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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남자세례명 8가지

피어나네 2023. 3. 1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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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바오로, 아그리콜라, 알렉산데르, 암브로시오, 요셉, 요한 사르칸데르, 테오도로, 파트리치오, 총 8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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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7일 여자세례명 비트부르가, 제르트루다, 총 2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3월 17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8가지

 

 

 

 

3월 17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바오로

  2. 아그리콜라

  3. 알렉산데르

  4. 암브로시오

  5. 요셉

  6. 요한 사르칸데르

  7. 테오도로

  8. 파트리치오

 

3월 17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8가지

 

 

1. 바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777년경 키프로스

 

 

바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 자료

성상파괴주의에 반대하여 콘스탄티누스 코프로니무스 황제에게 죽어간 사람들 가운데서 바오로(Paulus)라 부르는 키프로스 사람이 가장 유명하다.

성 바오로는 키프로스의 총독 앞에서 정통교리를 큰소리로 외치고는 “주 예수 그리스도여, 당신의 성상을 짓밟는 자들을 용서하소서.” 하고 기도했던 사람이다.

그 후 그는 땅에 십자가를 그리고 입을 맞춘 뒤에 십자가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의 이러한 행동은 곧 수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심어주었고, 황제의 정책에 대한 거센 반발이 일어났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아그리콜라

 

  • 가톨릭 성인 이름
    Agricol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97-580년 샬롱쉬르손

 

 

아그리콜라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그리꼴라, 아레글.

 

 

아그리콜라 자료

갈로 로마 원로원의 아들이며 아레글(Aregle)로도 알려져 있는 성 아그리콜라는 532년에 프랑스의 샬롱쉬르손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의 절친한 친구였고, 단순한 생활과 엄격한 생활로 당시의 민중들에게 깊은 영성을 심어주었다.

그는 48년의 주교 재임 중 수차례의 교회회의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고, 교구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알렉산데르

 

  • 가톨릭 성인 이름
    Alexand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알렉산데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알레산드로, 알렉산더, 알렉산델, 알렉싼데르, 알렉싼델.

 

 

알렉산데르 자료

성 알렉산데르와 성 테오도루스(Theodurus)는 로마 순교록 뿐만 아니라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순교록에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들은 5월 3일에 축일을 기념하는 성 알렉산데르와 성 테오둘루스(Theodulus)와 동일인일 수 있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암브로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mbros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경 알렉산드리아

 

 

암브로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암브로시우스, 앰브로스.

 

 

암브로시오 자료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부유한 귀족이었던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또는 암브로시오)는 위대한 교부인 오리게네스(Origenes)의 절친한 친구이자 재정적 후원자였다.

그는 신앙 때문에 막시미누스(Maximinus) 황제 치하에서 박해를 받고 수감되기도 하였다. 감옥에서 풀려나온 그는 신앙의 증거자로서 살다가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요셉

 

  • 가톨릭 성인 이름
    Joseph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아리마태아

 

 

요셉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요세푸스, 요제프, 조세푸스, 조세프, 조셉, 조제프, 주세페, 쥬세페, 호세

 

 

요셉 자료

네 복음서에 모두 언급되어 있는 아리마태아 사람 성 요셉(Josephus)은 의회 의원이었으나 유대 당국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비밀리에 예수를 따라 다닌 제자이다.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현장에 있다가 예수님이 운명하자 빌라도에게 가서 시체를 내어 달라고 청하여 승낙을 받고 고운 베로 싸서 바위 무덤에 모셨다(마르 15,43-46; 마태 27,57-60; 루카 23,50-53; 요한 19,38-42). 그는 예수를 죽이려던 의회의 결정과 행동에 찬동한 일이 없고, 하느님의 나라를 대망하며 살던 사람이었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프랑스 지방으로 복음을 전하여 가는 성 필립보(Philippus, 5월 3일) 사도를 수행하였고, 잉글랜드(England)로 파견되는 12명의 선교단의 책임자였다고 한다. 가브리엘 천사의 도움으로 그들은 잉글랜드 왕이 하사한 땅에 성모님께 봉헌된 성당을 세웠는데, 이것이 글래스턴베리(Glastonbury) 대수도원으로 발전하였다고 전해온다. 그는 아마도 이곳에서 서거한 듯 보인다. 또 성 요셉은 최후 만찬에 사용된 성작을 물려받은 인물로 추정되고 있다. 그는 연령회와 장의사의 수호성인이며, 동방교회에서는 7월 31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요한 사르칸데르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Sarkand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76-1620년 체코

 

 

요한 사르칸데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사르캔더,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사르칸데르 자료

성 요한 사르칸데르(Joannes Sarkander)는 오스트리아계의 슐레지엔(Schlesien, 실레지아) 태생으로 13세 때에 부친이 사망하자 14세의 어린 나이로 프라하(Prague)의 예수회 대학에 들어가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그 후 그는 고향으로 돌아오다가 올로모우츠(Olomouc) 교구장의 눈에 들어서 교구사제가 되었다.

16세기에 이 지방은 프로테스탄트의 영향력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그는 예수회원의 도움을 받아 이단자의 개종 운동을 전개하여 250명의 개종자를 얻는데 성공하였다.

이 때문에 그는 주위 사람들의 미움을 받게 되었는데, 1618년에 30년 전쟁이 체코 동부 모라비아(Moravia)에서 터졌을 때 난리를 잠시 피하기 위해 폴란드의 크라쿠프(Krakow)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본당 신자들과 함께 하기 위해 홀레쇼프(Holesov)로 돌아와 갖은 고초를 겪다가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그는 1860년 교황 복자 비오 9세(Pius IX)에 의해 시복되었고, 1995년 5월 21일 체코의 올로모우츠에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테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테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루스.

 

 

테오도로 자료

성 알렉산데르(Alexander)와 성 테오도루스(Theodurus, 또는 테오도로)는 로마 순교록 뿐만 아니라 히에로니무스(Hieronymus)의 순교록에도 나타난다. 그런데 이들은 5월 3일에 축일을 기념하는 성 알렉산데르와 성 테오둘루스(Theodulus)와 동일인일 수 있다는 추측을 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파트리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atrick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389?-493년? 아일랜드

 

 

파트리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드리시오, 빠뜨리시오, 빠뜨리시우스, 빠뜨리치오, 빠뜨리치우스, 파트리시오, 파트리치우스, 파트리키오, 파트리키우스, 패트릭.

 

 

파트리치오 자료

아일랜드의 사도이자 수호성인으로 공경받는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또는 파트리치오)는 389년경 로마제국의 브리튼(현재의 영국) 식민지에서 귀족 출신의 지방의회 의원인 아버지 칼푸르니우스(Calpurnius)와 어머니 콘체사(Concessa)의 아들로 스코틀랜드 던바턴(Dunbarton) 근처 킬패트릭(Kilpatrick)에서 태어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16세 때에 아일랜드 해적들에게 붙잡혀 노예로 팔려 북아일랜드의 앤트림(Antrim)에서 6년 동안 양치기로 생활했다. 하지만 이 기간에 열정적 신앙심을 갖게 된 그는 꿈속에서 천사의 목소리를 듣고 용기를 내어 탈출했고, 200마일이 넘는 길을 헤맨 끝에 아일랜드 북서부 마요(Mayo)의 킬랄라(Killala) 만에 도착해 마침 항해 준비를 마친 배를 만나 우여곡절 끝에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는 6년의 노예 생활을 세속적 삶에 치중했던 자신의 회개를 위한 기간이자 앞으로의 사도직을 위한 하느님 섭리의 준비 기간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그 경험을 통해 아일랜드에 가서 신앙을 전하고 싶다는 열망이 자라났기 때문이다.

아일랜드 선교를 소명으로 받아들인 그는 오늘날의 프랑스 땅에 속하는 갈리아 지방으로 가서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 주교를 찾아갔다. 그는 성 게르마누스 주교에게 4년 동안 사제가 되기 위한 교육을 받은 후 사제품을 받았다.

당시 교황으로부터 브리튼에 남아 있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 이단에 맞서 교회의 신앙을 지키라는 임무를 받은 성 게르마누스 주교는 성 파트리키우스 신부를 동료로 선택했다.

아일랜드의 회개와 선교에 대한 열망을 계속 간직하고 있던 성 파트리키우스는 마침내 432년경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 7월 27일)로부터 아일랜드에 대한 선교 임무를 받았다.

그는 성 게르마누스 주교에게 주교품을 받고 본격적으로 아일랜드 선교를 준비했다. 그리고 435년 3월 아일랜드에 도착해 이미 431년 교황 코일레스티누스 1세에 의해 아일랜드인들을 위한 초대 주교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7월 7일) 주교를 계승하였다.

성 파트리키우스는 지방 영주들의 도움을 얻어내면서 주로 아일랜드의 서쪽과 북쪽 지역에서 복음을 전파해 수많은 개종자에게 세례를 주었다.

당시 도시 형태가 완성되지 않은 아일랜드에서 그는 수도원 형태에 가까운 참사회를 중심으로 운영되는 주교좌성당을 여러 개 세웠다. 현지인 사제 양성에도 힘써 초기에 주로 갈리아나 브리튼에서 파견되었던 사제들을 대신하도록 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적개심을 품은 수많은 원주민과 추장(영주)들을 과감히 만나 복음을 전하고, 여러 번 기적적인 방법으로 그들을 회개시킴으로써 아일랜드 전체에 그리스도교의 뿌리를 깊이 내렸다.

그는 처음부터 복음 선포의 가장 강력한 반대 세력인 자연종교 형태의 드루이드(Druid)에 맞서 교리와 신앙을 강조하고, 브리튼의 코로티쿠스(Coroticus) 영주가 아일랜드를 공격해 많은 이들을 죽이고 노예로 팔아넘기자 브리튼의 주교들에게 강력히 항의하며 그의 파문을 요구하였다.

그는 442년과 444년에 로마(Roma)를 방문하였고, 445년에 아마(Armagh)에 대성당을 세워 아일랜드 선교 활동의 본거지로 삼았다. 그는 오랜 선교 활동을 통해 학문의 기풍을 진작시키고, 부활절 전례와 라틴어 교육 등을 통해 아일랜드 교회를 로마 교회와 가깝게 만들었다.

그는 또한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기록한 영적 자서전인 “고백록”(Confessio)과 아일랜드를 공격하고 박해하는 브리튼인을 비판한 “서한”(Epistola)을 남겼다.

행동과 실천을 강조했던 성 파트리키우스는 복음을 전파하면서도 이교인을 차별하지 않았지만 늘 순교의 위험 속에서 생활해야 했다.

그는 493년(자료에 따라서는 461년) 3월 17일 자신이 처음으로 성당을 지은 아일랜드의 다운패트릭(Downpatrick)에서 선종하였다.

그에 대한 공경은 6세기에 시작해 7세기에 이미 유럽의 많은 지역으로 퍼져나갔다. 성 파트리키우스의 상징으로는 뱀과 토끼풀과 녹색이 주로 등장한다.

이는 그와 관련된 전설에서 기인하는데, 그가 지팡이를 이용해 아일랜드에 있는 뱀들을 바닷속으로 몰아내어 없애 버린 것과 어떤 미신자에게 한 줄기에 잎사귀가 3개 달린 토끼풀을 가지고 삼위일체 교리를 설명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그래서 아일랜드인들은 성 파트리키우스를 기념하는 축일이자 국경일인 성 패트릭 데이(Saint Patrick’s Day)에 국화(國化)인 토끼풀을 옷이나 모자 등에 붙이고 녹색 옷을 입고 행렬하는 등 다양한 경축 행사를 벌인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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