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세례명 로코는 로꼬, 로꾸스, 로끄, 로슈, 로케, 로쿠스, 로크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로코 2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로코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로코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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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코 남자세례명 목록
1. 로코
- 세례명 축일
8월 16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ch - 신분과 직업
평신도,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348년경 - 1379년경
로코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꼬, 로꾸스, 로끄, 로슈, 로케, 로쿠스, 로크.
로코 이야기
성 로쿠스(Rochus, 또는 로코)는 프랑스 왕국과 잉글랜드 왕국 간의 백년전쟁이 한창이던 1348년경 마요르카(Majorca) 왕국의 몽펠리에(Montpellier, 현 프랑스 남부 지중해 연안 도시)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그 지방의 장관(또는 시장)으로 높은 직책을 맡고 있었으나 자녀가 없어 늘 아쉬워했다고 한다.
그의 부모는 오랫동안 간절히 성모 마리아에게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고, 마침내 아들을 낳았는데 그의 가슴에 붉은 십자 점이 있었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부모에게 신앙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는 스무 살 무렵 아버지를 여의었고, 곧이어 어머니도 세상을 떠났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한 그는 아버지처럼 그 도시의 고위직을 맡을 수 있었지만, 그 모든 책임을 삼촌에게 넘기고 물려받은 막대한 재산 또한 모두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작은 형제회 제3회에 입회하여 순례자로서 축복을 받고 이탈리아의 로마(Roma)로 성지순례를 떠났다.
당시 이탈리아는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흑사병이 창궐해 많은 이들이 죽어가고 있었다. 성 로코는 순례 중에 자기 몸도 돌보지 않고 여러 도시에서 헌신적으로 환자들을 돌보며 로마에 도착했다.
그곳에서도 공립 병원에서 전쟁과 전염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을 돌보았다. 그러면서 그에게서 치유의 은사가 나와 십자성호를 긋고 기도한 뒤 아픈 부위에 손을 대면 상처가 낫고 병이 치유되는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도 소문을 듣고 여러 도시에서 병자들이 그에게 몰려왔고, 그는 그들을 모두 헌신적으로 돌봐주었다.
그러던 중 이탈리아 북부 피아첸차(Piacenza)에서 성 로코 자신도 흑사병에 걸려 극심한 고통을 겪게 되었다. 그가 흑사병에 걸리고 거동마저 불편해지자 그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던 마을 사람들은 매몰차게 그를 마을 밖으로 쫓아냈다.
성 로코는 인적이 드문 숲으로 피해 갔고, 그곳에서 우물을 발견해 그 물을 마시며 목숨을 연명했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숲에서 천사의 보살핌을 받았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개 한 마리가 갓 구운 빵 한 덩이를 입에 물고 와 그에게 가져다주었고, 그 후로도 매일 같은 일이 일어났다. 인근에 살던 개 주인인 고타르 백작은 자기 개가 매일 새로 구운 빵을 물고 숲으로 사라지자 이를 이상하게 여겨 그 뒤를 따라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그 개가 숲속에 병들어 누워 있는 성 로코에게 빵을 가져다주고 그의 상처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을 핥아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에 감동한 백작은 성 로코가 건강을 회복하도록 도와주었다.
성 로코는 기적적으로 완치되었고, 자기를 쫓아냈던 도시로 돌아와 더욱 풍성해진 치유의 은사로 병자들을 돌보며 전염병을 물리치도록 적극적으로 도와주었다.
건강을 되찾은 성 로코는 힘들게 고향으로 돌아왔지만, 병으로 인한 상처와 남루한 행색으로 인해 귀족 출신으로 전직 장관의 아들인 그를 아무도 알아보지 못했다. 오히려 당시 전쟁 중이던 이웃 나라에서 순례자로 변장해 보낸 간첩이라는 누명을 쓰고 체포되어 5년 동안 감옥에 갇혔다.
끝까지 자기 신분을 밝히지 않고 수감생활을 하던 그는 결국 감옥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시신을 수습하던 사람들은 그때서야 비로소 그가 모든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고 떠난 전직 장관의 아들이며 현 장관의 조카임을 알게 되었다.
성 로코는 무엇보다 치유의 은사를 베푸는 사람으로 유명했고 또 그렇게 유럽에서 큰 공경을 받았다. 특히 흑사병으로 고통받은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흑사병의 유행으로 고통받던 중세에 더욱 큰 공경을 받았다.
성 로코의 유해는 나중에 베네치아(Venezia)로 옮겨져 성 로코 성당에 안치되었다. 그 후 그의 무덤은 주요한 순례지가 되었다. 성 로코는 공식적으로 시성식을 거행하지는 않았지만, 대중적 신심과 공경이 유럽 전역으로 퍼지면서 여러 교황이 그의 공경을 인정하였다.
그리고 교황 그레고리오 14세(재위 1590~1591년 재위)가 “로마 순교록”에 그의 이름을 올리고 8월 16일을 축일로 지정하였다. 그의 행적은 많은 전설적 이야기들로 채워졌고, 그의 출생과 죽음도 전통적으로 1295년경에서 1327년으로 알려졌었다. 그러나 오늘날 대부분의 성인전은 그의 출생 시기를 1348년경으로 그리고 그의 사망 시기를 1379년경으로 보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8월 16일 목록에서 프랑스 몽펠리에 출신의 성 로코가 이탈리아 전역을 순례하며 흑사병 환자들을 치유함으로써 성덕과 명성을 얻었다며 그의 선종 시기를 1379년경으로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순례자 복장을 하고 허벅지의 상처를 드러내는 모습으로 주로 등장하고, 그에게 빵을 가져다주거나 상처를 핥아주는 개와 함께 표현되고 있다. 그는 프랑스에서 성 로슈(Roch), 이탈리아에서 성 로코(Rocco), 에스파냐에서는 성 로케(Roque) 등으로 불리며, 순례자와 병자 · 외과 의사와 죄수 등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로코 곤잘레스
- 세례명 축일
11월 1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Roque Gonzalez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76-1628년 파라과이
로코 곤잘레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곤살레스, 로꼬, 로꾸스, 로케, 로쿠스, 로크.
로코 곤잘레스 이야기
성 로쿠스 곤잘레스 데 산타 크루스(Rochus Gonzalez de Santa Cruz, 또는 로코 곤잘레스)는 에스파냐의 귀족 출신으로서 1576년 파라과이의 수도 아순시온(Asuncion)에서 태어났다.
부모로부터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착하고 열심한 소년으로 성장한 그는 사제직을 지망하여 신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23세에 마침내 사제가 되었다. 그런데 자신이 교구 사제직에 부적합하다고 느낀 그는 인디언 원주민들에게 큰 관심을 보이다가 1609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 당시는 바로 유명한 파라과이 ‘정복’이 시작될 때였다. 에스파냐는 제국주의를 앞세워 남아메리카와 중앙아메리카에서 가혹한 식민지 정책으로 이 지역의 원주민들을 무참히 짓밟고 통치하였다.
예수회 회원들은 그들의 제국주의에 강력히 맞서 싸우면서 원주민들의 개종사업을 전개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성 로쿠스 곤잘레스 신부는 거의 20년 동안이나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그는 원주민들로부터는 적대감을 이겨내야 했고, 정복자인 에스파냐 당국으로부터는 공개적인 반대와 억압을 받아야만 했다.
1626년 성 로쿠스 곤잘레스 신부는 동료인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Alfonsus Rodriguez) 신부와 성 후안 데 카스티요(Juan de Castillo) 수사와 함께 원주민을 위한 새로운 정착촌을 건설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착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사는 원주민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성 로쿠스 곤잘레스와 성 알폰수스 로드리게스 신부는 현재의 브라질 남단지역인 카아로(Caaro)로 갔다.
이곳에서 헌신적인 노력을 경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지역 주술사의 증오의 대상이 되었다. 결국 1628년 11월 15일 주술사가 고용한 일당이 도끼를 들고 성당에 잠입해 그들을 살해하고 성당에 불을 질러 시신조차 찾을 수 없게 되었다. 당시 카아로에 있지 않았던 성 후안 데 카스티요 역시 얼마 지나지 않아 원주민들의 공격을 받고 돌에 맞아 순교하였다.
성 로쿠스 곤잘레스와 동료 순교자들은 1934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파라과이의 순교자로 그리고 남아메리카 최초의 순교자로서 복자품에 올랐다. 1988년 5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파라과이의 아순시온에서 그들을 시성하였다. 한편 성 로쿠스 곤잘레스의 생애는 영화 ‘미션’(Mission)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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