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세례명 이사벨라는 이사벨, 이자벨, 이자벨라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이사벨라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이사벨라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이사벨라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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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벨라
천주교 여자세례명
이사벨라 여자세례명 목록
- 이사벨라 (2월 22일)
1. 이사벨라
- 세례명 축일
2월 22일 - 호칭 구분
복녀 - 가톨릭 성인 이름
Isabella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225-1270년 프랑스
이사벨라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사벨, 이자벨, 이자벨라.
이사벨라 이야기
복녀 이사벨라는 프랑스의 왕 루이 8세(Louis VIII)와 카스티야(Castilla)의 블랑쉬(Blanche)의 딸로 1225년 3월 파리(Paris)에서 태어났다. 나중에 성인이 된 루이 9세 왕인 성 루도비코(Ludovicus, 8월 25일)가 그녀의 오빠이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의 교육을 받으며 성장해 겸손하고 경건하며 사치를 멀리하고 금식과 극기를 즐겨 실천했다. 그녀는 여러 곳에서 들어온 청혼을 모두 거부하고 하느님께 동정을 서원하고자 했다.
나중에 신성로마제국 프리드리히 2세 황제의 아들인 독일의 콘라트 4세(Conrad IV)의 청혼마저 거부했는데, 그리스도교의 이익을 위해 그 청혼을 받아주길 바라는 교황 인노첸시오 4세(Innocentius IV)의 편지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그녀는 교황에게 자기 뜻을 충분히 설명하고 동정 서약에 대한 허락을 받았다. 그녀는 자주 자신의 식탁에 가난한 사람을 초대해 음식을 대접하고, 밖으로 나가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방문하곤 했다.
그러던 중 1252년에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자 복녀 이사벨라는 평소 자신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친 아시시(Assisi)의 성녀 클라라(Clara, 8월 11일)의 수도원을 세우고자 했다.
그녀는 오빠인 성 루도비코 왕의 허락과 도움을 받아 파리 근교 롱샹(Longchamps)에 성녀 클라라의 수도 규칙을 따르는 수도원을 세우고 엄격한 수도 생활에 전념했으나 서원을 하지는 않았다.
더욱이 수녀원장 직책은 한사코 거절하였다. 그녀는 수녀원을 재정적으로 지원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 위해 재산의 일부를 유지했기 때문에 수도 서원을 하지 않았고, 겸손한 삶을 위해 원장직도 사양했던 것이었다.
아울러 평소 건강이 좋지 않아 다른 수녀들의 생활 규칙을 모두 따를 수 없었던 것도 서원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였다. 1256년 수도원의 초석을 놓고 1259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게 새로운 수도 규칙에 대한 승인을 받은 복녀 이사벨라는 1270년 2월 23일 자정 무렵 선종할 때까지 별도의 분리된 방에서 단식과 참회, 묵상과 기도에 전념하며 살았다.
복녀 이사벨라는 선종한 후 롱샹 수도원 성당에 묻혔는데, 그녀의 무덤에서 기적이 많이 일어났다. 1521년 교황 레오 10세(Leo X)는 롱샹 수도원에서 그녀의 축일 기념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칠 수 있도록 승인하였다.
1688년 1월 25일 롱샹 수도원의 수녀들은 그녀의 축일을 8일 축제로 지낼 허락을 받았고, 1696년에는 모든 프란치스코회 수도원에서 8월 31일에 축일을 기념하도록 교황 인노첸시오 12세의 허락을 받았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22일 목록에 복녀 이사벨라의 이름을 추가하면서, 성 루도비코의 누이인 그녀가 왕실 결혼과 세상을 쾌락을 포기하고 파리 외곽 롱샴에 클라라회 수녀원을 설립해 겸손과 가난한 삶으로 하느님을 섬겼다고 기록하였다. 복녀 이사벨라는 이사벨(Isabel)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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