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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남자세례명 14가지

피어나네 2023. 9. 6.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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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라자로, 루포 (주교), 루포 (순교자), 빌리암, 심플리치오, 안토니노, 에우제니오, 올라보, 우르바노 2세, 칼리니코, 테오도로, 파우스티노 (증거자), 파우스티노 (순교자), 프로스페르, 총 13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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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29일 여자세례명 루칠라, 마르타, 마리아, 비아트릭스, 세라피나, 플로라, 총 6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7월 2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7월 29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라자로

  2. 루포 (주교)

  3. 루포 (순교자)

  4. 빌리암

  5. 심플리치오

  6. 안토니노

  7. 에우제니오

  8. 올라보

  9. 우르바노 2세

  10. 칼리니코

  11. 테오도로

  12. 파우스티노 (증거자)

  13. 파우스티노 (순교자)

  14. 프로스페르

 

7월 2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4가지

 

 

1. 라자로

 

  • 가톨릭 성인 이름
    Laza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약인물, 예수의 제자,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 베타니아

 

 

라자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나자로, 나자루스, 라자루스.

 

 

라자로 자료

요한 복음 11~12장에 의하면 성 라자루스(또는 라자로)는 예루살렘 부근 베타니아에 살던 성녀 마르타(Martha)와 성녀 마리아(Maria)의 오빠로서 예수님의 친구였고, 병으로 인해 죽은 뒤 무덤에 있다가 예수님에 의해 다시 살아난 사람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된 성 라자루스를 소생시키기 전에 성녀 마르타 앞에서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11,25-26)라고 선포하셨다. 그리고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11,43)라는 말씀으로 죽었던 성 라자루스를 되살려주셨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고, 수석 사제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성 라자루스까지 죽이기로 결의하였다(12,10). 성 라자루스는 파스카 축제 엿새 전에 베타니아에서 열린 예수님을 위한 잔치에 참석해 예수님과 더불어 식탁에 앉았던 것으로 나타난다(12,1-2). 그러나 그 외에 신약성경 안에서 죽음에서 소생한 성 라자루스의 행적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다.

프랑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성 라자루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고 부활 · 승천하신 후 여동생인 성녀 마르타와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 그리고 막시무스(Maximus) 및 다른 동료들과 함께 박해를 피해 유다 땅을 떠나 노 없는 배를 타고 표류하다가 프랑스 남서부 프로방스(Provence) 지방에 도착했다. 

그들은 그 지방에 복음서를 전달하고 열정적으로 복음을 선포해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고, 성 라자루스는 마르세유(Marseilles)의 초대 주교가 되어 활동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하지만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체포되어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다른 전설에 의하면 그는 여동생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다가 기적적으로 키프로스(Cyprus)에 도착해 키티온(Kition) 또는 라마카(Lamaka)의 주교로서 30년을 사목하다가 그곳에서 선종했다고 한다. 

또 다른 전설에 따르면 성 라자루스와 그의 누이들은 시리아로 갔고, 그의 유해는 후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로 이장되었고 많은 성당이 그를 기념해 세워졌다고 한다. 이렇듯 소생 이후 그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런데 프랑스 전승에는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 이후 그리스도의 부활을 처음 목격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Maria Magdalena, 7월 22일)와 주님께 용서받은 죄 많은 여자(루카 7,36-50)와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를 동일 인물로 보던 전통이 반영되어 있다. 

실제로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2일 목록에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에 대해 예수님께서 일곱 마귀를 쫓아주셨고 부활의 첫 목격 증인이 된 인물로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했고, 7월 29일 목록에서 성녀 마르타에 대해서는 구세주를 환대한 집주인으로 성녀 마리아 막달레나와 성 라자루스와 남매 사이로 프랑스 남동부 타라스콩(Tarascon)에서 선종한 것으로 기록하였다. 

이렇게 베타니아의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하였다. 성 라자루스는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로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녀 마르타, 성녀 마리아, 성 라자로 기념일’을 7월 29일로 정하고, 기존의 로마 보편 전례력 7월 29일에 기념하던 ‘성녀 마르타 기념일’을 대체하기로 한 교황청 경신성사성의 교령(2021년 1월 26일)을 승인 확정했다. 그동안 서방 교회 전통에서 성녀 마리아의 신원이 분명하지 않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로마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7월 29일에 성녀 마르타 기념일만 수록했었다.

성 라자루스는 로마 보편 전례력에서는 빠졌지만, 옛 “로마 순교록”의 12월 17일 목록에서 주님에 의해 죽음에서 소생한 인물이자 주교로서 프랑스의 마르세유에서 선종했다고 소개하며 기념해 왔었다.

이번 교령은 최신 “로마 순교록”의 연구 결과와 일부 지역 전례력에서 이미 3남매를 같은 날 함께 기념해 온 사실 등을 근거로 7월 29일을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함께 기념하는 날로 변경 · 확정한 것이다.

그러면서 “주 예수님은 베타니아의 집에서 마르타, 마리아, 라자로의 가족 정신과 우애를 경험하셨고, 이런 까닭에 요한 복음은 예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다고 말한다. 마르타는 예수님께 너그러이 환대를 베풀었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온순하게 경청했으며, 라자로는 죽음을 굴복시키신 분의 명령으로 무덤에서 즉시 나왔다.”라고 3남매의 복음적 증거를 강조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루포 (주교)

 

  • 가톨릭 성인 이름
    Lup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83-478년 트루아

 

 

루포 (주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뢰, 루, 루뽀, 루뿌스, 루포스, 루푸스.

 

 

루포 (주교) 자료

성 루푸스(또는 루포)는 4세기 말경 프랑스 북동부에 있는 툴(Toul)에서 상류 가정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려서 세례를 받고 훌륭한 교육을 받으며 성장한 성 루푸스는 젊어서 변호사가 되었다. 그는 아를(Arles)의 성 힐라리우스(Hilarius, 5월 5일) 주교의 여동생인 피메니올라(Pimeniola)와 결혼하여 7년을 살았으나, 하느님을 섬기려는 열망을 이길 길이 없어서 서로 합의하고 헤어졌다. 

성 루푸스는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뒤 프랑스 남동부 칸(Cannes) 앞바다의 황량한 섬(오늘날의 생토노라<Saint-Honorat> 섬)에 성 호노라투스(Honoratus, 1월 16일)가 세운 레랭(Lerins) 수도원으로 가서 그의 지도를 받았다. 아내도 수녀원에 들어갔다. 

성 루푸스는 426년에 트루아의 주교로 임명되었는데, 주교직을 수행하면서도 겸손 · 고행 · 청빈 등 수도자의 기본적 자세를 조금도 흐트러트리지 않아 큰 존경을 받았다. 그는 극히 검소한 의복을 입고 나무판자 위에서 잠을 잤으며, 개인 기도를 바치는 시간이 많았고, 거의 매일 단식을 실천했다고 한다.

429년에 오세르(Auxerre)의 성 게르마누스(Germanus, 7월 31일)는 영국 주교들의 요청으로 펠라기우스 이단과 싸우기 위하여 영국으로 갈 때 성 루푸스를 자신과 동행하도록 했다. 이들의 파견은 교황 성 코일레스티누스 1세(Coelestinus I, 4월 6일)의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은 영국으로 가는 도중 나중에 성녀가 된 어린 시절의 성녀 제노베파(Genovefa, 1월 3일)를 만나 신앙 성숙을 위해 노력하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두 주교는 기도와 설교 그리고 기적을 통해 펠라기우스 이단의 오류를 바로잡고자 노력한 후 다음 해 부활절 직후 갈리아 지방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공로 때문에 성 시도니우스 아폴리나리스(Sidonius Apollinaris, 8월 21일)는 성 루푸스를 이렇게 칭송하였다. 

“사제 중의 사제요, 주교 중의 주교요, 프랑스 지방의 최고 성직자이며, 윤리의 기준이고, 진리의 기둥이며, 하느님의 친구이고,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대리자이다.”

451년 그는 훈족(Huns)의 아틸라(Attila)로부터 트루아를 기적적으로 보호한 것으로 여겨지고, 마귀 들린 소녀와 중풍 병자 등을 치유하는 여러 기적을 행한 것으로도 알려졌다. 만년에 그는 트루아 인근의 산중으로 들어가 은수자로 생활하며 관상 생활에 전념하다가 주교좌로 돌아와 선종한 후 트루아에 그가 세운 수도원에 안치되었다.

“로마 순교록”은 그에 대해서 영국으로 가서 펠라기우스 이단과 싸우고 기도로써 아틸라로부터 트루아를 지킨 주교로 기록하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그는 주교 복장을 하고 아틸라의 공격을 막거나 칼을 들고 악을 상징하는 용을 무찌르는 모습으로 표현된다. 프랑스에서 그는 성 루(Loup) 또는 뢰(Leu)로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루포 (순교자)

 

  • 가톨릭 성인 이름
    Ruf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4년

 

 

루포 (순교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뽀, 루뿌스, 루퍼스, 루포스, 루푸스.

 

 

루포 (순교자)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9일 목록에서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와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 형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해 체포되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들의 여동생인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도 감옥에서 목이 졸려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들은 “히에로니무스 순교록”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역사적 신뢰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잔인한 고문에 이어 참수된 형제의 시신이 테베레 강(Tevere R.)에 던져졌고,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가 오빠들의 시신을 건져 포르토(Porto)로 가는 길에 있는 제네로사(Generosa) 카타콤바에 안장했다고 한다.

그 후 성녀 베아트릭스는 루치나(Lucina)라는 경건한 부인의 집을 피신처 삼아 함께 살면서 비밀리에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며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재산을 노린 이교도 친척 또는 이웃의 고발로 체포되어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 이교도의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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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성녀 베아트릭스는 완강히 버티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용감하게 자기 신앙을 고백했다. 결국 성녀 베아트릭스는 감옥 안에서 목이 졸려 순교하였다. 경건한 부인 루치나가 그녀의 시신을 수습해서 오빠들 곁에 안장해주었다.

그들의 유해는 7세기에 교황 성 레오 2세(Leo II, 7월 3일)에 의해 로마에 있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이장되었고, 나중에 다시 유해의 주요 부분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1868년에 제네로사 공동묘지가 발굴되었는데, 그곳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와 비문에는 이들 세 남매 순교자뿐만 아니라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성 루푸스(또는 루포) 순교자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9일 목록에서 세 명의 남매 순교자와 함께 성 루푸스 순교자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또한 성녀 베아트릭스의 이름도 비문에 적혀 있는 비아트릭스(Viatrix)로 수정하였다. 이는 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잘못 옮겨적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성녀 비아트릭스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빌리암

 

  • 가톨릭 성인 이름
    William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234년 생브리외

 

 

빌리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굴리엘모, 빌헬름, 윌리암, 윌리엄.

 

 

빌리암 자료

성 빌리암의 덕행과 기적들은 널리 알려졌지만 그의 생애는 구름에 가려진 듯하다. 그는 생브리외의 주교 요셀리누스(Josselinus)에 의해 사제로 서품된 후 그의 후계자가 되어 주교로 축성되었다. 

가난이 그의 재산이었고, 자신의 소유물뿐만 아니라 구제를 위해서는 곡물이나 다른 필수품을 빌리기까지 하였다. 그의 행동 원칙은 화해와 기도의 정신이 그 밑바탕을 이루었다.

그는 교회의 권익을 가로채려는 브르타뉴(Bretagne)의 공작 베드로 모클레르로에게 끝까지 항거하다가 2년 동안 유배를 가야했다. 이때 그는 푸아티에(Poitiers)에 피난처를 마련하고 극도의 회개생활을 하였다.

1230년 그가 생브리외로 돌아와서 4년 동안 활동하가다 선종했는데, 1248년에 그의 유해를 대성당에 안장할 때까지 성인의 유해가 조금 부패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1247년 또는 1253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4세(Innocentius IV)에 의해 시성되었다. 윌리엄으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심플리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Simplic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2/3년

 

 

심플리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심플리치우스, 심플리키오, 심플리키우스, 씸쁠리치오, 씸쁠리치우스.

 

 

심플리치오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9일 목록에서 성 심플리키우스(또는 심플리치오)와 성 파우스티누스(Faustinus) 형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해 체포되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들의 여동생인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도 감옥에서 목이 졸려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들은 “히에로니무스 순교록”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역사적 신뢰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잔인한 고문에 이어 참수된 형제의 시신이 테베레 강(Tevere R.)에 던져졌고,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가 오빠들의 시신을 건져 포르토(Porto)로 가는 길에 있는 제네로사(Generosa) 카타콤바에 안장했다고 한다.

그 후 성녀 베아트릭스는 루치나(Lucina)라는 경건한 부인의 집을 피신처 삼아 함께 살면서 비밀리에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며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재산을 노린 이교도 친척 또는 이웃의 고발로 체포되어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 이교도의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나 성녀 베아트릭스는 완강히 버티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용감하게 자기 신앙을 고백했다. 결국 성녀 베아트릭스는 감옥 안에서 목이 졸려 순교하였다. 경건한 부인 루치나가 그녀의 시신을 수습해서 오빠들 곁에 안장해주었다.

그들의 유해는 7세기에 교황 성 레오 2세(Leo II, 7월 3일)에 의해 로마에 있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이장되었고, 나중에 다시 유해의 주요 부분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1868년에 제네로사 공동묘지가 발굴되었는데, 그곳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와 비문에는 이들 세 남매 순교자뿐만 아니라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성 루푸스(Rufus) 순교자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9일 목록에서 세 명의 남매 순교자와 함께 성 루푸스 순교자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또한 성녀 베아트릭스의 이름도 비문에 적혀 있는 비아트릭스(Viatrix)로 수정하였다. 이는 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잘못 옮겨적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성녀 비아트릭스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안토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nton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

 

 

안토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또니노, 안또니누스, 안토니누스.

 

 

안토니노 자료

성녀 루칠라(Lucilla), 성녀 플로라(Flora),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안토니누스(또는 안토니노), 성 테오도루스(Theodorus)를 포함한 2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갈리에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에우제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gen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

 

 

에우제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게니오, 에우게니우스, 에우제니우스, 유진.

 

 

에우제니오 자료

성녀 루칠라(Lucilla), 성녀 플로라(Flora),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또는 에우제니오), 성 안토니누스(Antoninus), 성 테오도루스(Theodorus)를 포함한 2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갈리에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올라보

 

  • 가톨릭 성인 이름
    Olav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995-1030년 노르웨이

 

 

올라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올라부스, 올라프.

 

 

올라보 자료

노르웨이의 귀족 하랄드 그렌스케(Harald Grenske)의 아들인 성 올라부스(Olavus, 또는 올라보)는 흔히 ‘팻트’란 별명으로 불렸다. 한때 그는 해적질을 했다는 말도 있다. 

그는 1013년에 세례를 받았고, 덴마크를 공격하는 잉글랜드(England)의 에텔레드(Ethelred) 왕을 도우려고 영국으로 간적도 있으나 포로가 되었다. 그 후 그는 왕위에 올랐다.

그는 제국을 통일하는 방편으로 그리스도교를 적극 권장하였으나 1029년에는 귀족들의 거센 반발로 잠시 멈칫한 사실이 있다. 그 후 러시아의 침략을 막기 위하여 싸우다가 스티클레스탓(Stiklestad) 전투에서 살해되었다.

그는 노르웨이의 가장 위대한 영웅중의 한 명이고, 노르웨이를 그리스도교화 하는데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그는 1164년 교황 알렉산데르 3세(Alexander III)에 의해 노르웨이의 수호성인으로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우르바노 2세

 

  • 가톨릭 성인 이름
    Urban II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교황

  • 활동 연도와 지역
    1035-1099년

 

 

우르바노 2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어번, 우르바누스, 우르반.

 

 

우르바노 2세 자료

프랑스의 귀족 가문의 후손인 외드 드 샤티용쉬르마른(Eudes de Chatillon-sur-Marne)은 1035년경 샹파뉴(Champagne) 지역 샤티용쉬르마른에서 태어나 랭스(Reims)의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성 브루노(Bruno, 10월 6일)로부터 신학을 배웠으며, 이곳에서 1055년경부터 대부제로 일하였다. 

1070년경 클뤼니(Cluny) 수도원에 입회하여 성 후고(Hugo, 4월 29일)의 지도하에 교육을 담당하였다. 그 후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VII, 5월 25일)의 요청으로 로마(Roma)로 파견되어 교황의 교회 개혁 운동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는 1078년 오스티아(Ostia)의 주교 추기경이 되었고, 교황 성 그레고리우스 7세의 수석 보좌관이 되었다. 또한 1082-85년에는 프랑스와 독일에 대한 교황 특사로 파견되었다. 

이때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하인리히 4세에 의해 체포되어 투옥되기도 했다. 그는 1088년 3월 12일 교황 복자 빅토르 3세(Victor III, 9월 16일)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고, 우르바누스 2세(Urbanus II, 또는 우르바노)라는 이름을 정했다.

그러나 그는 대립교황인 클레멘스 3세(Clemens III)의 등장으로 곤욕을 치러야 했다. 1089년 가을 70명의 주교가 멜피(Melfi)에 모여 교회회의를 개최하여 성직매매와 성직자 혼인을 반대하는 선언을 채택했다. 그리고 1090년 복자 우르바누스 2세는 마침내 로마의 교황좌에 착좌했다. 

1095년 이탈리아 피아첸차(Piacenza)에서 개최된 교회회의는 대립교황 클레멘스 3세에게 내린 파문이 정당함을 확인해주었다. 교황은 그해 11월 프랑스의 클레르몽(Clemont)의 노트르담 두 포르(Notre-Dame du Port) 성당에서 개최된 교회회의에서 1089년의 칙령을 재확인하는 한편 ‘하느님의 휴전’(Treuga Dei)을 처음으로 선언했다. 

또한 본처를 두고 재혼한 프랑스의 필리프 1세를 간통죄로 파문하였다. 그는 클레르몽에서 제1차 십자군에 참여하도록 호소하고 격려함으로써 십자군 규합에 성공하였다. 

그 후 그는 그 사이 다시 클레멘스 3세가 차지하고 있었던 로마에 당당히 입성했다. 이리하여 교황 복자 우르바누스 2세는 교황권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고, 결국 하인리히 4세 황제는 이탈리아에서 손을 떼게 되었다.

1098년 10월 그는 바리(Bari)에서 교회회의를 소집하여 동방과 서방 교회의 화해를 모색하였으나 성공하지는 못했다. 교황은 십자군이 예루살렘을 탈환하기 2주일 전인 1099년 7월 29일 피에르레오네(Pierleone)에 있는 그의 후견인의 저택에서 선종하였다.

그의 삶은 파란만장하였고, 그의 재임 기간은 세속의 통치자인 하인리히 4세와 필리프 1세와의 투쟁의 연속이었다. 그의 시복식은 사후 800여 년이 지난 1881년 7월 14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거행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칼리니코

 

  • 가톨릭 성인 이름
    Callin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세기 파플라고니아

 

 

칼리니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갈리니꼬, 갈리니꾸스, 갈리니코, 갈리니쿠스, 칼리니꼬, 칼리니꾸스, 칼리니쿠스.

 

 

칼리니코 자료

성 칼리니쿠스(또는 칼리니코)는 특별히 동방교회에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소아시아 지방 파플라고니아 태생으로 신앙을 지키다가 화형을 당했다. 메타프라스테스(Metaphrastes)는 그의 순교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테오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Theodor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0년

 

 

테오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오도로, 데오도루스, 떼오도로, 떼오도루스, 테오도루스.

 

 

테오도로 자료

성녀 루칠라(Lucilla), 성녀 플로라(Flora),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안토니누스(Antoninus), 성 테오도루스(Theodorus, 또는 테오도로)를 포함한 23명의 그리스도인들이 갈리에누스 황제 치하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파우스티노 (증거자)

 

  • 가톨릭 성인 이름
    Faust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스펠로

 

 

파우스티노 (증거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파우스띠노, 파우스띠누스, 파우스티누스.

 

 

파우스티노 (증거자) 자료

성 파우스티누스(또는 파우스티노)는 이탈리아 스폴레토(Spoleto) 부근 스펠로의 주교인 성 펠릭스(Felix, 5월 18일)의 제자로 주교가 순교할 때까지 그를 수행하였다. 그는 움브리아(Umbria) 지방의 토디(Todi)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감수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파우스티노 (순교자)

 

  • 가톨릭 성인 이름
    Faust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2/3년?

 

 

파우스티노 (순교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파우스띠노, 파우스띠누스, 파우스티누스.

 

 

파우스티노 (순교자)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29일 목록에서 성 심플리키우스(Simplicius)와 성 파우스티누스(또는 파우스티노) 형제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로마의 신들에게 희생 제사 바치기를 거부해 체포되었고, 다양한 방법으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마침내 참수형을 받아 순교의 월계관을 썼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그들의 여동생인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도 감옥에서 목이 졸려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그들은 “히에로니무스 순교록”에서도 언급되었지만, 역사적 신뢰성을 기대할 수는 없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잔인한 고문에 이어 참수된 형제의 시신이 테베레 강(Tevere R.)에 던져졌고, 성녀 베아트릭스(Beatrix)가 오빠들의 시신을 건져 포르토(Porto)로 가는 길에 있는 제네로사(Generosa) 카타콤바에 안장했다고 한다.

그 후 성녀 베아트릭스는 루치나(Lucina)라는 경건한 부인의 집을 피신처 삼아 함께 살면서 비밀리에 박해받는 그리스도인들을 도와주며 기도 생활에 전념하였다. 그러던 중 그녀의 재산을 노린 이교도 친척 또는 이웃의 고발로 체포되어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 이교도의 신들에게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받았다.

그러나 성녀 베아트릭스는 완강히 버티며 “나는 그리스도인이다”라고 용감하게 자기 신앙을 고백했다. 결국 성녀 베아트릭스는 감옥 안에서 목이 졸려 순교하였다. 경건한 부인 루치나가 그녀의 시신을 수습해서 오빠들 곁에 안장해주었다.

그들의 유해는 7세기에 교황 성 레오 2세(Leo II, 7월 3일)에 의해 로마에 있는 사도 성 바오로(Paulus)에게 봉헌된 성당으로 이장되었고, 나중에 다시 유해의 주요 부분이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당(Basilica di Santa Maria Maggiore)에 안치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1868년에 제네로사 공동묘지가 발굴되었는데, 그곳에서 발견된 프레스코화와 비문에는 이들 세 남매 순교자뿐만 아니라 행적이 알려지지 않은 성 루푸스(Rufus) 순교자도 기록되어 있었다. 그래서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7월 29일 목록에서 세 명의 남매 순교자와 함께 성 루푸스 순교자의 이름을 추가하였다.

또한 성녀 베아트릭스의 이름도 비문에 적혀 있는 비아트릭스(Viatrix)로 수정하였다. 이는 사본을 만드는 과정에서 잘못 옮겨적은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성녀 비아트릭스는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을 타원형으로 둘러싼 열주 위에 세워진 140명의 성인 입상의 주인공 중 한 명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프로스페르

 

  • 가톨릭 성인 이름
    Prosp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53년 오를레앙

 

 

프로스페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쁘로스뻬르, 프로스뻬르.

 

 

프로스페르 자료

프랑스 오를레앙의 주교인 성 프로스페르는 종종 같은 이름을 가진 아키텐(Aquitaine)의 성 프로스페르(6월 25일)나 레지오 에밀리아(Reggio Emilia)의 주교인 성 프로스페르(6월 25일)와 혼동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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