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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여자세례명 6가지

피어나네 2023. 4. 24.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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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도다, 마리아, 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 보바, 살로메, 코로나, 총 6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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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4일 남자세례명 그레고리오, 네온, 데오다토, 레온시오, 론지노, 멜리토, 베네딕토 멘니, 빌리암 피르마토, 사바, 알렉산데르, 에그베르토, 에우세비오, 이보, 프란치스코 콜메나리오, 피델리스, 호노리오, 총 16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4월 24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6가지

 

 

 

 

4월 24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도다

  2. 마리아

  3. 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

  4. 보바

  5. 살로메

  6. 코로나

 

4월 24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6가지

 

 

1. 도다

 

  • 가톨릭 성인 이름
    Dod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세기 랭스

 

 

도다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드.

 

 

도다 자료

성녀 보바(Bova, Boba)는 몽포콩(Montfaucon)의 성 발데리쿠스(Baldericus, 10월 16일)의 누이로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왕인 시기베르트 1세(Sigebert I)의 딸이자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왕과 가까운 친척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연대기 작가이자 랭스 주교좌성당 사제인 플로도아르(Flodoard, +966년)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학자들은 그보다는 쾰른(Koln)의 왕인 시고베르트(Sigobert the Lame)의 자녀라는데 더 신빙성을 두고 있다.

성녀 보바는 하느님께 자신의 봉헌할 결심을 하고 모든 결혼 제의를 거절하였다. 평범한 수녀로 살기 원했던 그녀는 성녀 클로틸다(Clotildis, 6월 3일) 왕비와 랭스의 주교인 성 레미기우스(Remigius)가 그 지방에서 세운 수녀원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 수녀원은 도시 성벽 밖에 있었는데, 수녀들의 안전과 동생을 위해 성 발데리쿠스가 성벽 안에 베네딕토회의 성 베드로 수녀원을 설립한 후 동생에게 원장직을 맡겼다. 그녀는 원치 않는 원장직을 맡았지만, 수녀원에서 선종할 때까지 겸손하게 금욕적 생활을 실천하고 기도 생활에 전념했다. 성 발데리쿠스는 정기적으로 그녀의 수녀원을 방문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성녀 보바는 조카인 성녀 도다의 양육과 교육을 담당했는데, 그녀가 영주와의 강제적인 결혼을 피하려고 피신했을 때 수녀원으로 데려와 수도 생활에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성녀 도다는 성녀 보바가 선종한 후 그녀의 뒤를 이어 수녀원장이 되었다. 두 성녀의 생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0세기에 그곳 수녀들과 관련된 전승이 연대기 작가에 의해 다시 기록되어 전해질 수 있었다.

보나(Bona)로도 불리는 성녀 보바는 프랑스에서는 뵈브(Beuve)로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랭스의 거룩한 동정녀인 성녀 보나(Bona)와 성녀 도다(Doda)에 대해 기록하였다. 성녀 도다는 도드(Dode)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리아

 

  • 가톨릭 성인 이름
    Mary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부인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마리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리, 미르얌, 미리암.

 

 

마리아 자료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19,25)라고 전해주었다.

마르코 복음은 같은 장면에서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15,40-41)라고 했다. 이어서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16,1-2)라고 했다. 그들이 무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를 막았던 돌은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미 부활하셨다면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해주었다(16,3-8)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는 요한 복음이 언급한 클로파스(Clopas)의 아내 마리아(Maria)를 성모 마리아와 자매 사이로 해석했고, 작은 야고보와 요세는 예수님과 사촌 사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예수님의 12사도 중 한 명인 알패오(Alphaeus)의 아들 야고보(마태 10,3; 마르 3,18; 루카 6,15)와 ‘주님의 형제’ 야고보(마태 13,55; 마르 6,3; 갈라 1,19)를 같은 인물로 제시하면서 클로파스를 알패오(Alphaeus)와 동일시했다.

결국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는 알패오의 아내 마리아이자 예수님과 사촌지간인 사도 성 소 야고보(Jacobus, 5월 3일)의 어머니라고 설명하였다. 중세 전통은 성녀 마리아를 안식일 다음 날 빈 무덤에서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세 명의 거룩한 마리아’ 중 한 명으로 간주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9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성녀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복되신 마리아의 자매로 소개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살로메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를 부활절 아침에 주님의 시신에 발라 드릴 향료를 갖고 무덤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거룩한 여인들로 예루살렘에서 함께 기념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

 

  • 가톨릭 성인 이름
    Mary Euphrasia Pelletier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설립자,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796-1868년

 

 

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리, 미르얌, 미리암, 에우쁘라시아, 에우프라씨아, 유프라시아, 펠르티에.

 

 

마리아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 자료

성녀 마리아 아 산타 에우프라시아 펠레티에(Maria a santa Euphrasia Pelletier)는 1796년 7월 31일 프랑스 서부 방데 연안의 누아르무티에(Noirmoutier) 섬에서 태어났는데, 그녀의 부모는 방데 전쟁을 피하여 이곳으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18세 되던 1814년 10월 20일 애덕 성모 수녀회에 입회하였고, 1825년에 투르(Tours)에 위치한 수녀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 후 그녀는 앙제(Angers)에 수녀원을 설립해 달라는 앙제 주교의 요청을 받고 파견되어 '앙제의 착한 목자 애덕 성모 수녀원'을 성공적으로 설립한 뒤에 투르로 돌아왔다. 그러나 앙제 수녀원이 운영상 많은 어려움을 겪자 다시 앙제로 가서 수녀원의 재건을 위해 노력하였다.

그녀가 경험을 쌓으면 쌓을수록 자기 수녀회의 구조를 크게 변화시켜야 할 필요성을 절감하였으나 수녀원 내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혔다. 그녀는 야심이 많고 순종하지 못한다는 비난과 함께 '능력은 있으나 한 나라를 다스려야 적성이 풀릴 사람'이란 평을 받았다. 마침내 그녀는 앙제에 '착한 목자 수녀회'를 설립하고, 1835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Gregorius XVI)로부터 공식적인 승인을 받았다.

이 수녀회는 윤리적 위험에 처한 여성들을 위하여 헌신하도록 설립되었다. 성녀 마리아 에우프라시아가 33년 동안 이 수녀회를 지도하는 동안 110개의 수녀원으로 발전하였는데, 현재 이 수녀회의 회원 수는 10,000명이 넘는다. 그녀는 1868년 4월 24일 앙제에서 선종하였으며, 1933년 시복되고 1940년 교황 비오 12세(Pius XII)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보바

 

  • 가톨릭 성인 이름
    Bov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수녀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7세기 랭스

 

 

보바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보나, 뵈브.

 

 

보바 자료

성녀 보바(Bova, Boba)는 몽포콩(Montfaucon)의 성 발데리쿠스(Baldericus, 10월 16일)의 누이로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왕인 시기베르트 1세(Sigebert I)의 딸이자 다고베르트 1세(Dagobert I) 왕과 가까운 친척으로 알려져 있다. 이는 연대기 작가이자 랭스 주교좌성당 사제인 플로도아르(Flodoard, +966년)의 기록에 근거한 것이다. 하지만 현대 사학자들은 그보다는 쾰른(Koln)의 왕인 시고베르트(Sigobert the Lame)의 자녀라는데 더 신빙성을 두고 있다.

성녀 보바는 하느님께 자신의 봉헌할 결심을 하고 모든 결혼 제의를 거절하였다. 평범한 수녀로 살기 원했던 그녀는 성녀 클로틸다(Clotildis, 6월 3일) 왕비와 랭스의 주교인 성 레미기우스(Remigius)가 그 지방에서 세운 수녀원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다.

그 수녀원은 도시 성벽 밖에 있었는데, 수녀들의 안전과 동생을 위해 성 발데리쿠스가 성벽 안에 베네딕토회의 성 베드로 수녀원을 설립한 후 동생에게 원장직을 맡겼다. 그녀는 원치 않는 원장직을 맡았지만, 수녀원에서 선종할 때까지 겸손하게 금욕적 생활을 실천하고 기도 생활에 전념했다. 성 발데리쿠스는 정기적으로 그녀의 수녀원을 방문해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성녀 보바는 조카인 성녀 도다(Doda)의 양육과 교육을 담당했는데, 그녀가 영주와의 강제적인 결혼을 피하려고 피신했을 때 수녀원으로 데려와 수도 생활에 헌신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성녀 도다는 성녀 보바가 선종한 후 그녀의 뒤를 이어 수녀원장이 되었다.

두 성녀의 생애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10세기에 그곳 수녀들과 관련된 전승이 연대기 작가에 의해 다시 기록되어 전해질 수 있었다.

보나(Bona)로도 불리는 성녀 보바는 프랑스에서는 뵈브(Beuve)로 불린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랭스의 거룩한 동정녀인 성녀 보나(Bona)와 성녀 도다(Doda)에 대해 기록하였다. 성녀 도다는 도드(Dode)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살로메

 

  • 가톨릭 성인 이름
    Salome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부인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경

 

 

살로메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리아, 메리, 미르얌, 미리암, 쌀로메.

 

 

살로메 자료

살로메는 평화를 뜻하는 히브리어 샬롬(shalom)에서 파생되어 유다인에게 흔한 이름으로 사용되었다. 신약성경 안에서 살로메라는 이름은 마르코 복음 안에서 두 번 등장한다.

“여자들도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 그리고 살로메가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15,40-41)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실 때 마지막까지 그 곁에서 지켜보았던 여인 중 한 명으로 안식일 다음 날 이른 아침에 예수님께 발라 드릴 향료를 사서 무덤으로 갔다.

“안식일이 지나자,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는 무덤에 가서 예수님께 발라 드리려고 향료를 샀다. 그리고 주간 첫날 매우 이른 아침, 해가 떠오를 무렵에 무덤으로 갔다.”(16,1-2)

그들이 무덤이 도착했을 때 이미 입구를 막았던 돌은 굴려져 있었고, 무덤 안에는 하얗고 긴 겉옷을 입은 젊은이가 앉아 있었다. 그리고 주님께서 이미 부활하셨다면서 전에 말씀하신 대로 갈릴래아로 가실 것이라 알려주었다. 그들은 겁에 질려 무덤에서 나와 달아났다고 마르코 복음은 전해주었다(16,3-8).

마태오 복음은 십자가 아래에서 끝까지 주님을 지켜보았던 많은 여자들이 있었고, 그들은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따르며 시중들던 이들이라 소개하며 “그들 가운데에는 마리아 막달레나, 야고보와 요셉의 어머니 마리아, 제베대오 아들들의 어머니도 있었다.”라고 기록하였다(27,56).

두 복음서가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다면, 살로메는 예수님께서 처음 제자로 부르신 네 명의 어부에 속한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마태 4,21)의 어머니가 된다. 그렇게 보면 주님의 나라에서 자신의 두 아들을 예수님의 오른쪽과 왼쪽에 앉혀 달라고 청했던 부인도 살로메이다(마태 20,20-21).

반면 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곁에는 그분의 어머니와 이모,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마리아 막달레나가 서 있었다.”(19,25)라고 전해주었다. 그래서 살로메가 예수님의 이모라고 추론할 수도 있지만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마르 15,41)라는 말씀으로 미루어보아 확실하지는 않다.

루카 복음은 십자가의 죽음을 지켜본 여자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고(23,49), 주간 첫날 무덤을 찾은 이들에 대해서는 “그들은 마리아 막달레나, 요안나, 그리고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였다. 그들과 함께 있던 다른 여자들도 사도들에게 이 일을 이야기하였다.”(24,10)라고 전해주었다.

신약성경 안에서 살로메의 신원을 정확하게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전통적으로 마르코와 마태오 복음의 증언을 중심으로 살로메는 제베대오의 아내이며, 사도 성 대 야고보(Jacobus, 7월 25일)와 성 요한(Joannes, 12월 27일) 복음사가의 어머니로 보고 있다.

그리고 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을 믿고 따르며 시중들던 충실한 여성 제자임이 분명하다. 중세의 전통에 따르면 성녀 살로메는 안식일 다음 날 빈 무덤에서 주님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세 명의 거룩한 마리아’ 중 한 명으로 간주되었다. 그래서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22일 목록에서 그녀의 이름을 ‘마리아 살로메’(Maria Salome)로 소개하며 주님의 장례를 지켜보았던 신심 깊은 여인으로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4월 24일 목록에서 클로파스의 아내 마리아와 살로메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를 부활절 아침에 주님의 시신에 발라 드릴 향료를 갖고 무덤에 갔다가 처음으로 주님의 부활 소식을 들은 거룩한 여인들로 예루살렘에서 함께 기념하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코로나

 

  • 가톨릭 성인 이름
    Corona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엘체

 

 

코로나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고로나, 꼬로나.

 

 

코로나 자료

코로나는 에스파냐 발렌시아(Valencia) 지방 알리칸테(Alicante)에 있는 엘체 수녀원의 베네딕토회 수녀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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