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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남자세례명 8가지

피어나네 2023. 2.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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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바오로, 세베로, 안토니오, 지그베르트 3세, 클라로, 트리폰, 피오니오, 헨리코 모스, 총 8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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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여자세례명 베리디아나, 브리지다, 신니아, 킨니아, 총 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2월 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8가지

 

 

 

 

2월 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바오로

  2. 세베로

  3. 안토니오

  4. 지그베르트 3세

  5. 클라로

  6. 트리폰

  7. 피오니오

  8. 헨리코 모스

 

2월 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8가지

 

 

1. 바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05년 트루아 샤토

 

 

바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 자료

프랑스 랭스(Reims)에서 태어난 성 바오로(Paulus)는 이교도의 침입을 피한 후 아를(Arles) 부근에서 은수자가 되었다. 후에 그는 도피네(Dauphine) 지방 트루아 샤토(오늘날에는 폐지된 교구)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세베로

 

  • 가톨릭 성인 이름
    Seve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48년 라벤나

 

 

세베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베루스, 쎄베로, 쎄베루스.

 

 

세베로 자료

성 세베루스(또는 세베로)는 이탈리아 라벤나의 가난한 직공이었으며 하느님께서 그에게 교구를 다스리도록 해 주실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종을 부르시는 특별한 방식으로 연관이 하나도 없을 법한 곳에 당신의 손길을 뻗치셨다.

283년 라벤나의 주교좌가 공석이 되고 새로운 주교를 선출하러 사람들이 대성당에 모였을 때, 성 세베루스는 자신의 부인 빈첸시아(Vincentia)에게 신부님을 방문하고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고 오겠다고 했다. 부인은 귀족들과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 틈에 작업복을 입고 나타나는 것이 좋지 않기에 집에 머물기를 권유했다.

“내가 가는 데 있어서 그게 무슨 문제냐?”라고 묻자 부인은 “구경하러 어슬렁거리는 것보다 여기에 할 일들이 있잖아요?”라고 대답했다.

하지만 그가 계속 가려고 하자 “가세요. 오실 때에 좋은 소식을 가지고 오세요” 하고나서 “가서 주교로 선출되세요"라고 빈정대며 덧붙였다.

부인의 날카로운 대답에 익숙해져 있던 성 세베루스는 집에서 나와 사람들이 몰려드는 성당으로 가서 좋은 옷을 입은 사람들 사이에 낀 자신의 작업복을 부끄러워하며 뒤에 서 있었다.

예식이 시작되고 성령을 청하자 성전 안에 흰색 비둘기가 나타나 회중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성당 안을 날아다니던 그 비둘기는 가난한 직공의 귓가에서 퍼덕였다.

그는 비둘기를 쫓았으나 다시 돌아와 그의 어깨에 앉았다. 모든 사람들의 눈이 그를 향해 쏠렸고 회중은 이것을 그를 주교로 삼으신 하늘의 표징으로 보았다.

그때 성 세베루스의 부인은 집에 있었는데, 이웃이 달려와 그 소식을 전하자 웃으면서 믿으려 하지 않았다.

“직조기의 북을 던지는 이가 고위 성직자가 되다니요?”

하지만 또 다른 사람이 와서 동일한 이야기를 하고, 군중이 집 주위로 모여들자 사실인 것을 알고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해서 성 세베루스는 라벤나의 주교가 되어 탁월한 성품으로 신자들을 돌보았다. 그는 착한 주교로서 지내다가 죽을 때가 되자 신자들과 함께 마지막 미사를 집전하고 그들을 축복하여 파견하였다.

모든 이가 떠나고 복사 하나가 남자 그는 복사에게 문을 닫도록 하고 주교복을 입은 다음 자신보다 먼저 세상을 떠난 부인과 딸의 무덤을 찾았다. 그리고 복사의 도움을 받아 돌을 들어 올린 후 무덤에 내려가 누운 뒤 기도를 하고 눈을 감았다.

성 세베루스는 죽은 뒤 바로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교회 미술에서 성 세베루스는 주교 복장을 하고 베 짜는 북을 든 형상으로 묘사되곤 한다. 그는 장갑과 모자를 만드는 이들 그리고 베 짜는 이들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안토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nthony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순례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37-1267년

 

 

안토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토니오 자료

안토니우스 만조니(Antonius Manzoni, 또는 안토니오)는 이탈리아 파도바(Padova)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부친을 잃었던 그는 막대한 유산을 주로 가난한 사람들에게 모두 희사하여 친척들과 주민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았다.

이제 자신이 가난하게 된 그는 순례자의 복장을 하고는 파도바를 떠나 방황하다가 볼로냐(Bologna) 교외 바자노까지 왔다. 그는 여기서 병든 노사제를 발견하고 3년 동안이나 보살펴드렸다.

그들은 안토니우스가 문전걸식으로 얻어오는 음식으로 연명했으며,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모두 다른 이에게 주어버렸다. 그는 스스로 규율을 정하여 지켰으며, 꺼칠꺼칠한 옷을 입고 돌베개를 이용하여 맨땅에서 잠을 잤다.

그 후 그는 로마(Roma), 로레토(Loreto),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쾰른(Koln) 그리고 예루살렘(Jerusalem)까지 순례한 후 고향으로 돌아왔으나 반겨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는 성벽 외곽에 있는 폐허가 된 어느 성당에서 지내던 중에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지그베르트 3세

 

  • 가톨릭 성인 이름
    Sigebert II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 활동 연도와 지역
    +656년 아우스트라시아

 

 

지그베르트 3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시제베르토, 시제베르투스, 시제베르트, 지게베르트, 지그베르또, 지그베르뚜스, 지그베르토, 지그베르투스.

 

 

지그베르트 3세 자료

프랑스 아우스트라시아의 왕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는 한동안 숨은 생활을 한 끝에 주님의 은총으로 아들을 낳았는데 그가 곧 성 지그베르트이다. 이 때문에 그는 하느님께 개종하였다. 그는 거룩한 주교 성 아만두스(Amandus, 2월 6일)를 불러 아들에게 세례를 주게 하였다.

이 젊은 왕자는 란덴(Landen)의 복자 피핀(Pepin, 2월 21일)에게 맡겨졌고, 638년 다고베르트 1세가 서거했을 때 왕위를 계승하였다. 그는 가능하면 전쟁을 피하고 선정을 베풀었다.

그는 매일 기도하고 가난한 이들의 구제사업과 수도원 건설을 적극 지원하였는데 모두 12개의 수도원을 세웠다고 한다. 그는 재위 25년 만에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클라로

 

  • 가톨릭 성인 이름
    Cla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048년 셀리겐슈타트

 

 

클라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글라로, 글라루스, 끌라로, 끌라루스, 클라루스.

 

 

클라로 자료

성 클라루스(또는 클라로)는 독일 마인츠(Mainz) 교구의 셀리겐슈타트에서 30년 동안 은수자로서 엄격한 삶을 살았다. 그의 모토는 그리스도와 십자가의 희생이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트리폰

 

  • 가톨릭 성인 이름
    Tryph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경 캄프사다

 

 

트리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뜨리폰.

 

 

트리폰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10일 목록에서 거룩한 순교자 성 트리폰과 함께 성 레스피키우스(Respicius)와 동정 순교자인 성녀 님파(Nympha)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성 트리폰은 프리지아(Phrygia, 오늘날 터키에 속한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역을 이르는 명칭) 지방 캄프사다 출신으로 거위를 치는 소년이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치유자로서, 특별히 동물들의 치유자로서 명성을 얻었다. 그래서 농장에서 일하는 이들이 전구를 청하는 거룩한 치유자 중의 한 명이다.

그는 250년경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니케아(Nicaea, 터키 북서부에 있는 이즈니크의 옛 이름)로 끌려가서 잔인한 방법으로 고문을 받았지만 이교도인 리키우스(Licius) 총독을 회개시킨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유해는 캄프사다에 묻혔다가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을 거쳐 로마에 안장되었다. 성 트리폰은 몬테네그로(Montenegro)의 도시인 코토르(Kotor)의 수호성인이자 러시아 모스크바의 수호성인 중 한 명이다. 코토르의 성 트리폰 주교좌성당은 그를 기념해서 봉헌되었고, 그의 머리 유해가 모셔져 있다.

성 트리폰은 해충으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려는 농부들의 수호자로서, 동방 정교회에서는 정원사와 포도를 재배하는 이들 그리고 포도주를 만드는 이들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러시아 정교회에서는 새의 수호자로서 종종 매를 들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성 트리폰과 함께 언급된 성 레스피키우스가 누구이고 어떤 일을 하던 사람인지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11세기 초에 한 수도승이 전설적 이야기를 기초해 기록한 바에 따르면 그는 성 트리폰의 동료였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성 트리폰과 성 레스피키우스와 함께 동정 순교자인 성녀 님파의 유해가 이탈리아 로마의 사시아(Sassia)에 있는 ‘성령 병원’ 성당에 안장되었다가 1566년 교황 비오 5세(Pius V)에 의해 성 아우구스티누스 성당으로 옮겨졌다.

12세기의 한 필사본에 따르면, 성녀 님파는 시칠리아섬 팔레르모(Palermo)의 총독인 아우렐리아누스의 딸로 310년경 팔레르모의 주교인 성 마밀리아누스(Mamilianus)에 의해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다.

자신의 딸을 이전으로 되돌리지 못한 총독은 주교와 200여 명의 신자를 지하 감옥에 가두었고, 성녀 님파도 가두었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성녀 님파와 성 마밀리아누스 주교는 천사의 도움으로 바다를 건너 토스카나(Toscana) 지방의 기글리오(Giglio) 섬으로 가서 은수자로 살다가 굶주림으로 생을 마쳤다고 한다.

중세의 대표적 성인전인 “황금 전설”(Legenda Aurea)은 팔레르모 출신인 성녀 님파가 자신의 주교인 성 마밀리아누스의 성실한 동료로서 유배지에서 주교의 위안이 되었고 함께 숨을 거두었다고 전해주었다.

성녀 님파는 이미 17세기 이전에 팔레르모를 네 지역으로 나눠 각 지역의 수호자로 정한 네 명의 수호성인 중 한 명으로 공경을 받아왔다.

팔레르모의 네 수호성인은 성녀 로살리아(Rosalia, 9월 4일), 성녀 크리스티나(Christina, 7월 24일), 성녀 아가타(Agatha, 2월 5일), 성녀 님파이다.

옛 “로마 순교록”은 11월 10일 목록에서 성 트리폰과 함께 특별한 연관이 없는 성 레스피키우스와 성녀 님파를 함께 기념했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성 트리폰의 축일을 동방 정교회와 같은 2월 1일로 옮겨 프리지아 지방에서 성 트리폰 순교자를 기념한다고 간단히 언급하였다. 그리고 성 레스피키우스와 성녀 님파는 목록에서 삭제하고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피오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io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1년경 스미르나

 

 

피오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삐오니오, 삐오니우스, 피오니우스.

 

 

피오니오 자료

성 피오니우스(또는 피오니오)는 박식하고 웅변이 뛰어난 스미르나의 사제였다. 그는 여행을 즐기는 좋은 성품을 지녔다. 그는 데키우스 황제 치하에서 스미르나의 성 폴리카르푸스(Polycarpus)의 순교 기념일 전례를 거행하던 중 사비누스(Sabinus)와 아스클레피아데(Asclepiades) 등 15명의 동료들과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교도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였다.

이때 성 피오니우스는 군중들에게 이를 거절하는 이유를 웅변으로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는 재치와 박식한 비유 등을 동원하여 관중들로 하여금 흥분케 하였으나, 관중들이 그에게 압도되어 소란은 피우지 않았다고 한다. 그들은 온갖 잔혹한 고문을 당한 후 화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헨리코 모스

 

  • 가톨릭 성인 이름
    Henry Mors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95-1645년 영국

 

 

헨리코 모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앙리, 하인리히, 헨리, 헨리꼬, 헨리꾸스, 헨리쿠스.

 

 

헨리코 모스 자료

성 헨리쿠스 모스(Henricus Morse, 또는 헨리코 모스)는 1595년 영국 잉글랜드 동부 서퍽(Suffolk)의 브룸(Brome)에서 태어나 프로테스탄트 신자인 부모 밑에서 성장했다.

16세 때 그는 케임브리지(Cambriddge)의 코르푸스 크리스티 대학(Corpus Christi College)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런던(London)의 그레이즈인 법학원(Gray’s Inn)에서 공부를 계속했다.

1614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그는 프랑스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으로 가서 사제가 되기 위해 준비 중이던 형제 윌리엄(William)을 만났다. 그리고 그해 6월 5일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는 영국 대학에 입학할 준비를 위해 잠시 잉글랜드로 돌아오다가 교회에 대한 영국 여왕의 권위를 묻는 도버(Dover) 항구의 조사원에게 가톨릭 신자다운 답을 했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서더크(Southwark)의 감옥에 갇혔다.

그는 그곳에 4년 동안 갇혀있다가 1618년 국왕 제임스 1세(James I)가 감옥에 갇힌 100여 명의 가톨릭 사제들을 프랑스로 추방할 때 함께 풀려났다.

1618년 8월 두에로 돌아온 성 헨리쿠스 모스는 영국 대학에 입학하려 했으나 정원 초과로 로마의 영국 대학으로 보내졌다. 그는 그곳에서 영국 왕실 스파이의 감시를 피하려고 헨리 클랙슨(Henry Claxon)이라는 가명을 사용했다.

1623년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은 후 1624년 6월 영국 선교를 위한 여정에 올랐다. 출발 전에 그는 로마에 있는 예수회 총장 신부에게 입회를 청했는데, 총장 신부의 권고대로 잉글랜드로 돌아온 후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 upon Tyne)에서 입회하였다.

그리고 그 지역에 페스트가 창궐하자 그는 동료들과 함께 병자들을 간호하며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수련기를 마치고 첫서원을 준비하던 그는 1626년 4월 12일 타인(Tyne) 강에서 병사들에게 체포되어 뉴캐슬(Newcastle)의 뉴게이트(Newgate) 감옥에 갇혔다.

그리고 5월 1일 요크 성(York Castle)의 감옥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예수회의 존 로빈슨(John Robinson) 신부를 만났다. 존 로빈슨 신부는 로마에서 그와 함께 공부했던 적이 있었고, 이미 6년 동안 예수회원으로 살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존 로빈슨 신부의 지도로 감옥에서 30일 피정을 마치고 무사히 첫서원을 할 수 있었다. 그는 3년을 더 감옥에서 지내다가 1630년 3월경 다시 석방되었다.

그 후 그는 플랑드르(Flandre)에 주둔한 에스파냐 군대에서 복무하는 영국 가톨릭 신자들을 위해 군종신부로 파견되었다. 1633년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온 그는 주로 런던 외곽의 빈민 지역에서 활동했다.

1635년 그 일대에 페스트가 번지자 그는 병자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한 약을 구하고 성사를 집전하며 바쁜 나날을 보냈다. 그러다가 1638년 2월 27일 환자들을 돌보고 돌아오다가 체포되어 뉴게이트 감옥에 갇혔다.

그는 가톨릭 사제로서 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거부한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재판을 진행하던 중 찰스 1세 왕의 부인이며 프랑스의 공주이자 가톨릭 신자인 앙리에타 마리(Henriette Maria) 왕비의 배려로 6월 17일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다.

그가 페스트에 걸린 환자들을 정성을 다해 돌본 점이 고려된 결정이었다. 석방된 후 그는 잠시 런던 일대에서 활동하다가 1641년 유럽 대륙으로 건너가 이전처럼 군종신부로 활동했다.

1643년에 잉글랜드로 다시 돌아온 그는 런던에서는 이미 얼굴이 많이 알려진 관계로, 주로 잉글랜드 북부 지역에서 활동했다. 1년 반 정도 지나고 어느 날 밤에 병자성사를 주고 돌아오다가 군인들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더럼(Durham) 감옥에 갇혔다가 뉴캐슬어폰타인(Newcastle upon Tyne)의 항구에서 배를 타고 1645년 1월 런던으로 이송되었다. 그는 재판에서 예전에 체포되었던 경력 등이 고려되어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2월 1일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성 헨리쿠스 모스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일인 2월 1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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