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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남자세례명 13가지

피어나네 2023. 10. 22.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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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누닐로, 알로디아, 코르둘라, 총 13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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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22일 여자세례명 도나토, 마르코, 멜라니오, 베레쿤도v 세베로, 아베르치오, 알렉산데르, 에우세비오, 요한 바오로 2세, 필립보 (페르모), 필립보 (헤라클레아), 헤라클리오, 헤르메스,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0월 22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3가지

 

 

 

 

10월 22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도나토

  2. 마르코

  3. 멜라니오

  4. 베레쿤도

  5. 세베로

  6. 아베르치오

  7. 알렉산데르

  8. 에우세비오

  9. 요한 바오로 2세

  10. 필립보 (페르모)

  11. 필립보 (헤라클레아)

  12. 헤라클리오

  13. 헤르메스

 

10월 22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3가지

 

 

1. 도나토

 

  • 가톨릭 성인 이름
    Don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876년 피에졸레

 

 

도나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나또, 도나뚜스, 도나투스.

 

 

도나토 자료

성 도나투스(또는 도나토)는 아일랜드 귀족 가문에서 태어나 아일랜드 서부 골웨이(Galway) 남동쪽 더그 호수(Lough Derg)의 작은 섬(Holy Island)에 있는 수도원 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다. 그는 사제품을 받고 그곳에서 교사이자 시인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그는 아일랜드 출신의 안드레아(Andreas)라는 친구와 함께 로마를 방문해 사도들의 무덤을 순례하며 상당한 시간 동안 머물렀다. 그리고 교황의 축복을 받고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토스카나(Toscana) 지방 피에졸레의 한 수도원에서 한두 주 정도 쉬어 가게 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하느님의 섭리로 피에졸레의 주교좌성당으로 인도되었다. 당시 그 도시 주민들은 영주에 의해 주교가 죽임을 당해 공석이 된 교구의 새 주교를 선출하기 위해 집회를 열고 있었다.

선출에 어려움을 겪던 중 마침 성 도나투스가 대성당 안으로 들어왔고, 그 순간 성당의 종들이 울리고 촛불이 더 밝게 빛을 발했다고 한다. 그는 결국 그 자리에서 피에졸레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신자들의 신심을 되살리고 학문을 중시하며 수도원을 설립하는 등 교구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루이(Louis) 황제와 프랑크 왕국의 로타르 1세(Lothair I) 왕의 고문이자 친구가 되었고,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가 개최한 시노드에도 참석했다. 성 도나투스의 증언에 따르면, 그가 임종을 앞두고 있을 때 킬데어(Kildare)의 성녀 브리지다(Brigid, 2월 1일)가 나타나 그에게 영적인 힘과 위로를 주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코

 

  • 가톨릭 성인 이름
    Mark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6년 예루살렘

 

 

마르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꼬, 마르꾸스, 마르쿠스, 마크, 말구.

 

 

마르코 자료

“로마 순교록”은 성 마르코(Marcus)를 유대인 태생이 아닌 이방인 출신 중에 처음으로 예루살렘의 주교가 된 인물로 소개하였다. 그는 박해의 두려움으로 인해 흩어지고 무너진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서 믿음과 성실함으로 신자들을 돌보고 모으다가 안토니누스(Antoninus)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멜라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ela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14년 루앙

 

 

멜라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멜라니우스, 멜로노, 멜로누스, 멜로니오, 멜로니우스, 멜론, 멜롱.

 

 

멜라니오 자료

성 멜라니우스(또는 멜라니오)는 229년경 웨일스(Wales) 남동부의 카디프(Cardiff)에서 태어난 이교도로 로마에 갔다가 교황 성 스테파누스 1세(Stephanus I, 8월 2일)를 만나 개종하고 사제품과 주교품을 받았다. 그는 프랑스 지역 이교도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같은 교황에 의해 파견되었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프랑스 북부 벡생(Vexin)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다 순교한 성 니카시우스(Nicasius, 10월 11일) 주교의 제자로 그의 뒤를 이어 루앙의 주교로 임명되었다고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다. 그보다는 성 멜라니우스를 루앙에 복음을 전하고 주교좌를 설립한 초대 주교로 보고 있다.

전설에 따르면, 성 멜라니우스는 260년경 복음을 전하기 위해 루앙에 왔는데, 한 청년이 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지붕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죽는 일이 있었다. 성 멜라니우스가 기적적으로 그를 소생시키자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고, 청년의 아버지는 감사의 뜻으로 자신의 집과 토지를 성당 터로 기증했다고 한다.

그는 오랫동안 주교직을 수행한 후 311년에 에리쿠르(Hericourt)의 한 은둔소로 물러나 지내다가 314년 선종해 루앙의 성 게르바시우스(Gervasius) 성당 지하에 묻혔다. 그는 멜로니우스(Mellonius), 멜로누스(Mellonus), 멜롱(Mellon)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베레쿤도

 

  • 가톨릭 성인 이름
    Verecun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22년 베로나

 

 

베레쿤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레꾼도, 베레꾼두스, 베레쿤두스.

 

 

베레쿤도 자료

성 베레쿤두스(또는 베레쿤도)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였다. 그의 노고에 대한 기록은 분실하였고, 그 당시는 고트족(Goths)이 베로나를 통치하던 때였다. 성 발렌스(Valens, 7월 26일)가 그를 계승하여 베로나의 주교가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세베로

 

  • 가톨릭 성인 이름
    Seve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세베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베루스, 쎄베로, 쎄베루스.

 

 

세베로 자료

이탈리아 헤라클레아(오늘날의 치타 누오바, Citta Nuova)의 주교인 연로한 성 필리푸스(Philippus)는 자신의 부제인 성 세베루스(또는 세베로)와 다른 두 명의 사제인 성 헤르메스(Hermes)와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교회에 대한 박해 중에 체포되었다.

그들은 지방 장관인 바수스 앞에 끌려가서 성경을 잡고 당겨 찢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그들은 아드리아노폴리스(Adrianopolis)로 이송되어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아베르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berc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200년경 히에라폴리스

 

 

아베르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베르치우스, 아베르키오, 아베르키우스.

 

 

아베르치오 자료

성 아베르키우스 마르첼루스(Abercius Marcellus, 또는 아베르치오)는 2세기의 인물로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에 살았으며 히에라폴리스의 주교로 활약하였다. 그는 선교를 목적으로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그리고 니시비스(Nisibis)를 두루 다니면서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베풀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사도들과 비슷하게' 설교하고 기적을 행함으로써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이 소문이 당시의 황제이던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그는 황제의 초청으로 로마(Roma)를 방문하고 악령에 시달리던 황제의 딸 루실라를 치유함으로써 큰 공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알렉산데르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알렉산데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자료

성 알렉산데르 주교는 그의 설교를 통해 많은 군중들을 사로잡았고, 그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또한 자신을 체포하고 박해한 당국자들의 관심과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러한 성 알렉산데르의 지조와 성실함으로 인해 그를 지키던 군인 중의 한 명인 성 헤라클리우스(Heraclius)가 바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고 주교의 모범을 보고 뒤따라 개종하였다. 결국 그들은 모두 함께 순교하였는데, 그 때와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에우세비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seb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에우세비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세비오스, 에우세비우스.

 

 

에우세비오 자료

이탈리아 헤라클레아(오늘날의 치타 누오바, Citta Nuova)의 주교인 연로한 성 필리푸스(Philippus)는 자신의 부제인 성 세베루스(Severus)와 다른 두 명의 사제인 성 헤르메스(Hermes)와 성 에우세비우스(또는 에우세비오)와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교회에 대한 박해 중에 체포되었다.

그들은 지방 장관인 바수스 앞에 끌려가서 성경을 잡고 당겨 찢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그들은 아드리아노폴리스(Adrianopolis)로 이송되어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요한 바오로 2세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Paul I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1920-2005년

 

 

요한 바오로 2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파울로, 파울루스, 폴, 후안.

 

 

요한 바오로 2세 자료

1920년 5월 18일 폴란드 바도비체(Wadowice)에서 탄생한 카롤 요제프 보이티와(Karol Josef Wojtyla)는 1978년 10월 16일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아버지 카롤 보이티와(Karol Wojtyla)와 어머니 에밀리아 카초로프스카(Emilia Kaczorowska)의 둘째 아들로 태어나 세례를 받았다.

교사였던 그의 어머니는 1929년에 병으로 세상을 떠났고, 의사였던 그의 형 에드문트(Edmund)도 1932년에 사망하였다. 폴란드 육군 하사관이었던 그의 아버지는 나치 독일이 폴란드를 점령하고 있던 1941년에 세상을 떠났다. 어린 시절과 청년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잃는 아픔을 겪은 그는 9살 때 첫영성체를 하고 18살 때 견진성사를 받았다.

고향인 바도비체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그는 크라쿠프(Krakow)의 야기엘론스키(Jagiellonski) 대학교에 입학하였다. 1939년 9월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 세력이 대학교를 폐쇄하자 젊은 카롤은 독일군으로 징집되는 것을 피하기 위해 석회암 채석장과 솔웨이(Solway)의 화학 공장에서 일하며 생계를 유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사제 성소를 발견한 카롤은 1942년부터 아담 사피에하(Adam Sapieha) 대주교가 운영하는 크라쿠프의 지하 신학교에서 비밀리에 사제 수업을 받기 시작하였다. 또한 카롤은 지하 극단인 ‘랩소디 극장’의 연극 활동에 참여하고 후원하기도 하였다.

종전 이후 카롤은 다시 열린 크라쿠프 신학교와 야기엘론스키 대학교 신학부에서 학업을 계속하여 1946년 11월 1일 크라쿠프 교구장인 아담 사피에하 추기경으로부터 사제품을 받았다. 그 후 아담 사피에하 추기경은 그를 로마로 보내 계속해서 공부하도록 했다.

그는 1948년 6월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에 드러난 신앙을 주제로 쓴 논문(Doctrina de fide apud S. Ioannem a Cruce)으로 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 당시 그는 방학이 되면 프랑스, 벨기에, 네덜란드에 있는 폴란드 이민자들을 대상으로 사목활동을 하였다.

1948년 여름에 폴란드로 돌아온 그는 크라쿠프 인근 니에고비치(Niegowice) 마을의 승천 성당과 크라쿠프의 성 플로리아누스(Florianus) 성당에서 본당신부로 사목하였다. 1951년까지 그는 야기엘론스키 대학교의 교목으로 있으면서 철학과 신학 연구를 계속하였다.

1953년 그는 루뱅 대학교에서 “막스 셸러(Max Scheler)의 윤리 체계를 바탕으로 한 그리스도교 윤리학 성립 가능성에 관한 성찰”을 주제로 한 박사 논문을 제출하였다. 그 후 그는 크라쿠프 신학교에서 사회윤리학을 강의하고, 1956년에 가톨릭 루블린 대학교(Catholic University of Lublin)의 윤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 당시 그는 가톨릭 신문에 현대 교회의 문제에 대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는 글을 기고했고, 시와 희곡에도 관심을 두어 여러 작품을 출판했으며, 학생들과의 다양한 야외 활동과 운동 및 토론에도 즐겨 참여하였다.

1958년 7월 4일 교황 비오 12세(Pius XII)는 그를 옴비(Ombi)의 명의 주교 겸 크라쿠프 교구의 보좌주교로 임명하였다. 그는 1958년 9월 28일 크라쿠프의 바벨 주교좌성당(Wawel Cathedral)에서 유게니우스 바지아크(Eugeniusz Baziak) 대주교에게서 주교품을 받음으로써 38세로 폴란드에서 가장 젊은 주교가 되었다.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는 1963년 12월 30일 그를 크라쿠프의 대주교로 임명하였고, 1967년 6월 26일에는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카롤 보이티와 대주교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에도 참석하여 “현대 세계의 교회에 관한 사목 헌장”(Gaudium et spes)과 “종교 자유에 관한 선언”(Dignitatis Humanae)을 준비하는 데에도 기여하였다. 그는 또한 교황직에 오르기 전까지 세계주교대의원회의(Synod of Bishops)의 다섯 번의 회의 중 네 번을 참석하였다.

그는 1978년 10월 16일 제264대 교황으로 선출됨으로써 교황 하드리아누스 6세(Hadrianus VI, 1522~1523년 재위) 이래 455년 만의 비(非)이탈리아인 교황이자 최초의 슬라브인 교황이 되었다. 1978년 10월 22일에 교황으로 즉위하여 보편 교회의 목자 직무를 수행하기 시작하였다.

교황 성 바오로 6세의 선종 이후 교황좌에 오른 교황 요한 바오로 1세(Joannes Paulus I)가 한 달여 만에 갑자기 선종한 후 교황으로 선출된 그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시작한 교황 성 요한 23세(Joannes XXIII)와 공의회를 마무리한 교황 성 바오로 6세의 뜻을 계승하고자 한 전임자의 뜻을 이어받아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라는 교황명을 선택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7년간 사도좌 직무를 수행하면서 이탈리아에서 146회의 사목 방문을 하고, 로마 교구장으로서 로마의 332개 본당 중 317개의 본당을 방문하였다. 그는 베드로 사도의 후계자로서 보편 교회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나타내기 위하여 세계 129개국을 사목 방문했다.

그가 반포한 주요 문헌으로는 14개의 회칙, 15개의 교황 권고, 11개의 교황령과 45개의 교황 교서가 있다. 그는 또한 여러 책도 저술하였다.

여기에는 “희망의 문턱을 넘어서”(Crossing the Threshold of Hope, 1994년 10월), “은총과 신비 : 사제 수품 50주년을 맞이하여”(Gift and Mystery : On the Fiftieth Anniversary of My Priestly Ordination, 1996년 11월), “로마 삼부작 - 명상”(Roman Triptych : Meditations, 2003년 3월), “일어나 가자”(Rise, Let Us Be On Our Way, 2004년 5월), “기억과 신원”(Memory and Identity, 2005년 2월) 등이 포함된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47차례의 시복식을 주재하여 1,338명을 복자품에 올렸고, 51차례의 시성식을 주재하여 총 482명을 성인품에 올렸다. 또한 9차례의 추기경 회의를 소집하여 231명(1명의 비밀 추기경 제외)의 추기경을 임명하였다.

그는 1978년부터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15회 소집하였다. 여기에는 정기총회 6회(1980, 1983, 1987, 1990, 1994, 2001년), 임시총회 1회(1985년), 특별총회 8회(1980, 1991, 1994, 1995, 1997, 1998[2회], 1999년)가 있다.

1981년 5월 1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신자들과 만나는 도중 괴한의 습격을 받아 총탄을 맞고 쓰러졌다. 성모님의 자애로운 손길 덕분에 총알이 그의 심장을 살짝 비켜 가서 목숨을 구한 그는 대수술 후 오랜 회복기를 거친 다음 암살 미수범이 있는 교도소를 직접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를 용서하였다.

그리고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새 삶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더욱 영웅적 덕행을 발휘하며 사목 활동에 힘을 쏟았다. 그는 목자로서 신자들을 배려하기 위해 많은 교구를 설립했고, 라틴 가톨릭 교회와 동방 가톨릭 교회를 위한 교회법전도 공표하였다.

또한 하느님 백성을 격려하는 특별한 영적 의미가 있는 구원의 해, 마리아의 해, 성체성사의 해, 2000년 대희년 등을 제정하였다. 그는 또한 신앙에 대한 젊은이들의 관심을 끌기 위해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s)를 제정하였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만큼 사람들을 많이 만난 교황은 없을 것이다. 매주 수요일에 있는 일반 알현(1,160회 이상) 때 1천 7백만 명 이상의 순례객이 교황을 만났다.

여기에 특별 알현이나 예식(2000년 대희년에만 800만 명), 이탈리아를 포함 전 세계의 사도 방문에서 만난 수백만의 신자들이 추가된다. 38회의 공식 방문을 통하여 많은 정부 관리도 교황을 알현하였다. 그리고 738차례의 알현과 모임을 통해 국가 원수들을, 246회의 알현과 모임을 통해 총리들을 만났다.

1996년부터 파킨슨병을 비롯한 여러 합병증으로 고생하던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교황궁에서 2000년에 그가 제정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부활 제2주일, 사백주일) 전야인 2005년 4월 2일 토요일 오후 9시 37분에 선종하였다.

“나는 행복합니다. 그대들도 행복하십시오.”라는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 선종한 그는 4월 8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장례미사 뒤에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의 지하 무덤에 묻혔다.

그리고 2011년 5월 1일, 생전에 그가 제정하고 그 전야에 선종한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로마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교황 베네딕토 16세(Benedictus XVI)에 의해 가톨릭 교회 역사상 최단기간에 복자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교황 즉위 기념일인 10월 22일로 정해졌다.

그리고 2014년 4월 27일, 하느님의 자비 주일에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 요한 23세 교황과 함께 시성식을 갖고 성인품에 올랐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시복과 시성은 한국 가톨릭 교회에도 커다란 의미를 지닌다. 1984년 5월 3일 성 요한 바오로 2세는 교황 중 처음으로 한국을 방문했으며, 6일 서울 여의도광장에서 100만여 명이 운집한 가운데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미사와 한국 103위 순교복자 시성식을 거행했다.

이는 시복 시성식을 바티칸에서 거행하는 교회의 오랜 전통을 깬 파격이기도 했다. 1989년 10월 5일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맞아 다시 한국을 찾은 그는 65만여 명이 운집한 여의도 광장에서 남북한의 화해를 바라는 평화 메시지를 낭독했고, 5·18 광주 민중항쟁의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두 번에 걸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의 방한은 한국 천주교회의 비약적인 성장에 큰 영향을 끼쳤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필립보 (페르모)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ip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0년 페르모

 

 

필립보 (페르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필립보 (페르모) 자료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는 이탈리아 페르모의 주교로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그에 대해 알려진 바는 적지만 그의 유해는 페르모의 주교좌 성당에 모셔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필립보 (헤라클레아)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ip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헤라클레아

 

 

필립보 (헤라클레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필립보 (헤라클레아) 자료

이탈리아 헤라클레아(오늘날의 치타 누오바, Citta Nuova)의 주교인 연로한 성 필리푸스(Philippus, 또는 필립보)는 자신의 부제인 성 세베루스(Severus)와 다른 두 명의 사제인 성 헤르메스(Hermes)와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교회에 대한 박해 중에 체포되었다.

그들은 지방 장관인 바수스 앞에 끌려가서 성경을 잡고 당겨 찢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그들은 아드리아노폴리스(Adrianopolis)로 이송되어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헤라클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Herac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헤라클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라끌리오, 헤라끌리우스, 헤라클리우스.

 

 

헤라클리오 자료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주교는 그의 설교를 통해 많은 군중들을 사로잡았고, 그로 인해 많은 유대인들과 이교도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또한 자신을 체포하고 박해한 당국자들의 관심과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러한 성 알렉산데르의 지조와 성실함으로 인해 그를 지키던 군인 중의 한 명인 성 헤라클리우스(또는 헤라클리오)가 바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다른 이들고 주교의 모범을 보고 뒤따라 개종하였다. 결국 그들은 모두 함께 순교하였는데, 그 때와 장소는 알려지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헤르메스

 

  • 가톨릭 성인 이름
    Herm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헤르메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헤르메스 자료

이탈리아 헤라클레아(오늘날의 치타 누오바, Citta Nuova)의 주교인 연로한 성 필리푸스(Philippus)는 자신의 부제인 성 세베루스(Severus)와 다른 두 명의 사제인 성 헤르메스와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함께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교회에 대한 박해 중에 체포되었다.

그들은 지방 장관인 바수스 앞에 끌려가서 성경을 잡고 당겨 찢으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이를 거부하였다. 결국 그들은 아드리아노폴리스(Adrianopolis)로 이송되어 화형대 위에서 화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들은 모두 같은 날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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