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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남자세례명 4가지

pieonane 2023. 12. 2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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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막시모, 요한, 테오도로, 테오파네, 총 4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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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7일 여자세례명 니카레테, 파비올라,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2월 27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4가지

 

 

 

 

12월 27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막시모

  2. 요한

  3. 테오도로

  4. 테오파네

 

12월 27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4가지

 

 

1. 막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2년 알렉산드리아

 

 

막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자료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알렉산드리아의 사제로 자신의 주교인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 11월 17일)가 유배(251-264년)를 간 동안 교구를 헌신적으로 돌보았다.

그리고 성 디오니시우스 주교가 사망한 후 그를 계승하여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이교에 빠진 사모사타(Samosata)의 바오로(Paulus) 주교를 이집트 밖으로 쫓아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사도, 복음사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00년경?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성 요한(Joannes)은 갈릴래아의 어부로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사도 성 대 야고보(Jacobus, 7월 25일)의 동생이다.

성 야고보와 성 요한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배와 아버지와 삯꾼들을 남겨둔 채 예수님을 따라나섰다(마태 4,21-22; 마르 1,19-20; 루카 5,1-11).

이들 형제는 성격이 매우 급하고 흥분을 잘했기 때문에(루카 9,54; 마르 10,35-41), 예수님은 그들에게 ‘천둥의 아들들’이란 뜻으로 ‘보아네르게스’라는 이름을 붙여 주셨다(마르 3,17).

또한 그들은 예수님의 중요한 행적, 예를 들어 예수님께서 회당장 야이로의 죽은 딸을 살렸을 때(마르 5,37; 루카 8,51),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마태 17,1; 마르 9,2; 루카 9,28), 겟세마니(Gethsemane)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마태 26,37; 마르 14,33)와 같은 중요한 순간에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와 함께 예수님 곁에 있었다.

또 성경 곳곳에서 성 요한은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라고 표현되고 최후의 만찬 때 스승의 가슴에 기댔던 사람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십자가상의 예수님 곁에 마지막까지 남았던 그에게 예수님께서는 직접 당신 어머니를 맡기셨다(요한 19,25-27).

그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시고 안식일 다음 날, 주간 첫날 이른 아침에 무덤이 비었다는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의 말을 듣고 성 베드로와 함께 달려갔는데, 성 베드로보다 먼저 예수님의 빈 무덤에 다다랐다(요한 20,1-5).

그는 주님의 부활을 굳게 믿었고,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다른 제자들과 함께 고기를 잡으러 나갔다가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라고 말씀하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제일 먼저 알아보고 성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요한 21,1-7).

사도행전에서도 성 요한은 성 베드로와 함께 활동하다가(사도 3장), 백성의 지도자들에 의해 성 베드로와 함께 투옥되고 최고 의회에서 당당히 증언하기도 했다(사도 4,1-22). 사마리아 사람들이 하느님을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소식을 듣고 그는 성 베드로와 함께 파견되어 그들이 성령을 받도록 기도하고 사마리아의 많은 마을에 복음을 전하였다(사도 8,14-15.25).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는 성 야고보와 케파(성 베드로)와 함께 요한을 일컬어 ‘교회의 기둥’이라고 불렀다(갈라 2,9). 후일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Patmos) 섬에서 유배 생활을 했고(묵시 1,9),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죽은 후 에페수스(Ephesus)로 돌아와 여생을 지내다가 100년경에 선종하였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에 따르면 성 요한은 너무 나이가 많아 군중들에게 설교할 수 없었고, 다만 간단한 말만 했다고 한다. 6세기에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성 요한의 무덤으로 알려진 자리에 ‘사도 요한 성당’을 건립하였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신약성경의 네 번째 복음서(요한 복음)와 세 권의 서간(요한 1·2·3서) 그리고 요한 묵시록이 사도 성 요한의 저작물이라고 전해져온다. 그래서 교회 미술에서 성 요한은 주로 책(성경)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또한 그의 상징과 문장으로 독수리가 사용되는데, 이는 요한 복음서의 신학이 가장 높은 곳까지 날아오르는 독수리처럼 높고 깊은 경지에서 우리를 참된 신앙으로 인도해 주기 때문이다.

교회 미술에서 성 요한은 독수리 외에도 뱀이 든 성작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자주 표현된다. 이는 “황금 전설” 등을 통해 전해진 전설에 따른 것으로, 성 요한이 독이 든 잔을 받고 축복하자 그 독이 뱀으로 변했다는 이야기에 근거한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던 성 요한은 그의 복음서와 서간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며, 특별히 모든 이들이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 것을 강조한 ‘사랑의 사도’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테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75-841년

 

 

테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루스.

 

 

테오도로 자료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와 그의 동생 성 테오파네(Theophanes)는 모아브(Moab) 지방의 케락(Kerak)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그는 예루살렘의 성 사바(Sabas)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된 후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명에 따라 성상파괴 정책을 고수하는 레오 황제에게 항의하러 파견되었다.

그는 이 명을 충실히 따른 결과 성 테오파네와 함께 모진 매를 맞고 흑해의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 820년 레오 황제가 죽게 됨에 따라 그들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귀향하였으나, 테오필루스 황제에 의하여 829년에 재차 추방되었다가 2년 만에 다시 소환되어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성상 파괴에 항의하는 뜻으로 12행의 문구를 문신으로 새기고 다녔다고 한다. 이윽고 그들은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아파메아(Apamea)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성 테오도루스는 운명하였다.

성 테오파네는 아마도 이때 살아남아서 후에 니케아(Nicaea, 터키 북서부에 있는 이즈니크의 옛 이름)의 주교가 되었다. 이 형제들이 그랍투스(Graptus)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새긴 문신 때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테오파네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phan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75-841년 니케아

 

 

테오파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파네스, 테오파네스.

 

 

테오파네 자료

성 테오도루스(Theodorus)와 그의 동생 성 테오파네는 모아브(Moab) 지방의 케락(Kerak)에서 태어났으나, 부모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이주하여 살았다.

그는 예루살렘의 성 사바(Sabas)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된 후 사제로 서품되었는데, 예루살렘 총대주교의 명에 따라 성상파괴 정책을 고수하는 레오 황제에게 항의하러 파견되었다.

그는 이 명을 충실히 따른 결과 성 테오파네와 함께 모진 매를 맞고 흑해의 어느 섬으로 유배되었다. 820년 레오 황제가 죽게 됨에 따라 그들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귀향하였으나, 테오필루스 황제에 의하여 829년에 재차 추방되었다가 2년 만에 다시 소환되어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성상 파괴에 항의하는 뜻으로 12행의 문구를 문신으로 새기고 다녔다고 한다. 이윽고 그들은 비티니아(Bithynia, 고대 소아시아 북서부 지역)의 아파메아(Apamea)로 추방되었고 그곳에서 성 테오도루스는 운명하였다.

성 테오파네는 아마도 이때 살아남아서 후에 니케아(터키 북서부에 있는 이즈니크의 옛 이름)의 주교가 되었다. 이 형제들이 그랍투스(Graptus)라고 불리는 이유는 그들이 새긴 문신 때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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