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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 남자세례명 28가지

pieonane 2023. 6. 1.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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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1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그라시아노, 레베리아노, 로난, 바오로, 비스탄, 시메온,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 암몬, 야고보, 에네코, 요한 스토리, 요한 페링고토, 유벤시오, 유스티노, 이스키리온, 인젠, 제노, 카프라시오, 크레센시아노, 테스페시오, 테오발도, 테오필로, 펠리노, 포르투나토, 프로쿨로, 프톨레메오, 피르모, 헤르쿨라노, 총 28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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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6월 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8가지

 

 

 

 

6월 1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그라시아노

  2. 레베리아노

  3. 로난

  4. 바오로

  5. 비스탄

  6. 시메온

  7.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

  8. 암몬

  9. 야고보

  10. 에네코

  11. 요한 스토리

  12. 요한 페링고토

  13. 유벤시오

  14. 유스티노

  15. 이스키리온

  16. 인젠

  17. 제노

  18. 카프라시오

  19. 크레센시아노

  20. 테스페시오

  21. 테오발도

  22. 테오필로

  23. 펠리노

  24. 포르투나토

  25. 프로쿨로

  26. 프톨레메오

  27. 피르모

  28. 헤르쿨라노

 

6월 1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8가지

 

 

1. 그라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Gra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그라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그라띨리아노, 그라띨리아누스, 그라시아누스, 그라씨아노, 그라씨아누스, 그라티아노, 그라티아누스, 그라틸리아노, 그라틸리아누스.

 

 

그라시아노 자료

황제군의 군인이었던 성 펠리누스(Felinus)와 성 그라티아누스(Gratianus, 또는 그라시아노)는 데키우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976년에 밀라노(Milano) 부근 아로나(Arona)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성 그라티아누스는 그라틸리아누스(Gratilian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레베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Reveri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2년

 

 

레베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베리아누스.

 

 

레베리아노 자료

성 레베리아누스(또는 레베리아노) 주교와 성 바오로(Paulus) 신부는 갈리아 지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들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때에 다른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순교할 때까지 프랑스의 오툉(Autun)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로난

 

  • 가톨릭 성인 이름
    Ron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 콘월

 

 

로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아단.

 

 

로난 자료

성 로난은 콘월과 브르타뉴(Bretagne)의 몇몇 지방뿐만 아니라 데번셔(Devonshire)의 타비스톡(Tavistock) 수도원의 수호성인이다. 그는 그가 사망한 브르타뉴와 랑(Laon) 지역의 전승 안에서 중요한 성인이다.

그는 로크로난(Locronan)에 묻혔으며, 매 6년마다 신앙인들은 그의 사명을 기념하며 전통에 따라 10마일의 길을 순례 행진한다. 오늘 기념하는 성 로난은 루아단(Ruadan)으로도 불리며, 아일랜드의 성 루아단(4월 15일)과는 다른 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바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2년

 

 

바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 자료

성 레베리아누스(Reverianus) 주교와 성 바오로(Paulus) 신부는 갈리아 지방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그들은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때에 다른 몇 명의 동료들과 함께 순교할 때까지 프랑스의 오툉(Autun)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비스탄

 

  • 가톨릭 성인 이름
    Wist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49년 이브즈햄

 

 

비스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스딴, 위스딴, 위스탄.

 

 

비스탄 자료

성 비스탄은 머시아(Mercia)의 위글라프 왕의 손자이다. 그는 신앙 문제 때문에 쉬로프셔의 위스탄스토우에서 살해되었다. 그 외의 생애는 알 수 없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시메온

 

  • 가톨릭 성인 이름
    Sime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승,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035년 시라쿠사

 

 

시메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시므온.

 

 

시메온 자료

성 시메온은 시칠리아(Sicilia)의 시라쿠사에서 그리스인 부친과 함께 살다가 일곱 살 때에 교육적인 목적으로 콘스탄티노플로 갔다. 장성한 시메온은 성지 순례를 떠났는데, 그곳의 매력에 이끌려 정착키로 결심하였다.

처음에 그는 요르단인의 은둔소에서 지냈으나, 곧 베들레헴에서 수도복을 입고 시나이 산에 있는 수도원으로 갔다. 여기서 그는 장상의 허락을 받고 홍해에 인접한 한 동굴 속에서 지내다가 다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노르망디(Normandie)의 공작인 리카르두스 2세(Richardus II)가 약속한 기부금을 받으러 가던 중, 그들이 탄 배가 해적들에게 나포되어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시메온은 배에서 뛰어내려 목숨을 건졌고, 안티오키아(Antiochia)로 가서 베르됭(Verdun)의 원장 리카르두스(Richardus), 성 마르탱의 원장 에버르윈을 만나 함께 여행하였다.

그 후 갖은 고생 끝에 리카르두스 공작을 찾았지만 그는 이미 서거한 뒤였고 또 그의 후계자는 기부금을 거절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섰다. 그는 원래 수도원으로 귀향하던 길에 다시금 독수생활을 하고픈 열망을 이기지 못하여, 포르타 니그라 교외의 탑 속으로 들어가 여생을 기도와 고행, 관상과 탈혼 속에서 지내다가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

 

  • 가톨릭 성인 이름
    Hannibal Mary di Francia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51-1927년 메시나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리, 미르얌, 미리암, 프란차, 프란치아, 한니발.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 자료

성 안니발레 마리아 디 프란챠(Annibale Maria di Francia)는 1851년 7월 5일 이탈리아 시칠리아(Sicilia) 섬의 메시나에서 태어났다.

“수확할 것은 많은데 일꾼은 적다. 그러니 수확할 밭의 주인님께 일꾼들을 보내 주십사고 청하여라.”(마태 9,37-38; 루카 10,2)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젊은 시절부터 그의 영성과 사목의 샘이 되었다.

1878년 사제 서품을 받은 후부터 그리스도의 사제로서, 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서의 삶이 시작되었다. 성 안니발레 신부는 성체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 성심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힘없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에게 ‘하느님과 이웃’이라는 이상을 실현시키며 헌신적으로 복음을 전파하였다.

특히 목자 없는 양과 같이 버려진 사람들을 바라보며, 그들을 위해서 일할 일꾼들을 교회에 보내달라고 하느님께 청하는 기도(로가테, Rogate)의 확산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다.

성 안니발레 신부는 그리스도의 이 말씀을 실현하기 위해 ‘거룩한 열정의 딸 수도회’와 ‘예수 성심의 로가찌오니스티 수도회’를 설립하였다. 그의 이러한 노력은 1964년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가 ‘전세계가 성소를 위해서 기도하는 날’(성소주일)을 제정함으로써 그 결실을 맺었다.

평생 동안 복음의 덕을 실천한 성 안니발레 신부는 1927년 6월 1일 메시나에서 선종하였다. 1990년 10월 7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오른 그는 ‘현대 성소 사목의 선구자’요 ‘고아들과 가난한 이들의 아버지’로서 인정을 받았고, 마침내 2004년 5월 16일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같은 교황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암몬

 

  • 가톨릭 성인 이름
    Amm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암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몬.

 

 

암몬 자료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감시하던 다섯 명의 군인으로 성 암몬, 성 제노(Zeno), 성 프톨레메우스(Ptolemaeus), 성 인겐(Ingen), 그리고 나이 많은 베테랑 군인인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있었다.

그들은 한 가난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온갖 고문을 받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해 배교하려고 할 때 표정과 눈빛 그리고 몸짓을 이용해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무관심과 소란 속에서 성 테오필루스가 앞장서서 다른 네 명의 병사들과 함께 용감하게 재판관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0일 목록에서 이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로 옮겨 그들의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야고보

 

  • 가톨릭 성인 이름
    Jame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대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411년 할리치

 

 

야고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스트레파르,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제임스.

 

 

야고보 자료

폴란드의 귀족 출신으로 갈리치아(Galicia)에서 태어난 야고보 스트레파르(Jacobus Strepar)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르비프(Lviv) 수도원의 원장을 지냈다. 그는 단순한 원장이 아니라 뛰어난 순회 설교자이자 조직가로서 이교도 지역인 러시아 서부에 대한 선교를 담당하였다.

1392년에 그는 갈리치아 지방 할리치의 대주교로 임명되어 교구를 다스렸다. 그는 수많은 성당을 비롯하여 수도원과 학교 그리고 병원을 세웠다. 1411년 6월 1일 르비프 수도원(현재 우크라이나 소재)에서 선종한 그에 대한 공경은 1791년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에네코

 

  • 가톨릭 성인 이름
    Ene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057년 오냐

 

 

에네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네꼬, 에네꾸스, 에네쿠스, 이니고.

 

 

에네코 자료

성 에네쿠스(또는 에네코)는 11세기 초 아라곤(Aragon)의 칼라타유드(Calatayud)에서 태어났다. 그는 젊어서 산 후안 데 라 페냐(San Juan de la Pena) 왕립 수도원에 들어가 수도복을 받았다.

사제품을 받고 수도원장으로도 뽑혔으나 독수 생활에 대한 미련 때문에, 원장직을 사임하고 사라고사(Zaragoza) 지방의 토베드(Tobed)에 있는 산속으로 들어가 몸을 숨겼다. 그는 뛰어난 성덕으로 말미암아 당대에 이미 가장 거룩하고 기적을 행하는 위대한 은수자로 여겨졌다.

팜플로나(Pamplona)의 왕인 산초 가르세스 3세(Sancho Garces III)는 수도원 개혁을 위해 그를 찾았고, 그에게 부르고스(Burgos) 지방 오냐에 있는 베네딕토회 구세주 수도원의 원장직을 맡겼다. 성 에네쿠스는 왕국 내 수도원들의 개혁을 위해 힘썼고, 산초 가르세스 3세 왕의 고문으로서 또 그의 아들인 가르시아 산체스 3세(Garcia Sanchez III) 왕의 고해 사제로서도 활동했다.

성 에네쿠스의 영향력은 수도원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 사회에도 크게 미쳤는데, 그는 여러 도시의 분쟁을 가라앉히고 평화의 전달자로서 큰 공헌을 남겼다. 어느 해에 에스파냐 전역에 큰 가뭄이 들어서 농작물의 피해가 극심했을 때, 수많은 사람이 그에게 몰려와 기도를 청했다.

그가 기도를 바치자 큰비가 내려 기근을 면할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기적으로는 그가 불과 빵 세 개로 큰 군중을 배불리 먹게 한 일도 있었다. 1057년 6월 1일 오냐의 수도원에서 그가 선종하자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그 지방에 살던 유다인과 무슬림들도 크게 슬퍼하며 그의 죽음을 애도했다고 한다.

그만큼 그의 성덕이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었다. 그는 1259년 교황 알렉산데르 4세(Alexander IV)에 의해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에스파냐에서 이니고(Inigo)로도 불리는데, 로욜라(Loyola)의 성 이냐시오(Ignatius, 7월 31일)가 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요한 스토리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Story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평신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04-1571년 영국

 

 

요한 스토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스토리 자료

요한 스토리(Joannes Story/Storey)는 1504년 영국 잉글랜드 북동부 노섬벌랜드 (Northumberland)에서 아버지 니콜라스(Nicholas)와 어머니 솔즈베리(Salisbury)의 조앤 스토리(Joan Story)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작은 형제회 3회원이 되었고, 옥스퍼드(Oxford) 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하고 1535년 그곳 대학에서 민법 강사로 활동했다.

2년 후 그는 나중에 펨브로크 대학(Pembroke College)이 된 브로드게이츠 홀(Broadgates Hall)의 학장이 되었다. 1538년 법학 박사학위를 취득한 그는 이듬해에 학장직을 사임하고 런던으로 가서 변호사가 되었고, 조앤 와츠(Joan Watts)라는 여인과 결혼하였다.

그는 일시적으로 가톨릭 신앙을 포기하고 국왕의 수장령(Oath of Supremacy)에 서명한 것으로 보이는데, 1544년 국왕 헨리 8세(Henry VIII)가 요한 스토리가 옥스퍼드 대학의 법학 흠정교수직(Regius Professor of civil law)에 오르는 것을 승인했기 때문이다.

그는 1545년 솔즈베리 의회에 진출하면서 의원으로서의 활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1547년 헨리 8세의 아들인 에드워드 6세(Edward VI)가 왕위를 계승한 후 1549년부터 영국 의회가 영국국교회의 예배와 기도 등을 통일하기 위해 제정한 ‘예배 통일법’(Act of Uniformity)에 반대함으로써 3개월간 투옥되었다가 석방된 후 추방되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루뱅(Louvain)으로 가서 대학에서 활동하며 생활을 이어갔다.

1553년 에드워드 6세가 요절한 후 헨리 8세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캐서린(Catherine of Aragon) 사이에서 태어난 메리 튜더(Mary Tudor, 1553~1558년 재위)가 여왕으로 즉위하자 그해 8월 그는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는 옥스퍼드 대학의 흠정교수직에서 물러나 런던 교구의 상서국장(尙書局長)과 교회법원의 판사로 활동했다. 그리고 메리 여왕의 통치 중에 이단을 기소하는 정부 담당자 중 한 명으로도 활동했다.

1558년 헨리 8세와 앤 불린(Anne Boleyn) 사이에서 태어난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1558~1603년 재위) 여왕이 즉위한 후 그는 다시 의회로 돌아갔다. 1560년 5월 20일 그는 영국국교회의 공적 예배에 참석하기를 거부하고 국교회에 대해 비판한 죄로 런던의 플리트 감옥(Fleet Prison)에 얼마간 갇혔다가 바로 풀려났다.

1563년 그는 다시 체포되어 서더크(Southwark)의 마셜시(Marshalsea) 감옥에 갇혔지만 다행히 탈출에 성공해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피신했다. 그는 그곳에서 당시 가톨릭 교회의 보호자를 자처한 에스파냐의 국왕 펠리페 2세(Felipe II)의 연금 수혜자가 되었고, 추방된 가톨릭 신자들을 돕기 위해 왕이 조직한 자선 단체의 활동가로 활약했다.

하지만 1570년 관리들의 속임수에 빠져 체포된 후 런던으로 이송되어 런던탑에 갇혔다. 이는 프랑스 북부 플랑드르 지방으로 도망간 가톨릭 망명자에 대해 더는 에스파냐가 그들을 보호해 줄 수 없다는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경고로 받아들여졌다.

결국 요한 스토리는 1569년 여왕에게 반대하여 일어났던 북부 저항 세력을 지지한 이유 등으로 반역죄로 기소되었고, 1571년 5월 2일 사형선고를 받았다. 그리고 6월 1일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요한 스토리는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6월 1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요한 스토리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요한 페링고토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Pelingotto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3회원

  • 활동 연도와 지역
    1240-1304년 우르비노

 

 

요한 페링고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펠링오토, 한스, 후안.

 

 

요한 페링고토 자료

요한 페링고토(Joannes Pelingotto)는 이탈리아 우르비노의 어느 부유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본인 스스로 부친의 혜택을 거절하고 철저히 가난하게 살다가 프란치스코 재속 3회원이 되었다. 그러면서 그는 은수생활을 원하였지만 부친의 강한 반대를 받았다. 그래서 그는 집안에서 기도와 고행을 계속하였다. 한동안 그는 부모의 강권에 의하여 집안에 감금되었으나 나이가 들면서부터 해방되었다.

그는 자신의 음식들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었으며 병자들을 돌보는데 주력하였다. 그는 스스로 자루로 옷을 해 입었고, 세상의 모든 것을 경시하면서 오로지 주님으로만 만족하고 살려고 애썼다.

어느 주님 수난 주일에 그는 자신의 목에 줄을 묶고서 성당에 갔다. 이것은 죄인의 상징이었다. 이때 그는 성모님과 대화하면서 몇 시간을 탈혼 상태에서 지냈다. 그는 살아생전에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그는 흔히 ‘우르비노의 성인’으로 불린다. 그에 대한 공경은 1918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유벤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Juve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유벤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유벤띠오, 유벤띠우스, 유벤시우스, 유벤티오, 유벤티우스.

 

 

유벤시오 자료

성 유벤티우스(또는 유벤시오)는 로마의 순교자로, 그의 유해는 16세기에 프랑스 에브뢰(Evreux)의 세즈 디외(Chaise-Dieu)에 있는 베네딕토 수도원으로 이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유스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Justi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부, 순교자, 호교론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00/110?-165년

 

 

유스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유스띠노, 유스띠누스, 유스티누스, 저스틴.

 

 

유스티노 자료

성 유스티누스(Justinus, 또는 유스티노)는 100~110년 사이에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사마리아 지방에 세워진 로마제국의 도시인 플라비아 네아폴리스(Flavia Neapolis, 오늘날 팔레스타인 중부의 나블루스 Nablus)의 한 이교 가정에서 태어났다.

어렸을 때의 성장 과정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진리를 찾는 구도자의 자세로 꾸준히 탐구하는 학구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스토아 철학,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피타고라스 철학 그리고 플라톤 철학에 연이어 몰두하였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카이사레아(Caesarea)의 바닷가를 산책하다가 한 노인을 만나 인간의 모든 사상, 플라톤 사상에도 한계와 부족함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입교하였다.

그가 그리스도교에 심취하게 된 또 다른 이유는 순교자들의 영웅적인 태도에 감동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성 유스티누스는 130년경 에페수스(Ephesus)에서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었다. 그 후 그는 구도자로서가 아니라 진리의 설파자, 신앙의 설교가로 길을 바꾸어 한평생을 하느님께 봉헌하였다. 그는 평신도였으나 스승이며 복음의 사도가 된 것이다.

성 유스티누스는 132~135년 사이에 에페수스에서 트리폰이라는 유다인과 종교에 관한 토론을 벌였는데, 그 내용을 토대로 155년에 “트리폰과의 대화”(Dialogue with Trypho the Jew)를 저술하였다. 그는 순회 교사로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며 가르치다가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Antonius Pius, 138~161년 재위)가 있는 로마에 도착해서 그곳에 머물며 자기 집에서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schola)를 세웠다.

성 유스티누스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하는 황제와 집정관에게 항의하는 2편의 “호교론”(Prima Apologia, Secunda Apologia)을 썼다. 그는 그리스도교의 첫 번째 호교론자이며 또 그리스도교에 대한 장문의 글을 남긴 최초의 평신도였다. 그는 크레센스(Crescens)라는 견유학파에 속한 사람과 논쟁을 벌이다가 그의 사주로 인해 로마의 집정관인 유니우스 루스티쿠스(Junius Rusticus)에게 고발되어 다른 6명의 동료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방 신전에 희생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하고 수많은 고문을 당한 후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2세기 호교론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신학자요 철학자이자 교부였다. 그의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에서 4월 14일에 기념했으나 1969년 전례력 개정 이후 6월 1일로 옮겨 기념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이스키리온

 

  • 가톨릭 성인 이름
    Ischyri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이스키리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이쉬리온, 이스치리온.

 

 

이스키리온 자료

성 이스키리온은 이집트의 로마군의 군대 지휘관으로 데키우스 황제 때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다섯 명의 그의 군인들과 함께 말뚝에 찔려 순교하였다.

그는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의 행정장관으로부터 그리스도교 신앙을 버리고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명령을 거부하고 모진 고문 끝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인젠

 

  • 가톨릭 성인 이름
    Inge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인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인게네스, 인겐, 인제네스.

 

 

인젠 자료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감시하던 다섯 명의 군인으로 성 암몬(Ammon), 성 제노(Zeno), 성 프톨레메우스(Ptolemaeus), 성 인겐(또는 인젠), 그리고 나이 많은 베테랑 군인인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있었다.

그들은 한 가난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온갖 고문을 받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해 배교하려고 할 때 표정과 눈빛 그리고 몸짓을 이용해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무관심과 소란 속에서 성 테오필루스가 앞장서서 다른 네 명의 병사들과 함께 용감하게 재판관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0일 목록에서 이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로 옮겨 그들의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제노

 

  • 가톨릭 성인 이름
    Zen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제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제노 자료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감시하던 다섯 명의 군인으로 성 암몬(Ammon), 성 제노, 성 프톨레메우스(Ptolemaeus), 성 인겐(Ingen), 그리고 나이 많은 베테랑 군인인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있었다.

그들은 한 가난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온갖 고문을 받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해 배교하려고 할 때 표정과 눈빛 그리고 몸짓을 이용해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무관심과 소란 속에서 성 테오필루스가 앞장서서 다른 네 명의 병사들과 함께 용감하게 재판관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0일 목록에서 이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로 옮겨 그들의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카프라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Capra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430년경 레렝스

 

 

카프라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프라시오, 가프라시우스, 까쁘라시오, 까쁘라시우스, 카프라시우스, 카프라이스.

 

 

카프라시오 자료

레랭의 성 호노라투스(Honoratus)의 영적 스승이며 지도자였던 분이 바로 신심 깊고 박학한 성 카프라시우스(또는 카프라시오)였다고 한다. 그는 고적한 생활을 위하여 세속적인 모든 것을 물리치고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호노라투스와 그의 동생 베난티우스(Venantius)가 그를 찾았던 사람들 중에서도 가장 어렸음에도 불구하고 카프라시우스는 그들을 알아보고 즉시 완덕의 길을 가르쳤다.

위의 두 형제들이 아브라함처럼 집과 고향을 떠나야 한다는 확신에 도달하였을 때 카프라시우스는 그들과 함께 기꺼이 동방으로 가는데 동의하고 함께 길을 떠났다. 그러나 그들의 건강은 지나친 고행과 굶주림으로 인하여 크게 손상되었다. 그리스의 모돈(Modon)에서 베난티우스는 지쳐 쓰러졌다.

이리하여 두 사람이 프랑스 지방에 도착하였다. 레랭의 황량한 섬에서 그들은 사막의 교부들과 꼭 같은 생활을 시작하였다. 제자들이 모여들자 성 호노라투스는 수도원을 세웠고 그리스도 교회를 통하여 가장 유명한 규칙을 만들었다.

성 카프라시우스는 레랭 수도원의 원장이라고 흔히 불렸는데 그 이유는 그가 실제로 원장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원장이던 성 호노라투스의 영적 지도자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성 호노라투스가 초대원장이고, 그 다음에는 성 막시무스(Maximus)가 승계하였는데 그의 재임 기간 동안에 성 카프라시우스가 운명하였다.

그의 뛰어난 성덕은 리옹(Lyon)의 주교인 성 에우케리우스(Eucherius)와 아를(Arles)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가 공식으로 증언한 바 있다. 그는 카프라이스(Caprai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크레센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rescent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7년 살도

 

 

크레센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끄레쎈씨아노, 끄레쎈씨아누스, 크레센시아누스, 크레센씨아노, 크레센씨아누스, 크레셴시아노, 크레셴시아누스, 크레스켄티아노, 크레스켄티아누스.

 

 

크레센시아노 자료

군인이었던 성 크레스켄티아누스(Crescentianus, 또는 크레센시아노)는 이탈리아 중부 치타디카스텔로(Citta di Castello) 부근 살도에서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러나 그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테스페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Thespe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30년 카파도키아

 

 

테스페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스뻬시오, 떼스뻬시우스, 테스뻬시오, 테스뻬시우스, 테스페시우스.

 

 

테스페시오 자료

성 테스페시우스(또는 테스페시오)는 세베루스 알렉산데르 황제의 박해 때 카파도키아에서 순교하였다. 그의 순교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테오발도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bal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자선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150년 알바

 

 

테오발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발도, 떼오발두스, 테오발두스, 테오발드.

 

 

테오발도 자료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Piemonte) 전역을 통하여 구두 수선공과 짐꾼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는 테오발두스 로제리(Theobaldus Roggeris, 또는 테오발도)는 그의 고향 비코(Vico)와 그가 장사를 하던 알바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원래 좋은 가문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던 그는 갑자기 집안이 기울자, 집안을 다시 일으키려는 마음으로 알바로 가서 구두 수선공으로 새 출발을 다짐했다.

그러나 마음을 돌리고 혼자서 독신서원을 발한 후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로 순례 여행을 하였다. 알바로 돌아오는 길에 그는 곡물과 다른 많은 상품들을 들여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무상으로 나누어 주었다고 한다.

이때 천사들이 그를 도와주었다고 하며, 그가 번 돈의 3분의 2는 항상 가난한 이들의 몫이었다. 죽을 때까지 그는 자기 일에 종사하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자기 몸으로 실행한 인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2. 테오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phi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테오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필로, 떼오필루스, 테오필루스.

 

 

테오필로 자료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감시하던 다섯 명의 군인으로 성 암몬(Ammon), 성 제노(Zeno), 성 프톨레메우스(Ptolemaeus), 성 인겐(Ingen), 그리고 나이 많은 베테랑 군인인 성 테오필루스(또는 테오필로)가 있었다.

그들은 한 가난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온갖 고문을 받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해 배교하려고 할 때 표정과 눈빛 그리고 몸짓을 이용해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무관심과 소란 속에서 성 테오필루스가 앞장서서 다른 네 명의 병사들과 함께 용감하게 재판관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0일 목록에서 이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로 옮겨 그들의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3. 펠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펠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누스.

 

 

펠리노 자료

황제군의 군인이었던 성 펠리누스(또는 펠리노)와 성 그라티아누스(Gratianus)는 데키우스 황제 때에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유해는 976년에 밀라노(Milano) 부근 아로나(Arona)로 옮겨져 안치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4. 포르투나토

 

  • 가톨릭 성인 이름
    Fortuna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400년경 스폴레토

 

 

포르투나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포르투나또, 포르투나뚜스, 포르투나투스.

 

 

포르투나토 자료

이탈리아 움브리아(Umbria) 지방 스폴레토 부근 테리타(Territa)의 본당 사제였던 성 포르투나투스(또는 포르투나토)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는 거의 남아 있지 않다. 하지만 사후에 그는 가난한 이들에 대한 애덕과 기적으로 유명하였다.

한 전설에 의하면 그가 밭을 갈던 중 아주 작은 가치의 동전 두 개를 발견하였다. 일을 마치고 돌아가던 중 한 가난한 사람을 만나자 그는 주저 없이 동전 두 개를 주기로 결정하였다. 그때 갑자기 햇빛이 비치면서 두 개의 동전이 금과 같이 빛났다. 그는 탐욕에 빠지지 않고 얼른 가난한 이에게 동전을 주고 떠났다고 한다.

그가 세상을 떠난 후 스폴레토 지방에서 그에 대한 공경이 시작되었고, 몬테팔코(Montefalco) 근처의 성 포르투나투스 수도원이 그의 이름으로 봉헌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5. 프로쿨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rocu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볼로냐

 

 

프로쿨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쁘로꿀로, 쁘로꿀루스, 프로쿨루스.

 

 

프로쿨로 자료

성 프로쿨루스(또는 프로쿨로)는 로마의 장교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이탈리아의 볼로냐에서 순교하였다. 그는 고대로부터 볼로냐에서 큰 공경을 받아 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6. 프톨레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tolem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년

 

 

프톨레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프똘레마이오스, 프똘레마이우스, 프똘레메오, 프똘레메우스, 프롤레마이우스, 프톨레마이오스, 프톨레메우스, 프톨레미, 프톨로마이오스, 프톨로메오, 프톨로메우스.

 

 

프톨레메오 자료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지역에서 그리스도인들을 감옥에 가두고 감시하던 다섯 명의 군인으로 성 암몬(Ammon), 성 제노(Zeno), 성 프톨레메우스(Ptolemaeus, 또는 프톨레메오), 성 인겐(Ingen), 그리고 나이 많은 베테랑 군인인 성 테오필루스(Theophilus)가 있었다.

그들은 한 가난한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란 이유로 온갖 고문을 받고 신앙을 포기하도록 강요당해 배교하려고 할 때 표정과 눈빛 그리고 몸짓을 이용해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의 무관심과 소란 속에서 성 테오필루스가 앞장서서 다른 네 명의 병사들과 함께 용감하게 재판관 앞으로 나아가 스스로 그리스도교 신자임을 고백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0일 목록에서 이들의 순교 사실을 기록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6월 1일로 옮겨 그들의 순교 사실을 전해주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7. 피르모

 

  • 가톨릭 성인 이름
    Fir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0년

 

 

피르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피르무스.

 

 

피르모 자료

동방의 순교자인 성 피르무스(또는 피르모)는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8. 헤르쿨라노

 

  • 가톨릭 성인 이름
    Herculanu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설교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451년 피에가레

 

 

헤르쿨라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르꿀라노, 헤르꿀라누스, 헤르쿨라누스.

 

 

헤르쿨라노 자료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 근방 피에가레 출신인 헤르쿨라누스(또는 헤르쿨라노)는 15세기의 가장 뛰어난 설교가였다. 그는 사르테아노에 있는 프란치스코회에 들어가 잠시 동안 은수생활 비슷하게 살았으나 사제로 서품되면서부터 설교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가는 곳마다 그는 우리 주님의 수난을 설교하여 청중들의 심금을 울렸고, 자신의 뛰어난 인품으로 그 설교를 뒷받침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개종시켰다. 또한 그는 40일 동안 전혀 아무런 음식도 지니지 않고 다녔고, 먹을 시간이 되면 극히 소량의 빵과 채소만 먹었다. 그는 카스트로노보 수도원에서 운명하였으나 5년 동안 부패되지 않았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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