 대화를 통해 결국 새로운 소명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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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자신이 하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사랑을 나누기 위해 황무지로 떠나는 모험을 할 사람이 아무도 없을 것 같은 마음에서 두려움을 안고 수용한 것이다.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 어려운 결정을 한 성녀 테오도라 원장 수녀와 다섯 명의 동료 수녀들은 프랑스를 떠나 1840년 10월 22일 저녁 미국 인디아나 주의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Saint Mary-of-the-Woods)에 도착했다. 새로운 사명의 땅에 도착한 그들은 즉시 진흙탕과 좁은 길을 따라 성당으로 사용할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곳에 무사히 도착하여 안전한 여행에 감사하며 새로운 사명을 위해 하느님의 축복을 청하는 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무릎 꿇고 기도를 바쳤다. 깊은 숲속 산골짜기 협곡에 있는 구릉지에 성녀 테오도라 원장은 모원과 학교를 설립하였고, 그들이 남긴 사랑과 자비와 정의의 유산이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다.

슬픔과 평화의 시간을 보내면서 성녀 테오도라 원장은 하느님의 섭리에 굳게 의지하며 현명하게 수녀들을 이끌었다. 그녀는 수녀들에게 “하느님의 손길에 부드럽게 자신을 맡기라”고 강조하였고, 프랑스로 보내는 편지에서도 “우리의 희망은 하느님의 섭리 안에 있고, 하느님의 섭리는 지금까지 우리를 지켜주었고, 우리의 미래에 필요한 것을 어떻게든 마련해 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성녀 테오도라 수녀 일행이 도착한 1840년 가을,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의 현실은 작은 통나무 오두막집 성당과 사제를 위한 숙소 그리고 작은 규모의 농장이 전부였다. 이곳에서 성녀 테오도라 원장 수녀는 프랑스에서 함께 온 수녀들과 다른 몇 명의 지원자들과 함께 살았다.

처음 맞이한 겨울철 내내 북쪽에서 불어오는 매서운 바람이 작은 농장을 뒤흔들었고, 수녀들은 종종 추위와 굶주림을 겪어야 했다. 하지만 그들은 성당 입구를 변경해 보잘것없는 모원이지만 성체성사의 현존 안에서 위로를 받을 수 있게 하였다. 그녀는 “예수님과 함께라면 무엇이 우리를 두렵게 하리오?”라고 말했다. 사실 사도직 초기에 수많은 시련이 몰려왔었다.

가톨릭을 반대하는 편견, 특히 여성 수도자들에 대한 편견, 배신과 오해, 프랑스 본원과의 분리 작업, 참담한 화재로 모든 수확물을 잃고 곤궁함과 굶주림에 시달리며 때때로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질병 속에서 살아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도 성녀 테오도라 원장은 “모든 것 안에서 그리고 모든 곳에서 하느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안고 견디어냈다.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지 일 년이 못 되어 성녀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첫 번째 학교를 개교하였고, 1842년 인디아나 주의 재스퍼(Jasper)와 일리노이(Illinois) 주의 세인트 프랜시스빌(St. Francisville)에도 학교를 열었다.

1856년 5월 14일 선종할 때까지 성녀 테오도라 원장은 인디아나 주 전역에 학교를 설립했고, 천주 섭리의 수녀회 또한 더 강한 생명력을 갖고 발전하며 높은 평가를 받았다. 성녀 테오도라 원장은 수녀회의 성장과 성공에 대해 항상 하느님과 예수님의 어머니인 성모 마리아의 공으로 돌렸다.

그녀의 성덕(聖德)은 그녀를 아는 사람들 안에서 명백히 드러났고, 많은 사람이 그녀를 ‘성인 같은 사람’으로 생각했다. 그녀는 사람들 안에서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얻도록 가장 좋은 것을 끌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사랑은 성녀 테오도라 원장 수녀가 지닌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였다. 그녀는 하느님과 그분의 백성, 천주 섭리의 수녀회 수녀들과 가톨릭교회 그리고 그녀가 섬겼던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또한 자신의 사도직과 기도로부터 누구도 배제하지 않고, 사람들이 하느님을 알아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돕는 데 일생을 바쳤다.

성녀 테오도라 원장은 그녀 혼자 할 수 있는 것은 없지만 하느님 안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는 시련과 고난 그리고 부당한 대우마저도 기회로 받아들였고, 괴로움의 한가운데서 진실하고 충실한 하느님의 여인으로 남았다.

성녀 테오도라 수녀는 세인트 메리 오브 더 우즈에 도착한 후 16년 만에 세상을 떠났지만, 그 기간에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였다. 그녀가 다음 세대에 물려준 선물은 성덕과 덕행, 사랑과 신앙의 모범으로서 그녀의 삶 자체였다.

성녀 테오도라 원장 수녀는 1998년 10월 25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6년 10월 15일 교황 베네딕투스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다른 세 명의 복자들과 함께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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