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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 여자세례명 6가지

피어나네 2023. 10. 13.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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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5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카리티나,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펠리치아 메다, 플라비아, 플라비아나, 플로라, 총 6분 목록이에요.

 

10월 5일이 영명축일인 여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10월 5일 남자세례명 도나토, 라이문도, 마태오 카레리, 마제눌포, 빅토리노, 아틸라노, 아폴리나리스, 에우티키오, 트라세아, 파우스토, 팔마시오, 플라치도, 피르마토 (순교자), 피르마토 (부제), 총 1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0월 5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6가지

 

 

 

 

10월 5일 여자세례명 목록

 

  1. 카리티나

  2.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3. 펠리치아 메다

  4. 플라비아

  5. 플라비아나

  6. 플로라

 

10월 5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6가지

 

 

1. 카리티나

 

  • 가톨릭 성인 이름
    Charit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카리티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까리띠나, 카리띠나.

 

 

카리티나 자료

성녀 카리티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흑해 연안의 아미수스(Amisus)에서 죽을 때까지 고문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믿어지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 가톨릭 성인 이름
    Faustina Kowalsk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 환시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905-1938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리, 미르얌, 미리암, 파우스띠나, 헬레나, 헬렌.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자료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Faustina Kowalska)는 1905년 8월 25일 폴란드 우치(Lodz) 시의 북서쪽에 있는 그워고비에츠(Glogowiec)라는 마을에서 농부이자 목수인 스타니스와프 코발스키(Stanislaw Kowalski)와 마리안나 코발스카(Marianna Kowalska)의 10명의 자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그리고 며칠 후 스비니체 바르키에(Swinice Warckie)에 있는 성 카시미루스(Casimirus) 성당에서 헬레나(Helena)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녀의 부모는 가난하고 배운 것은 없었지만 신심이 깊고 올곧은 사람들로서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순명, 부지런함에서 자녀들에게 큰 모범이 되었다. 그녀는 9살 때 첫영성체를 한 후 어려운 가정환경 등으로 3년 정도 교육을 받은 후 12살 때 이미 고향을 떠나 부유한 집에서 가정부 일을 하며 동생들과 부모님의 생계를 도왔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수도 성소를 느꼈고, 더는 학교 수업을 받지 못하게 되었을 때 수녀원에 입회하기를 원했지만 부모의 반대로 일단 성소의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24년 고통받는 그리스도의 환시를 체험한 후 더는 미룰 수 없다고 생각해 바로 짐을 꾸려 바르샤바(Warsaw)로 갔다.

여러 수도원에 입회를 청했으나 매번 거절당하다가 1925년 8월 1일 마침내 자비의 성모 수녀회(Congregation of the Sisters of Our Lady of Mercy)로부터 입회 허가를 받았다. 그리고 1926년 4월 30일 성체의 마리아 파우스티나(Maria Faustina of the Blessed Sacrament)라는 수도명으로 첫 서원을 했다.

그 후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는 수도원의 여러 공동체에서 요리사, 정원사, 문지기 등의 소임을 담당하면서 수녀회의 모든 규칙을 성실히 지키고 동료들과 따뜻한 우애를 나누었다. 그녀의 일상의 삶은 단순하고 두드러지게 드러나는 면은 없었지만, 늘 친절하고 자비심 가득한 마음으로 사람들을 대했고,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룬 가운데 심오한 영성을 키워갔다.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는 많은 환시와 예언의 은사 외에도 충만한 영적 은총을 받았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녀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로부터 많은 조롱과 박해를 받기도 했다. 그녀가 체험한 가장 강렬한 환시는 1931년 2월 22일 저녁에 일어났다.

이 환시는 이제까지 그녀가 보았던 환시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흰옷을 입으신 예수님께서 한 손으로는 당신의 성심 근처를 움켜쥐고, 다른 손은 내밀어 축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셨다. 그리고 예수님의 성심으로부터 붉은색과 흰색의 두 갈래 빛이 퍼져 나왔다.

예수님께서는 그녀에게 당신의 성심에 대한 공경을 전파하라는 사명, 바로 ‘하느님 자비 신심’을 전하라고 명하셨다. 예수님께서는 그녀가 본 환시를 그림으로 그리고, 그 그림 아래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고 적도록 하셨다. 그럼으로써 그녀가 체험한 그리스도의 발현을 기념하고, 그 그림을 보고 공경하는 영혼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라고 지시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에게 여러 번 나타나셔서 영적인 지도와 은총의 말씀을 주셨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하신 말씀은 그녀가 직접 기록한 일기에 담겨 있는데, 그 일기는 오늘날 “내 영혼 속 하느님의 자비”(Divine Mercy in My Soul)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일기에 기록된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의 사명은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 모든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에 대해 성경이 전해주는 신앙의 진리를 세상에 일깨워 주어야 한다. 둘째,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하느님의 자비 신심’의 실천을 통해, 온 세상과 특히 죄인들을 위해 하느님의 자비를 간청해야 한다. 셋째, 하느님 자비의 사도직을 시작하는 것이다. 이 신심 운동의 목표는 세상을 위한 하느님의 자비를 선포하고 간청하며, 그리스도교의 완덕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폐결핵을 비롯해 수많은 고통을, 죄인을 위한 희생으로 받아들인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는 1938년 10월 5일 33세의 나이로 크라쿠프에서 하느님의 품으로 돌아갔다. 그녀의 시신은 크라쿠프-와기에브니키(Krakow-Lagiewniki)에 있는 수녀원에 묻혔다가 1999년 하느님 자비의 성지(Divine Mercy Sanctuary) 내에 새로 건립한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그녀는 1993년 4월 18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0년 4월 30일 같은 교황에 의해 새 천년기를 맞아 처음으로 성인품에 오르는 주인공이 되었다.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2020년 5월 18일 ‘성녀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동정 기념일의 로마 보편 전례력 수록에 관한 교령’을 반포하여 해마다 모든 이가 10월 5일에 그녀에 대한 선택 기념일을 거행하도록 결정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펠리치아 메다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cia Meda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378-1444년 밀라노

 

 

펠리치아 메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뻴리치아, 펠리키아.

 

 

펠리치아 메다 자료

펠리치아 메다는 1378년 이탈리아 북부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의 밀라노에서 매우 유명하고 부유한 메다(Meda) 가문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매우 신심 깊은 부모를 만났지만, 일찍이 양친을 여의고 큰 충격을 받았으나 곧 하느님과 더욱 친밀한 일치를 이루며 성장했다.

12살이 되면서부터 그녀는 평생 동정을 지키며 하느님만을 섬기기로 결심하고 밀라노에 있는 클라라회 수녀원에 들어갔다. 그 얼마 후에 여동생도 그녀의 뒤를 따랐고, 남동생 역시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었다. 악마의 유혹은 그녀의 수도생활을 비참하게 만들고자 끊임없이 괴롭혔지만 그럴 때마다 그녀는 열정적인 기도와 주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시편의 말씀으로 이를 극복해냈다.

그녀는 뛰어난 클라라회 회원으로 성장했고 수녀원의 꽃으로 불리었다. 그녀의 고행과 항구한 기도 그리고 뛰어난 공동체 생활은 만인의 귀감이라는 평을 들었다. 1425년에 수녀원의 원장이 선종했을 때 그녀는 공동체 회원들의 만장일치로 후임자로 선출되었다.

수녀원장으로서 그녀는 공동체 안에서 참된 수도 정신을 촉진하기 위해 말씀과 행동과 모범으로써 최선을 다했다. 그 결과 그녀의 명성은 놀랍게 퍼져나가 교황 에우게니우스 4세(Eugenius IV)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래서 교황과 당시 프란치스코 엄률수도회의 총대리로 활동하던 시에나(Siena)의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 5월 20일)로부터 페자로(Pesaro)에 새로운 클라라회 수녀원을 설립할 것을 위임받았다.

이미 연만한 나이에도 불구하고 펠리치아 메다는 7명의 동료들과 함께 밀라노에서 페자로까지 걸어서 여행을 시작했다. 그녀는 몬테펠트로(Montefeltro)의 귀부인의 협력을 받아 페자로에 새로운 수녀원을 설립하는데 4년의 시간을 쏟아 부었다. 그녀는 수많은 지원자들을 받아 아시시(Assisi)의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정신으로 그들을 교육하고 강화시켰다.

1444년 그녀는 거룩함의 향기를 내뿜으며 선종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여종의 거룩함을 증명이라도 하듯 많은 기적을 일으켜주셨다. 그녀의 유해는 그녀가 설립한 수녀원에 모셔졌고, 400년 후에 다시 페자로의 주교좌성당으로 옮겨 안치되었다. 교황 비오 9세(Pius IX, 재위 1846-1878년)는 장엄하게 그녀를 복자들의 명부에 올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플라비아

 

  • 가톨릭 성인 이름
    Flav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플라비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플라비아 자료

성녀 플라비아는 동정 순교자라는 것 외에는 알려진 것이 없다. 그러나 서방교회에서 그녀의 축일이 유지되었는데, 실제로는 같은 날 기념하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의 제자이자 수도승인 성 플라키두스(Placidus) 축일과 함께 기억되고 있다.

성 플라키두스는 그의 형제인 성 에우티키우스(Eutychius),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녀 플라비아 그리고 수도승인 성 도나투스(Donatus), 성 피르마투스(Firmatus) 부제, 성 파우스투스(Faustus)와 다른 30명의 동료 수도승들과 함께 메시나(Messina)에서 해적들에 의해 순교하였다고 전해온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플라비아나

 

  • 가톨릭 성인 이름
    Flavia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플라비아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플라비애나.

 

 

플라비아나 자료

성 피르마투스(Firmatus) 부제와 성 플라비아나 동정녀는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순교록에 프랑스 오세르(Auxerre)의 순교자로 기록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플로라

 

  • 가톨릭 성인 이름
    Flor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309-1347년 볼리외

 

 

플로라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플로라 자료

성녀 플로라는 누구나 칭찬하는 착한 어린이로 성장하여 주위 사람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장성하여 부모의 결혼 강요를 완강히 거부하고 하느님께 일생을 봉헌하기로 결심하여 볼리외에 있던 성 요한의 구호 수녀회에 입회하였다.

한 번은 자신의 삶이 너무나 평탄하다는 그릇된 생각에 빠진 적이 있고, 동시에 세속의 쾌락을 탐하려는 불같은 유혹으로 깊은 실망감을 맛보는 등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동료들은 그녀가 위선적이라고 혹평하였으나 자신의 영혼상태를 잘 알아본 어느 고해신부의 도움으로 놀라울 정도로 성장하였다.

어느 해 모든 성인의 날에 그녀는 탈혼에 빠졌는데 성녀 체칠리아(Caecilia) 축일까지 약 3주간이나 계속되었다. 또 한 번은 8마일 밖의 어느 성당에서 사제가 미사 도중에 축성한 성체 조각을 떨어뜨린 사실을 알게 되어 경건하게 모신 일이 있었다.

이때부터 그녀의 초자연적 식별력이 돋보이게 되었다. 또 성령을 묵상할 때에는 땅에서 4피트나 떠오른 사실도 있었다. 그러나 가장 신비스런 영적 체험은 구세주의 몸에 받으신 상처를 자신의 내면에서 느끼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38세의 일기로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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