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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 남자세례명 10가지

pieonane 2023. 11. 1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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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마르티노, 멘나 (군인), 멘나 (은수자), 바르톨로메오, 발렌티노, 베라노, 빅토리노, 아테노도로, 테오도로, 펠리치아노, 총 10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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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1월 1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0가지

 

 

 

 

11월 1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마르티노

  2. 멘나 (군인)

  3. 멘나 (은수자)

  4. 바르톨로메오

  5. 발렌티노

  6. 베라노

  7. 빅토리노

  8. 아테노도로

  9. 테오도로

  10. 펠리치아노

 

11월 1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0가지

 

 

1. 마르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16?-397년 투르

 

 

마르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마르티노 자료

프랑스의 수호성인으로 큰 공경을 받는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316년경 헝가리 판노니아(Pannonia)의 사바리아(Sabaria)에서 태어났다.

이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난 그는 로마제국 군대의 장교인 아버지가 이탈리아의 파비아(Pavia)로 전속되자 그곳에서 가족과 함께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전기작가 술피키우스 세베루스(Sulpicius Severus)는 “마르티누스의 생애”(Vitae Martini)에서 이미 이탈리아 생활 중에 성 마르티누스가 그리스도교를 접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의 자유는 얻었으나 당시 그리스도교 신자는 여전히 제국 내에서 소수일 뿐이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그는 자기 뜻과는 달리 군인이 되기를 원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군에 입대했지만 이미 마음은 그리스도를 따랐다고 기록하였다. 로마로 유학 간 그는 그곳에서 예비신자가 되었다.

성 마르티누스가 속한 부대가 프랑스의 아미앵(Amiens) 근처에서 주둔하던 어느 추운 겨울날, 그는 거의 벌거벗은 채 추위에 떨면서 성문 앞에서 구걸하고 있는 한 걸인을 만났다. 당시 가진 것이라고는 입고 있던 옷과 무기밖에 없었던 그는 칼을 뽑아 자기 망토를 두 쪽으로 잘라 그 절반을 걸인에게 나눠주었다.

그런데 그날 밤 꿈에 자기가 걸인에게 준 반쪽 망토를 입은 예수님께서 나타나 “아직 예비신자인 마르티누스가 이 옷으로 나를 입혀 주었다.”라고 말씀하시는 것을 들었다. 교회 미술에서 즐겨 다루는 이 신비 체험을 한 후 그는 18세에 세례성사를 받고 얼마간 군대에서 더 생활한 후 제대하였다.

그의 전기에 따르면, 이민족이 갈리아 지방으로 침략해 오자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Julianus)는 출전을 앞둔 병사들에게 봉급을 주기 위해 그들을 소집했다. 그때 스무 살 즈음의 성 마르티누스는 황제 앞에서 봉급 받기를 거부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는 군인으로서 황제를 섬겼으나 이제는 그리스도를 섬기려 한다면 제대를 요청했다.

하지만 황제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두려움 때문에 비겁하게 군인 신분을 떠나려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자 그는 다음 날 아침 무장 해제하고 십자가 하나만 들고 홀로 적진으로 가겠다고 했고, 놀랍게도 다음 날 적군의 사신이 황제에게 평화 제의를 해와 다행히 전투가 일어나지는 않았다.

이렇게 군대에서 제대한 성 마르티누스는 푸아티에(Poitiers)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 1월 13일)를 찾아가 그의 지도하에 은수자 생활을 하다가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서 먼저 어머니를 개종시키고 또 많은 이들을 교회로 인도했으나 아버지만은 끝내 개종시키지 못했다.

일리리쿰(Illiricum, 오늘날의 발칸 반도 서부 지역)으로 가서는 공개적으로 아리우스파(Arianism)와 대적해 매를 맞고 쫓겨나는 봉변을 당하기도 했고, 이탈리아로 다시 돌아와서는 아리우스파에 속한 밀라노(Milano)의 주교에 의해 추방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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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한동안 리구리아해에 있는 갈리나리아(Gallinaria) 섬을 피신처 삼아 지내다가 360년경 아리우스파 황제에 의해 추방되었던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우스 주교가 교구로 돌아오자 프랑스로 돌아왔다.

이때부터 그는 푸아티에에서 8km 정도 떨어진 리귀제(Liguge)에서 성 힐라리우스의 도움을 받아 은수자가 되었다. 그런데 다른 은수자들이 그곳으로 몰려와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면서 갑자기 큰 공동체로 성장하게 되었고, 이 공동체가 결국 프랑스의 첫 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

그 후 투르의 주교가 선종하자 투르의 주민들은 성 마르티누스에게 주교가 되어 주기를 간청했다. 수도 생활을 위해 주민들의 청을 거절했지만 더는 어쩔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받아들였다. 그는 371년 7월 4일 투르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한동안 주교좌성당에서 활동하던 그는 투르 외곽의 마르무티에(Marmoutier)에서 80명의 제자와 함께 작은 골방에서 수도 생활을 하며 정열적으로 주교직을 수행했다.

교구의 각 본당을 일일이 걸어서 방문하고 전교에 힘을 쏟자 프랑스 지방 곳곳에서 이교도 신전의 파괴와 사람들의 개종이 잇달아 일어났다. 그는 병자를 고쳐주고, 죽은 아이를 살리며, 짐승을 감화시키는 등 많은 기적을 행했을 뿐만 아니라 환시와 예언의 은사로도 유명했다.

그는 또한 프리실리아누스(Priscillianus) 이단을 격렬히 반대하고 격퇴하는 데 성공했지만, 황제에게 이단자인 프리실리아누스의 생명을 구해 주길 청할 정도로 자비로운 사람이었다. 이로 인해 이단자라는 모함까지 받았지만, 성 마르티누스는 이단자들을 성교회로 인도하고자 모든 것을 참아냈다.

술피키우스 세베루스의 편지에 보면, 성 마르티누스는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면서도 교구 성직자들 간에 발생한 불화를 해결하고자 캉드(Candes) 지방 사목 방문을 떠났다. 그곳에서 성직자들 간의 화목을 이루고 수도원으로 돌아가려던 중 병에 걸려 위중한 상태가 되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애통해하는 이들을 향해 “주님, 아직 당신 백성이 저를 필요로 한다면 계속 일하는 것을 거절치 않겠습니다. 당신의 뜻이 이루어지소서.”라며 눈과 손을 하늘을 향해 드높인 채 기도했다. 그곳에 모인 성직자들이 몸을 돌려 편히 하시라고 청하였으나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 두시오. 땅보다 하늘을 더 바라보고 싶습니다. 이제 여행을 떠나려는 순간에 이 내 영혼은 하느님께로 향하고 있습니다.”

이 말을 마쳤을 때 악마가 가까이 있는 것을 보고 이렇게 소리쳤다.

“피에 얼룩진 짐승아, 너는 여기서 무엇을 하는 거냐? 이놈아, 네가 받을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아브라함의 품이 지금 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는 이 마지막 말씀을 남기고 397년 1월 8일 자신의 영혼을 온전히 하느님께 맡겨 드렸다.

그는 살아서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명성을 얻었고, 죽은 후에도 그의 무덤 위에 건립된 작은 경당은 수많은 순례자로 가득했다. 그는 프랑스 최고의 성인이며, 그의 유해가 모셔진 경당은 프랑스 최초의 순례지로 예루살렘과 로마에 이어 대표적인 순례지로 꼽히게 되었다.

그가 걸인에게 반쪽을 나눠준 외투 또한 ‘성 마르티누스의 기적의 망토’(Cappa Sancti Martini)로 불리며 중세 프랑스에서 가장 유명한 유물 중 하나가 되었다.

그는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 7월 11일) 이전에 서방 수도원 제도를 개척한 탁월한 지도자였고, 순교자가 아니면서도 성인이 된 최초의 인물이다. 프랑스의 수호성인의 한 명인 그는 군인, 재봉사, 가난한 이, 가축과 목동의 수호자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유럽 교회에서 특별히 대림 시기에 기억되는 대표적 성인으로도 꼽힌다. 한 걸인에게 자기 망토를 나눠준 그의 사랑과 선행을 기억하며 성탄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멘나 (군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enn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5-309년경 이집트

 

 

멘나 (군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나, 메나스, 멘나스, 미나, 미나스.

 

 

멘나 (군인) 자료

성 멘나는 이집트의 멤피스(Memphis) 부근 니키우(Nikiou)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모는 신심 깊은 그리스도인이었으나 오랫동안 자녀를 갖지 못하던 중 어머니인 에우페미아(Euphemia)가 성모님의 이콘 앞에서 자녀를 주시기를 청하며 눈물로 기도하던 중 이콘에서 ‘아멘’(Amen) 하는 소리를 들었고, 그 후 아들을 낳자 ‘메나’(Menas)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성 멘나에 대해서는 다양한 언어로 다양한 전승이 전해지고 있다. 그는 14살 때 지방 행정관이었던 아버지 에우독시오스(Eudoxios)를 여의고, 이듬해 로마군에 입대해 군인으로서 소아시아 중서부의 프리지아(Phrygia) 지방에서 복무하며 큰 명성과 지위를 얻었다.

그러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에 신앙을 지키다가 순교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대표적인 ‘군인 성인’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그는 젊은 시절 로마 군인으로 복무하다가 그리스도께 헌신하기 위해 군대를 떠나 사막으로 들어갔고, 5년 정도 은수자로 살던 중 천사들이 순교자들에게 월계관을 씌워주는 환시를 보고 통치자에게 달려가 신앙을 고백하고 순교했다고 한다.

그 후 성 멘나의 시신은 그의 누이에 의해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옮겨졌고, 박해가 끝난 후 교황에게 발현한 천사의 명으로 유해를 낙타에 싣고 서부 사막 지역으로 이동하던 중 알렉산드리아 남서쪽 마리우트(Mariout) 호수 부근에서 낙타가 멈춰 선 후 더는 움직이지 않자 그곳에 그의 시신은 안장했다.

5~6세기에 그의 무덤을 중심으로 지어진 아부 메나(Abu Mena)라는 도시는 중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그는 특별히 이집트의 콥트 정교회에서 위대한 성인 중 한 명으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성 메나(Menas) 또는 미나(Mina, Mina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멘나 (은수자)

 

  • 가톨릭 성인 이름
    Menn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

 

 

멘나 (은수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멘나스.

 

 

멘나 (은수자) 자료

소아시아에서 그리스로 온 성 멘나는 이탈리아 중부 아브르초(Abruzzo)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는 "대화집"에서 그의 덕과 기적을 칭송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바르톨로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Bartholomew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055년 그로타페라타

 

 

바르톨로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르똘로메오, 바르똘로메우스, 바르톨로매오, 바르톨로매우스, 바르톨로메우스.

 

 

바르톨로메오 자료

성 닐루스(Nilus, 9월 26일)는 이탈리아 남부 칼라브리아(Calabria) 지방 로사노(Rossano) 출신의 그리스인으로서, 젊었을 때에는 고향에서 세리 일을 맡아 보았고, 젊은 여인과 함께 살았으나 아내는 아니었다고 한다.

940년에 그 여인과 아이가 죽자 그는 캄파니아(Campania)의 팔마(Palma)에 있는 비잔틴 수도원에 들어가서 40년을 살았다. 그가 유명 인사로 알려지게 된 것은 그의 뛰어난 선성과 지혜 때문인데, 성 데메트리우스 코로네 수도원의 원장이 되면서부터 더욱 두드러졌다.

그는 사라센인들의 침략으로 수하 수도자들을 데리고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와 인접한 곳으로 피신하여 벨레루치오(Vellelucio)에 정착하였다. 성 닐루스는 임종하면서 벨레루치오를 자신의 수도원을 위한 새로운 장소로 선포하였고 그곳에서 그로타페라타 수도원이 시작되었다.

그는 그리스 수도자의 아버지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세 번째 계승자인 그로타페라타의 성 바르톨로메우스(Bartholomaeus, 또는 바르톨로메오)는 성 닐루스가 세운 수도원의 기반을 더욱 단단히 다졌던 그의 수제자였고, 스승과 같이 찬미가를 짓기도 하였다. 또 그는 노련한 서예가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발렌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ntin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발렌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발렌띠노, 발렌띠누스, 발렌타인, 발렌티누스, 밸런타인.

 

 

발렌티노 자료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또는 발렌티노)와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그리고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라벤나(Ravenn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베라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er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 리옹

 

 

베라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라누스, 베랑.

 

 

베라노 자료

비록 로마 순교록이 성 베라누스(또는 베라노)를 프랑스 리옹의 주교로 주장하고 있지만, 그는 아마도 프랑스 남부 방스(Vence)의 주교이자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 11월 16일)의 둘째 아들인 성 베라누스와 동일인물로 여겨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빅토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ictor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빅토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빅또리노, 빅또리누스, 빅토리누스.

 

 

빅토리노 자료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와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그리고 성 빅토리누스(또는 빅토리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라벤나(Ravenn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아테노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Athenod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메소포타미아

 

 

아테노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떼노도로, 아떼노도루스, 아테노도루스.

 

 

아테노도로 자료

성 아테노도루스(또는 아테노도로)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치하의 메소포타미아에서 순교하였다.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그는 잔인한 고문을 당했으나 신앙을 확고부동하게 지켰고, 그로 인해 사형을 선고받았다.

성 아테노도루스가 기도하는 중에 박해자는 사형을 집행하려다가 땅바닥에 쓰러졌고, 누구도 감히 그를 해치지 못했다. 결국 그는 기도 중에 생을 마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테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신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59-826년

 

 

테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스투디테, 테오도루스.

 

 

테오도로 자료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서 태어난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the Studite, 또는 테오도로 스투디테)는 소아시아 북서부 비티니아(Bithynia) 올림푸스 산의 성인인 플라토(Plato) 원장의 조카이다.

그는 자신의 부친이 비티니아의 사쿠디온(Sakkudion)에 세운 수도원의 수련생으로 공부하던 중 삼촌인 성 플라토(Plato, 4월 4일)의 문하생이 되었다.

그 후 그는 콘스탄티노플에서 사제품을 받고 794년에는 성 플라토를 계승하여 수도원장이 되었다. 그와 성 플라토는 본처를 버리고 테오도타(Theodota)와 재혼하는 콘스탄티누스 6세 황제의 행위를 맹렬히 비난한 결과 테살로니카(Thessalonica)로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래서 그는 공동체를 콘스탄티노플로 옮겨 로마인이 세운 스투디오스(Studios) 수도원에 정착하였다. 그의 지도로 이 공동체는 비잔틴 수도원의 신기원을 수립할 만큼 큰 영향력을 갖게 되었다.

그는 두 차례나 유배를 당했고, 더욱이 레오 5세 황제가 성상 파괴 정책을 재개하는 등 온갖 어려움을 겪었지만 이를 극복한 위대한 성인이었다.

성 테오도루스는 세속의 권력과 교회의 권리를 구분하여 교회의 독립을 주장했던 인물이며, 성상 공경의 정당성을 확립했을 뿐만 아니라 순수한 의미에서의 수도회 개혁자였다.

그는 교의에 관한 논쟁적인 글을 비롯하여 교리서, 강론집 그리고 찬미가 등을 남겼고, 뛰어난 서예가로 알려졌으며 수도자들에게 예술을 장려했다고 한다. 그를 성 테오도루스 스투디테로 부르는 이유는 스투디오스 수도원의 수도자들을 뜻하는 스투디테스(Studites)에서 유래한 표현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펠리치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c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펠리치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뻴리치아노, 뻴리치아누스, 펠리치아누스, 펠리키아노, 펠리키아누스.

 

 

펠리치아노 자료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와 성 펠리키아누스(Felicianus, 또는 펠리치아노) 그리고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의 라벤나(Ravenna)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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