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세례명 막시모는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막시모 35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막시모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막시모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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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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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시모 남자세례명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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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시모 (오스티아) (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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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막시모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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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시모
- 세례명 축일
1월 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11년 파비아(Pavi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가 이탈리아 파비아의 주교였다는 사실 뿐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막시모
- 세례명 축일
1월 2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3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유벤티우스(Juventius)와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배교자 율리아누스(Julianus) 황제의 관리였다. 그들은 유해 공경을 금지하는 황제의 칙서를 비난하여 물의를 일으켰고, 이 소문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자 먼저 토지와 재산이 몰수되고, 심한 고문을 받다가 끝내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는 그들을 기리는 글을 썼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막시모
- 세례명 축일
2월 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놀라(Nol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3세기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Napoli) 교외 놀라의 주교로 활동했는데, 그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거의 없다. 5세기 초에 놀라의 주교가 된 성 바울리노(Paulinus, 6월 22일)가 놀라의 사제이자 증거자인 성 펠릭스(Felix, 1월 14일)에 대해 언급한 자료를 통해 그에 대해 알 수 있을 뿐이다.
성 막시모는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의 박해 당시 이미 연로한 주교였다. 그는 성 펠릭스에게 사제품을 주었고 그의 보좌를 받았다. 250년 박해가 시작되자 그리스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으나 점점 박해가 심해져 성 펠릭스에게 교구를 돌보게 하고 잠시 피신하게 되었다.
성 펠릭스는 사막으로 주교를 피신시켰으나 자신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당했다. 어느 날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에서 풀려나 성 막시모에게 갔을 때, 주교는 추위와 배고픔으로 말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상태였다.
성 펠릭스는 기적적으로 제철도 아닌데 포도나무에서 열매를 따서 그 즙으로 성 막시모를 소생시킨 다음 그를 도시로 모셔와 돌보도록 했다. 그리고 얼마 뒤에 성 막시모는 평화롭게 선종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1월 15일 목록에서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놀라에서 성 막시모 주교를 기념한다고 간단히 언급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2월 7일 목록으로 옮겨 박해의 시대에 놀라의 교회를 돌보고 평화롭게 세상을 떠난 성 막시모 주교에 대해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막시모 (아프리카)
- 세례명 축일
2월 1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아프리카(Afric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18일 목록에서 아프리카의 순교자로 성 루치오(Lucius), 성 실바노(Silvanus), 성 루툴로(Rutulus), 성 클라시코(Classicus), 성 세쿤디노(Secundinus), 성 프룩툴로(Fructulus)와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이들은 16세기에 교회사학자로 유명한 카이사르 바로니우스(Caesar Baronius, 1538~1607년) 추기경이 믿을만한 사본을 바탕으로 “로마 순교록”에 삽입했다고 했는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더는 찾을 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막시모 (오스티아)
- 세례명 축일
2월 1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5년 오스티아(Osti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18일 목록에서 저명한 가문 출신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그의 형제인 성 클라우디오(Claudius) 그리고 성 클라우디오의 아내인 성녀 프레페디냐(Praepedigna)와 그들의 두 아들인 성 알렉산데르(Alexander)와 성 쿠티아(Cutias)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명령으로 체포되어 유배되었고, 오스티아에서 산 채로 화형을 당해 하느님께 향기로운 순교의 제사를 봉헌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그들의 시신이 강에 버려졌지만, 그리스도인들이 발견하여 오스티아 근처에 묻었다고 기록했다. 그런데 그들의 전설적 이야기에 대해서 역사적 신뢰성을 두기는 어렵다.
오히려 교훈적인 목적으로 로마의 성녀 수산나(Susanna, 8월 11일) 이야기에서 유래한 이름으로 여기고 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다.
6세기에 기록된 전설적인 성녀 수산나의 수난기(Passio)와 성인전집(聖人傳集, Acta Sanctorum)에 따르면, 성녀 수산나는 로마의 사제인 성 가비노(Gabinus, 2월 19일) 딸로 매우 아름다운 처녀였으며 교황 성 카이오(Cajus, 4월 22일)의 조카였다.
그녀는 아버지와 친척 사이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로부터 자기 아들과 결혼하라는 요구를 뿌리쳤을 뿐 아니라, 그녀의 결혼을 종용하라는 특명을 받고 파견되었던 궁중 관리 성 클라우디오를 개종시켰다. 성 클라우디오는 교황 성 카이오에게 세례를 받고 집으로 돌아와서 자기가 보고 듣고 배운 모든 것을 아내에게 전해주었다.
그러자 성녀 프레페디냐와 두 아들도 다음날 성 카이오에게 세례를 받았다. 그 뒤로 성 클라우디오는 자기 재산을 팔아 가난한 그리스도인들을 돕는데 헌신하였다. 황제는 성 클라우디오가 아프다며 성녀 수산나에 관한 일을 미루자 그의 동생인 성 막시모를 다시 파견하였다.
하지만 그 역시 성녀 수산나에 의해 개종하였다. 결국 분노한 황제의 명령으로 성 막시모와 성 클라우디오 가족 모두가 화형을 당해 순교한 후 그 시신이 강에 버려졌고, 다른 그리스도인들이 발견해 오스티아에 안장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막시모
- 세례명 축일
3월 1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니코메디아(Nicomedi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3일 목록에서 니코메디아(오늘날 튀르키예 북서부의 이즈미트[Izmit])에서 성 미그도니오(Migdonius)와 성 마르도니오(Mardonius)가 순교했는데, 한 사람은 산 채로 불에 타 죽었고 다른 한 사람은 구덩이에 던져져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리고 니코메디아의 주교인 성 안티모(Anthimus, 4월 24일)의 부제도 순교자들의 편지를 가지고 가다가 이방인들에게 붙잡혀 돌에 맞아 주님께 돌아갔다고 했다. 이 모든 희생은 303년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 때 일어났다.
당시 니코메디아 황궁에 머물던 황제는 303년 2월 모든 성당과 성경을 파괴하라는 칙령을 내리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를 시작했다. 교회사학자인 카이사레아의 에우세비우스(Eusebius)가 그의 대표작인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서 전해준 바에 따르면, 칙령이 공포된 직후 황궁에 화재가 발생했고 황제는 이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에게 돌려서 대박해의 구실로 삼았다고 한다.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대박해로 성 안티모 주교를 비롯해 수많은 성직자와 평신도들이 순교하였다. 동방 정교회는 그해 성탄절에 2만 명의 신자들이 대성당에 모였을 때 황제의 명으로 모두 불태워져 순교했다고 하며, 12월 28일에 그들의 순교를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월 12일 목록으로 성 미그도니오와 성 마르도니오의 축일을 옮기고, 그들 뿐 아니라 다른 동료들의 순교에 대해서도 기록하였다. 일부 전승에서 이 두 명은 황실의 관리로 묘사되고 있고, 또 다른 전승에서는 성 미그도니오가 부제로 불리기도 한다.
개정 “로마 순교록”은 오늘날 튀르키예의 북서부 지역인 비티니아(Bithynia)의 니코메디아에서 성 미그도니오 신부와 성 에우제니오(Eugeni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성녀 돔나(Domna), 성 마르도니오, 성 스마라그도(Smaragdus), 성 힐라리오(Hilarius)가 하루에 한 명씩 죽이는 공포 속에서도 신앙을 지켜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막시모
- 세례명 축일
4월 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2년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의 출생 연도나 장소에 대해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다. 다만 그가 당시 문화와 종교의 중심지인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성 디오니시오(Dionysius, 4월 8일)에게 사제품을 받았고,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받는 격동의 시기에 확고부동한 믿음과 용기로 복음을 수호하였다.
그는 250년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의 박해 때 성 디오니시오 주교가 리비아 사막의 모처로 피신했을 때 교구를 돌보았고, 257년 발레리아누스 황제(253~260년 재위)의 박해가 다시 시작되어 성 디오니시오 주교가 체포되어 리비아로 그리고 이집트로 유배를 떠날 때 그와 동행하였다.
유배에서 돌아온 성 디오니시오 주교가 265년경 선종한 후에는 그를 계승하여 성 막시모가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가 되었다. 그는 상대적으로 평화스러운 시기에 교구를 사목하며 신자들을 돌보는데 헌신하였다. 성경 주석과 신학 논문 등의 저작을 통해서도 활발히 활동하며, 이교에 빠진 사모사타(Samosata)의 바오로(Paulus) 주교를 이집트 밖으로 쫓아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7일 목록에서 성 막시모가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어 유명하고 뛰어난 신앙의 증인이 되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선종한 날인 4월 9일로 축일을 옮겨,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성 막시모가 사제직을 수행하는 동안 자신의 전임자인 성 디오니시오 주교와 유배 생활을 함께하며 신앙을 증거하였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막시모
- 세례명 축일
4월 13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독서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성 다다(Dadas)와 성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는 불가리아 도나우(Donau) 강 유역 도로스토룸(Dorostorum) 출신의 형제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오조비아(Ozob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막시무스는 독서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막시모
- 세례명 축일
4월 1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30년경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발레리아노(Valerianus)와 성 티부르시오(Tiburtius)와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고대 교회 때부터 공경을 받고 있으며, 로마 근교 아피아 가도(Via Appia)에 있는 프레테스타투스(Praetestatus) 카타콤바에 안장되어 있다.
성 발레리아노는 성 티부르시오와 형제간으로 성녀 체칠리아(Caecilia, 11월 22일)의 약혼자였다. 그는 성녀 체칠리아와 결혼하였으나 자신의 동정을 존중해주길 요구한 성녀의 권고를 받아들여 교리를 배워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성 티부르시오 역시 성녀 체칠리아에 의해 개종하였다.
이 형제는 그때부터 사치스러운 생활을 멀리하고, 노예들에게 자유를 주고,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을 돕는 자선활동과 신앙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다가 알마키우스(Almachius) 총독의 미움을 사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로마의 신들을 모신 신전에 희생 제사를 바치라는 총독의 강요를 거절하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수하여 심한 매질을 당한 후 아피아 가도에서 참수형을 받고 성 막시모와 함께 순교하였다.
총독의 시종이었던 성 막시모는 성 발레리아노와 성 티부르시오가 그리스도에 대해 보여준 굳은 신앙과 용기에 감화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가 죽을 때까지 채찍질을 당해 순교하였다. 성녀 체칠리아는 이들 세 명의 순교자들의 장례를 지내주고 그들의 시신을 프레테스타투스 카타콤바에 안장해준 후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이들의 순교 연대는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옛 “로마 순교록”이 성녀 체칠리아와 성 발레리아노 등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Marcus Aurelius Severus Alexander, 222-235년 재위) 치하에서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있기에 그들의 순교 연대를 어느 정도 추정할 뿐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14일 목록에서 로마의 아피아 가도에 있는 프레테스타투스 카타콤바에 성 티부르시오와 성 발레리아노 그리고 성 막시모 순교자가 모셔졌다고 기록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막시모
- 세례명 축일
4월 1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페르시아의 귀족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성 올림피아데(Olympiades)는 데키우스 황제 치하에서 쇠지레로 죽을 때까지 맞아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막시모
- 세례명 축일
4월 3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에페수스(Ephesus)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당시 소아시아의 에페수스에는 작은 사업을 하지만 하느님께 충실한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집정관 옵티무스 앞에 가서 심문을 받았다.
“무슨 일을 하느냐?”
“장사꾼입니다.”
“그리스도인이냐?”
“예, 하지만 변변치 못한 신자입니다.”
이런 식으로 심문하다가 옵티무스는 “신들에게 희생을 바쳐라.” 하고 다그쳤다. 이때 그는 “저는 하느님께만 희생을 바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네가 희생을 바치면 풀어줄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죽으리라.”
“저는 그것이 소원입니다. 이 비천한 삶을 영원한 삶과 바꾸고 싶습니다.”
무식해 보이는 이 사람을 쉽게 배교시키리라 자신하던 옵티무스는 진노하여 그를 즉각 처단하라고 명을 내렸다. 그는 그 도시 밖으로 끌려가서 살해당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막시모
- 세례명 축일
5월 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50년 예루살렘(Jerusalem)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동안에 순교하지는 않았지만 고문으로 인해 평생을 불구자로 살아야 했다. 그는 335년경 성 마카리우스(Macarius, 3월 10일) 주교를 계승하여 예루살렘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처음에는 성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5월 2일) 주교를 반대하였으나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곧 아리우스주의자들의 반대자로 헌신하였다. 그의 후회에도 불구하고 그는 전통적으로 아리우스 이단과의 논쟁에서 정통교리의 옹호자들 가운데 한 명으로 존경을 받지는 못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막시모
- 세례명 축일
5월 1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성 바수스(Bassus) 그리고 성 파비우스(Fabi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로마에서 순교하였다. 다른 내용은 전해지지 않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막시모
- 세례명 축일
5월 1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카시우스(Cassius),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동료 신자들은 프랑스 중남부 오베르뉴(Auvergne)의 클레르몽(Clermont)에서 그 지역을 침략한 게르만족의 족장 크로카스(Chrocas)의 통치 중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막시모
- 세례명 축일
5월 2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84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이탈리아 브레시아(Brescia)에서 태어난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성 빅토리누스(Victorinus)는 형제 사이로 교황 성 다마수스 1세(Damasus I, 12월 11일)에 의해 갈리아(Gallia) 지방 선교를 위해 로마에서 파견되었다.
그들은 오늘날 프랑스 파리(Paris) 북서쪽 에브뢰(Evreux)에서 이교도들에 의해 순교하였다. 성 빅토리누스는 베네란두스(Venerandus)로도 알려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막시모
- 세례명 축일
5월 2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 베로나(Veron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이탈리아 베로나의 주교였다. 그는 정치적, 군사적으로 혼란한 시기에 자신의 교구를 다스렸기 때문에 그의 생애에 대해 상세한 것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막시모
- 세례명 축일
6월 1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나폴리(Napoli)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359년에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 나폴리의 제10대 주교가 되었다. 그가 주교직을 수행하던 때는 325년 니케아(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즈니크[Iznik]) 공의회에서 이단으로 단죄한 아리우스파를 지지하던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Constantius II, 337~361년 재위)가 통치하던 시기였다.
성 막시모 주교는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부인하는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니케아 공의회의 신조를 강력히 옹호했다는 이유로 황제에 의해 유배를 가게 되었다.
그때 그의 주교좌를 차지한 사람은 아리우스주의를 신봉하는 조시무스(Zosimuis)였다. 하지만 그가 6년 동안 교구를 다스리는 동안 신자들 앞에서 설교하려고 하면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결국 물러나고 말았다. 이는 백성들 사이에 이단 사상이 퍼지는 것을 걱정한 성 막시모 주교의 기도에 의한 기적으로 알려졌다.
361년에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가 즉위하고 이듬해에 그동안 추방된 모든 주교가 본래 주교좌로 돌아갈 수 있도록 허용했으나 성 막시모는 유배지에서 큰 고난을 겪고 건강이 나빠져 선종하고 말았다.
그의 유해는 나중에 나폴리로 모셔와 “막시모 주교 증거자”(Maximus Episcopus qui et Confessor)라는 문구가 적힌 제단 아래 석관에 안치하였다. 그는 전통적으로 잠자는 주교의 모습으로 표현되었고, 가톨릭교회의 정통신앙을 지키기 위해 신앙의 증거자로서 사망했기 때문에 일찍부터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10일 목록에서 나폴리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막시모에 대해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1일 목록으로 옮겨 니케아 신앙 고백을 지키다가 유배되어 큰 고난을 겪고 신앙의 증거자로서 숨을 거둔 나폴리의 성 막시모 주교에 대해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막시모
- 세례명 축일
6월 2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80-467년 토리노(Torino)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교회사가 젠나디우스의 “교회 저술가들의 책”속에 언급된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토리노의 주교로 많은 책들의 저자이며, 뛰어난 설교가로서 수많은 업적을 남겼다고 한다. 특히 그는 성경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졌던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451년 그는 밀라노(Milano) 시노드에 참석하여 그 유명한 ‘교의 편지’에 서명을 하기도 했다. 또한 그는 465년의 로마(Roma) 공의회에도 참석하였다. 브루노 브루니가 편찬한 전집에 의하면 그의 설교문이 116개, 6개의 논문 그리고 주일 강론이 118개나 남아 있었다고 한다.
교우들의 일상생활에도 특히 관심이 많았던 그는 신자들의 일상 임무 중에 가장 우선하는 것은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으로서, 이를 위하여 적당한 방법으로 시편을 외우라고 권하고, 또한 아침기도와 저녁기도를 빠트리지 말 것이며, 식사 전후에 감사기도를 바치고, 모든 일을 하기 전후에 십자성호를 그으라고 명했던 최초의 주교로 공경을 받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막시모
- 세례명 축일
7월 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84년 카르타고(Carthago)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오늘날 북아프리카의 튀니지에 속한 카르타고에서 아리우스파에 속한 반달족(Vandals)의 왕 후네릭(Huneric)에 의해 자행된 가톨릭교회에 대한 박해 때 순교한 성 리베라토(Liberatus) 수도원장과 동료들의 순교에 대해 전해주었다.
당시 반달족은 반달족의 왕 게이세리크(Geiseric)의 지휘 하에 429년 에스파냐에서 아프리카로 건너가 455년 로마 제국 통치하의 아프리카를 장악하였다. 477년 게이세리크 왕을 계승한 그의 아들 후네릭(Huneric)은 5천 명의 가톨릭 신자를 죽이는 대박해를 자행했다.
후네릭은 통치 7년째 되던 484년에 모든 가톨릭교회의 재산을 아리우스파 교회로 이전시키는 법령을 반포하고, 아리우스파를 거부하는 사람들의 시민권을 박탈했다. 이런 상황에서 당연히 모든 수도원에 대한 해산 명령도 내려왔다.
오늘날 튀니지 중서부의 오아시스 도시인 가프사(Gafsa, 라틴어로는 Capsa) 교외의 수도원에서 살던 성 리베라토 대수도원장과 성 보니파시오(Bonifatius) 부제, 성 세르보(Servus)와 성 루스티코(Rusticus) 차부제, 성 로가토(Rogatus)와 성 셉티모(Septimus) 수도승 그리고 어린아이였던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가 가톨릭의 정통신앙을 고백하고 체포되어 카르타고로 이송된 후 쇠사슬에 묶여 지하 감옥에 갇혔다.
전승과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그들은 온갖 약속으로 회유하는 모든 유혹을 뿌리치고 굳건히 신앙을 지켰다. 그러자 신심 깊고 충실한 신앙인들이 경비병들에게 뇌물을 주고서라도 감옥을 방문해 그들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도록 서로 격려하며 고난을 이겨나가던 중 그 사실을 알게 된 왕의 명령으로 더 혹독한 고문을 가하고 낡은 배에 태워 바다에서 불태워 죽이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하지만 몇 번의 시도에도 불구하고 불이 붙지 않고 계속 꺼져버렸다.
분노한 박해자는 나무 기둥에 못 박히고 묶인 그들의 머리가 깨질 때까지 노를 들고 때린 후 그들의 시신을 바다에 던져 버렸다. 박해자들은 어린 성 막시모를 회유하려고 특별히 노력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들의 시신은 파도를 타고 해안으로 밀려왔고,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의 시신을 정중히 수습해 고대 카르타고 항구 근처에 있는 비구아(Bigua) 수도원에 매장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성 리베라토와 여섯 명의 동료 순교자들을 8월 17일에 기념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7월 2일로 옮겨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막시모
- 세례명 축일
7월 2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사비누스(Sabinus), 성 율리아누스(Julian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성 마크로비우스(Macrobius), 성녀 카시아(Cassia), 성녀 바울라(Paula)와 다른 1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시리아의 다마스쿠스(Damascus)에서 신앙 때문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막시모
- 세례명 축일
8월 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4세기 파도바(Padov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전승에 따르면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이탈리아 북동부 베네토(Veneto) 지방 파도바의 초대 주교로 알려진 성 프로스도치모(Prosdocimus, 11월 7일)를 계승해서 파도바의 주교가 되었다. 실제로 그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의 유해가 발견된 11세기부터이다.
1048년 당시 파도바의 주교가 꿈속에서 성 막시모를 포함한 몇몇 성인들의 유해가 성녀 유스티나 대성당(Basilica di Santa Giustina)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1053년 파도바를 지나가던 교황 성 레오 9세(Leo IX, 4월 19일)가 1048년에 발굴된 성 막시모와 다른 성인들의 유해를 대성당에 안치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2일 목록에서 파도바의 주교인 성 막시모가 기적을 행했다고 알려졌고 평화로이 축복받은 삶을 마쳤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같은 날 목록에서 파도바에 성 프로스도치모 주교의 뒤를 이은 성 막시모가 있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2. 막시모
- 세례명 축일
8월 13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80-662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가 증거자로 불리는 이유는 참 진리를 전하려는 그의 노력과 그가 받은 고통 때문이다. 그는 7세기 최고의 정통교리 수호자였고, 성좌의 최고 권위를 열렬하게 옹호했던 인물이다.
그는 콘스탄티노플 태생으로 헤라클리우스 1세 황제의 비서로 있다가 사임한 뒤에 크리소폴리스(Chrysopolis)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그 후 그곳의 원장으로 여러 편의 신비적인 논문들을 남겼다. 그는 특히 그리스도 단성설을 주장하는 이들과 또 이를 옹호하는 칙서를 낸 콘스탄틴 2세 황제와 투쟁하는 사람들의 지도자로 활약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교황 호노리우스 1세(Honorius I)를 도와 교황권의 확립을 위해 적극 헌신했으며, 콘스탄틴 황제의 단성설을 옹호하는 ‘티포스’라는 칙서를 단죄하기 위하여 649년의 라테라노 공의회(Council of Laterano)에 참석하여 맹활약하였다.
그는 그 때문에 비치아(Bizya)로 유배되었고, 그 후 페르베리스에서 6년을 지내야만 하였다. 그 후 그는 또 콘스탄티노플로 송환되어 고문을 받고 투옥되었는데, 이 무시무시한 여행으로 인한 후유증 때문에 흑해 연안에 있는 라지카에서 662년 8월 13일 운명하였다.
막시무스는 비잔틴 신비주의의 핵심 인물이며 신학, 신비신학 그리고 수덕신학에 대한 많은 글을 포함하여 성서주석, 영적인 대화집 및 전례적인 상징에 관한 논문 “신비 안내서”(Mystagogia)를 저술한 장본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3. 막시모
- 세례명 축일
8월 1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석공,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세기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그리스 전승에 따르면 성 플로로(Florus)와 성 라우로(Laurus)는 본래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출신의 쌍둥이 형제로 일리리아(Illyria, 발칸 반도 서부 지역)의 이교도 신전 공사장에서 일하던 석공이었다. 그들은 석공 기술자이자 고용주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성 프로쿨로(Proculus)에게 석공 기술을 배웠는데, 그들 모두 그리스도인이었다.
이들 형제는 품삯을 받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었다. 그러던 중 어느 이교도 사제의 아들이 바위 조각에 상처를 입었을 때, 그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킨 후 치료해주었고, 이를 계기로 이교도 사제도 개종하였다. 그들은 신전이 완성되자 모든 이교 신상을 끌어내려 부수고 십자가를 세운 뒤에 그 지방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기도와 예배를 드리다 체포되었다.
결국 성 막시모와 성 프로쿨로와 함께 우상 파괴에 참여한 모든 그리스도인은 화형을 당해 순교했고, 성 플로로와 성 라우로 형제는 총독에게 끌려가 많은 고문을 당한 후 마른 우물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나중에 이들 형제의 유해가 발견되면서 그 당시 말들에게 유행하던 역병도 그쳤다고 한다. 그래서 이들 형제는 말(馬)의 수호자로서 교회 미술 안에서 주로 말과 함께 그려지며, 특별히 동방 정교회와 러시아에서 큰 공경을 받았다.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18일 목록에서 이들 네 순교자의 이야기를 전해 주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들의 이름을 더는 찾을 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4. 막시모
- 세례명 축일
8월 2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70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프랑스 투르(Tours)의 주교 성 마르티누스(Martinus)의 제자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수도원장은 투르에 시농(Chinon) 수도원을 설립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5. 막시모
- 세례명 축일
8월 23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오스티아(Osti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23일 목록에서 이탈리아의 오스티아(로마 서남쪽 약 20km 지점에 있는 고대 로마 도시)에서 성 퀴리아코(Quiriacus) 주교와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사제 그리고 성 아르켈라오(Archelaus) 부제와 동료들이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222~235년 재위) 시대에 울피아누스 총독에 의해 고통을 겪고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퀴리아코는 오스티아의 주교로 성 막시모와 성 아르켈라오는 그의 사제와 부제였다. 일부 현대 학자들은 그들의 순교 시기를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 때로 추정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미 오래전부터 오스티아에서 순교자로 공경받아온 성녀 아우레아(Aurea, 5월 20일)와 동시대에 순교했을 가능성도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8월 23일 목록에서 그들의 순교를 언급하면서 성 퀴리아코와 성 아르켈라오의 이름만 기록하였다. 성 퀴리아코는 성 키리아쿠스(Cyriacus, 또는 치리아코)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6. 막시모
- 세례명 축일
9월 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안키라(Ancyr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4일 목록에서 소아시아 갈라티아(Galatia) 지방의 안키라(오늘날 튀르키예의 수도인 앙카라[Ankara])에서 순교한 세 명의 소년 순교자의 이름을 전해주며, 이어서 또 다른 세 명의 순교자 이름을 전해주었다.
성 마뇨(Magnus)와 성 카스토(Castus)와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가 그들인데, 전승에 따르면 그들은 소년 순교자인 성 루피노와 함께 순교한 16명의 동료 순교자 그룹에 속한 신자들이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안키라에서 순교한 성 루피노와 16명의 동료 순교자들에 대해 더는 별도로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7. 막시모
- 세례명 축일
9월 1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10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와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그리고 성 아스클레피오도투스(Asclepiodotus)는 오늘날의 불가리아에 있는 마르키아노폴리스(Marcianopolis)에서 태어났다. 그들은 불가리아의 고대 도시인 아드리아노폴리스(Adrianopolis)에서 고통을 당한 후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8. 막시모
- 세례명 축일
9월 2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경 다마스쿠스(Damascus)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모두 9월 25일 목록에서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에서 성 바오로(Paulus)와 그의 아내인 성녀 타타(Tatta) 그리고 그들의 아들인 성 사비니아노(Sabinian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성 루포(Rufus), 성 에우제니오(Eugenius)가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채찍질과 구타와 다양한 고문을 당한 후 기꺼이 자신들의 영혼을 하느님께 바쳤다고 기록하였다. 또한 그들의 순교 시기는 4세기경으로 보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9. 막시모
- 세례명 축일
9월 2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에 있던 고대도시인 에페수스(Ephesus)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0. 막시모
- 세례명 축일
10월 2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라퀼라(L’Aquila)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이탈리아 중부 라퀼라에서 태어난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부제는 그 열성에 있어서 뛰어난 인물이었다. 그는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자신의 고향 도시 근처 낭떠러지에서 던져져 순교하였다. 그래서 그는 라퀼라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1. 막시모
- 세례명 축일
10월 3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쿠마이(Cumae)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소아시아 중부 프리지아(Phrygia)의 아파메아(Apamea)에서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쿠마이에서 순교한 것이 더 정확한 것으로 여겨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2. 막시모
- 세례명 축일
11월 1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78년 마인츠(Mainz)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354년경에 독일 마인츠의 제19대 주교가 되었다. 학자로서 존경을 받는 그는 아리우스파(Arianism) 이단에 의해 박해를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3. 막시모
- 세례명 축일
11월 19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5년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로마(Roma)의 사제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발레리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4. 막시모
- 세례명 축일
11월 27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60년경 리에즈(Riez)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프로방스 태생인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는 그리스도인 부모 밑에서 훌륭한 신앙교육을 받고 자랐다. 그는 레랭(Lerins) 수도원에서 아를(Arles)의 주교 성 호노라투스(Honoratus, 1월 16일)의 지도를 받으며 덕을 쌓았다.
그는 426년에 아를의 주교, 그다음에는 레랭의 두 번째 주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리에즈 교구를 설정하고 초대 주교가 되었다. 그는 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수도자의 신분을 벗어난 적이 없었다.
그는 자발적으로 청빈과 보속 그리고 기도를 즐겨 실천했고, 세상일로 마음이 헷갈리지 않았으며, 은둔소의 수도자처럼 겸손하였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5. 막시모
- 세례명 축일
12월 2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6년경
막시모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이야기
이탈리아 로마(Roma)에서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 신부와 성 마르첼루스(Marcellus) 부제, 그리고 성 히폴리투스(Hippolytus),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성 아드리아(Adria), 성녀 바울리나(Paulina), 성 네온(Neon), 성녀 마리아(Maria), 성녀 마르타나(Martana), 성녀 아우렐리아(Aurelia)는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세쿤디아누스(Secundianus) 재판관에게 죽기까지 모진 고문을 받고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
성 에우세비우스, 성 마르첼루스, 성 네온, 성녀 마리아는 참수형을, 성녀 아드리아와 성 히폴리투스는 채찍형을, 성녀 바울리나는 고문실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성 막시무스는 티베르(Tiber) 강으로 던져지는 익사형을 받아 순교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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