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칸디다 여자세례명 7인 목록

피어나네 2025. 9. 2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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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세례명 칸디다는 간디다, 깐디다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칸디다 7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칸디다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칸디다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본받고 싶은 여자 세례명 찾기

칸디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7인 목록

 

 

 

 

칸디다 여자세례명 목록

 

  1. 칸디다 (1월 27일)

  2. 정복혜 칸디다 (5월 29일)

  3. 칸디다 (8월 29일)

  4. 칸디다(9월 4일)

  5. 칸디다 (9월 20일)

  6. 칸디다 (10월 3일)

  7. 칸디다 (12월 1일)

 

칸디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7인 목록

 

 

1. 칸디다

 

  • 세례명 축일
    1월 27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Candida

  • 신분과 직업
    과부,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98년경 바뇰레스(Banoles)

 

 

칸디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디다, 깐디다.

 

 

칸디다 이야기

성 에메리우스(Emerius, 1월 27일)의 어머니인 성녀 칸디다는 에스파냐 북동부 카탈루냐(Cataluna)의 헤로나(Gerona) 부근에 자신의 아들이 설립한 바뇰레스의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수도원 근방에서 은수자로서 살다가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정복혜 칸디다

 

  • 세례명 축일
    5월 29일

  • 호칭 구분
    복녀

  • 가톨릭 성인 이름
    鄭福惠 Candida

  • 신분과 직업
    양인, 과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1년 한국(Korea)

 

 

정복혜 칸디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디다, 깐디다, 정 칸디다, 정칸디다.

 

 

정복혜 칸디다 이야기

신자들 사이에서는 ‘정 과부’라고 알려진 정복혜 칸디다(鄭福惠, Candida)는, 한양 근처의 양인 집안에서 태어나 혼인한 다음에도 한양에서 생활하였다. 그러다가 1790년 무렵 이합규를 만나 교리를 배우면서 천주교 신앙을 알게 되었으며, 그에게 세례를 받고 입교하였다.

이후 정 칸디다는 열심히 교회 일에 참여하면서, 친정 오빠와 아들에게 교리를 가르쳤다. 또 과부가 된 뒤에는 한신애 아가타(韓新愛, Agatha), 윤운혜 루치아(尹雲惠, Lucia) 등과 함께 신자들 사이의 연락을 도맡았으며, 교우들이 만든 교회 서적을 팔기도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우들과 함께 모여 교리를 강습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데도 노력하였다.

1801년 신유박해가 일어나자, 정 칸디다는 먼저 성물과 서적을 한 아가타의 집으로 가져다 숨겨 두고, 교우들이 체포되지 않도록 보호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되어 그동안의 활동들 때문에 그녀의 이름이 박해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으며, 그해 2월에 포졸들이 마침내 그녀를 찾아내 형조로 압송하였다.

이때 형조에서는 일단 정 칸디다를 포도청으로 옮겨 문초를 하도록 하였다. 그런 다음, 다시 형조로 데려와 문초와 형벌을 가하면서 그동안의 행적을 추궁하고 배교를 강요하였다.

이때 그녀는 잠시 마음이 약해졌으나, 곧 이를 뉘우치고 자신이 한 일을 떳떳하게 고백하였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가 1801년 5월 14일(음력 4월 2일)이었다.

당시 형조에서 정복혜 칸디다에게 내린 사형 선고문의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너는 남자 신자들과 어울려 부녀자들을 그릇된 길로 인도하였으며, 천주교 서적과 성물을 모아 한신애의 집에 숨겨 두고 훗날 천주교를 전파하는 데 사용하려고 하였으니, 만 번 죽어도 아깝지 않다.”

정복혜 칸디다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 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칸디다

 

  • 세례명 축일
    8월 29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Candid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로마(Roma)

 

 

칸디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디다, 깐디다.

 

 

칸디다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8월 29일 목록에서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오랫동안 공경을 받아온 성녀 칸디다의 유해가 교황 성 파스칼 1세(Paschalis I, 2월 11일, 817~824년 재위)에 의해 로마의 산타 프락세데스 대성당(Basilica Sanctae Praxedis)으로 옮겨 모셨다고 전해주었다.

교황 성 파스칼 1세는 로마에서 가장 오래된 성당 가운데 하나인 산타 프락세데스 대성당을 재건하면서 로마의 여러 카타콤바에 흩어져 있던 2,300명의 순교자 유해를 그 안에 이장해 모셨는데, 로마 순교록은 그 가운데 동정 순교자인 성녀 칸디다의 이름만 기록하였다.

성녀 칸디다는 2/3세기 또는 알 수 없는 시기에 로마 성문 밖 오스티아 가도(Via Ostia)에서 순교한 일단의 신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다. 자료에 따라서 동료 순교자의 이름이 일부 전해지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이 모두 같은 도시 출신인지, 성녀 칸디다 또한 로마 출신인지도 확실하지는 않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로마의 동정 순교자인 성녀 칸디다와 동료 순교자에 대해 별도로 기록하지는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칸디다

 

  • 세례명 축일
    9월 4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Candida

  • 신분과 직업
    부인, 베드로의 제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 나폴리(Napoli)

 

 

칸디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디다, 깐디다.

 

 

칸디다 이야기

성녀 칸디다(Candida the Elder)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가 이탈리아 로마로 가는 여정 중에 캄파니아(Campania) 지방 나폴리를 통과할 때 처음으로 그를 환대한 나이 많은 여인으로 성 베드로에 의해 기적적으로 병의 치유를 받았다.

그녀는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세례를 받고 사도 성 베드로의 제자가 되었다. 그리고 심한 병을 앓고 있던 그녀의 친척(또는 남편)인 성 아스프레노(Asprenus, 8월 3일)를 데려와 치유를 간청했다.

성 베드로에 의해 치유된 성 아스프레노도 개종하여 세례를 받았고, 성 베드로에 의해 나폴리의 초대 주교로 임명되었다.

일부 전승에서는 성녀 칸디다가 베스파시아누스 황제(69~79년 재위) 시대인 78년에 고향에서 순교했다고 하지만,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4일 목록에서 사도 성 베드로가 나폴리에 왔을 때 그를 가장 먼저 만나 세례를 받고 평화롭게 거룩한 삶을 마쳤다고 전해주었다.

그런데 그녀의 존재 여부에 대해 의문을 품기도 하는데, 그런 이유 등으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더는 나폴리의 성녀 칸디다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칸디다

 

  • 세례명 축일
    9월 20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Candid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0년경 카르타고(Carthago)

 

 

칸디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디다, 깐디다.

 

 

칸디다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9월 20일 목록에서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오늘날 튀니지의 수도인 튀니스[Tunis] 일대에 있었던 고대 도시)에서 동정녀인 성녀 칸디다가 막시미아누스 황제(286~305년, 306~308년 재위) 때 채찍으로 온몸이 찢어지는 고통을 당한 후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전해주었다.

그런데 성녀 칸디다의 순교 시기의 불확실성 등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더는 그녀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칸디다

 

  • 세례명 축일
    10월 3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Candida

  • 신분과 직업
    부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로마(Roma)

 

 

칸디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디다, 깐디다.

 

 

칸디다 이야기

“예로니모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 따르면 성 마르첼리노(Marcellinus)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 재위)의 박해 때에 로마에서 활동하던 뛰어난 사제였고, 성 베드로(Petrus)는 구마자(驅魔者)였다. 그들은 새로운 개종자를 얻고 그들의 신앙을 돈독히 하는데 온갖 정열을 쏟았다.

그러다가 체포되어 세레누스(Serenus) 판사 밑에서 모진 고문을 받고 가시덤불과 찔레가 무성한 실바 니그라(Silva Nigra, ‘검은 숲’이란 뜻)로 끌려가 자기들의 무덤을 직접 판 후 참수되었다. 세레누스 판사는 순교자의 유해를 아무도 찾을 수 없도록 해서 순교자 공경을 막고자 보통 사람들이 들어오기 힘든 가시덤불 숲속에서 그들을 처형하고 몰래 파묻었던 것이다.

그러나 신심 깊은 부인인 루칠라(Lucilla)와 피르미나(Firmina)가 꿈에서 순교자의 시신을 수습하라는 말씀을 듣고 기적적으로 그들의 유해를 발견해 로마의 라비카나 가도(Via Lavicana)에 있는 앗 두아스 라우로스(Ad Duas Lauros, ‘두 월계수’라는 뜻) 지하 묘지의 성 티부르시오(Tiburtius) 무덤 근처에 정중하게 안장하였다.

그 뒤로 그들이 순교한 장소인 실바 니그라는 실바 칸디다(Silva Candida, ‘하얀 숲’)로 불리게 되었다. 그리고 나중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그들이 묻힌 지하 묘소 위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교황 성 다마소 1세(Damasus I, 366∼384년 재위)는 젊은 시절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사형 집행인으로부터 직접 그들의 순교 이야기를 들었고, 그들의 순교에 관한 기록을 발견한 후 직접 비문을 작성하고 묘비를 세웠다.

비록 고트족에 의해 묘비가 파괴되었으나 그 비문의 내용은 나중에 그들의 무덤을 복원하고 로마 미사 경본 감사 기도 제1양식에 그들의 이름을 넣은 교황 비질리오(Vigilius, 537~555년 재위)가 작성한 “순교 기록”(Passio)의 자료로 쓰인 듯하다.

7세기부터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의 무덤은 순례지가 되었고, 그들의 축일이 지역 전례력과 성인전에 기록되었다. 1896년에 그들이 묻혔던 지하 묘소에서 그들이 포함된 프레스코화가 발견되었는데, 사도 성 베드로와 성 바오로(Paulus) 사이의 그리스도 아래 어린양 옆에서 한 손을 들어 어린양을 가리키는 모습으로 표현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2일 목록에서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의 선교 활동과 순교 그리고 매장에 관한 내용을 교황 성 다마소 1세의 증언을 중심으로 전해주었다.

그리고 후대에 기록된 “성 베드로와 성 마르첼리노의 순교록”(Passio Sancti Petri et Marcellini)에는 그들이 갇혀 있던 감옥의 간수였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성 아르테미오(Artemius, 6월 6일) 가족의 순교 이야기가 나온다. 그에 따르면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는 체포되어 감옥에 갇힌 뒤에도 용감하게 신앙을 증언해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다.

이런 놀라운 일들을 목격한 성 아르테미오는 귀신에 들려 괴로워하는 딸을 데려와 치유되는 기적을 체험한 후 아내인 성녀 칸디다와 딸인 성녀 바울리나(Paulina, 6월 6일)와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그로 인해 세레누스의 명으로 성 아르테미오는 납덩어리가 달린 채찍으로 매를 맞고 참수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그의 아내와 딸은 광산의 구덩이에 던져진 후 돌과 흙에 파묻혀 생매장당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6월 6일 목록에서 성 아르테미오와 그의 아내인 성녀 칸디다와 딸인 성녀 바울리나가 성 마르첼리노와 성 베드로에 의해 개종한 후 세레누스에게 사형 선고를 받고 참수형과 생매장형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런데 개정 “로마 순교록”은 6월 6일 목록에서 로마의 아우렐리아 가도(Via Aurelia) 근방에 성 아르테미오와 성녀 바울리나 순교자가 묻혀 있다고 두 명의 이름만 기록하였다.

대신 10월 3일 목록에서 로마의 포르투엔세 가도(Via Portuense)에 있는 폰시아노(Pontianus) 공동묘지에 성녀 칸디다가 묻혀 있다고 적었는데, 그 성녀 칸디다를 성 아르테미오의 아내인 성녀 칸디다와 같은 사람으로 추정하고 있다. 성녀 칸디다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칸디다

 

  • 세례명 축일
    12월 1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Candida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로마(Roma)

 

 

칸디다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간디다, 깐디다.

 

 

칸디다 이야기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1일 목록에서 이탈리아의 로마에서 알려지지 않은 시기에 성 루치오(Lucius), 성 로가토(Rogatus), 성 카시아노(Cassianus), 성녀 칸디다가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 외에 그들의 순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알려지지 않았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자료의 부족으로 인해 더는 그들의 이름을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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