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날짜 찾기

3월 4일 남자세례명 12가지

피어나네 2023. 3. 4. 08:00
반응형

 

3월 4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가시미로, 네스토르, 로메오, 루치오 1세, 바시노, 아르카디오, 오윈, 지스틸리아노v 카이오, 펠릭스, 하드리아노, 훔베르토, 총 12분 목록이에요.

 

3월 4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3월 4일 여자세례명 플라치다 비엘,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3월 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2가지

 

 

 

 

 

3월 4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가시미로

  2. 네스토르

  3. 로메오

  4. 루치오 1세

  5. 바시노

  6. 아르카디오

  7. 오윈

  8. 지스틸리아노

  9. 카이오

  10. 펠릭스

  11. 하드리아노

  12. 훔베르토

 

3월 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2가지

 

 

1. 가시미로

 

  • 가톨릭 성인 이름
    Casimi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왕자,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458-1484년

 

 

가시미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시미루스, 까시미로, 까시미루스, 카시미로, 카시미루스, 카시미르.

 

 

가시미로 자료

성 카시미루스(Casimirus, 또는 가시미로)는 폴란드(Poland)의 국왕이자 리투아니아(Lithuania)의 대공(大公)인 카시미르 4세(Casimir IV)와 독일의 황제 알베르트 2세(Albert II)의 딸인 오스트리아의 엘리사벳(Elizabeth) 사이에서 태어난 13명의 자녀 가운데 셋째로 폴란드 크라쿠프(Krakow)의 바벨 성(Wawel Castle)에서 태어났다.

그는 신앙심 깊은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성모님께 대한 깊은 신심과 정결의 소중함을 어려서부터 마음에 담아 두었다. 여섯 살부터는 요한 들루고즈(Joannes Dlugosz) 신부에게 학문과 종교에 대한 교육을 받았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성스럽고 엄격한 생활 그리고 사랑이 충만한 생활에 대한 원의를 키워갔다.

그는 부왕과 헝가리의 귀족들로부터 헝가리의 국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Matthias Corvinus)를 축출하는 공작에 군대를 인솔하라는 부탁을 받았으나, 그 계획이 부당하다는 확신에 따라 거부하였다.

그로 인해 부왕의 노여움을 사 작은 성에 감금되었지만, 결코 자신의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이러한 상황을 기도와 수덕 생활에 전념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았다.

또한 그는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3세의 딸과 결혼시키려는 부왕의 계획도 끝까지 거부하고 동정을 지켰다.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뛰어났던 그는 ‘하루도 빠짐없이 성모를 찬송하세’(Omni die dic Mariae / Daily, Daily Sing to Mary)라는 찬가를 직접 지어 불렀는데, 오늘날까지도 여러 나라말로 번역되어 불리는 찬가가 되었다.

성 카시미루스는 부왕이 리투아니아에 국사로 가 있는 1481~1483년까지 부왕을 대신해 폴란드를 통치하였다. 당대의 전기에 따르면, 성 카시미루스는 ‘가난한 자의 옹호자’로 불릴 정도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잘 돌보아주었고, 권좌에 앉아 다스리기보다는 늘 가난한 이를 위해 봉사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는 1484년 26세의 나이로 대공의 직위를 겸하고 있던 리투아니아를 방문하던 중 폐결핵으로 3월 4일 그로드노(Grodno) 궁성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유해는 빌나(Vilna, 오늘날 리투아니아의 수도인 빌뉴스, Vilnius)의 주교좌 성당에 안치되었다. 살아서도 백성의 존경을 받았던 성 카시미루스는 사후에 더 큰 공경을 받았고, 그의 무덤에서도 많은 기적이 일어났다.

그에 대한 시성 절차가 시작되어 1521년 교황 레오 10세(Leo X)에 의해 시성 여부가 확정되었는데, 그해 12월에 교황이 전염병으로 갑작스럽게 선종하고 1527년에 발생한 로마 약탈 사건으로 교황청의 많은 중요 문서가 소실되면서 그의 시성 결정 여부를 문서로 확인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러나 그에 대한 공경은 계속되었고, 이미 1583년에 출판된 “로마 순교록”에 그의 이름이 포함되었다.

1602년 교황 클레멘스 8세(Clemens VIII)는 3월 4일에 폴란드와 리투아니아에서 성 카시미루스의 축일을 기념하는 것을 승인하면서, 그가 이미 교황 레오 10세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음을 확인해주었다.

이를 기념해 1604년 선종 120년 만에 그의 관을 열었을 때, 그의 유해는 온전히 보존되어 있었고 손에는 그가 작성한 성모 찬가가 글씨도 선명한 상태로 들려 있었다고 한다.

성 카시미루스는 17세기 초에 리투아니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고, 폴란드의 요청으로 폴란드의 수호성인으로도 선포되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보통 순결을 상징하는 백합이나 직접 작성한 성모 찬가를 손에 들고 있는 젊은 왕자의 모습으로 표현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네스토르

 

  • 가톨릭 성인 이름
    Nesto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네스토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네스또르, 네스똘, 네스톨.

 

 

네스토르 자료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5세기 이후부터 타우리카 케르소네소스(Taurica Chersonesos, ‘타우리카 반도’라는 뜻)라고 부르는 곳에 여러 개의 식민 도시를 건설했는데, 오늘날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로 돌출해 있는 크림반도의 케르소네소스가 대표적 항구도시였다.

오늘날 이곳은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인 헤르손인데, 2014년 러시아가 무력을 통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면서 현재 러시아 영토가 됐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이곳은 종종 죄인들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는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때 신자들도 이곳으로 유배되기도 했다.

교황 성 클레멘스 1세(Clement I, 11월 23일)가 크림반도의 채석장으로 유배 와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목에 닻을 매단 채 흑해 바다로 던져져 순교한 역사가 있다.

그러면서 박해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 지역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4세기 초에 케르소네소스에 주교좌가 설정되었고,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이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 많은 선교사를 파견했다.

그러면서 4세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교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4일 목록에서 순교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케르소네소스(크림반도)에서 사목하다가 순교한 거룩한 주교들로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아가토도루스(Agathodorus), 성 엘피디우스(Elpidius), 성 아이테리우스(Aetherius), 성 카피톤(Capiton), 성 에프렘(Ephraem), 성 네스토르, 성 아르카디우스(Arcadius)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네스토르와 성 아르카디우스 주교는 크림반도가 아닌 키프로스(Cyprus)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케르소네소스에서 순교한 거룩한 주교들의 이름을 동방 정교회와 같은 날인 3월 7일로 옮겨서 기록하였다.

그리고 성 네스토르와 성 아르카디우스 주교의 이름을 3월 7일 목록에서 삭제했는데, 3월 4일이나 다른 날에도 더는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로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Romaeu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380년 리모주

 

 

로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로메우스.

 

 

로메오 자료

프랑스의 리모주 태생인 성 아베르타누스(Avertanus, 2월 25일)는 겨우 말할 수 있을 때부터 하느님을 알고 그분께 말을 건넸다고 한다.

그러나 다른 행동은 보통 아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주 기도하고 관상에 빠져들었다고 한다. 그는 아주 어린 나이에 천사의 환시를 보고 카르멜회에 입회하려고 마음을 먹고 부모를 설득하였다.

마침내 그는 부모를 설득하여 동의를 받은 뒤 카르멜회에 지원하였다. 수도원장은 그를 환영하였고 주위 사람들은 모두 놀라워했다.

그가 서원할 때에는 천사들의 노래와 성모님의 발현이 있었고, 성모님께서 친히 이 평수사의 머리 위에 축복을 내렸다고 한다.

기도하는 시간 외에는 주로 수도원의 온갖 잡일을 하였고, 자주 탈혼에 빠졌으며, 밤에는 수도원 언덕 위의 바위에 기어 올라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

한 번은 그가 성지를 순례하기 위해 동료인 로메우스(또는 로메오) 수사와 함께 출발하였다. 그들이 겨울 알프스 산을 넘어 이탈리아에 당도했을 때 그곳에는 흑사병이 만연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그들은 루카(Lucca) 성문 앞에서 머뭇거리다가 그만 성 아베르타누스가 병에 걸리고 말았다. 성 아베르타누스는 그리스도와 천사들의 환시를 보며 웃는 가운데 숨을 거두었고, 로메우스는 친구를 잃은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8일 동안 무작정 길을 가다가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루치오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Lucius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4년

 

 

루치오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기오, 루치우스, 루키오, 루키우스.

 

 

루치오 1세 자료

데키우스 황제가 일으킨 박해는 갈루스 황제 시대까지 계속되었는데, 교황 성 루키우스 1세(또는 루치오 1세)는 지명이 알려지지 않은 곳으로 유배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새로 황제에 오른 발레리아누스가 즉위 초기에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호의적인 정책을 폈기 때문에 교황 일행은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추방된 많은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로마(Roma)로 돌아왔다.

카르타고(Carthago)의 주교인 성 키프리아누스(Cyprianus, 9월 16일)는 교황의 귀환을 축하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교황 성 루키우스 1세는 대립교황 노바티아누스(Novatianus)와 그의 추종자들을 단죄한 전임 교황의 정책을 유지해 배교자 처리 문제에 관해서 보다 온건한 견해를 유지했지만, 에우세비우스(Eusebius)에 의하면 재위 기간은 8개월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로마 순교록”은 3월 4일자 목록에서 그가 처음으로 그리스도교 신앙 때문에 유배를 갔다가 하느님의 섭리로 로마로 돌아와 발레리아누스 황제 때에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발레리아누스 황제의 박해가 성 루키우스 1세 교황이 선종한 254년 3월 5일 이후 시작되었기에 그의 순교 여부는 확실하지 않다.

그의 시신은 성 칼리스투스(Callistus) 카타콤바의 교황 묘역에 안장되었다가 후에 성녀 체칠리아(Caecilia) 성당으로 이장되었다. 로마 순교록이 그의 축일을 3월 4일로 기록하고 있으나, 3월 5일에 축일을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바시노

 

  • 가톨릭 성인 이름
    Bas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705년경 트리어

 

 

바시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시누스.

 

 

바시노 자료

베네딕토회 수도승이었던 성 바시누스(또는 바시노)는 독일 트리어의 성 막시미누스(Maximinus) 수도원의 원장으로 재임하다가 성 누메리아누스(Numerianus, 7월 5일)를 계승하여 트리어 교구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당시 성 빌리브로르두스(Willibrordus, 11월 7일)를 포함한 영국 선교사들의 후원자였다. 그는 은퇴 후 예전의 수도원으로 돌아가 살다가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아르카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rca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아르카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르까디오, 아르까디우스, 아르카디우스.

 

 

아르카디오 자료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5세기 이후부터 타우리카 케르소네소스(Taurica Chersonesos, ‘타우리카 반도’라는 뜻)라고 부르는 곳에 여러 개의 식민 도시를 건설했는데, 오늘날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로 돌출해 있는 크림반도의 케르소네소스가 대표적 항구도시였다.

오늘날 이곳은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인 헤르손인데, 2014년 러시아가 무력을 통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면서 현재 러시아 영토가 됐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이곳은 종종 죄인들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는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때 신자들도 이곳으로 유배되기도 했다.

교황 성 클레멘스 1세(Clement I, 11월 23일)가 크림반도의 채석장으로 유배 와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목에 닻을 매단 채 흑해 바다로 던져져 순교한 역사가 있다.

그러면서 박해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 지역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4세기 초에 케르소네소스에 주교좌가 설정되었고,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이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 많은 선교사를 파견했다.

그러면서 4세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교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4일 목록에서 순교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케르소네소스(크림반도)에서 사목하다가 순교한 거룩한 주교들로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아가토도루스(Agathodorus), 성 엘피디우스(Elpidius), 성 아이테리우스(Aetherius), 성 카피톤(Capiton), 성 에프렘(Ephraem), 성 네스토르(Nestor), 성 아르카디우스(또는 아르카디오)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네스토르와 성 아르카디우스 주교는 크림반도가 아닌 키프로스(Cyprus)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케르소네소스에서 순교한 거룩한 주교들의 이름을 동방 정교회와 같은 날인 3월 7일로 옮겨서 기록하였다.

그리고 성 네스토르와 성 아르카디우스 주교의 이름을 3월 7일 목록에서 삭제했는데, 3월 4일이나 다른 날에도 더는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오윈

 

  • 가톨릭 성인 이름
    Owi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 활동 연도와 지역
    +680년

 

 

오윈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오웬.

 

 

오윈 자료

한때 성녀 에텔드레다(Etheldreda, 6월 23일) 왕실의 집사였던 성 오윈은 잉글랜드(England) 라스팅햄(Lastingham)의 베네딕토 수도회에 들어가서 성 체아다(Ceadda, 3월 2일)의 지도를 받았다.

그는 후에 성 체아다를 따라 리치필드(Lichfield)로 갔다. 그는 오웬(Owen)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지스틸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istil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6세기경 메네비아

 

 

지스틸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기스띨리아노, 기스띨리아누스, 기스틸리아노, 기스틸리아누스, 지스띨리아노, 지스띨리아누스, 지스틸리아누스.

 

 

지스틸리아노 자료

성 기스틸리아누스(Gistilianus, 또는 지스틸리아노)는 웨일스(Wales)의 성 다윗(David, 3월 1일)의 삼촌으로 성 다윗이 세운 메네비아 수도원에서 수도승이 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카이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a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4년

 

 

카이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이오, 가이우스, 까이오, 까이우스, 카이우스.

 

 

카이오 자료

로마 제국 왕궁의 관리였던 성 카이우스(Cajus, 또는 카이오)는 니코메디아(Nicomedia)에서 27명의 동료들과 함께 익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펠릭스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038년 뤼

 

 

펠릭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자료

프랑스 북서부의 브르타뉴(Bretagne)에서 태어난 성 펠릭스는 은수자로 살다가 플뢰리(Fleury)에서 베네딕토회 수도승이 되었다. 그는 뤼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하드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Hadr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선교사,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875년경 아일랜드

 

 

하드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드리아노, 아드리아누스, 아드리안, 하드리아누스, 하드리안.

 

 

하드리아노 자료

9세기에 스코틀랜드 연안의 어느 조그마한 마을에서 덴마크인들이 성 하드리아누스(Hadrianus, 또는 하드리아노)를 비롯한 일단의 동료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사건이 있었다.

성 하드리아누스는 왕손으로서 헝가리의 판노니아(Pannonia)에서 태어나 그곳의 주교로 활약하였다. 선교열에 불타오른 그는 클로디온, 카이우스, 스톨브란드 그리고 모난 등 많은 동료들을 대동하고 스코틀랜드로 갔다.

이때 그들이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상태에서 덴마크인들의 공격을 받아서 무수한 그리스도인들이 떼죽음을 당한 것이었다. 그는 아일랜드의 선교사로 기록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훔베르토

 

  • 가톨릭 성인 이름
    Humbert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36-1189년 사보이아

 

 

훔베르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훔버트, 훔베르또, 훔베르뚜스, 훔베르투스.

 

 

훔베르토 자료

훔베르투스(Humbertus, 또는 훔베르토)는 이탈리아의 토리노(Torino) 근방 아비글리아나(Avigliana)에서 사보이아의 아마데우스 3세(Amadeus III) 백작과 빈(Wien)의 마틸다(Matilda)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훌륭한 신앙 교육을 받아 기도생활이 습관화되어 있었다.

그는 은수자가 되려는 소망을 희생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통치자가 되었다. 그는 흔히 자기도취에 빠진 그런 세속의 지배자가 아니었다. 그는 권력의 의미를 잘 알고 백성들의 염원을 이해하는 통치자로서 큰 명성을 얻었다.

만년에 그는 자신의 죽음을 준비하기 위하여 현직에서 은퇴하여 시토회 수도원에서 수도생활을 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38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그 외 세례명 날짜로 찾기

 

날짜순 천주교 세례명

어떤 세례명이 좋을까?

pieonane.com

 


 

그 외 세례명 이름으로 찾기

 

이름순 가톨릭 세례명

본받고 싶은 가톨릭 성인 찾기

pieonane.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