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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비코 파보니 천주교 남자세례명

피어나네 2024. 4. 9.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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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로도비코 파보니는 누수, 로도비꼬, 로도비꾸스, 로도비쿠스,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코,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로도비코 파보니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로도비코 파보니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로도비코 파보니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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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비코 파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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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도비코 파보니 남자세례명 목록

 

  1. 로도비코 파보니 (4월 1일)

 

로도비코 파보니 천주교 남자세례명

 

 

1. 로도비코 파보니

 

  • 세례명 축일
    4월 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odovico Pavoni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84-1849년

 

 

로도비코 파보니 세례명과 같은 이름

누수, 로도비꼬, 로도비꾸스, 로도비쿠스,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코,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로도비코 파보니 이야기

성 로도비코 파보니는 1784년 9월 11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의 브레시아(Brescia)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활기 넘치고 총명한 아이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심을 갖고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재빨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후에 브레시아의 주교가 된 도미니코회의 카를로 도메니코 페라리(Carlo Domenico Ferrari) 신부의 집에서 신학교육을 받으며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집에서 공부했던 것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Napoleon I)가 이탈리아를 점령했던 시기(1799~1814년)에 신학교가 강제로 폐교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1807년 브레시아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818년, 그는 고아원과 직업학교를 설립할 허락을 받고 성 바르나바(Barnabas) 성당의 주임신부로 임명되면서부터 불행한 소년들을 돌보는 사업을 시작했고, 이는 1821년 ‘성 바르나바 학교’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첫 번째 사업으로 인쇄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1823년에 ‘성 바르나바 학교 출판사’를 설립했고, 이는 오늘날의 ‘안코라 출판사’(Ancora Press)의 전신이 되었다. 소년들은 또한 목수, 은세공인, 대장장이, 제화공, 염료 제조 기술자가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에 그는 처음으로 농아들을 학교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장을 매입하여 농업학교도 설립하였다. 1825년,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자신의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사제와 수사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만들었고, 1843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브레시아를 위해 이를 승인해 주었다.

1847년 8월 11일, 브레시아 교구의 주교좌 참사위원장 루치(Luchi) 몬시뇰이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회’(또는 ‘파보니아니’[Pavoniani])를 설립했고, 그해 12월 8일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와 첫 회원들의 수도 서원이 거행되었다.

1849년 3월 24일, 브레시아가 오스트리아에 저항했던 ‘열흘’ 동안, 양측은 모두 브레시아를 약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콜레라마저 유행하는 동안 시민들을 돌볼 책임을 느낀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12km 떨어진 사이아노(Saiano) 언덕에 있는 수련소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소년들을 이끌며 그의 마지막 영웅적인 애덕의 행위를 완수했다.

한 주일 뒤인 1849년 4월 1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 밝아오던 새벽녘에 그는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30여 년간 교육의 긍정적 방법을 통해 거리 소년들의 절박한 필요에 응답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영감을 쏟아부었던 봉사의 삶이 마감된 것이었다.

교육에 대한 그의 이상은 광범위한 것으로 한 인간의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제자들을 훌륭한 사회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했다. ‘노동헌장’이 반포되기 50년 전에 이미 그는 사회정의의 종교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 스스로 고용인들을 올바로 대우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후대의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 1월 31일)처럼 격려하고 예방하는 교육 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엄격함보다 관대함을 선호했다. 그래서 종종 “엄격주의는 하늘나라를 텅 비게 만든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가 설립한 수도회의 회원들은 현재 브라질, 콜롬비아, 에리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에스파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책을 출판하는데, 로마에서는 성 베드로 광장 밖에서 안코라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2002년 4월 14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1일 목록에 복자품에 오른 그를 추가하며, 그가 브레시아에서 가장 가난한 젊은이들의 교육에 큰 관심을 두고 헌신했으며, 무엇보다 그들을 그리스도교 정신에 따라 교육하고 직업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회를 설립했다고 기록하였다.

그는 2016년 10월 16일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성 루도비쿠스 파보니(Ludovicus Pavoni, 또는 루도비코 파보니)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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