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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남자세례명 7가지

피어나네 2023. 10. 18.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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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루카, 아스클레피아데, 아쿠티오, 아테노도로, 에우티키오, 유스토, 프로쿨로, 총 7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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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8일 여자세례명 트리포니아,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0월 1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7가지

 

 

 

 

10월 18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루카

  2. 아스클레피아데

  3. 아쿠티오

  4. 아테노도로

  5. 에우티키오

  6. 유스토

  7. 프로쿨로

 

10월 18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7가지

 

 

1. 루카

 

  • 가톨릭 성인 이름
    Luk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복음사가, 증거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세기

 

 

루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누가, 루가, 루까, 루카스, 루크.

 

 

루카 자료

전통적으로 성 루카(Lucas, 또는 루가)는 교회사학자 에우세비우스(Eusebius) ·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 · 리옹의 성 이레네우스(Irenaeus, 6월 28일) 등에 따르면, 안티오키아(Antiochia) 출신의 그리스인 의사로 사도 성 바오로(Paulus, 6월 29일)의 ‘협력자’(필레 1,24)이자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라고 알려졌다.

실제로 성 바오로는 서간에서 그를 ‘사랑하는 의사 루카’라고 지칭했다(콜로 4,14). 성 스테파누스(Stephanus, 12월 26일) 부제의 순교와 박해로 많은 이들이 흩어져 복음을 전했는데, 안티오키아도 그런 도시 중의 하나였다. 예루살렘 교회는 그들을 돌보기 위해 성 바르나바(Barnabas, 6월 11일)를 파견했고, 성 바르나바는 타르수스에 있던 성 바오로를 데려와 함께 열정적으로 복음을 전했다.

성 루카는 아마도 이때 사도들과 알게 되고 특별히 성 바오로를 깊이 존경하고 따랐던 것 같다. 그는 51년경에 있었던 사도 바오로의 제2차 선교 여행을 수행하며 힘껏 도왔고, 57년까지 필리피(Philippi)에 머물면서 그곳의 공동체를 지도한 후 성 바오로의 제3차 선교 여행 때도 만난 듯하다. 그

는 성 바오로가 카이사리아의 감옥에 갇혔을 때도, 로마로 호송되어 감옥에 갇히고 재차 갇혔을 때도 늘 곁에 있었다(콜로 4,14; 필레 1,24; 2티모 4,11). 그는 사도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그리스로 건너간 듯 보인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복음서를 집필하기 위해 성모 마리아(Maria)를 찾아뵙고 주님의 탄생 전후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고 한다. 반대로 성모 마리아를 직접 뵐 수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마리아의 초상화를 여러 개 만들어 섬겼다고도 한다.

전통적으로 가장 오래된 성모 마리아 초상화로 알려진 이콘의 작가가 성 루카라는 의견도 있지만, 사실 그는 ‘붓’보다는 ‘펜’으로써 다른 복음서들이 전해주지 않은 예수님의 탄생과 유년기 이야기 속에서 마리아의 모습을 마치 그림처럼 묘사해 주었다(루카 1-2장).

성 루카가 언제 어디서 복음서를 집필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확실한 것은 팔레스티나 밖에서 80년 전후에 쓰였다고 한다. 그리고 루카 복음을 시작하는 머리말(1,1-4)에 따르면, 그는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며,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Theo-philos)을 뜻하는 ‘테오필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이미 그리스도교의 기본 진리를 전해 들은 이들이나 입문자가 더욱 확고한 신앙을 갖게 하려는 의도를 보여주었다.

대체로 성서학자들은 복음사가 성 루카가 염두에 둔 독자는 이방인 출신 그리스도인과 공동체로 보고 있다.

루카 복음서와 이어지는 사도행전은 예수님의 승천부터 63년경 사도 성 바오로가 로마에서 수인으로 생활하며 선교 활동에 매진할 때까지 초대교회의 성장기를 서술하고 있다.

전반부는 사도 성 베드로(Petrus, 6월 29일)에게 그리고 후반부는 사도 성 바오로에게 집중하고 있지만 정작 성 루카 자신에 관한 구절은 하나도 찾을 수 없을 만큼 겸손함을 견지하고 있다.

그는 성 바오로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로마를 떠나 아카이아(Achaia) 지방과 소아시아 지방에서 선교하며 온갖 고난을 참아내며 주님을 섬기다가 84세를 일기로 선종한 듯하지만 순교했다는 주장도 있다. 그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의 열두 사도 성당에 안치되어 있다.

복음서에서 하느님의 자비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강조했던 성 루카는 의사와 화가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교회 미술에서 성 루카는 성경(에제 1,10; 묵시 4,7)에 언급된 ‘살아있는 네 생물’에서 유래한 상징에 의하면 황소의 모습으로 표현된다. 이는 성 루카 복음사가의 침착하고 강인한 성격과 주님과 사도 성 바오로를 위한 희생과 충직함을 상징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아스클레피아데

 

  • 가톨릭 성인 이름
    Asclepiad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17년 안티오키아

 

 

아스클레피아데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스끌레삐아데스, 아스클레피아데스.

 

 

아스클레피아데 자료

성 아스클레피아데는 성 세라피온(Serapion, 10월 30일)을 계승하여 211년에 시리아 안티오키아의 주교가 되었다. 그는 선종한 것으로 보이는데 보통 순교자라는 칭호를 받고 있다. 그 이유는 세베루스 황제의 박해 중에 온갖 시련을 겪었기 때문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아쿠티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cu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아쿠티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꾸띠오, 아꾸띠우스, 아꾸씨오, 아꾸씨우스, 아쿠시오, 아쿠시우스, 아쿠티우스.

 

 

아쿠티오 자료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나폴리(Napoli) 출신으로 알려진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후대의 몇몇 순교록과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박해를 시작할 즈음에 베네벤토(Benevento)의 주교로 활동하고 있었다.

옛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야누아리우스는 오랜 친구이자 나폴리 북쪽 해안 도시인 미세노(Miseno)의 부제인 성 소시우스(Sossius)와 나폴리 서쪽 교외에 있는 항구도시 포추올리(Pozzuoli)의 부제인 성 프로쿨루스(Proculus) 그리고 평신도인 성 에우티키우스(Eutychius)와 성 아쿠티우스(또는 아쿠티오)가 신앙을 증거하고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그들을 만나러 용감하게 감옥으로 달려갔다.

이때 그의 부제인 성 페스투스(Festus)와 독서직(讀書職)을 받은 성 데시데리우스(Desiderius)가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를 수행해 함께 갔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구할 방도를 찾던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와 그 일행 또한 캄파니아의 총독에게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그들은 당당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총독은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들을 포추올리의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으로 내던져 주었으나 맹수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결국 군중들의 소요를 우려한 총독은 그들을 고대 화산 분화구가 있는 인근의 솔파타라(Solfatara)로 끌고 가서 참수형에 처하도록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베네벤토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야누아리우스가 나폴리 근처 포추올리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했다고 9월 18일 목록에서 간단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베네벤토의 부제인 성 페스투스와 독서자인 성 데시데리우스는 9월 7일 목록에, 미세노의 부제인 성 소시우스는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를 구하려다가 함께 죽음을 맞아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고 9월 23일 목록에 따로 기록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도 성 소시우스에 대해서는 9월 23일 목록에서 별도로 기록하였다. 나머지 포추올리의 부제인 성 프로쿨루스와 평신도인 성 에우티키우스와 성 아쿠티우스는 10월 18일 목록에서 포추올리에서 순교자로서 공경받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성 야누아리우스와 동료 순교자들의 유해는 나폴리의 요한(Joannes) 주교에 의해 나폴리의 카포디몬테(Capodimonte) 카타콤바에 모셔졌다. 그 후 머리를 제외한 성 야누아리우스의 유해는 롬바르디아(Lombardia) 왕자였던 베네벤토의 시코네 1세(Sicone I)에 의해 831년 베네벤토로 옮겨졌다.

그리고 1154년 베네벤토의 안전이 위태로울 때 몬테비르지네(Montevirgine)의 대수도원으로, 1497년에 다시 나폴리로 되돌아와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었다. 그러면서 성 야누아리우스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게 되었다.

현재 나폴리 대성당 내 아름다운 성 야누아리우스 경당에는 성 야누아리우스의 피로 여겨지는 검은색 물체가 작은 유리병에 담겨 보관되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에우세비아(Eusebia)라는 여인이 순교자들의 피를 모으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성 야누아리우스의 피를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포추올리에서 나폴리의 카타콤바로 성인의 유해를 옮기는 중에 나폴리의 주교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딱딱하게 굳은 피가 1년에 여러 번, 특정한 시기에 액화되어 묽은 피로 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전시되었고, 이 기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시험과 분석을 시도했으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심 깊은 나폴리 사람들은 이를 기적으로 간주하며 성 야누아리우스의 혈액을 나폴리의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성 젠나로(Gennaro)로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아테노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Athenod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9년 폰투스

 

 

아테노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떼노도로, 아떼노도루스, 아테노도루스.

 

 

아테노도로 자료

소아시아 카파도키아(Cappadocia)의 네오카이사레아(Neocaesarea)에서 저명한 이교도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아테노도루스(또는 아테노도로)는 성 그레고리우스 타우마투르구스(Gregorius Thaumaturgus, 11월 17일)의 동생이다.

그는 233년에 형과 함께 법학을 공부하기 위해 레바논의 베이루트(Beirut)로 갔다가 누이의 초청으로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카이사레아(Caesarea)에 갔을 때 오리게네스(Origenes)를 만나 그의 문하에 들어갔다.

그곳에서 그는 오리게네스에 의해 형과 함께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고 세례를 받았으며, 철학과 신학을 수학한 후 주교가 되어 폰투스 지방의 이름이 지정되지 않은 한 교구로 돌아왔다. 그는 아우렐리아누스 황제의 박해 중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에우티키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tych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에우티키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띠치오, 에우띠치우스, 에우티치오, 에우티치우스, 에우티키우스.

 

 

에우티키오 자료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나폴리(Napoli) 출신으로 알려진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후대의 몇몇 순교록과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박해를 시작할 즈음에 베네벤토(Benevento)의 주교로 활동하고 있었다.

옛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야누아리우스는 오랜 친구이자 나폴리 북쪽 해안 도시인 미세노(Miseno)의 부제인 성 소시우스(Sossius)와 나폴리 서쪽 교외에 있는 항구도시 포추올리(Pozzuoli)의 부제인 성 프로쿨루스(Proculus) 그리고 평신도인 성 에우티키우스(또는 에우티키오)와 성 아쿠티우스(Acutius)가 신앙을 증거하고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그들을 만나러 용감하게 감옥으로 달려갔다.

이때 그의 부제인 성 페스투스(Festus)와 독서직(讀書職)을 받은 성 데시데리우스(Desiderius)가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를 수행해 함께 갔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구할 방도를 찾던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와 그 일행 또한 캄파니아의 총독에게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그들은 당당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총독은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들을 포추올리의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으로 내던져 주었으나 맹수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결국 군중들의 소요를 우려한 총독은 그들을 고대 화산 분화구가 있는 인근의 솔파타라(Solfatara)로 끌고 가서 참수형에 처하도록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베네벤토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야누아리우스가 나폴리 근처 포추올리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했다고 9월 18일 목록에서 간단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베네벤토의 부제인 성 페스투스와 독서자인 성 데시데리우스는 9월 7일 목록에, 미세노의 부제인 성 소시우스는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를 구하려다가 함께 죽음을 맞아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고 9월 23일 목록에 따로 기록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도 성 소시우스에 대해서는 9월 23일 목록에서 별도로 기록하였다. 나머지 포추올리의 부제인 성 프로쿨루스와 평신도인 성 에우티키우스와 성 아쿠티우스는 10월 18일 목록에서 포추올리에서 순교자로서 공경받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성 야누아리우스와 동료 순교자들의 유해는 나폴리의 요한(Joannes) 주교에 의해 나폴리의 카포디몬테(Capodimonte) 카타콤바에 모셔졌다.

그 후 머리를 제외한 성 야누아리우스의 유해는 롬바르디아(Lombardia) 왕자였던 베네벤토의 시코네 1세(Sicone I)에 의해 831년 베네벤토로 옮겨졌다.

그리고 1154년 베네벤토의 안전이 위태로울 때 몬테비르지네(Montevirgine)의 대수도원으로, 1497년에 다시 나폴리로 되돌아와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었다. 그러면서 성 야누아리우스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게 되었다.

현재 나폴리 대성당 내 아름다운 성 야누아리우스 경당에는 성 야누아리우스의 피로 여겨지는 검은색 물체가 작은 유리병에 담겨 보관되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에우세비아(Eusebia)라는 여인이 순교자들의 피를 모으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성 야누아리우스의 피를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포추올리에서 나폴리의 카타콤바로 성인의 유해를 옮기는 중에 나폴리의 주교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딱딱하게 굳은 피가 1년에 여러 번, 특정한 시기에 액화되어 묽은 피로 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전시되었고, 이 기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시험과 분석을 시도했으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심 깊은 나폴리 사람들은 이를 기적으로 간주하며 성 야누아리우스의 혈액을 나폴리의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성 젠나로(Gennaro)로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유스토

 

  • 가톨릭 성인 이름
    Just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소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87년 보베

 

 

유스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유스또, 유스뚜스, 유스투스.

 

 

유스토 자료

전설에 의하면 성 유스투스(또는 유스토)는 2명의 그리스도인을 비밀 장소에 숨겨준 죄목으로 로마 군인들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9살의 소년이었다.

이 사건은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중 프랑스의 보베에서 일어난 일이다. 군인들에 의해 참수형을 당하면서도 성 유스투스는 복음을 선포하였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프로쿨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rocu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5년경 포추올리

 

 

프로쿨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쁘로꿀로, 쁘로꿀루스, 프로쿨루스.

 

 

프로쿨로 자료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의 나폴리(Napoli) 출신으로 알려진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지만, 후대의 몇몇 순교록과 교회 전승에 따르면 그는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 박해를 시작할 즈음에 베네벤토(Benevento)의 주교로 활동하고 있었다.

옛 “로마 순교록”에 따르면, 성 야누아리우스는 오랜 친구이자 나폴리 북쪽 해안 도시인 미세노(Miseno)의 부제인 성 소시우스(Sossius)와 나폴리 서쪽 교외에 있는 항구도시 포추올리(Pozzuoli)의 부제인 성 프로쿨루스(또는 프로쿨로) 그리고 평신도인 성 에우티키우스(Eutychius)와 성 아쿠티우스(Acutius)가 신앙을 증거하고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즉시 그들을 만나러 용감하게 감옥으로 달려갔다.

이때 그의 부제인 성 페스투스(Festus)와 독서직(讀書職)을 받은 성 데시데리우스(Desiderius)가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를 수행해 함께 갔다. 그런데 감옥에 갇힌 이들을 위로하고 그들을 구할 방도를 찾던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와 그 일행 또한 캄파니아의 총독에게 모두 체포되고 말았다.

그들은 당당하게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총독은 시민들에게 경각심을 주기 위해 그들을 포추올리의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으로 내던져 주었으나 맹수들이 그들에게 아무런 해도 입히지 않았다. 결국 군중들의 소요를 우려한 총독은 그들을 고대 화산 분화구가 있는 인근의 솔파타라(Solfatara)로 끌고 가서 참수형에 처하도록 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베네벤토의 주교이자 순교자인 성 야누아리우스가 나폴리 근처 포추올리에서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했다고 9월 18일 목록에서 간단히 기록하였다.

그리고 베네벤토의 부제인 성 페스투스와 독서자인 성 데시데리우스는 9월 7일 목록에, 미세노의 부제인 성 소시우스는 성 야누아리우스 주교를 구하려다가 함께 죽음을 맞아 순교의 영광을 얻었다고 9월 23일 목록에 따로 기록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도 성 소시우스에 대해서는 9월 23일 목록에서 별도로 기록하였다.

나머지 포추올리의 부제인 성 프로쿨루스와 평신도인 성 에우티키우스와 성 아쿠티우스는 10월 18일 목록에서 포추올리에서 순교자로서 공경받고 있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성 야누아리우스와 동료 순교자들의 유해는 나폴리의 요한(Joannes) 주교에 의해 나폴리의 카포디몬테(Capodimonte) 카타콤바에 모셔졌다.

그 후 머리를 제외한 성 야누아리우스의 유해는 롬바르디아(Lombardia) 왕자였던 베네벤토의 시코네 1세(Sicone I)에 의해 831년 베네벤토로 옮겨졌고, 1154년 베네벤토의 안전이 위태로울 때 몬테비르지네(Montevirgine)의 대수도원으로, 그리고 1497년에 다시 나폴리로 되돌아와 대성당 지하 묘지에 안치되었다. 그러면서 성 야누아리우스는 나폴리의 수호성인으로서 큰 공경을 받게 되었다.

현재 나폴리 대성당 내 아름다운 성 야누아리우스 경당에는 성 야누아리우스의 피로 여겨지는 검은색 물체가 작은 유리병에 담겨 보관되고 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에우세비아(Eusebia)라는 여인이 순교자들의 피를 모으는 일을 하다가 우연히 성 야누아리우스의 피를 보관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녀가 포추올리에서 나폴리의 카타콤바로 성인의 유해를 옮기는 중에 나폴리의 주교에게 전해주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 딱딱하게 굳은 피가 1년에 여러 번, 특정한 시기에 액화되어 묽은 피로 변하는 현상이 일어난다고 한다. 지금까지 여러 차례 공식적으로 전시되었고, 이 기적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 과학적 시험과 분석을 시도했으나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신심 깊은 나폴리 사람들은 이를 기적으로 간주하며 성 야누아리우스의 혈액을 나폴리의 가장 소중한 유산으로 여기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그는 성 젠나로(Gennaro)로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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