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세례명 가브리엘은 가별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가브리엘 5인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가브리엘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가브리엘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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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브리엘
남자세례명
5인 목록
가브리엘 남자세례명 목록
1. 가브리엘
- 세례명 축일
2월 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Gabriel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78-1597년 나가사키 일본
가브리엘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별.
가브리엘 이야기
성 바오로 미키(Paulus Miki)와 함께 일본 나가사키(長崎)에서 19세의 나이로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한 성 가브리엘은 프란치스코회의 일본인 문지기의 아들이었다. 그는 프란치스코회 평수사인 성 군디살부스 가르시아(Gundisalvus Garcia)에 의해 개종하고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는 1627년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862년 6월 8일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26위의 일본 성인 중의 한 명으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가브리엘 포센티
- 세례명 축일
2월 2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Gabriel Possenti - 신분과 직업
수사, 신학생 - 활동 연도와 지역
1838-1862년
가브리엘 포센티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별, 뽀센띠, 뽀센티.
가브리엘 포센티 이야기
1831년 3월 1일 이탈리아의 아시시(Assisi)에서 법률가인 산테 포센티(Sante Possenti)의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성 가브리엘 포센티는 프란치스코(Francisc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부유하고 신심 깊은 가정에서 성장한 그는 4살 때에 어머니를 잃고 큰누나 밑에서 자랐으나 그 누나가 콜레라로 사망하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리고 그의 부친이 스폴레토(Spoleto)의 세액 사정관으로 임명되자 그는 예수 고난회에 입회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한 그는 매우 지성적이며 능력이 뛰어났고, 문학과 예술에도 놀라운 재능을 보였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깊은 신앙심과 성모님에 대한 신심,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높은 애정이 자리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1856년 9월 21일 마체라타(Macerata) 부근의 모로발레(Morovalle)에서 예수 고난회에 입회하여 수련자가 되었다. 그리고 1857년 9월 22일 첫 서약을 하면서 그에게는 '성모 통고의 가브리엘'(Gabriel a Virgine Perdolente)이라는 수도명이 주어졌다.
그는 이때부터 사소한 일에서도 완덕을 얻으려는 특별한 노력으로 일생을 살았다. 그의 밝은 성품, 기도 정신,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 규칙 엄수, 육체적으로 그리스도의 고난을 닮으려는 열망이 그의 모든 생활에서 빛을 발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짧은 수도생활에도 불구하고 높은 완덕을 닦을 수 있었다.
1861년에 소품들을 받은 그는 대품을 받을 준비를 계속하였지만 6년 동안의 수도생활로 체력이 소진되어, 1862년 2월 27일 이탈리아 테라모(Teramo) 지방의 이솔라 델 그란 사소(Isola del Gran Sasso)에서 결핵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수도회가 이솔라 델 그란 사소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성당에 안치되었으며, 지금까지 그곳에 남아 있다. 이후 그의 무덤에서는 수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성녀 젬마 갈가니(Gemma Galgani, 4월 11일)가 그에게 기도함으로써 치유된 일도 있었다.
그는 1908년 5월 31일 로마의 바티칸 대성전에서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로부터 시복되었고, 1920년 3월 13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시성되었고, 아브르초(Abruzzo) 지방의 수호성인이며, 청소년, 특히 수련자와 신학생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가톨릭 활동에 참여하는 젊은이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가브리엘 마리아
- 세례명 축일
8월 27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Gabriel Mary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463-1532년
가브리엘 마리아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별.
가브리엘 마리아 이야기
가브리엘 마리아(Gabriel Maria)는 프랑스의 클레르몽(Clermont) 부근에서 길베르투스 니콜라우스(Gilbertus Nicolaus)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그는 16세 때에 작은 형제회를 지원하였으나 몸이 허약해 보인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그 후 재차 입회를 청하여 라로셀(La Rochelle)에서 입회하였는데, 원장은 그의 용기를 가상히 여겨 허가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수련장은 그의 됨됨이를 알아보고 '모범적인 프란치스코 회원이 되리라고 예언하였다. 과연 그는 뛰어난 철학자임과 동시에 신학자가 되었으며, 프랑스의 작은 형제회 회원으로서 큰 역할을 담당하였다.
그는 후일 발루아(Valois)의 성녀 요안나(Joanna, 2월 4일)의 고해신부로도 활약하였고, 작은 형제회의 총시찰자가 되었으며, 성모 영보의 신비에 대한 그의 높은 신심으로 교황 레오 10세(Leo X)를 감동시켰다. 그래서 교황은 그에게 가브리엘 마리아라는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그는 작은 형제회의 회칙을 개정하였고, 프랑스와 네덜란드에 수도원을 여섯 곳이나 세웠다. 그의 마리아 신심은 놀라울 정도였으며, 임종하는 순간에도 마니피캇(Magnificat)을 노래하였다고 전해온다. 1647년에 그에 대한 공경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가브리엘 랄르망
- 세례명 축일
10월 1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Gabriel Lalemant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10-1649년 캐나다
가브리엘 랄르망 세례명과 같은 이름
랄망.
가브리엘 랄르망 이야기
성 가브리엘 랄르망은 1630년에 예수회원이 되어 외국 선교에 헌신하였으나 건강은 늘 좋지 못하였다. 2년 동안 캐나다 퀘벡에서 사목한 후 그는 성 요한 드 브레뵈프(Joannes de Brebeuf)와 합류하여 인디언 휴런족(Huron) 선교에 나섰다.
그곳에서 6개월 정도 활동할 즈음에 이로쿼이족(Iroquois)의 습격을 받아 2명의 사제가 포로가 되어 생 이나스까지 호송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몸서리치는 고문을 받았는데 브레뵈프 신부는 몇 시간 내에 운명하였으나, 아주 묘하게도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는 그날 밤은 넘겼지만 결국은 살해되고 말았다.
랄르망 신부는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가브리엘 페르레티
- 세례명 축일
11월 12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Gabriel Ferretti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456년 안코나 이탈리아
가브리엘 페르레티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별.
가브리엘 페르레티 이야기
가브리엘 페르레티는 18세 때에 작은 형제회 수도자가 되어, 15년 동안을 안코나에서 선교사로 활동 하였다. 그는 이 동안에 수많은 기적과 높은 성덕으로 유명하였으며, 고향에 있는 수도원의 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성모 칠락에 큰 신심을 가지고 있었고, 칠락의 묵주기도를 전파함으로써 성모님께 대한 독특한 신심을 바쳤다. 그에 대한 공경은 1753년 교황 베네딕투스 14세(Benedictus XIV)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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