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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남자세례명 14가지

피어나네 2023. 10. 2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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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도미시오, 로마노, 바르톨로메오, 베네딕토, 베로, 세르반도, 세베리노, 세베리노 보에시오, 알루치오, 요한, 요한 보노, 이냐시오, 제르마노, 테오도로, 총 14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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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3일 여자세례명 에텔플레다, 요세피나 르루,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0월 2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10월 2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도미시오

  2. 로마노

  3. 바르톨로메오

  4. 베네딕토

  5. 베로

  6. 세르반도

  7. 세베리노

  8. 세베리노 보에시오

  9. 알루치오

  10. 요한

  11. 요한 보노

  12. 이냐시오

  13. 제르마노

  14. 테오도로

 

10월 2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1. 도미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omi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세기 아미앵

 

 

도미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미시우스, 도미씨오, 도미씨우스, 도미티오, 도미티우스.

 

 

도미시오 자료

성녀 울피아(Ulphia, 1월 31일)는 연로한 은수자인 성 도미티우스(또는 도미시오)의 지도하에 은수생활을 했다고 한다. 이 두 성인 성녀는 생아쉘(Saint-Acheul) 지방에서 성모 성당을 중심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지냈다.

성 도미티우스가 일찍 일어나서 그녀의 움막 문을 지팡이로 두드리면 기도 시간이었다고 한다. 한 번은 개구리가 너무나 울어대서 성녀 울피아가 밤새 한잠도 자지 못해 성인의 지팡이 소리도 못들은 채 잠을 잔 적이 있었다.

그때부터 성인에게 요청하여 지팡이로 문을 두드리지 말도록 하고, 자기 스스로 기도시간을 정확히 지켰다고 한다. 그녀는 프랑스 아미앵의 수호성인처럼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도미티우스는 신부 또는 부제였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로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40년경 루앙

 

 

로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마누스, 로망, 로맹.

 

 

로마노 자료

성 로마누스(또는 로마노)는 585년경 프랑크 왕국의 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그의 탄생과 관련한 전설에 따르면, 어머니가 불임으로 슬퍼하던 어느 날 밤에 천사가 아버지에게 나타나 아이가 태어날 것이며 그가 로마누스라는 이름을 갖게 될 것이라 예고했다고 한다.

당시 귀족들의 관례대로 성 로마누스도 어린 시절 클로타르 2세(Chlothar II) 왕의 궁정으로 보내져 왕의 시중을 들며 교육을 받았다. 그곳에서 그는 루앙의 성 아우도에누스(Audoenus, 8월 24일)와 누아용(Noyon)의 성 엘리기우스(Eligius) 주교를 만나 그리스도교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법과 행정에 관한 교육을 받아 왕실 행정을 개혁하고 조직화하는 등의 일을 수행하면서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629~639년 재위) 왕 때 두각을 나타냈다.

630년 루앙의 주교가 선종하면서 주교좌가 공석이 되었을 때 그가 많은 이들의 지지 속에 후임자로 선임되었다. 전설적인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그 지방의 수많은 우상을 제거했는데, 그 도시 사람들이 좋아하던 비너스 신을 모신 이교도의 성전을 기적적으로 그 기초부터 모두 허물어 버렸다고 한다.

그는 교구 내의 여러 지역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이교도의 우상에 빠진 이들을 개종시켰으며, 계속해서 그를 유혹하던 악마와 우상의 도전을 모두 물리쳤다. 그는 또한 센(Seine) 강변의 늪지대에 사는 전설적인 용을 십자성호를 그어 붙잡아 죽였다고 한다.

성 로마누스가 주민들의 청으로 그들을 괴롭히던 용을 잡으러 갈 때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는데, 더는 잃을 것이 없는 사형수만이 그를 도와 함께 갔다. 그래서 그 이후로 18세기 말까지 매년 사형 선고를 받은 죄수 한 명을 사면할 수 있는 주교의 특권이 유지되었다고 한다. 그는 프랑스에서 로맹(Romain)으로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바르톨로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Bartholomew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271년 브레간자

 

 

바르톨로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르똘로메오, 바르똘로메우스, 바르톨로매오, 바르톨로매우스, 바르톨로메우스.

 

 

바르톨로메오 자료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의 브레간자에서 태어나 파도바(Padova)에서 공부하던 중에 설립자로부터 직접 도미니코회 수도복을 받았다.

그 후 그는 키프로스(Cyprus)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이때 팔레스티나(Palestina)에서 프랑스의 성 루도비쿠스(Ludovicus)를 만나 위대한 성왕과의 우정을 맺게 되었다.

이런 인연으로 그는 잉글랜드(England)의 교황특사로 활약하였고, 나중에는 비첸차(Vicenza)의 주교가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베네딕토

 

  • 가톨릭 성인 이름
    Benedic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54년 세바스테

 

 

베네딕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네데토, 베네딕도, 베네딕또, 베네딕뚜스, 베네딕투스, 베네딕트, 분도.

 

 

베네딕토 자료

세바스테(Sebaste, 기원전 30년 로마의 아우구스투스로부터 사마리아를 하사받은 헤로데 대왕은 이를 기념하여 도시 이름을 아우구스투스의 그리스 발음인 세바스테로 명명하였다)의 주교로 추정되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또는 베네딕토)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의 박해를 피해 프랑스 지방으로 탈출하였다. 그는 푸아티에(Poitiers) 근교에 은둔처를 세웠는데, 그곳은 후에 베네딕토 규범을 따르는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베로

 

  • 가톨릭 성인 이름
    Ve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살레르노

 

 

베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루스.

 

 

베로 자료

성 베루스(또는 베로)는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 살레르노의 제3대 주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세르반도

 

  • 가톨릭 성인 이름
    Servan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

 

 

세르반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르반두스, 쎄르반도, 쎄르반두스.

 

 

세르반도 자료

북아프리카 탕헤르(Tangier)에서 순교한 성 마루첼루스(Marcellus, 10월 30일)의 아들로 전해지는 성 세르반두스(또는 세르반도)와 성 게르마누스(Germanus)는 체포되어 탕헤르로 가던 중 에스파냐의 카디즈(Cadiz)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남부 에스파냐 전역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세베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Seve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20년경 쾰른

 

 

세베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베리누스, 쎄베리노, 쎄베리누스.

 

 

세베리노 자료

로마 순교록의 오늘 날짜에 ‘쾰른의 주교’ 성 세베리누스(또는 세베리노)가 보르도(Bordeaux)에서 서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는 보르도 출신으로 아리우스(Arius) 이단을 철저히 분쇄하고자 노력했던 주교로 기억된다.

그가 사제로 있을 때 어느 들판을 지나다가 “세베리누스야, 너는 쾰른의 주교가 될 것이다.” “언제, 그런 일이 있겠습니까?” “너의 지팡이에 잎이 돋고 꽃이 필 때”라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그리고 그의 지팡이가 뿌리를 내리고 잎이 무성하더니 이내 꽃을 피울 때 그는 쾰른으로 불려갔다. 쾰른의 주교가 된 그는 아리우스 이단을 성공적으로 물리친 뒤 보르도에 와서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세베리노 보에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everinus Boeth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학자, 철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70/475?-524년

 

 

세베리노 보에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보에시우스, 보에씨오, 보에씨우스, 보에티우스, 세베리누스, 세베리누스, 쎄베리노.

 

 

세베리노 보에시오 자료

로마(Roma)에서도 유명한 아니치아 가문의 후손인 성 아니치우스 만리우스 토르콰투스 세베리누스 보에티우스(Anicius Manlius Torquatus Severinus Boethius, 또는 세베리노 보에시오)는 집정관을 지낸 플라비우스 만리우스 보에티우스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아기 때에 고아가 되어 아우렐리우스 심마쿠스(Aurelius Symmachus)에 의하여 자랐다.

젊어서부터 그는 학식이 뛰어나 주위의 칭송을 받았는데,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그리스어 저작들을 라틴어로 번역할 수 있었고, 또 피타고라스, 프톨레미, 니코마쿠스, 에우클리드 그리고 아르키메데스의 저작들 또한 라틴어로 번역할 수 있었다.

또한 그는 천문학, 음악, 논리학과 신학에서도 대가였고, 몇 편의 신학 논문도 발표했는데 그중의 하나인 “삼위일체에 대하여”는 매우 유명하다.

510년에 그는 오스트로고트의 황제 테오데리히 의하여 집정관으로 임명되었지만 황제의 모든 명을 따른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천문학을 불경건한 목적으로 이용하려는 고위층의 의견을 무시했기 때문에 파비아(Pavia)에서 투옥되기도 하였다.

9개월간 감옥에 갇혀 있는 동안에 보에티우스는 “철학의 위안”을 저술하였다. 그 후 그는 고문을 받고 처형되었다. 성 세베리누스 보에티우스는 최초의 스콜라 학자로 간주되며, 따라서 중세에 막대한 영향을 끼쳤다.

그의 저작인 철학의 위안은 놀라울 정도로 보편화되었으며, 그리스 철학자들의 저서 번역은 불세출의 작품이 되었다. 그는 1883년에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하여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알루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lluci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목동

  • 활동 연도와 지역
    +1134년 페쉬아

 

 

알루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루치우스, 알루키오, 알루키우스.

 

 

알루치오 자료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페쉬아의 수호성인인 성 알루치오는 양치기였다. 그러나 그 지방의 발 디 니에볼레 구호소에 관심을 갖고 협력하던 중에 그곳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그 구호소의 제2의 설립자나 다름없었다.

그는 산을 다니면서 산길과 여울을 따라 쉴 곳을 마련하는 등 이와 유사한 사회활동을 죽을 때까지 계속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성 알루치오 수사’라는 칭호가 주어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교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386-1456년 카페스트라노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성 요한(Joannes)은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 지방의 카페스트라노에서 1386년 6월 24일에 태어났다. 부친이 일찍 전투에서 사망한 후 그는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교육을 받다가 1406년 페루자(Perugia)로 가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1412년에 나폴리(Napoli)의 왕 라디슬라우스(Ladislaus)에 의해 페루자의 행정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던 중 1416년 페루자와 말라테스타(Malatesta)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자 평화를 제안하는 사절로 말라테스타에 파견되었다. 하지만 그는 포로가 되어 감옥에 갇히고 말았다.

이 당시 요한은 전쟁 직전에 산 발렌티노 백작의 딸과 결혼한 상태였으나 혼인이 완결된 상태는 아니었다. 브루파(Brufa) 감옥에 갇힌 그는 진지하게 영혼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그리고 감옥에서 나오자 수도자가 되고자 혼인에 대한 관면을 받고 1415년 10월 4일 페루자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오누프리우스 데 세자노(Onuphrius de Seggiano)의 지도를 받으며 수련을 받았다.

이듬해 서원을 하고 시에나(Siena)의 성 베르나르디누스(Bernardinus, 5월 20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다가 1420년에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즉시 설교자로 나서서 대성공을 거두었다. 수많은 이들을 개종시켰고, 많은 이들이 수도 생활에 관심을 두고 문을 두드리도록 만들었다. 또한 그는 시에나의 성 베르나르디누스와 함께 프란치스코 수도회의 개혁을 위해서도 활발한 활동을 했고, 그들의 노력으로 여러 분파로 나뉘었던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잠시나마 일치를 누리기도 했다(1430년).

성 요한은 1435~1436년에 교황특사로 활동했고, 1436년 12월에는 그의 노력 덕분에 작은 형제회 제3회 회원들이 공동체 생활을 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았다.

1437년에는 페라라(Ferrara)에 있는 ‘성녀 클라라의 가난한 자매 수도회’의 개혁 작업을 도왔다. 1439년 말에는 예루살렘 성지를 방문하였고, 1440~1442년까지 밀라노(Milano)에서 설교와 저술 활동을 하였다.

1442년 말과 1443년에는 부르고뉴(Bourgogne)와 플랑드르(Flandre) 지방을 방문하여 필리프 3세가 대립교황인 펠릭스 5세(Felix V)와 동맹을 맺지 않도록 설득하였다.

그는 바이에른(Bayern), 작센(Sachsen) 그리고 폴란드를 두루 다니며 설교하여 신앙을 크게 부흥시켰고, 이단자들이 발을 붙이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터키인들이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함으로써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그는 이 일로 선교활동을 중단하지 않고 오히려 십자군들에게 설교하러 다녔다.

그는 1456년 9월에 오늘날 크로아티아의 동쪽 끝에 있는 국경도시 일로크(Ilok)에 도착한 후 당시 군대의 비위생적인 상태에서 만연한 전염병에 걸려 10월 23일 선종하였다.

그가 선종한 후 그에 대한 신자들의 공경이 곧 시작되어 1514년에 술모나(Sulmona) 교구 내에서 그에 대한 공경이 허락되었고, 1690년 10월 16일 교황 알렉산데르 8세(Alexander VI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성 요한에 대한 공경은 1880년에 보편 교회로 확산되면서 1890년 로마 보편 전례력의 3월 28일에 올라 기념해 왔다. 1969년 전례 개혁 이후 그의 축일도 선종한 날인 10월 23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그를 군종신부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그는 카피스트라노(Capistrano)의 성 요한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요한 보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Bonu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49년

 

 

요한 보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보누스,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보노 자료

요한 보누스(Joannes Bonus, John the Good, 또는 요한 보노)는 부모를 잃은 뒤에 이탈리아 만투아(Mantua)의 집을 떠나 이곳저곳을 다니며 정처 없이 살다가 40세 때에 중병을 앓고 난 다음부터 새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주 성당을 찾다가 만투아 주교의 안배로 은수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고독한 생활 속에서 자신을 극복하는데 성공하여 높은 성덕을 쌓았다. 이 소문이 퍼져나가자 수많은 제자들이 주위에 몰려들므로 요한은 공동체를 세우고 교황의 승인을 구하였다. 교황은 그에게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의 수도규칙을 내려주었다.

요한은 초자연적 은혜를 많이 받아 많은 기적을 행하였다. 그는 추운 겨울에도 가벼운 옷을 입고 허름한 잠자리에서 지낼 정도로 고행을 실천했다. 그의 수도회는 보니티로 알려졌는데, 보니티회는 그가 생존할 당시에 이미 11개의 수도원으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1256년 교황의 명에 의하여 다른 수도회와 합하고, 수도회의 이름을 성 아우구스티누스 은수자회로 정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483년 교황 식스투스 4세(Sixtus IV)에 의해 승인되었고, 그의 유해는 현재 만투아의 주교좌성당에 모셔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이냐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Igna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99-877년 콘스탄티노플

 

 

이냐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그나티오, 이그나티우스, 이냐시우스.

 

 

이냐시오 자료

성 이냐시오는 비잔틴 황제 미카엘 1세와 니케포루스 황제의 딸 사이에서 태어났으나 그들의 부친이 아르메니아(Armenia) 사람인 레오(Leo) 황제에 의하여 폐위됨으로써 그들도 어느 수도원에 감금되었다. 후일 성 이냐시오는 수도자가 되었고, 사제로 서품되어 자기 수도원의 원장으로 있다가 846년에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857년 황제 미카엘 3세의 조카인 바르다스(Bardas)의 근친상간을 묵인하라는 요청을 거부한 이유로 파면되어 테레빈토스(Terebinthos) 섬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바르다스는 그의 비서인 성 포티우스(Photius, 2월 6일)를 총대주교로 임명하였으나, 정권이 바뀜에 따라 성 이냐시오의 권리가 회복되었다.

이때 그는 교황 하드리아누스 2세(Hadrianus II)에게 공의회 개최를 요구하여(제8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867-870년) 성 포티우스와 그 지지자들을 단죄하여 교회의 평화를 지켰다.

그 후 그는 불가리아에 대한 관할권 문제로 로마와 불편한 관계가 되어 파문의 위협을 받던 중에 선종하였다. 비록 그는 매우 뛰어난 성인이었지만 그 당시의 정치 문제에 깊숙이 개입함으로써 많은 난관을 겪어야만 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제르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erm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

 

 

제르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르마노, 게르마누스, 제르마누스, 젤마노.

 

 

제르마노 자료

북아프리카 탕헤르(Tangier)에서 순교한 성 마루첼루스(Marcellus, 10월 30일)의 아들로 전해지는 성 세르반두스(Servandus)와 성 게르마누스(또는 제르마노)는 체포되어 탕헤르로 가던 중 에스파냐의 카디즈(Cadiz)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남부 에스파냐 전역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테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2년 안티오키아

 

 

테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레뜨, 떼오도렛,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레트, 테오도렛, 테오도루스.

 

 

테오도로 자료

배교자 율리아누스(Julianus) 황제의 삼촌인 율리아누스 역시 배교자였는데, 그가 안티오키아의 집정관으로 있을 때 그곳의 성당에 금과 은이 많이 숨겨져 있다는 풍문만 믿고 그것을 착취하려고 명을 내렸다.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 신부는 집정관이 보낸 군인들에게 거룩한 성상들과 제구들을 내어 줄 수 없다고 완강히 거부하였다. 이 사건 때문에 그는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박해자 율리아누스는 이 사실을 황제에게 자랑했다가 혼쭐이 났으며 악질 병에 걸려 즉사하고 말았다고 한다. 성 테오도루스는 테오도레트(Theodoret)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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