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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남자세례명 19가지

pieonane 2023. 12.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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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 니카시오, 드루소, 디오스코로, 마트로니아노, 바르톨로메오 부온페도니, 베난시오 포르투나토, 비아토르, 스피리디온, 아넬로, 아르세니오, 아분디오, 요한(십자가의), 유스토, 이시도로, 조시모, 테오도로, 폼페요, 헤론, 총 19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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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4일 여자세례명 에우트로피아,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2월 1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9가지

 

 

 

 

12월 14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

  2. 니카시오

  3. 드루소

  4. 디오스코로

  5. 마트로니아노

  6. 바르톨로메오 부온페도니

  7. 베난시오 포르투나토

  8. 비아토르

  9. 스피리디온

  10. 아넬로

  11. 아르세니오

  12. 아분디오

  13. 요한(십자가의)

  14. 유스토

  15. 이시도로

  16. 조시모

  17. 테오도로

  18. 폼페요

  19. 헤론

 

12월 1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9가지

 

 

1.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

 

  • 가톨릭 성인 이름
    Nimatullah Youssef Kassab Al-Hardin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수도승

  • 활동 연도와 지역
    1808-1858년 레바논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마뚤라.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 자료

성 니마툴라 유세프 카삽 알하르디니는 1808년 레바논의 하르딘(Hardin)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는 동방 가톨릭 교회들 가운데 하나인 마로니트(Maronite) 전례의 수도원 전통으로부터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의 형제들 중 네 명이 사제나 수도승이 되었고, 성 니마툴라 역시 1828년 많은 수도승들이 모여 있는 카디샤(Qadisha, 일명 신성한 계곡 Holy Valley) 부근 퀘자야(Qozhaya)에 있는 성 안토니우스(Antonius)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그는 이곳에서 수련기를 시작하기 전까지 2년간 머물렀고 니마툴라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수련기 중에 그의 개인적 · 공동체적 기도생활은 더욱 깊어졌고, 직접 노동에 헌신하며 동시에 책을 제본하는 방법도 배웠다.

그는 특히 성체성사에 대한 각별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유 시간에, 때로는 잠자는 시간을 희생하면서도 종종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팔은 십자가 형태로 들어 올린 채 눈은 성체를 모신 성합에 고정시킨 모습으로 발견되곤 하였다.

1830년 11월 14일 첫 서원을 한 성 니마툴라는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도록 레바논 북부 크피판(Kfifan)에 있는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와 유스티나(Justina) 수도원으로 파견되었다. 1833년 12월 25일 그는 사제품을 받고 수련소의 책임자이자 교수가 임명되었다.

1840년과 1845년의 두 번의 내전 동안 그는 백성들과 함께 엄청난 고통을 받았다. 그의 형제인 엘리샤(Elisha) 신부가 그에게 은둔소로 들어갈 것을 제의했을 때 그는 공동생활 속에서 덕을 쌓기 위해 싸우는 사람들이 더 큰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과를 준수하며 매일의 시간을 순교자다운 자세로 살았다. 수도승은 언제나 동료 수도승에게 모범이 되어야 하며 온갖 추문의 여지로부터도 스스로를 지켜야 했다. 반면 은수자들은 홀로 살며 모든 외부적인 유혹으로부터도 떨어져 있을 수 있었다.

이 기간은 그의 영성생활에서 결정적인 순간이었고, 그는 레바논과 그의 수도회를 위해 하느님께 스스로를 봉헌하며 살았다. 그는 ‘스스로 자신의 영혼을 구하는 것이 가장 위대하다’는 모토를 갖고 살았으며, 종종 동료 수도승들에게 이를 반복해 말하곤 하였다.

성 니마툴라 신부는 때때로 상급 책임자들로부터 스스로에게는 너무 혹독하고 다른 수도승들에게는 너무 자애롭고 관대하다는 이유로 질책을 받기도 했다. 그는 친교와 형제애라는 단어 안에서 성성(聖性)을 이해하였다. 그래서 ‘수도승의 첫 번째 관심은 밤이든 낮이든 형제 수도승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걱정을 끼치지 않는 것’이라는 주목할 만한 말을 했다.

그는 전 생애를 통해 그의 강인함의 원천인 동정 성모 마리아께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고 있었다. 그는 성모님의 거룩한 이름을 반복해 부르는데 있어 결코 지치지 않았고, 1854년 교회에 의해 믿을 교리로 선포된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신비를 그의 마음 속 아주 특별한 곳에 간직해 두었다. 삼종기도 후에 그는 종종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는 축복받으소서.”라는 말을 덧붙이곤 했다.

1845년에 그는 교황청에 의해 수도회의 부원장으로 임명되었다. 성 니마툴라 신부는 총원장에게 수도승들이 그들의 학문에서 더욱 진보할 수 있도록 예수회에 의해 그하지르(Ghazir)에 새로 설립된 대학에 보내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는 부원장으로서 두 번 이상의 임기를 봉사했지만 총원장 아빠스로 지명되는 것에 대해서는 완곡히 거절하였다. 그가 수도원의 책임 있는 직책을 맡는데 있어 주저한 것은 그의 깊은 겸손과 수도승과 수도원의 요구에 적절히 대응하는 것이 하느님과의 지속적인 만남 안에서 살아가는 것을 멀어지게 한다는 그의 진지한 신념에서 나온 것이었다.

그는 부원장으로 재임하는 중에도 늘 겸손함을 잃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수도원의 관습에 따라 그의 개인적인 용무를 돌보아 주는 특별한 보조자를 두는 것조차 거부하였다.

1858년 12월 크피판의 수도원에서 수도승들을 지도하던 그는 그 지방에 퍼진 독감에 걸려 위중한 병에 걸렸고, 상태가 점점 악화되어 12월 14일 50세의 나이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마지막 순간에 동정 성모 마리아의 이콘을 손에 쥐고 “오, 성모님, 당신께 제 영혼을 맡기나이다.”는 말을 남기고 선종하였다.

그는 살아 있는 동안 레바논의 고통의 시간과 수도회 내의 어려움 중에 그의 동료 수도승들과 이웃들에게 온전히 자신을 내어주어 ‘크피판의 성인’으로 알려졌었다. 그는 1998년 5월 10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복되었고, 2004년 5월 1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니카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Nic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07년 랭스

 

 

니카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까시오, 니까시우스, 니카시우스.

 

 

니카시오 자료

성 니카시우스(또는 니카시오)는 4세기 말 랭스 교구의 주교로 반달족(Vandals)이 도시를 침략했을 때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살해되어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10세기에 플로도아르도(Flodoardo)가 쓴 “랭스 교회사”(Historia Remensis ecclesiae)에 따르면, 그는 4세기에 여동생인 성녀 에우트로피아(Eutropia)와 함께 랭스에 살다가 그 도시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재임 중에 성모 마리아에게 봉헌하는 대성당을 세웠다. 그리고 406년 말에 환시를 통해 반달족이 랭스로 쳐들어올 것을 미리 보고 주민들에게 기도와 참회로써 이 난국을 막을 수 있도록 준비할 것을 역설하였다.

주민들이 어떻게 해야 할지 묻는 말에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하느님의 자비를 간구하면서 적들을 위해서도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내 백성을 위해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407년에 반달족이 도시 성문 앞에 이르렀을 때 그는 더 많은 주민이 탈출할 수 있도록 침략자들을 지연시키고자 했고, 그가 직접 세운 대성당의 문 앞에서 이교도의 칼에 맞아 살해당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14일 목록에서 랭스의 주교인 성 니카시우스와 그의 여동생인 동정 성녀 에우트로피아의 이름을 전하며 그들이 다른 동료들과 함께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오늘날 프랑스에 속한 갈리아(Gallia) 지방 랭스의 주교인 성 니카시우스가 이교도의 침입으로 자신이 세운 대성당 문에서 살해당했는데, 그때 그리스도께 자신을 봉헌한 동정녀인 그의 여동생 에우트로피아와 부제인 플로렌티우스(Florentius)와 독서자인 유쿤두스(Jucundus)도 함께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성 니카시우스와 세 명의 동료 순교자들은 프랑스 교회와 일부 지역에서 모두 순교성인으로 공경하고 있으나 개정 “로마 순교록”은 성 니카시우스 주교에게만 성인 호칭을 붙이고 그들의 순교 사실을 전해주었다.

한편 성 니카시우스는 파리(Paris)의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0월 9일)처럼 순교 후 자신의 머리를 직접 들고 무덤까지 간 순교성인 중 한 명으로 기억되고 있다.

그의 “순교록”(Passio Nicasii)은 그의 순교 이야기를 전하면서 머리를 들고 간 전설적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그는 순교의 순간까지 시편 119장을 외웠는데, 25절의 “제 영혼이 흙바닥에 붙어 있습니다.”(Adhaesit pavimento anima mea)까지 외우고 참수당했다.

그러나 그의 머리가 땅에 떨어진 뒤에도 나머지 부분인 “당신의 말씀대로 저를 살려 주소서.”(Vivifica me Domine secundum verbum tuum)를 외우고 나서 자기 머리를 직접 들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무덤까지 갔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드루소

 

  • 가톨릭 성인 이름
    Drus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드루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드루수스.

 

 

드루소 자료

성 드루수스(또는 드루소)는 성 조시무스(Zosimus), 성 테오도루스(Theodorus)와 함께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는데, 그 장소는 아마도 안티오키아(Antiochia)로 추정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는 그들의 축일에 그들에 대한 강론을 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디오스코로

 

  • 가톨릭 성인 이름
    Diosc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디오스코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디오스꼬로, 디오스꼬루스, 디오스코루스.

 

 

디오스코로 자료

성 헤론(Heron)은 성 아르세니우스(Arsenius), 성 이시도루스(Isidorus), 성 디오스코루스(또는 디오스코로)와 함께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고통을 당했다.

성 디오스코루스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채찍으로 매를 맞고 풀려났고, 다른 이들은 모두 화형대에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트로니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tron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밀라노

 

 

마트로니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뜨로니아노, 마뜨로니아누스, 마트로니아누스.

 

 

마트로니아노 자료

이탈리아 밀라노 출신의 성 마트로니아누스(Matronianus, 또는 마트로니아노)는 은수자로 살았고, 그의 유해는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12월 7일)에 의해 밀라노의 성 나자리우스(Nazarius) 성당에 안치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바르톨로메오 부온페도니

 

  • 가톨릭 성인 이름
    Bartholomew Buonpedoni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300년

 

 

바르톨로메오 부온페도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르똘로메오, 바르똘로메우스, 바르톨로, 바르톨로매오, 바르톨로매우스, 바르톨로메우스.

 

 

바르톨로메오 부온페도니 자료

이탈리아의 산 지미냐노(San Gimignano)에서 태어난 바로톨로메우스 부온페도니(Bartholomaeus Buonpedoni, 또는 바르톨로메오 부온페도니)는 영적인 삶을 위해 집을 떠나 피사(Pisa)에 있는 베네딕토회 성 비투스(Vitus) 수도원의 하인으로 들어갔다.

그 수도원의 원장은 재빨리 그의 재능을 알아보았고 그에게 수도원 진료소의 운영을 맡겼다. 그리고 그를 수도승이나 사제처럼 대했다. 그는 꿈속에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수도승이 아닌 교구사제가 되기로 결심하고 30세에 서품을 받았다.

그는 페치올리(Peccioli) 본당의 사제로 발령받았고, 작은 형제회 3회원에 가입하여 성 프란치스코(Franciscus, 10월 4일)의 정신을 따라 병든 이들에게 그리스도교적인 사랑을 실천하였다.

이때 그는 헛된 삶에서 돌아선 복자 비발두스(Vivaldus, 5월 11일)를 집으로 데려왔고, 그는 후에 그의 가장 믿음직한 동료가 되었다.

1280년 병자들을 돌보기 위해 가던 중 바르톨로메오는 자신이 나병에 걸린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당시 유럽에는 위생 형편이 나빠서 나병이 널리 퍼지던 때였다. 그는 과거 꿈속에서 주님께서 영광을 얻기 전에 20년간 고통을 받아야 할 것이라는 말씀을 기억했다.

그는 첼로리(Celloli) 부근의 나환자촌으로 거처를 옮겼는데 그의 충직한 동료인 복자 비발두스도 함께 따라나섰다. 주교는 그를 나병 요양소의 책임신부로 발령했다. 그는 나병으로 살과 뼈가 썩어가는 고통 속에서도 미사를 봉헌하고 병자들을 돌보며 인내의 삶을 살다가 정확히 20년 후 사망하였다.

그래서 그는 '토스카나(Toscana)의 욥(Job)'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그는 비록 공식적으로 시복되지는 않았으나 1499년부터 그 지방에서 축일을 기념하였고, 1910년 교황 성 비오 10세(Pius X)는 그를 복자와 같은 인물이라며 공경을 승인하였다. 그는 바르톨로(Bartolo)로도 잘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베난시오 포르투나토

 

  • 가톨릭 성인 이름
    Venantius Fortun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35-605년경

 

 

베난시오 포르투나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난시우스, 베난씨오, 베난씨우스, 베난티오, 베난티우스, 포르투나또, 포르투나뚜스, 포르투나투스.

 

 

베난시오 포르투나토 자료

성 베난티우스 호노리우스 클레멘티아누스 포르투나투스(Venantius Honorius Clementianus Fortunatus, 또는 베난시오)는 이탈리아의 트레비소(Treviso) 교외에서 태어나 라벤나(Ravenna)에서 교육을 받고 565년에 독일로 갔다.

약 20년 동안(567-587년) 그는 프랑스의 푸아티에(Poitiers)에 사는 동안 사제가 되었으며, 또 클로테르 1세의 왕비 성녀 라데군다(Radegundis, 8월 13일)의 고문으로 활약하였다. 600년경 성 베난티우스는 푸아티에의 주교로 임명되었다.

탁월한 시인이던 그는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그의 작품 중에는 투르(Tours)의 성 마르티누스(Martinus), 푸아티에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 파리(Paris)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성녀 라데군다 및 뛰어난 수도자들의 운문적인 전기를 비롯하여 모셀 여행에 관한 시, 시저베르트 왕과 브루네힐다 왕비의 결혼 축시, 브루네힐다의 동생인 갈레스윈타 왕비의 추도시 등이 남아 있다.

또 뛰어난 찬미가로는 “판제 린과 글로리오시”(Pange Lingua Gloriosi)와 “벡실라 레지스”(Vexilla Regis)등이다. 그의 시는 당시대에 대한 많은 정보와 관습, 가족생활, 건축, 예술, 여인상 등을 알려주는 매우 중요한 작품들로 평가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비아토르

 

  • 가톨릭 성인 이름
    Viato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70년 베르가모

 

 

비아토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아또르, 비아똘, 비아톨.

 

 

비아토르 자료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 비아토르는 이탈리아 베르가모의 제2대 주교로 공경을 받고 있다. 전통적으로 그는 베르가모의 초대 주교로 여겨지는 성 나르누스(Narnus, 8월 27일)를 계승했다고 전해져 왔다.

그런데 성 나르누스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재임(284~305년) 중에 활동한 것으로 알려진 데 비해, 성 비아토르의 재임 기간은 343년에서 370년으로 알려져 있다.

성 비아토르는 343년 세르디카(Serdica, 오늘날 불가리아의 소피아)에서 열린 교회회의(Synod)에 참석해서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 교리를 지키고자 힘썼다.

그의 유해는 베르가모의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8월 26일)에게 봉헌한 베르가모의 한 성당에 모셔졌다. 1561년에 그 성당이 무너진 후 그의 유해는 성 나르누스의 유해와 함께 오늘날의 베르가모 주교좌성당으로 옮겨져 현재까지 모셔져 있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14일 목록에서 베르가모의 주교이자 증거자인 성 비아토르를 언급하였다. 베르가모에서는 이날 전례적으로 그를 기념하는데, 이탈리아 다른 지역에서는 1월 15일에 그를 기념한다고 한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더는 그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스피리디온

 

  • 가톨릭 성인 이름
    Spiridi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48년 테르미투스

 

 

스피리디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스삐리돈, 스삐리디온, 스피리돈.

 

 

스피리디온 자료

성 스피리디온은 지중해 동부 키프로스(Cyprus) 섬 출신으로 원래는 양치기였다. 그는 결혼해서 아내와 함께 양을 치고 농사를 지으며 평범한 삶을 살았다. 이레네(Irene)라는 딸도 하나 얻었다. 신앙심이 깊었던 그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수도원에 들어갔고, 그의 딸도 수녀원으로 들어갔다.

그는 비록 많이 배우지도 못했고 또 촌스러웠지만, 뛰어난 덕행으로 인해 테르미투스(오늘날 키프로스 섬 동남부의 트레메투시아 Tremetousia)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구 신자들을 돌보는 와중에서도 때때로 양치기 일을 계속했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그는 증거자 중의 한 명으로 신앙 때문에 박해 중에 노동형을 선고받아 광산에서 강제노역을 하고, 오른쪽 눈이 뽑히고 왼쪽 무릎의 힘줄이 끊기는 고통을 당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예언의 은사와 놀라운 기적을 행하는 성직자로도 유명했다.

그는 또한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참석해 아리우스 이단을 추종하는 이들과 대적하고, 그리스도교를 모욕하는 이교도 철학자의 잘못을 입증해 그를 참된 신앙으로 이끌었다고 한다. 그는 때때로 스피리돈(Spyridon)으로도 불린다. 동방 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2월 12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아넬로

 

  • 가톨릭 성인 이름
    Agnel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96년 나폴리

 

 

아넬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그넬로, 아그넬루스, 아넬루스, 아녤로, 아녤루스, 앙넬로.

 

 

아넬로 자료

성 아넬루스(또는 아넬로)는 이탈리아의 나폴리 부근에서 은수자로서 종교적인 생활을 시작하였고, 그 후 나폴리 인근 산 가우디오소(San Gaudioso)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사라센의 침입 때 기적으로 나폴리를 지킨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다. 성 아넬루스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아르세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rse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아르세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르세니우스.

 

 

아르세니오 자료

성 헤론(Heron)은 성 아르세니우스(또는 아르세니오), 성 이시도루스(Isidorus), 성 디오스코루스(Dioscorus)와 함께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고통을 당했다. 성 디오스코루스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채찍으로 매를 맞고 풀려났고, 다른 이들은 모두 화형대에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아분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bun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3년

 

 

아분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분디우스.

 

 

아분디오 자료

성 유스투스(Justus)와 성 아분디우스(또는 아분디오)는 에스파냐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원래 화형을 당했으나 불길이 그들에게 번지지 않자 참수형을 당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요한(십자가의)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of the Cros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비가, 교회학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42-1591년

 

 

요한(십자가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십자가의) 자료

십자가의 성 요한(Joannes a Cruce)은 1542년 6월 24일 에스파냐의 아빌라(Avila) 근교 폰티베로스(Fontiveros)에서 직조공이었던 곤살로 데 예페스(Gonzalo de Yepes)와 카탈리나(Catalina Alvarez) 사이의 세 아들 중 막내로 태어났다.

그의 가족들은 극심한 빈곤과 궁핍 속에서 생활하였고 아버지와 형 루이스(Luis)는 요한이 어릴 때 사망하였다. 그래서 요한은 어머니와 함께 메디나 델 캄포(Medina del Campo)에 정착해 살며 교육을 받았고, 17세 때에는 그곳의 예수회 대학교에서 공부하는 한편 메디나 병원장을 위해 일하기 시작했다.

1563년 그는 메디나 델 캄포의 카르멜 수도원에 입회하였고 이듬해에 성 마티아의 요한(Juan de Santo Matia)이라는 수도명으로 서원을 하였다.

1564년부터 4년간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567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성 요한은 고향집을 찾았을 때 아빌라(Avila)의 성녀 테레사(Teresia, 10월 15일)를 만났다.

그 당시 카르멜회의 환경과 생활 방식에 만족하지 못해 더 고적하고 깊은 기도생활을 할 수 있는 카르투지오회로 옮기고 싶다는 뜻을 성 요한이 피력하자, 성녀 테레사는 그를 설득하여 카르멜회에 남아 함께 개혁운동을 하자고 권유하였다.

1568년 11월 28일에 그는 두루엘로(Duruelo)에서 두 명의 동료와 함께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의 도움으로 개혁된 수도생활을 시작하였다.

성 요한은 카르멜회의 최초 규칙으로 돌아가 실천하겠다는 서약을 하였으며, 이때 이름을 십자가의 요한으로 바꾸었다. 그는 열렬한 기도와 보속의 생활을 하면서 인근 마을들에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그리고 1년 뒤 두루엘로에 최초의 맨발의 카르멜회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그는 개혁 카르멜회의 보급을 위하여 진력을 다하던 중, 1577년 10월 2일 수도회 개혁을 반대하던 완화 카르멜회 수도자들에 의해 납치되어 톨레도(Toledo) 수도원 다락방에 감금되었다. 그는 이곳에서 1578년 8월까지 9개월간 ‘어두운 밤’을 체험하였다.

이 당시의 체험을 바탕으로 그는 신비적, 영성적, 문학적인 성장을 이루게 된다. 감옥 안에서 그는 몇 편의 시를 썼다. 9개월 만에 감옥에서 탈출한 그는 개혁 카르멜회의 여러 직책을 맡아 활동하는 한편 저술활동을 계속하였다.

1579년 맨발의 카르멜회는 인정을 받았고 수도원도 세웠다. 그는 바에사에 개혁 카르멜회 대학을 세우고 학장이 되었으며, 1582년에는 그라나다(Granada)의 로스 마르티레스 수도원의 원장을, 1585년에는 안달루시아(Andalucia) 관구장이 되었다.

그러나 1590년 카르멜회의 분쟁이 재현되었다. 결국 이로 말미암아 요한은 1591년 6월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가게 되었다. 하지만 병에 걸려 그대로 에스파냐에 남게 된 그는 그 해 9월 말 우베다(Ubeda) 수도원으로 옮긴 후 병고와 정신적 고통을 겪은 후 12월 13일 밤 자정이 지난 무렵에 사망하였다.

그는 교회의 가장 위대한 신비가 중 한 명이며, 그의 저서들은 가장 유명한 영성신학의 고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그중에서도 “카르멜의 산길”, “영혼의 노래”, “사랑의 산 불꽃” 등이 가장 유명하다. 요한은 1675년 교황 클레멘스 10세(Clemens X)에 의해 시복되었으며, 1726년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1926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교회학자로, 1993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에스파냐 언어권의 모든 시인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유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Jus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3년

 

 

유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유스또, 유스뚜스, 유스투스.

 

 

유스토 자료

성 유스투스(또는 유스토)와 성 아분디우스(Abundius)는 에스파냐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은 원래 화형을 당했으나 불길이 그들에게 번지지 않자 참수형을 당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이시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Isi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이시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시도루스, 이시도르, 이시돌.

 

 

이시도로 자료

성 헤론(Heron)은 성 아르세니우스(Arsenius), 성 이시도루스(Isidorus, 또는 이시도로), 성 디오스코루스(Dioscorus)와 함께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고통을 당했다. 성 디오스코루스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채찍으로 매를 맞고 풀려났고, 다른 이들은 모두 화형대에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조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Zos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조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소시모, 조시무스, 조씨모, 조씨무스.

 

 

조시모 자료

성 드루수스(Drusus)는 성 조시무스(또는 조시모), 성 테오도루스(Theodorus)와 함께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는데, 그 장소는 아마도 안티오키아(Antiochia)로 추정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는 그들의 축일에 그들에 대한 강론을 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테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테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루스.

 

 

테오도로 자료

성 드루수스(Drusus)는 성 조시무스(Zosimus),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와 함께 시리아에서 순교하였는데, 그 장소는 아마도 안티오키아(Antiochia)로 추정된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는 그들의 축일에 그들에 대한 강론을 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폼페요

 

  • 가톨릭 성인 이름
    Pompe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290년 파비아

 

 

폼페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폼페유스, 폼페이오, 폼페이우스.

 

 

폼페요 자료

이탈리아 파비아의 주교인 성 폼페유스(Pompejus, 또는 폼페요)는 3세기말 교회에 대한 박해 중에 로마 당국에 의해 순교했을 것으로 여겨지나 공식적으로 순교자로 기록되지는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헤론

 

  • 가톨릭 성인 이름
    Her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헤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헤론 자료

성 헤론은 성 아르세니우스(Arsenius), 성 이시도루스(Isidorus), 성 디오스코루스(Dioscorus)와 함께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고통을 당했다. 성 디오스코루스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채찍으로 매를 맞고 풀려났고, 다른 이들은 모두 화형대에서 불태워져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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