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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 남자세례명 22가지

피어나네 2023. 9. 5.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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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7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디오니시오, 마르티니아노, 마우로, 막시미아노, 말코, 베르톨드, 세라피온, 세르지오, 아우렐리오, 에클레시오, 요한, 제오르지오, 첼레스티노 1세, 콘스탄티노, 테오발도, 판탈레에몬, 판탈레온, 펠릭스 (니코메디아), 펠릭스 (코르도바), 헤르모크라테, 헤르몰라오, 헤르미포, 총 22분 목록이에요.

 

7월 27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7월 27일 여자세례명 나탈리아, 루치아, 릴리오사, 안투사, 유쿤다, 율리아, 총 6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27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6가지

 

 

 

 

7월 27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디오니시오

  2. 마르티니아노

  3. 마우로

  4. 막시미아노

  5. 말코

  6. 베르톨드

  7. 세라피온

  8. 세르지오

  9. 아우렐리오

  10. 에클레시오

  11. 요한

  12. 제오르지오

  13. 첼레스티노 1세

  14. 콘스탄티노

  15. 테오발도

  16. 판탈레에몬

  17. 판탈레온

  18. 펠릭스 (니코메디아)

  19. 펠릭스 (코르도바)

  20. 헤르모크라테

  21. 헤르몰라오

  22. 헤르미포

 

7월 27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2가지

 

 

1. 디오니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iony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362년경 에페수스

 

 

디오니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니스, 드니,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디오니시오 자료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 도시인 ‘에페수스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성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성 말쿠스(Malchus),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의 이름은 전설의 여러 전승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나지만, 그들은 데키우스(Decius, 249-251 재위) 황제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거의 200년 후에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며 곧 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시인이자 신학자인 사루(Sarugh)의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회원인 바라지네(Varagine)의 복자 야고보(Jacobus)가 “황금 전설”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후 대중적 인기가 많아졌다.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수스에서 태어났다.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수스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어 희생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루카 12,53)라는 말씀처럼.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도 이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며 기도하던 이들이었기에 많은 군중이 그들의 체포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황제 앞에 재출두하기 전까지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한 후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쿠스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을 굶겨 죽이기로 했다. 지방 장관과 두 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2-450년 재위) 황제 재위 30년에 자비로우시며 죽은 이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 에페수스의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쿠스에게 시내에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하며 전날 사 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성 말쿠스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와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쿠스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동굴 앞에 있던 돌무더기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도시까지 오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성문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성문 위에 버젓이 세워진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뒤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그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참으로 에페수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쿠스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내고 빵을 샀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에 놀란 상인은 빵을 사러 온 젊은이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인은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며 그를 보챘다. 성 말쿠스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상인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이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 도시의 마르티누스(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쿠스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쿠스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라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었다. 성 말쿠스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정관은 그 돈이 데키우스 황제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쿠스는 무척 당혹해하며 자신과 동료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수스가 맞는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수스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쿠스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 말쿠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쿠스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두 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꽃피는 장미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나 그들이 부활할 그 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몇 잊힌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이름과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의 7월 27일 목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름은 삭제하고 에페수스의 7인의 거룩한 잠든 이들이 순교한 후 평화로운 쉼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보통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마르티니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362년경 에페수스

 

 

마르티니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니아노, 마르띠니아누스, 마르티니아누스, 마르티니안.

 

 

마르티니아노 자료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 도시인 ‘에페수스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성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성 말쿠스(Malchus),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의 이름은 전설의 여러 전승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나지만, 그들은 데키우스(Decius, 249-251 재위) 황제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거의 200년 후에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며 곧 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시인이자 신학자인 사루(Sarugh)의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회원인 바라지네(Varagine)의 복자 야고보(Jacobus)가 “황금 전설”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후 대중적 인기가 많아졌다.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수스에서 태어났다.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수스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어 희생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루카 12,53)라는 말씀처럼.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도 이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며 기도하던 이들이었기에 많은 군중이 그들의 체포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황제 앞에 재출두하기 전까지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한 후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쿠스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을 굶겨 죽이기로 했다. 지방 장관과 두 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2-450년 재위) 황제 재위 30년에 자비로우시며 죽은 이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 에페수스의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쿠스에게 시내에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하며 전날 사 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성 말쿠스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와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쿠스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동굴 앞에 있던 돌무더기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도시까지 오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성문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성문 위에 버젓이 세워진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뒤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그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참으로 에페수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쿠스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내고 빵을 샀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에 놀란 상인은 빵을 사러 온 젊은이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인은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며 그를 보챘다. 성 말쿠스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상인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이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 도시의 마르티누스(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쿠스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쿠스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라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었다. 성 말쿠스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정관은 그 돈이 데키우스 황제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쿠스는 무척 당혹해하며 자신과 동료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수스가 맞는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수스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쿠스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 말쿠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쿠스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두 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꽃피는 장미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나 그들이 부활할 그 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몇 잊힌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이름과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의 7월 27일 목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름은 삭제하고 에페수스의 7인의 거룩한 잠든 이들이 순교한 후 평화로운 쉼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보통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우로

 

  • 가톨릭 성인 이름
    Mau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7년 비스체글리아

 

 

마우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오로, 마우루스.

 

 

마우로 자료

성 마우루스(또는 마우로)와 성 판탈레에몬(Pantaleemon) 그리고 성 세르기우스(Sergius)는 아드리아해의 비스체글리아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에 대한 그다지 신뢰할만하지 않은 행전에 의하면 성 마우루스는 베들레헴(Bethlehem) 출신으로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비스체글리아의 첫 번째 주교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 비스체글리아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막시미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362년경 에페수스

 

 

막시미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미아누스, 막시미안, 막씨미아노, 막씨미아누스.

 

 

막시미아노 자료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 도시인 ‘에페수스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성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성 말쿠스(Malchus),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의 이름은 전설의 여러 전승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나지만, 그들은 데키우스(Decius, 249-251 재위) 황제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거의 200년 후에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며 곧 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시인이자 신학자인 사루(Sarugh)의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회원인 바라지네(Varagine)의 복자 야고보(Jacobus)가 “황금 전설”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후 대중적 인기가 많아졌다.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수스에서 태어났다.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수스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어 희생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루카 12,53)라는 말씀처럼.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도 이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며 기도하던 이들이었기에 많은 군중이 그들의 체포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황제 앞에 재출두하기 전까지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한 후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쿠스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을 굶겨 죽이기로 했다. 지방 장관과 두 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2-450년 재위) 황제 재위 30년에 자비로우시며 죽은 이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 에페수스의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쿠스에게 시내에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하며 전날 사 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성 말쿠스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와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쿠스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동굴 앞에 있던 돌무더기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도시까지 오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성문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성문 위에 버젓이 세워진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뒤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그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참으로 에페수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쿠스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내고 빵을 샀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에 놀란 상인은 빵을 사러 온 젊은이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인은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며 그를 보챘다. 성 말쿠스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상인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이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 도시의 마르티누스(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쿠스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쿠스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라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었다. 성 말쿠스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정관은 그 돈이 데키우스 황제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쿠스는 무척 당혹해하며 자신과 동료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수스가 맞는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수스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쿠스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 말쿠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쿠스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두 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꽃피는 장미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나 그들이 부활할 그 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몇 잊힌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이름과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의 7월 27일 목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름은 삭제하고 에페수스의 7인의 거룩한 잠든 이들이 순교한 후 평화로운 쉼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보통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말코

 

  • 가톨릭 성인 이름
    Malch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362년경 에페수스

 

 

말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말쿠스.

 

 

말코 자료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 도시인 ‘에페수스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성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성 말쿠스(Malchus),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의 이름은 전설의 여러 전승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나지만, 그들은 데키우스(Decius, 249-251 재위) 황제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거의 200년 후에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며 곧 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시인이자 신학자인 사루(Sarugh)의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회원인 바라지네(Varagine)의 복자 야고보(Jacobus)가 “황금 전설”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후 대중적 인기가 많아졌다.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수스에서 태어났다.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수스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어 희생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루카 12,53)라는 말씀처럼.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도 이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며 기도하던 이들이었기에 많은 군중이 그들의 체포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황제 앞에 재출두하기 전까지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한 후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쿠스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을 굶겨 죽이기로 했다. 지방 장관과 두 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2-450년 재위) 황제 재위 30년에 자비로우시며 죽은 이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 에페수스의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쿠스에게 시내에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하며 전날 사 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성 말쿠스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와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쿠스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동굴 앞에 있던 돌무더기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도시까지 오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성문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성문 위에 버젓이 세워진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뒤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그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참으로 에페수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쿠스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내고 빵을 샀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에 놀란 상인은 빵을 사러 온 젊은이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인은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며 그를 보챘다. 성 말쿠스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상인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이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 도시의 마르티누스(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쿠스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쿠스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라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었다. 성 말쿠스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정관은 그 돈이 데키우스 황제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쿠스는 무척 당혹해하며 자신과 동료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수스가 맞는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수스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쿠스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 말쿠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쿠스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두 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꽃피는 장미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나 그들이 부활할 그 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몇 잊힌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이름과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의 7월 27일 목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름은 삭제하고 에페수스의 7인의 거룩한 잠든 이들이 순교한 후 평화로운 쉼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보통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베르톨드

 

  • 가톨릭 성인 이름
    Berthol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090-1142년 가르스텐

 

 

베르톨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르톨도, 베르톨두스.

 

 

베르톨드 자료

콩스탕스(Constance) 호수 연안에서 태어난 베르톨드는 아내와 사별한 해인 30세 때에 수도자가 되었고, 블랙 포레스트의 괴트웨이그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그는 정치적 압제를 피하여 오는 사람들과 순례자들을 위하여 구호소를 세우는 한편, 이곳을 중심으로 가난 구제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많은 존경을 받았다. 베르톨드는 수도자의 일상생활을 기도와 공부 그리고 수도원 일 등으로 나누어 체계적으로 지도하여 높은 성덕을 추구토록 하였는데,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 자신은 공식적인 일정 외에 자발적인 기도와 보속을 행함과 아울러 육류와 어류는 일체 먹지 않고, 밤에는 개인기도로 거의 밤을 새웠다.

주민들이 끊임없이 몰려와서 기도와 축복을 간청하였는데, 특히 그에게 고해성사를 보려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는 수도자와 평신도의 원장이라고 불렸다. 그는 베르톨두스(Bertold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세라피온

 

  • 가톨릭 성인 이름
    Serapi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362년경 에페수스

 

 

세라피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라피언, 쎄라피온.

 

 

세라피온 자료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 도시인 ‘에페수스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성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성 말쿠스(Malchus),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의 이름은 전설의 여러 전승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나지만, 그들은 데키우스(Decius, 249-251 재위) 황제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거의 200년 후에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며 곧 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시인이자 신학자인 사루(Sarugh)의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회원인 바라지네(Varagine)의 복자 야고보(Jacobus)가 “황금 전설”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후 대중적 인기가 많아졌다.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수스에서 태어났다.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수스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어 희생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루카 12,53)라는 말씀처럼.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도 이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며 기도하던 이들이었기에 많은 군중이 그들의 체포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황제 앞에 재출두하기 전까지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한 후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쿠스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을 굶겨 죽이기로 했다. 지방 장관과 두 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2-450년 재위) 황제 재위 30년에 자비로우시며 죽은 이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 에페수스의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쿠스에게 시내에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하며 전날 사 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성 말쿠스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와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쿠스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동굴 앞에 있던 돌무더기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도시까지 오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성문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성문 위에 버젓이 세워진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뒤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그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참으로 에페수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쿠스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내고 빵을 샀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에 놀란 상인은 빵을 사러 온 젊은이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인은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며 그를 보챘다. 성 말쿠스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상인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이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 도시의 마르티누스(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쿠스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쿠스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라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었다. 성 말쿠스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정관은 그 돈이 데키우스 황제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쿠스는 무척 당혹해하며 자신과 동료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수스가 맞는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수스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쿠스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 말쿠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쿠스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두 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꽃피는 장미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나 그들이 부활할 그 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몇 잊힌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이름과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의 7월 27일 목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름은 삭제하고 에페수스의 7인의 거룩한 잠든 이들이 순교한 후 평화로운 쉼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보통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세르지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erg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7년 비스체글리아

 

 

세르지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세르기예프, 세르기오, 세르기우스, 세르지우스.

 

 

세르지오 자료

성 마우루스(Maurus)와 성 판탈레에몬(Pantaleemon) 그리고 성 세르기우스(또는 세르지오)는 아드리아해의 비스체글리아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에 대한 그다지 신뢰할만하지 않은 행전에 의하면 성 마우루스는 베들레헴(Bethlehem) 출신으로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비스체글리아의 첫 번째 주교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 비스체글리아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아우렐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urel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52년 르도바

 

 

아우렐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우렐리우스.

 

 

아우렐리오 자료

성 아우렐리우스(또는 아우렐리오)와 성녀 나탈리아(Natalia)는 에스파냐가 무슬림의 통치를 받던 시절 압드 알 라흐만 2세(Abd ar-Rahman II) 왕이 일으킨 박해 중에 순교한 코르도바의 순교자들이다.

무어인 부친과 에스파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성 아우렐리우스는 비밀 신자였는데 그의 아내가 성녀 나탈리아이다. 그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친척 성 펠릭스(Felix)와 가까운 사이였다. 성 펠릭스도 나중에 신자로 개종하여 신자 아내 성녀 릴리오사(Liliosa)를 얻었다.

이들 네 사람은 그들의 신앙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두 부인들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슬람교의 배교자로 낙인찍혀 체포되어 참수당했다. 그들이 참수당할 때 예언자 마호메트를 공공연히 비난했던 부제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은수자도 함께 처형당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에클레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ccle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32년 라벤나

 

 

에클레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끌레시오, 에끌레시우스, 에클레시우스.

 

 

에클레시오 자료

성 에클레시우스(또는 에클레시오)는 521년부터 532년까지 이탈리아 라벤나의 주교였다. 그는 라벤나의 산비탈레(San Vitale) 성당 건립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그곳에는 그의 모습이 모자이크로 새겨져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362년경 에페수스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 도시인 ‘에페수스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성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성 말쿠스(Malchus),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의 이름은 전설의 여러 전승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나지만, 그들은 데키우스(Decius, 249-251 재위) 황제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거의 200년 후에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며 곧 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시인이자 신학자인 사루(Sarugh)의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회원인 바라지네(Varagine)의 복자 야고보(Jacobus)가 “황금 전설”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후 대중적 인기가 많아졌다.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수스에서 태어났다.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수스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어 희생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루카 12,53)라는 말씀처럼.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도 이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며 기도하던 이들이었기에 많은 군중이 그들의 체포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황제 앞에 재출두하기 전까지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한 후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쿠스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을 굶겨 죽이기로 했다. 지방 장관과 두 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2-450년 재위) 황제 재위 30년에 자비로우시며 죽은 이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 에페수스의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쿠스에게 시내에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하며 전날 사 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성 말쿠스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와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쿠스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동굴 앞에 있던 돌무더기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도시까지 오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성문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성문 위에 버젓이 세워진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뒤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그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참으로 에페수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쿠스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내고 빵을 샀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에 놀란 상인은 빵을 사러 온 젊은이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인은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며 그를 보챘다. 성 말쿠스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상인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이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 도시의 마르티누스(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쿠스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쿠스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라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었다. 성 말쿠스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정관은 그 돈이 데키우스 황제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쿠스는 무척 당혹해하며 자신과 동료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수스가 맞는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수스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쿠스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 말쿠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쿠스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두 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꽃피는 장미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나 그들이 부활할 그 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몇 잊힌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이름과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의 7월 27일 목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름은 삭제하고 에페수스의 7인의 거룩한 잠든 이들이 순교한 후 평화로운 쉼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보통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제오르지오

 

  • 가톨릭 성인 이름
    Georg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52년 코르도바

 

 

제오르지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오르그, 게오르기오, 게오르기우스, 제오르지우스, 조지, 호르헤.

 

 

제오르지오 자료

성 아우렐리우스(Aurelius)와 성녀 나탈리아(Natalia)는 에스파냐가 무슬림의 통치를 받던 시절 압드 알 라흐만 2세(Abd ar-Rahman II) 왕이 일으킨 박해 중에 순교한 코르도바의 순교자들이다.

무어인 부친과 에스파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성 아우렐리우스는 비밀 신자였는데 그의 아내가 성녀 나탈리아이다. 그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친척 성 펠릭스(Felix)와 가까운 사이였다.

성 펠릭스도 나중에 신자로 개종하여 신자 아내 성녀 릴리오사(Liliosa)를 얻었다. 이들 네 사람은 그들의 신앙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두 부인들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슬람교의 배교자로 낙인찍혀 체포되어 참수당했다. 그들이 참수당할 때 예언자 마호메트를 공공연히 비난했던 부제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또는 제오르지오) 은수자도 함께 처형당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첼레스티노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Celestine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432년

 

 

첼레스티노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셀레스틴, 첼레스띠노, 첼레스띠누스, 첼레스티누스, 켈레스티노, 켈레스티누스, 코일레스티노, 코일레스티누스.

 

 

첼레스티노 1세 자료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에서 출생한 성 코일레스티누스(Coelestinus, 또는 첼레스티노)는 로마(Roma)의 대부제였다가 422년 9월 10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펠라기우스주의(Pelagianism)와 싸우는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의 강력한 지지자였고, 그와 함께 일한 히포(Hippo)의 성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8월 28일)의 친구였다.

네스토리우스 이단들의 강경한 무리들 때문에 그는 430년에 로마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이단을 단죄하였고, 네스토리우스(Nestorius)에게는 자신의 이단적인 가르침을 취소하지 않으면 파문하겠다고 통보하였으며, 431년에는 네스토리우스파를 공식 단죄한 에페수스(Ephesus) 공의회에 3명의 교황사절을 파견하였다.

그는 펠라기우스파를 반박하는 글을 썼고, 팔라디우스(Palladius)를 축성하여 아일랜드의 초대주교로 파견하여 아일랜드인들을 개종시키도록 하였다. 어떤 학자들은 그가 성 파트리키우스(Patricius, 3월 17일)를 파견했으리라 믿고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다.

그의 축일을 4월 6일에 지내기도 하는데, 이는 프리스킬라(Priscilla) 카타콤바에 있던 성인의 유해를 로마(Roma)의 성녀 프락세데스(Praxedes) 성당으로 이장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콘스탄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Constantin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362년경 에페수스

 

 

콘스탄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꼰스딴띠노, 꼰스딴띠누스, 콘스탄시오, 콘스탄시우스, 콘스탄티누스, 콘스탄티오, 콘스탄티우스, 콘스탄틴.

 

 

콘스탄티노 자료

소아시아 지방 서해안 도시인 ‘에페수스의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성 막시미아누스(Maximianus), 성 말쿠스(Malchus), 성 마르티니아누스(Martinianus),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 성 요한(Joannes), 성 세라피온(Serapion), 성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의 이름은 전설의 여러 전승에 따라 다르게도 나타나지만, 그들은 데키우스(Decius, 249-251 재위) 황제의 통치 때 동굴에 감금당했으나 거의 200년 후에 살아 있는 채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깨어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했으며 곧 성인으로 공경받기 시작했다. 장시간의 수면은 신화와 민담의 공통된 주제로 그리스도교적 색채를 머금고 있는 이 이야기는 이미 6세기에 널리 유포되었다. 

가장 신뢰할 만한 기록은 500년경에 시인이자 신학자인 사루(Sarugh)의 야고보(Jacobus)가 시리아어로 남긴 기록이다. 그러나 중세 유럽에서 도미니코회 회원인 바라지네(Varagine)의 복자 야고보(Jacobus)가 “황금 전설” 안에 그들의 이야기를 포함한 후 대중적 인기가 많아졌다.

7인의 잠든 자들은 에페수스에서 태어났다. 데키우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처형하러 에페수스에 와서 도시 중앙에 신전을 짓고, 모든 사람을 불러 모아 자신과 함께 우상에게 희생 제사를 올려야 한다는 명령을 내렸다. 

그는 모든 그리스도인을 찾아내어 희생 제사를 올리든지 아니면 죽음에 이르는 고통을 경험하든지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일로 인해 고통이 너무나 두려웠던 나머지 친구가 친구를 배신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밀고하고, 아버지가 아들과 인연을 끊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마치 “아버지가 아들을 반대하고 아들이 아버지를 반대할 것이며 어머니가 딸을 반대하고 딸이 어머니를 반대할 것이며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반대하고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반대하여 갈라질 것이다.”(루카 12,53)라는 말씀처럼.

7인의 잠든 자로 불리는 7명의 그리스도인도 이때 체포되었다. 그들은 우상 앞에서 희생 제물 바치기를 거부하는 데 앞장선 인물들로 자신들의 집에 숨어 단식하며 기도하던 이들이었기에 많은 군중이 그들의 체포에 대해 매우 슬퍼하였다. 

데키우스 황제에게 고발당한 후 그들은 신심이 매우 깊은 신앙인임이 드러났다. 그들에게는 황제 앞에 재출두하기 전까지 배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그 와중에 자신들의 재산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고, 모여서 회의한 후 첼리온 산(Mount Celion)에 올라가 비밀리에 긴 시간을 지냈다. 그들은 서로를 돌보고 봉사하며, 도시로 내려올 때면 걸인 복장을 하고 내려오곤 했다.

데키우스 황제가 돌아와 그들을 소환하라는 명령을 내리자, 그들을 섬기며 식사와 음료를 대접하던 성 말쿠스는 몹시 무서워하며 돌아와 황제의 광포함과 광기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그들은 모두 두려움에 빠졌다. 그런데 갑자기 그들 모두 하느님의 뜻대로 깊은 잠에 빠졌고, 다음 날 아침 사람들이 그들을 찾았지만 발견할 수 없었다. 

데키우스 황제는 그들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다가 그들이 살던 동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봉인하여 그들을 굶겨 죽이기로 했다. 지방 장관과 두 명의 신자인 테오도루스(Theodorus)와 루피누스(Rufinus)는 그들의 순교록을 써서 돌 사이에 끼워 놓았다.

데키우스 황제가 사망하고 오랜 세월이 지난 다음 테오도시우스 2세(Theodosius II, 402-450년 재위) 황제 재위 30년에 자비로우시며 죽은 이에게 부활의 희망을 주시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들은 다시 깨어나게 되었다. 

한 에페수스의 시민이 버려지고 별 쓸모없는 산에 목동을 위해 마구간을 만들고자 했다. 그리고 마구간을 만들던 한 벽돌공이 우연히 동굴을 열게 되었고, 그 순간 그들은 잠에서 깨어 서로 인사를 하며 전날의 무서운 기억을 떠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겨우 하룻밤 지난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그들의 종이었던 성 말쿠스에게 시내에 가서 빵을 사 오라고 하며 전날 사 왔던 양보다 조금 더 사 오라고 했다. 그리고 황제의 명령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오라고 했다. 

그래서 성 말쿠스는 5실링을 가지고 동굴을 나와 동굴 앞에 있던 벽돌공들을 보고 그들을 축복해 주었다. 그러나 성 말쿠스는 다른 생각에 빠져 있어 동굴 앞에 있던 돌무더기에 대해 별다른 느낌을 갖지 못했다.

도시까지 오면서 조금씩 이상한 느낌이 들었던 그는 성문에 도착한 순간 완전히 아연실색했다. 성문 위에 버젓이 세워진 십자가를 보았기 때문이다. 

바로 다른 성문으로 가보았지만, 그곳에도 십자가가 달려 있었고, 모든 성문마다 십자가가 달려 있고 도시 전체가 십자가로 장식되어 있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다. 그는 잠시 자신을 진정시킨 뒤 얼굴을 숨기고 도시 안으로 들어갔다. 빵 가게에 도착했을 때 사람들이 하느님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 것을 들은 그는 머뭇머뭇하며 말했다. 

“어제는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두려워하더니 어떻게 오늘은 모든 이가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까? 이 도시는 다르게 지어진 에페수스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이 도시가 참으로 에페수스라는 말을 듣고 자신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성 말쿠스는 동료들에게 돌아가기 위해 돈을 내고 빵을 샀다. 그런데 오래된 동전에 놀란 상인은 빵을 사러 온 젊은이가 보물을 발견했다고 외쳤다. 그리고 옛 황제들의 보물을 보여주면 빵과 돈을 주겠다고 말하며 어디서 왔는지 물었다. 

상인은 친구가 되어 비밀을 지키겠다며 그를 보챘다. 성 말쿠스는 너무나 놀라 공포에 질려 뭐라고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가 말을 하지 않자 상인과 주변에서 몰려온 이들이 그의 목을 끈으로 묶어 도시 가운데로 끌고 갔다. 

그 도시의 마르티누스(Martinus) 주교와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집정관인 안티파테르는 이 소식을 듣고 성 말쿠스와 그가 가지고 있던 돈을 자신들에게 가져오라고 했다.

성당으로 소환된 성 말쿠스는 자신이 데키우스 황제에게 넘겨지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주교와 집정관은 돈을 보고 놀라 알려지지 않은 이 보물을 어디서 발견했는지 물었다. 성 말쿠스는 그 돈은 어디서 발견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가문과 재산에서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정관은 그 돈이 데키우스 황제 통치 초기의 것으로 현재 통용되는 것과 전혀 다르다며 믿으려 하지 않았다. 성 말쿠스는 무척 당혹해하며 자신과 동료들은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로부터 도망쳐 있으며, 만약 이 도시가 에페수스가 맞는다면 어제 황제가 에페수스로 들어왔다고 대답했다. 

주교는 한참을 생각한 후 주님께서 이 젊은이를 통해 무엇인가 보여주고자 하시는 것으로 생각했다. 성 말쿠스는 “저를 따라오십시오. 첼리온 산에 있는 나의 동료들을 보여주겠습니다. 그리고 믿으십시오. 우리 모두는 데키우스 황제의 면전에서 도망쳐왔다는 것만은 확실한 사실입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 말쿠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고 도시의 많은 군중이 그들의 뒤를 따랐다. 성 말쿠스가 동굴에 먼저 들어가고 주교가 뒤따라 들어갔다. 그리고 동굴을 막았던 돌들 사이에서 은으로 봉인된 두 개의 편지를 발견했다. 주교는 함께 온 이들을 불러 모아 놓고 그들 앞에서 편지의 내용을 읽었다. 

모든 이들이 놀라며 당황스러워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굴 안에 앉아있는 성인들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꽃피는 장미 같았으며 무릎을 꿇고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고 있었다. 성 막시미아누스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에 관해 설명하며 부활을 굳게 믿는다면 영원히 살 것이라 하고는 다른 동료들과 함께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맡겨드리고 숨을 거두었다. 

그날 밤 성인들은 황제의 꿈에 나타나 그들이 부활할 그 날까지 누워있을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래서 황제는 동굴을 진귀한 돌로 아름답게 꾸미고 귀한 보물로 그들의 무덤을 장식하였다.

이 이야기는 몇몇 잊힌 묘소를 발굴하던 중 “주님 안에서 잔다”라는 용어를 오해한 데서 나온 이야기일 가능성이 크다. 아니면 육신의 부활에 대한 논쟁과 연관되어 기록된 신심 깊은 가공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 영웅들은 성인으로 추앙되었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 이 성인들은 매우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이 발견되었던 동굴은 순례자들에게 유명한 장소가 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큰 석관에 담겨 프랑스의 마르세유(Marseille)로 옮겨져 성 빅토르(Victor) 성당에 안장되어 오늘날까지 보존되고 있다.

바로니우스(Baronius)는 이 이야기의 진정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했지만, 그들의 이름과 축일은 옛 “로마 순교록”의 7월 27일 목록에 의해 보존되었다.

그러나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이름은 삭제하고 에페수스의 7인의 거룩한 잠든 이들이 순교한 후 평화로운 쉼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보통 동굴에서 잠들어 있는 일곱 명의 젊은이들로 묘사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테오발도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bal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247년 마를리

 

 

테오발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떼오발도, 떼오발두스, 테오발두스, 테오발드.

 

 

테오발도 자료

프랑스에서도 유명한 몽모랑시(Montmorency) 가문의 후손인 성 테오발두스(Theobaldus, 또는 테오발도)는 마를리 성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 무샤르드는 그에게 가문에 걸맞는 군인 교육을 시켰고, 얼마 동안은 궁성으로 보내어 견문을 넓히도록 안배하였다. 그러나 테오발두스는 이 모든 일보다도 은둔생활에 뜻을 드러내면서 기도와 고행으로 지냈다. 

그래서 그는 1220년에 보-드-세르니(Vaux-de-Cernay)에 있는 시토회에 들어갔고, 5년 뒤에는 원장이 되었다. 그는 모든 형제들의 진정한 종으로서 처신하였으며 절대 청빈을 지킨 것으로 유명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판탈레에몬

 

  • 가톨릭 성인 이름
    Pantaleem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17년 비스체글리아

 

 

판탈레에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빤딸레에몬, 판딸레에몬.

 

 

판탈레에몬 자료

성 마우루스(Maurus)와 성 판탈레에몬 그리고 성 세르기우스(Sergius)는 아드리아해의 비스체글리아에서 순교자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들에 대한 그다지 신뢰할만하지 않은 행전에 의하면 성 마우루스는 베들레헴(Bethlehem) 출신으로 사도 베드로(Petrus)에 의해 비스체글리아의 첫 번째 주교로 파견되었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트라야누스 황제 때에 비스체글리아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판탈레온

 

  • 가톨릭 성인 이름
    Pantale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의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판탈레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빤딸레에몬, 빤딸레온, 판딸레에몬, 판딸레온, 판탈레에몬.

 

 

판탈레온 자료

성 판탈레온이 성 판탈레에몬(Pantaleemon)으로도 알려진 이유는 그가 그곳에서 살고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이교도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 에우불라(Eubula)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사가 되었고 박해를 받을 때까지 궁중의 방탕한 생활을 즐겼던 인물이었다.

성 판탈레온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되찾게 된 계기는 그의 스승 성 헤르몰라우스(Hermolaus) 신부 덕분이었다. 이 스승은 자신의 의술을 가난한 이를 위한 인술이 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꾸준히 도왔기 때문이다.

303년 흑해 근방 니코메디아(Nicomedi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 Izmit)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거세게 일어날 때, 그는 다른 동료 의사의 고발에 의해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자기 스승 헤르몰라우스와 그의 형제인 성 헤르미푸스(Hermippus) 그리고 성 헤르모크라테(Hermocrates)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사형 언도를 받았고 성 판탈레온은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판탈레온은 동방 교회의 최고 순교자이자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축일에는 이 성인의 피가 용해되는데, 이런 현상은 나폴리(Napoli)에서 일어나는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9월 19일)와 같은 경우라고 한다. 성 판탈레온은 성 코스마(Cosmas, 9월 26일)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9월 26일)와 함께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펠릭스 (니코메디아)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니코메디아

 

 

펠릭스 (니코메디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니코메디아) 자료

로마 순교록은 성 펠릭스와 성녀 율리아(Julia) 그리고 성녀 유쿤다(Jucunda)를 이탈리아 남부 놀라(Nola)의 순교자라고 잘못 기록하고 있다. 이는 아마도 단순히 성 펠릭스를 위해 놀라에 세워진 성당 축성 기념일을 참조한 것 같다. 보다 오래된 자료에는 그들이 소아시아 지방 니코메디아에서 순교한 것으로 되어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펠릭스 (코르도바)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x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852년 코르도바

 

 

펠릭스 (코르도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체.

 

 

펠릭스 (코르도바) 자료

성 아우렐리우스(Aurelius)와 성녀 나탈리아(Natalia)는 에스파냐가 무슬림의 통치를 받던 시절 압드 알 라흐만 2세(Abd ar-Rahman II) 왕이 일으킨 박해 중에 순교한 코르도바의 순교자들이다.

무어인 부친과 에스파냐 어머니 사이에 태어난 성 아우렐리우스는 비밀 신자였는데 그의 아내가 성녀 나탈리아이다. 그는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친척 성 펠릭스와 가까운 사이였다. 성 펠릭스도 나중에 신자로 개종하여 신자 아내 성녀 릴리오사(Liliosa)를 얻었다.

이들 네 사람은 그들의 신앙을 전혀 숨기지 않았고, 두 부인들은 얼굴을 수건으로 가리지도 않았다. 그들은 이슬람교의 배교자로 낙인찍혀 체포되어 참수당했다. 그들이 참수당할 때 예언자 마호메트를 공공연히 비난했던 부제 성 게오르기우스(Georgius) 은수자도 함께 처형당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헤르모크라테

 

  • 가톨릭 성인 이름
    Hermocrat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헤르모크라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르모끄라떼스, 헤르모크라테스.

 

 

헤르모크라테 자료

성 판탈레온(Pantaleon)이 성 판탈레에몬(Pantaleemon)으로도 알려진 이유는 그가 그곳에서 살고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이교도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 에우불라(Eubula)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사가 되었고 박해를 받을 때까지 궁중의 방탕한 생활을 즐겼던 인물이었다.

성 판탈레온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되찾게 된 계기는 그의 스승 성 헤르몰라우스(Hermolaus) 신부 덕분이었다. 이 스승은 자신의 의술을 가난한 이를 위한 인술이 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꾸준히 도왔기 때문이다.

303년 흑해 근방 니코메디아(Nicomedi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 Izmit)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거세게 일어날 때, 그는 다른 동료 의사의 고발에 의해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자기 스승 헤르몰라우스와 그의 형제인 성 헤르미푸스(Hermippus) 그리고 성 헤르모크라테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사형 언도를 받았고 성 판탈레온은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판탈레온은 동방 교회의 최고 순교자이자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축일에는 이 성인의 피가 용해되는데, 이런 현상은 나폴리(Napoli)에서 일어나는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9월 19일)와 같은 경우라고 한다. 성 판탈레온은 성 코스마(Cosmas, 9월 26일)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9월 26일)와 함께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헤르몰라오

 

  • 가톨릭 성인 이름
    Hermola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헤르몰라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르몰라우스.

 

 

헤르몰라오 자료

성 판탈레온(Pantaleon)이 성 판탈레에몬(Pantaleemon)으로도 알려진 이유는 그가 그곳에서 살고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이교도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 에우불라(Eubula)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사가 되었고 박해를 받을 때까지 궁중의 방탕한 생활을 즐겼던 인물이었다.

성 판탈레온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되찾게 된 계기는 그의 스승 성 헤르몰라우스(또는 헤르몰라오) 신부 덕분이었다. 이 스승은 자신의 의술을 가난한 이를 위한 인술이 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꾸준히 도왔기 때문이다.

303년 흑해 근방 니코메디아(Nicomedi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 Izmit)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거세게 일어날 때, 그는 다른 동료 의사의 고발에 의해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자기 스승 헤르몰라우스와 그의 형제인 성 헤르미푸스(Hermippus) 그리고 성 헤르모크라테(Hermocrates)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사형 언도를 받았고 성 판탈레온은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판탈레온은 동방 교회의 최고 순교자이자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축일에는 이 성인의 피가 용해되는데, 이런 현상은 나폴리(Napoli)에서 일어나는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9월 19일)와 같은 경우라고 한다. 성 판탈레온은 성 코스마(Cosmas, 9월 26일)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9월 26일)와 함께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2. 헤르미포

 

  • 가톨릭 성인 이름
    Hermipp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헤르미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르미뽀, 헤르미뿌스, 헤르미푸스, 헤르밉포, 헤르밉푸스.

 

 

헤르미포 자료

성 판탈레온(Pantaleon)이 성 판탈레에몬(Pantaleemon)으로도 알려진 이유는 그가 그곳에서 살고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원래 이교도의 집안에서 태어났으나 어머니 에우불라(Eubula)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그는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의사가 되었고 박해를 받을 때까지 궁중의 방탕한 생활을 즐겼던 인물이었다.

성 판탈레온이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을 되찾게 된 계기는 그의 스승 성 헤르몰라우스(Hermolaus) 신부 덕분이었다. 이 스승은 자신의 의술을 가난한 이를 위한 인술이 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 소유물을 팔아서 가난하고 버림받은 이들을 꾸준히 도왔기 때문이다. 

303년 흑해 근방 니코메디아(Nicomedia, 오늘날 터키의 이즈미트, Izmit)에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거세게 일어날 때, 그는 다른 동료 의사의 고발에 의해 그리스도인임이 발각되어 자기 스승 헤르몰라우스와 그의 형제인 성 헤르미푸스(또는 헤르미포) 그리고 성 헤르모크라테(Hermocrates)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모두 사형 언도를 받았고 성 판탈레온은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 판탈레온은 동방 교회의 최고 순교자이자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서 공경을 받는다. 그의 축일에는 이 성인의 피가 용해되는데, 이런 현상은 나폴리(Napoli)에서 일어나는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 9월 19일)와 같은 경우라고 한다. 성 판탈레온은 성 코스마(Cosmas, 9월 26일)와 성 다미아누스(Damianus, 9월 26일)와 함께 의사들의 수호성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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