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마르티나, 마리아 만치니, 바틸다, 사비나, 알데군다, 투디, 하베릴라,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총 8분 목록이에요.
1월 30일이 영명축일인 여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1월 30일 남자세례명 마티아, 무치아노 마리 위오, 바르사, 바르시메오, 세바스티아노 발프레, 아그리피노, 아델렐모, 아르멘타리오, 아르멘타리오, 알렉산데르, 펠리치아노, 필리피아노, 히폴리토, 총 1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월 30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8가지
1월 30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마르티나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26년? 로마
마르티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나, 말지나.
마르티나 자료
성녀 마르티나의 전기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으나, 전설에 의하면 고아였다가 집정관의 양녀가 된 후 양아버지의 신앙과 가난한 이들에 대한 사랑에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그녀는 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222-235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혹독한 시련을 이겨낸 후 226년경 참수형을 받고 순교한 것으로 알려졌다.
7세기부터 성녀 마르티나에 대한 기념 예식이 로마에서 시작되었고, 교황 호노리우스 1세(Honorius I)에 의해 기념 성당이 세워졌다. 그리고 1634년 10월 25일 그녀의 유해가 폐허가 된 옛 기념 성당의 지하 성당에서 성녀의 시신이 담긴 석관이 발견되었다.
교황 우르바누스 8세(Urbanus VIII)는 지하 성당을 겸비한 이 옛 성당을 복구하고 성녀의 축일을 제정하였다. 성녀 마르티나는 로마시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리아 만치니
- 가톨릭 성인 이름
Mary Mancini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과부, 환시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431년 피사
마리아 만치니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까따리나, 만치니, 메리, 미르얌, 미리암, 카타리나, 캐서린.
마리아 만치니 자료
카타리나 만치니(Catharina Mancini)는 피사의 귀족가문 출신으로 이탈리아 내에서 정치적 격동이 소용돌이 칠 당시에 태어났다.
그녀는 어려서부터 환시와 기적적인 일로 유명했다. 다섯 살 때 그녀는 환시 중에 시민의 지도자 중 한 명인 복자 베드로 감바코르타(Petrus Gambacorta, 6월 17일)가 피사의 한 저택 지하 감옥에서 고문을 받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녀가 간절히 기도했을 때 그를 묶었던 줄이 끊어져 풀려났다고 한다. 그때 성모 마리아가 이 어린 소녀에게 그 남자가 언젠가 그녀의 후원자가 될 것이니 매일 그를 위해 기도하라고 말했다.
카타리나 만치니는 결혼보다는 수도생활을 원했으나 부모의 뜻에 순명해 12살의 나이로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16세에 남편을 잃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결혼을 하여 7명의 자녀를 두었다. 그러나 25세의 나이에 두 번째 남편과 자녀를 모두 잃고 기도와 애덕에만 전념하게 되었다.
그녀는 엄격한 일정대로 기도와 선행, 단식과 금욕을 실천하였다. 그리고 자신의 집을 병원으로 개조해서 병들고 가난한 이들을 데려와 마치 주님을 섬기듯이 돌보았다.
그 당시 시에나(Siena)의 성녀 카타리나(4월 29일)가 피사를 방문해서 그녀와 함께 거룩한 우정을 맺었다. 카타리나 만치니는 성녀 카타리나의 권유로 도미니코회 재속회원이 되었다. 그러면서 마리아(Maria)라는 이름을 받았다.
마리아 만치니는 복자 베드로 감바코르타의 누이동생인 복녀 클라라 감바코르타(Clara Gambacorta, 4월 17일)와 다른 몇 명의 회원들과 함께 더욱 엄격한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러면서 새롭고 더욱 엄격한 수도원을 설립하게 되는데, 복자 베드로 감바코르타가 그것을 지어주었다. 이로써 그가 미래에 그녀의 후원자가 될 것이라는 동정 마리아의 예언이 이루어졌다.
마리아 만치니는 그녀의 친구인 복녀 클라라 감바코르타가 선종한 후 원장으로서 죽을 때까지 정의롭고 거룩하게 산타 크로체(Santa Croce) 수녀원을 운영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855년 교황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바틸다
- 가톨릭 성인 이름
Bathildis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왕비 - 활동 연도와 지역
+680년
바틸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띨다, 바틸디스.
바틸다 자료
잉글랜드(England) 태생의 성녀 바틸다는 641년에 해적들에게 끌려가서 프랑크의 왕 클로비스 2세(Clovis II)의 궁중 시종장의 하녀로 팔려갔다. 몇 년 후 그녀의 미모와 탁월한 능력이 눈에 띄게 되어 왕이 그녀를 아내로 삼게 되었다.
이때가 649년이다. 그녀는 세 아들을 낳았는데, 그들은 모두 왕이 되어 클로테르 3세(Clotaire III), 칠데릭 2세(Childeric II) 그리고 티에리 3세(Thierry III)가 되었다.
655년에 클로비스 왕이 사망하자 그녀는 섭정이 되어 현명하고도 자비롭게 나라를 다스려 칭송을 받았다. 그녀는 수많은 노예를 해방시켰고, 궁성에서 먼 지역 주민들을 따뜻이 보살폈으며, 생드니(Saint-Denis), 코르비(Corbie), 셸르(Chelles) 등에 수많은 수도원을 세웠다.
그 후 665년에 그녀는 수도원으로 은퇴하였고, 680년 1월 30일 선종하여 자신이 파리 교외에 건립한 셸르 수도원에 묻혔다. 그녀는 선종한 지 2백 여년이 지난 후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에 의해 시성되었다.
로마 순교록은 그녀의 축일을 1월 26일로 기록하고 있고, 프랑스 교회에서는 1월 30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사비나
- 가톨릭 성인 이름
Savin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부인 - 활동 연도와 지역
+311년 밀라노
사비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싸비나.
사비나 자료
성녀 사비나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감옥에 갇힌 신자들을 돌보는데 힘쓰고, 그들이 순교한 뒤에는 시신을 찾아 매장하였다. 그녀는 성 나보르(Nabor, 7월 12일)와 성 펠릭스(Felix, 7월 12일)의 무덤에서 기도하는 중에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알데군다
- 가톨릭 성인 이름
Aldegundis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635-684년 모뵈주
알데군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데군디스.
알데군다 자료
메로빙거 왕족인 성 발베르투스(Walbertus, 5월 11일)와 성녀 베르틸리아(Bertilia, 1월 3일)의 자녀로 태어난 성녀 알데군디스(또는 알데군다)는 벨기에의 에노(Hainaut) 태생이다.
그녀는 양친의 결혼 권유를 뿌리치고 언니인 성녀 발데투르디스(Waldetrudis, 4월 9일)의 수도원으로 가서 살았다. 그 후 그녀는 모뵈주 근교의 어느 은둔소로 들어가서 일생을 기도와 고행 속에서 보냈다.
성녀 알데군디스는 유방암을 앓았는데, 죽을 때까지 하느님께 큰 신뢰심을 보여 그녀의 성덕이 뛰어남을 보여주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투디
- 가톨릭 성인 이름
Tudy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
투디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뚜디.
투디 자료
웨일스(Wales) 태생의 성녀 투디는 영국 웨일스 남서부 디버드(Dyfed) 지방에서 공경을 받는 동정녀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하베릴라
- 가톨릭 성인 이름
Haberill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100년경 메르로
하베릴라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하브릴리아.
하베릴라 자료
성녀 하베릴라는 수도회에 입회하지는 않았지만 스위스 메르로의 베네딕토회 수도원장의 지도하에 그 근방에서 은수자로서 살았다. 그녀는 하브릴리아(Habrilia)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 가톨릭 성인 이름
Hyacintha Mariscotti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585-1640년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리스코티, 히야낀따, 히야친따, 히야킨따, 히야킨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 자료
이탈리아 비테르보(Viterbo) 인근 비냐렐로(Vignarell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성녀 히야친타 마리스코티(Hyacintha de Mariscottis)는 비테르보의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서 교육을 받았고, 자신과 혼담이 오가던 한 후작이 그녀의 여동생과 결혼하게 된 사건으로 크게 충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성 베르나르디누스 수녀원에 입회한 그녀는 히야친타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녀는 수도생활 초기 10여 년간 여전히 사치스럽고 개인적 생활로 수녀회에 나쁜 영향을 끼쳤다. 그러다가 어느 날 중병에 걸려 고해성사를 하면서 과거를 참회하고 진정한 수도자의 삶을 살게 되었다.
성녀 히야친타의 가장 큰 덕은 애덕으로 수도원이란 한계를 뛰어넘을 만큼 위대하였다. 그녀는 병자와 노인, 가난한 이들에게 헌신적인 사랑을 보였다. 비테르보 지역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는 병자 간호에 헌신하였고 두 개의 자선 단체도 설립하였다.
그러다가 1640년 1월 30일 비테르보에서 세상을 떠났다. 성녀 히야친타는 1726년 9월 1일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1807년 5월 24일 교황 비오 7세(Pius V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이때 시성 선언문에 이런 말이 나온다. “그녀의 고행은 자신의 삶 전체가 하나의 지속적인 기적임을 보여주었고, 그녀의 사랑의 사도직은 수많은 설교보다도 영혼들을 하느님께 인도하는데 유익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그 외 세례명 날짜로 찾기
그 외 세례명 이름으로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