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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남자세례명 17가지

pieonane 2023. 11. 1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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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구리아, 데시데리오, 레오폴도, 루페리오, 리카르도 화이팅, 말로, 바리코, 사모나, 세쿤도, 아비보, 알베르토(대), 에우제니오, 요셉 무카사, 펠릭스, 피덴시아노, 핀타노, 후고 패링던, 총 17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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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5일 여자세례명 루치아,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1월 15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11월 15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구리아

  2. 데시데리오

  3. 레오폴도

  4. 루페리오

  5. 리카르도 화이팅

  6. 말로

  7. 바리코

  8. 사모나

  9. 세쿤도

  10. 아비보

  11. 알베르토(대)

  12. 에우제니오

  13. 요셉 무카사

  14. 펠릭스

  15. 피덴시아노

  16. 핀타노

  17. 후고 패링던

 

11월 15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7가지

 

 

1. 구리아

 

  • 가톨릭 성인 이름
    Guri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22년경 에데사

 

 

구리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구리아스.

 

 

구리아 자료

시리아 에데사 성당의 부제인 성 아비부스(Abibus)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친구인 성 구리아(Gurias), 성 사모나(Samonas)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산 채로 화형을 당한 후 함께 묻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데시데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esid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55년 카오르

 

 

데시데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시데리우스, 디디에르, 디디엘.

 

 

데시데리오 자료

성 데시데리우스(또는 데시데리오)의 양친은 알비(Albi) 지역에 넓은 토지를 갖고 있던 귀족이었는데, 그의 모친은 지극한 신심을 가지고 있어서 아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그는 집안의 지위 때문에 국왕 클로테르 2세의 궁중에서 고관직에 있었는데, 여기서 그는 메스(Metz)의 성 아르눌푸스(Arnulphus)와 성 엘리기우스(Eligius)를 비롯한 많은 분들과 교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동생 루스티쿠스(Rusticus)는 사제였다가 프랑스 남서부 카오르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곧 살해당하였는데, 그 후임으로 데시데리우스가 주교로 선출되었다. 이때 그는 평신도였다.

그는 참으로 열성적이고도 힘찬 주교로서 교구의 모든 영적인 일과 현실적인 일들을 처리하여 높은 공경을 받았다. 그는 귀족들을 종용하여 신심적인 기반을 단단히 하도록 하였고, 남녀 수도회의 발전을 독려하였다.

또한 자신이 세운 수도원을 직접 지도했을 뿐만 아니라 성 아만티우스(Amantius)의 수도원을 건립하였고, 세 곳에 큰 성당을 지었다. 데시데리우스의 사목원칙은 항상 신자들의 그리스도교적 생활 향상이었으므로 성직자 교육에 힘썼고, 엄격한 규율을 적용시킨 것으로 유명하였다.

그는 알비 근교에서 운명하였으나 카오르에 안장되었다. 그의 무덤에서는 기적이 끊어지지 않는다고 전해온다. 디디에르(Didier)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레오폴도

 

  • 가톨릭 성인 이름
    Leopol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 활동 연도와 지역
    1075-1136년 오스트리아

 

 

레오폴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오폴두스, 레오폴드.

 

 

레오폴도 자료

성 레오폴두스(Leopoldus, 또는 레오폴도)는 오스트리아의 가르스에서 태어나 독일로 가서 파사우(Passau)의 성 알트만(Altman, 8월 8일) 주교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23세의 나이로 부왕을 승계하였다.

1105년에 그는 황제 하인리히 5세의 딸인 아녜스와 결혼하였다. 그는 1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의 한 명은 유명한 역사가인 프라이징(Freising)의 오토(Otto)이다.

성 레오폴두스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 하일리겐크로이츠(Heiligenkreuz), 클라인마리아첼(Kleinmariazell) 등지에 수도원들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1125년 독일 황제로 대관하는 것은 거부하였다. 그는 40년 동안 통치하였는데, 온전히 그리스도인다운 자세로 권력을 행사하였으므로 국민들로부터 ‘선한 사람’이란 칭호를 얻었고, 1485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Innocentius VIII)의 의해 시성되고, 1663년에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루페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Lup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8세기? 베로나

 

 

루페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페리우스.

 

 

루페리오 자료

성 루페리우스(또는 루페리오)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였다는 사실 외에는 더 이상 알려진 것이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리카르도 화이팅

 

  • 가톨릭 성인 이름
    Richard Whiting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461?-1539년 영국

 

 

리카르도 화이팅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리까르도, 리까르두스, 리차드, 리처드, 리카르두스.

 

 

리카르도 화이팅 자료

리카르두스 화이팅(Richardus Whiting, 또는 리카르도 화이팅)은 1461년경 영국 잉글랜드 남서부 서머싯(Somerset)의 링톤(Wrington) 부근에서 태어나 글래스턴베리 수도원(Glastonbury Abbey)에서 교육을 받았다. 이어 케임브리지(Cambridge)에서 베네딕토회의 몽크스 호스텔(Monk’s Hostel)에서 수학하여 1483년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곳은 1542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막달라 대학(Magdalene College)으로 거듭난 곳이다. 그는 1501년에 웨일스(Wales)에서 사제품을 받고, 1505년에 다시 케임브리지로 돌아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후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에서 기숙사와 공동체의 세면장과 옷장 등을 관리하는 일을 맡아 수행했다.

1525년 2월에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의 원장이 선종한 후 그는 토마스 울지(Thomas Wolsey) 추기경에 의해 후임 수도원장으로 임명되었다. 그 후 10여 년간은 그에게 평화로운 시기였다. 그는 배려심 깊은 영적 지도자로서 또 현명한 관리자로서 수도원의 일상을 이끌었다.

당시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은 영국 내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향력 있는 곳 중의 하나였다. 100여 명의 수도승이 함께 살고 있었고, 귀족과 상류 계층 자제들이 대학에 진학하기 전 교육을 받는 곳으로 유명했다.

1534년 헨리 8세(Henry VIII) 왕이 자신의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가톨릭 교회와 결별하며 수장령(首長令, Act of Supremacy)을 발표하고 서명을 강요했을 때 그와 수도원의 수도승들은 일단 서명을 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왕의 수장령에 대해 성 토마스 모어(Thomas More, 6월 22일)와 성 요한 피셔(Joannes Fisher, 6월 22일) 추기경 및 카르투지오회와 작은 형제회 수도자들의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수장령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많은 사제와 수도자들이 순교하면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섰다. 1536년과 1539년에 수도원 해산과 재산에 대한 몰수가 강제로 집행되면서 이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한 혹독한 박해가 시작되었다.

1539년 1월까지 글래스턴베리 수도원은 서머싯에 남아있던 유일한 수도원이었다. 하지만 수도원 해산과 재산 몰수에 끝까지 반대한 리카르두스 화이팅 원장은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다. 그는 재판에서 유죄 판결을 받고 글래스턴베리로 돌아와 11월 15일 서머싯의 웰스(Wells)에서 동료 수도승들과 함께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리카르두스 화이팅은 1895년 5월 13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11월 15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리카르두스 화이팅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말로

 

  • 가톨릭 성인 이름
    Mal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40년경 알레스

 

 

말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끌로비오, 마끌로비우스, 마추토, 마추투스, 마쿠토, 마쿠투스, 마클로비오, 마클로비우스, 마클루, 말루.

 

 

말로 자료

성 말로는 6세기에 영국의 웨일스(Wales)에서 태어나 그곳의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서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고, 비슷한 이름을 가진 여러 성인의 전기가 뒤섞여 전해지는 것 같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웨일스 남단의 카디프(Cardiff) 근교 란카판(Llancarfan) 수도원에서 수도자로 살며 사제품을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 지역으로 선교를 떠나는 성 브렌다누스(Brendanus, 5월 16일)의 항해에 그의 제자로 참여했다고 한다.

그는 오늘날 브르타뉴 지방의 항구 도시인 생말로(Saint-Maro) 앞바다에 있는 세장브르(Cezembre) 섬을 방문해 한동안 그곳에 머물며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육지로 올라와 오늘날 그의 이름을 따서 생긴 생말로 항구 도시 조금 아래 알레스(오늘날의 생세르방 Saint-Servan)라는 곳에서 아론(Aaron)이라는 수도원장을 섬기다가 그가 사망한 후 원장직을 이어받았다.

그는 알레스와 인근 여러 곳에 성당과 수도원을 세웠고, 알레스의 초대(?) 주교가 되었는데, 주교 성품은 투르(Tour)에서 거행되었다고 한다. 그는 지방 영주들의 견제와 공격을 막아내면서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주었다. 그는 말을 타고 다니며 시편을 큰소리로 외우고 다녔다.

그러나 영주들과 주민들의 적개심이 너무 심해 30여 명의 수도자와 함께 배를 타고 알레스를 떠나 낭트(Nantes) 아래 생트(Saintes)로 가서 수도원을 짓고 정착하였다. 그런데 그가 알레스를 떠난 후 지독한 가뭄이 들어 곡물을 재배할 수 없자 그 지역 영주들과 주민들이 그에게 돌아올 것을 간청했고, 그가 돌아온 직후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 말로는 그 뒤에 알레스에 계속 머물지 않고 생트로 돌아와 640년경 100세를 넘긴 나이로 선종해 그곳에 묻혔다. 그는 프랑스에서 브르타뉴의 7명의 설립자 성인 중 한 명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말로는 마클루(Maclou)나 말루(Malou) 등으로도 불리고, 라틴어로는 마클로비우스(Maclovius)나 마쿠투스(Machutus)로 부른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11월 15일 목록에서 웨일스에서 태어나 생트에서 선종한 알레스의 주교인 성 마클로비우스 또는 마쿠투스를 브르타뉴 지방에서 기념한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바리코

 

  • 가톨릭 성인 이름
    Var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바리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리꼬, 바리꾸스, 바리쿠스, 발레리꼬, 발레리꾸스, 발레리코, 발레리쿠스.

 

 

바리코 자료

성 세쿤두스(Secundus)와 성 피덴티아누스(Fidentianus) 그리고 성 바리쿠스(또는 바리코)는 로마제국 속령이었던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순교에 대한 다른 내용들은 전해지지 않는다. 성 바리쿠스는 발레리쿠스(Valeric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사모나

 

  • 가톨릭 성인 이름
    Samon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22년경 에데사

 

 

사모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모나스.

 

 

사모나 자료

시리아 에데사 성당의 부제인 성 아비부스(Abibus)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친구인 성 구리아(Gurias), 성 사모나(Samonas)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산 채로 화형을 당한 후 함께 묻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세쿤도

 

  • 가톨릭 성인 이름
    Secund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세쿤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군도, 세꾼도, 세꾼두스, 세쿤두스.

 

 

세쿤도 자료

성 세쿤두스(또는 세쿤도)와 성 피덴티아누스(Fidentianus) 그리고 성 바리쿠스(Varicus)는 로마제국 속령이었던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순교에 대한 다른 내용들은 전해지지 않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아비보

 

  • 가톨릭 성인 이름
    Abib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22년경 에데사

 

 

아비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비부스.

 

 

아비보 자료

시리아 에데사 성당의 부제인 성 아비부스(또는 아비보)는 리키니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친구인 성 구리아(Gurias), 성 사모나(Samonas)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산 채로 화형을 당한 후 함께 묻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알베르토(대)

 

  • 가톨릭 성인 이름
    Albert the Grea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교회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00-1280년

 

 

알베르토(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버트, 알베르또, 알베르뚜스, 알베르투스, 앨버트.

 

 

알베르토(대) 자료

성 알베르투스(Albertus, 또는 알베르토)는 독일 남부 슈바벤(Schwaben) 지방에 있는 도나우 강가의 작은 도시인 라우잉겐(Lauingen)에서 그 지방 관리의 아들로 태어났다.

1223년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 대학에서 법률을 전공하던 그는 당시 도미니코회 총장이었던 복자 작센의 요르단(Jordan, 2월 13일)을 통해 성소를 깨닫고 가족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독일의 도미니코회에 입회했다.

쾰른(Koln)에서 수련 기간을 보내고 신학을 전공한 성 알베르투스는 1220년대 말 힐데스하임(Hildesheim)을 비롯하여 프라이부르크(Freiburg), 레겐스부르크(Regensburg) 그리고 스트라스부르(Strasbourg)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신학을 강의했다. 쾰른으로 돌아올 즈음 그의 지식과 강의에 대한 명성은 날로 치솟고 있었다.

1243년 혹은 1244년에 파리 대학에서 교수 자격을 획득한 그는 1245년부터 파리 대학의 교수로 강의하였다. 이 시기 그의 제자로는 훗날 위대한 신학자가 된 성 토마스 데 아퀴노(Thomas de Aquino, 1월 28일)가 있었다. 그는 성 토마스의 천재성을 일찍 알아보고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토마스는 지적으로 나의 좋은 동료이자 친구이다.”

이말 그대로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1274년 선종할 때까지 그와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동료로 지냈다. 여러 수도회 대학과 파리 대학에서 성경과 신학을 강의하던 그는 1248년 도미니코회가 쾰른에 ‘수도회 대학’(Studium Generale)을 설립할 때 초대학장으로 임명되었다.

여기서 그는 신학뿐만 아니라 철학으로 강의 영역을 넓혀갔다. 철학과 교수로서 그는 전공자들을 위한 각종 주해서를 학생과 교수에게 제공하는 등 왕성한 학문 활동을 전개했고, 동시에 “아리스토텔레스 전집”(Corpus Aristotelicum)의 강의와 체계적 주석에도 큰 공을 들였다.

1254년에 성 알베르투스는 독일 관구의 관구장으로 임명되어 로마에 갔는데, 그곳에서 생타무르(Saint-Amour)의 빌리암(William)의 공격에 대항해 탁발 수도회를 옹호하는데 진력하였다. 빌리암은 그 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해 단죄되었다.

그는 로마에 머무는 동안 교황의 신학 고문으로서 봉사했다. 성 알베르투스는 1257년 관구장직을 사임하고 학업에 전념하다가 1259년 타렌타시아의 베드로(Petrus)와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더불어 도미니코회의 새로운 교과 과정을 작성하였다.

1260년 그의 소망에 반해 레겐스부르크의 주교로 임명되었으나 2년 만에 사임하고 쾰른으로 돌아와 제자들을 가르치며 저술 활동에 전념했다. 그는 1274년의 리옹(Lyon) 공의회에서 크게 활약했는데, 특히 로마와 그리스 교회의 일치에 공헌하였다.

그는 또한 1277년 파리의 스테파누스 탕피엘 주교와 그 대학의 신학자들에게 대항하여 성 토마스 데 아퀴노와 그의 입장을 옹호한 사건으로도 유명하다.

1280년 11월 15일 쾰른의 도미니코회 수도원에서 선종한 성 알베르투스는 현재 쾰른의 성 안드레아 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어 있다. 살아생전 성 알베르투스는 소위 만물 박사로 통한 듯하다.

그의 저서에는 성경과 신학은 물론 설교학, 논리학, 형이상학, 윤리학, 물리학까지 두루 섭렵한 논문들이 많이 있고, 관심 분야 또한 천문학, 화학, 생물학, 동물학, 지리학, 지질학 그리고 식물학까지 확대되었다.

그러나 그는 특히 인간 이성의 자율성과 감각-경험으로 얻는 지식의 유효성 및 조직 신학에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가치 확립 등에서 더욱 돋보였다. 그의 제자인 성 토마스 데 아퀴노는 이런 종합을 완성한 신학자이다.

이렇듯 당시 모든 학문을 섭렵한 그는 ‘보편적 박사’(Doctor universalis)라고 불렸으며, 그의 학문 영역이 방대하다 하여 이름 앞에 ‘위대한’ 또는 ‘큰’(大)이라는 뜻의 ‘마뉴스’(Magnus)라는 칭호가 붙여졌다.

성 대 알베르투스는 1622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31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 학자 칭호와 더불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특히 자연 과학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에우제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gen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에우제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게니오, 에우게니우스, 에우제니우스, 유진.

 

 

에우제니오 자료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는 프랑스 파리(Paris)의 초대주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의 동료로 파리 근교의 어느 곳에서 순교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런데 로마 순교록은 그를 에스파냐 톨레도(Toledo)의 주교인 성 에우게니우스(11월 13일)와 혼동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요셉 무카사

 

  • 가톨릭 성인 이름
    Joseph Mukas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60-1885년 우간다

 

 

요셉 무카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무까사, 므까사, 므카사,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요셉 무카사 자료

성 카롤루스 르왕가(Carolus Lwanga)와 성 요셉 무카사(Josephus Mukasa)와 동료 순교자들은 일명 ‘우간다의 순교자들’이라고 불리는데, 이들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 수 있는 참으로 감동적인 순교역사이다.

중앙아프리카 내륙지방에 살던 원주민들에게 처음으로 가톨릭 선교사를 파견한 것은 1879년의 일이다. 라비제리(Lavigerie) 추기경이 중앙아프리카의 선교를 위해 1879년에 설립한 화이트 파더들(White Fathers)이 바로 그들이었다.

우간다에서 처음에는 가톨릭교회에 대해 호의적이었던 무테사(Mutesa) 왕(추장)의 도움으로 선교 활동과 신앙생활이 어느 정도 가능했었다.

1860년경 우간다의 부두 카운티(Buddu County)에서 태어나 마울루궁구(Mawulugungu) 추장의 두 시종에게서 가톨릭 교리를 배운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1884년 부간다(Buganda)의 카바카(Kabaka) 왕궁의 시종장이자 열심한 신자였던 성 요셉 무카사의 조수로 들어가게 되었다.

무테사 왕이 있을 때는 어느 정도 신앙생활의 가능했지만, 그의 후계자인 무왕가(Muwanga) 왕은 자기 나라 안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을 뿌리 뽑고자 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성 요셉 무카사와 같은 훌륭한 부하도 있었다. 그래서 무왕가 왕은 자기가 시작한 박해의 첫 희생자로 성 요셉 무카사를 선택해 참수형에 처했다.

이때가 1885년 11월 15일이었고,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그날 밤에 세례성사를 받았다. 그리고 성 요셉 무카사의 지위를 승계한 그는 사제들과 연락이 어려운 상황 속에서 무왕가 왕의 비윤리적이고 잘못된 요구로부터 시종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는 젊은이들을 가르치고 용기를 북돋아 주었고,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자 예비신자 4명에게 몰래 세례를 주었다. 이때 세례받은 이들 중에는 13세의 소년 성 키지토도 있었다.

1886년 5월,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다시 시작되어 이듬해까지 계속되었다. 무왕가 왕은 가톨릭 신자는 물론 성공회 신자들까지 모두 색출해 잡아들였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와 신자가 된 시종들은 모두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한 후에 체포되었다. 그렇게 체포된 신자들은 나무공고(Namugongo)라 불리는 처형지까지 끌려가면서 온갖 시련을 겪었다.

처형장에 도착한 그들은 1886년 주님 승천 대축일인 6월 3일에 옷이 벗겨진 채 꽁꽁 묶였고, 사형 집행자들은 밤이 새도록 노래를 부르며 그들을 괴롭히다가 천천히 불에 태워 죽이는 잔인한 방법으로 모두 살해하였다.

이날 성 카롤루스 르왕가와 함께 순교한 12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14세에서 30세 사이의 젊은이들로 주로 궁정에서 일하는 시종이거나 왕의 경호원들이었다.

그들의 이름은 성 음바가 투진데(Mbaga Tuzinde), 성 브루노 세룬쿠우마(Bruno Sserunkuuma), 성 야고보 부자발야보(Jacobus Buuzabalyawo), 성 키지토(Kizito), 성 암브로시우스 키부우카(Ambrosius Kibuuka), 성 무가가 루보와(Mugagga Lubowa), 성 갸비라 무소케(Gyavira Musoke), 성 아킬레우스 키와누카(Achilleus Kewanuka), 성 아돌푸스 무카사 루디고(Adolphus Mukasa Ludigo), 성 무카사 키리와완부(Mukasa Kiriwawanvu), 성 아나톨리우스 키리그과조(Anatolius Kiriggwajjo), 성 루카 바아나바킨투(Lucas Baanabakintu)이다.

이들보다 조금 앞서 5월 하순에 이미 여러 곳에서 순교자의 피가 뿌려졌다. 25일에 무뇨뇨(Munyonyo)에서 무왕가 왕의 시종이었던 16세의 성 디오니시우스 세부그와워 와스와(Dionysius Ssebuggwawo Wasswa)가 칼과 창에 찔려 순교했고, 26일에는 같은 곳에서 무테사와 무왕가 왕 모두를 섬기며 악단의 수석 연주자로 활동했던 성 안드레아 카그와(Andreas Kagwa)가 참수되고 난도질당해 순교하였다.

그는 아내의 영향을 받아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이교도와 예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치고 세례를 받도록 인도하는데 헌신했었다. 같은 날 성 폰티아누스 응곤드웨(Pontianus Ngondwe)는 처형장인 나무공고로 가는 도중 창에 찔려 순교한 후 잔인하게 토막 내어 새들과 야생 동물의 먹이로 던져졌다.

27일에는 왕실 금고와 장신구 등을 담당했던 성 아타나시우스 바제쿠케타(Athanasius Bazzekuketta)가 나무공고로 끌려가던 중에 나키부보(Nakivubo)에서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그리고 같은 날 성 곤자가 곤자(Gonzaga Gonza)도 쇠사슬에 묶여 처형장인 나무공고로 끌려가던 중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30일에는 마티아 칼렘바 물룸바(Matthias Kalemba Mulumba)로도 불리는 성 마티아 물룸바(Matthias Mulumba)가 우간다 왕국의 수도인 캄팔라(Kampala)에서 27일부터 팔다리가 잘리고 살점이 베인 채 가장 잔인한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이슬람교를 믿다가 프로테스탄트 선교사의 영향을 받았으나 결국은 리빈하크(Livinhac) 신부에게 세례를 받고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했었다.

5월의 마지막 날인 31일에는 왕의 시종으로 아직 소년이었던 성 노아 마와갈리(Noah Mawaggali)가 나무공고에서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끝으로 이듬해인 1887년 1월 27일에는 질병과 전통 의학에 관한 깊은 지식으로 병자들을 돌보다 세례를 받은 성 요한 마리아 무제이(Joannes Maria Muzeeyi)가 멩고(Mengo) 근처에서 신앙을 고백하고 참수당해 순교하였다.

이렇게 성 요셉 무카사 이후 1887년 1월 말까지 왕의 부당한 요구와 비윤리적 요구를 거부하고 그리스도교의 신앙을 지키고자 노력한 많은 신자가 잔인한 고문을 받고 화형이나 참수형 또는 창에 찔려 순교하였다.

‘순교자들의 피는 그리스도인들의 씨앗’이란 말처럼, 그들의 순교 이후 즉시 500명 이상이 세례를 받고 3천 명 이상의 예비신자가 쇄도하여 오늘날의 우간다 교회를 꽃피우는 밑거름이 되었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를 포함해 모두 22명의 우간다 순교자들은 1920년 6월 6일 교황 베네딕투스 15세(Benedictus XV)에 의해 성대한 예식으로 시복되었다. 그리고 1964년 10월 18일 로마에서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우간다의 순교자들’로 성인품에 올랐다.

우간다의 순교자들은 성인품에 오른 22명의 가톨릭 신자 외에도 23명의 성공회 신자들이 있었다. 성 카롤루스 르왕가는 1934년 6월 22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아프리카의 젊은이들과 가톨릭 운동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3일에 순교한 성 카롤루스 르왕가와 12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그날 함께 기념하고, 나머지 9명의 순교자들은 각자 순교한 날에 기념하도록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펠릭스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7년 놀라

 

 

펠릭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자료

놀라의 성 펠릭스로 알려진 두 명의 성인이 있다. 오늘 기념하는 성 펠릭스는 이탈리아 나폴리(Napoli) 부근 놀라의 초대주교로 30명의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했다.

그보다 더 잘 알려진 다른 놀라의 성 펠릭스 신부는 1월 14일에 그 축일을 기념한다. 그런데 일부 학자들은 성 펠릭스 주교와 성 펠릭스 신부를 동일인물로 보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피덴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iden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피덴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피덴띠아노, 피덴띠아누스, 피덴시아누스, 피덴씨아노, 피덴씨아누스, 피덴티아노, 피덴티아누스.

 

 

피덴시아노 자료

성 세쿤두스(Secundus)와 성 피덴티아누스(Fidentianus, 또는 피덴시아노) 그리고 성 바리쿠스(Varicus)는 로마제국 속령이었던 아프리카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순교에 대한 다른 내용들은 전해지지 않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핀타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int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79년 라이노

 

 

핀타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핀따노, 핀따누스, 핀딴, 핀타누스, 핀탄.

 

 

핀타노 자료

아일랜드 렌스터(Leinster) 태생인 성 핀타누스(Fintanus, 또는 핀타노)는 노르웨이의 침략 당시에 노예로서 오크니(Orkney) 섬까지 끌려갔으나, 다행히 도망하여 스코틀랜드의 어느 주교의 보호를 받고 지냈다.

그 후 그는 로마(Roma)로 순례의 길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스위스 샤프하우젠(Schaffhausen) 근교 라이노 섬의 숲 속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그의 성덕은 널리 알려졌고 명성은 더 높아갔다. 그 27년 동안 그는 고독한 생활을 하였는데, 자기 방에 불을 지피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후고 패링던

 

  • 가톨릭 성인 이름
    Hugh Faringdon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39년 영국

 

 

후고 패링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위고, 파링던, 후꼬, 휴스.

 

 

후고 패링던 자료

영국 잉글랜드 남부의 버크셔(Berkshire) 출신으로 알려진 후고 패링던(Hugo Faringdon)의 본명은 후고 쿡(Hugh Cook)이었다. 그는 버크셔에 있는 베네딕토회의 레딩 수도원(Abbey of Reading)에 들어가 수도승이 되면서부터 패링던이라는 성(姓)을 사용했다.

그는 수도원에서 교육을 받고 수도원 지하창고를 관리하는 소임을 맡았다. 1520년 토마스 우스터(Thomas Worcester) 수도원장이 사망하자 후고 패링던이 후임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수도원의 규칙을 일신하고, 교리교육에 힘쓰는 등 영적인 직무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 봉사하는 일에도 최선을 다했다.

그는 헨리 8세(Henry VIII) 국왕과의 관계도 돈독해 1521년 1월 국왕이 수도원을 방문했을 때 그를 ‘나의 원장님’으로 부르기도 했다. 그는 헨리 8세의 이혼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방도를 모색하기도 했지만 성공하지는 못했다.

1539년 수도원을 해산하기 위한 위원회가 수도원을 포위하고 국왕의 수장령(Acts of Supremacy)에 대한 서명을 강요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와중에 후고 패링던은 수도원의 자금을 이용해 국왕에 반대하는 북부 지방의 저항 세력을 도운 혐의로 고발되어 체포되었다.

그는 런던탑에 갇혀 두 달을 보내고 정식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수장령에 서명을 거부한 반역죄로 사형이 확정되었다. 그는 몇몇 동료 수도승들과 함께 1539년 11월 15일(또는 14일), 레딩 수도원 내에 설치된 교수대에서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 이후 1121년 국왕 헨리 1세가 설립한 유서 깊은 레딩 수도원은 폐쇄되었고, 오늘날에는 폐허만 남은 공원으로 바뀌었다.

후고 패링던은 1895년 5월 13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순교한 날인 11월 15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후고 패링던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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