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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남자세례명 21가지

피어나네 2023. 10. 19.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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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가롤로 가르니에, 가브리엘 랄르망, 노엘 샤바넬, 루치오, 르네 구필, 바로, 바오로(십자가의), 베드로, 베라노, 베로니코, 아퀼리노, 안토니오 다니엘, 에우스테리오, 에트비노, 요한, 요한 드 라랑드, 요한 드 브레뵈프, 이사악 조그, 토마스, 프톨레메오, 필립보 하워드, 총 21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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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 19일 여자세례명 클레오파트라, 펠라지아, 프레데스빈다, 총 3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0월 1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1가지

 

 

 

 

10월 19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가롤로 가르니에

  2. 가브리엘 랄르망

  3. 노엘 샤바넬

  4. 루치오

  5. 르네 구필

  6. 바로

  7. 바오로(십자가의)

  8. 베드로

  9. 베라노

  10. 베로니코

  11. 아퀼리노

  12. 안토니오 다니엘

  13. 에우스테리오

  14. 에트비노

  15. 요한

  16. 요한 드 라랑드

  17. 요한 드 브레뵈프

  18. 이사악 조그

  19. 토마스

  20. 프톨레메오

  21. 필립보 하워드

 

10월 19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1가지

 

 

1. 가롤로 가르니에

 

  • 가톨릭 성인 이름
    Charles Garni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06-1649년 캐나다

 

 

가롤로 가르니에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가니엘, 가롤루스, 까롤로, 까롤루스, 샤를, 샤를르, 찰스, 카롤로, 카롤루스, 칼.

 

 

가롤로 가르니에 자료

성 카롤루스 가르니에(Carolus Garnier, 또는 가롤로)는 예수회 사제로 서품된 후에 인디안 사목을 위하여 캐나다의 퀘벡으로 갔다.

1649년 그가 정착해 있던 휴런족(Huron) 인디언 마을이 적대적인 이로쿼이족(Iroquois) 인디언들의 공격을 받자, 그는 그들을 도망가도록 하다가 총을 맞고 쓰러졌다. 그러나 그는 있는 힘을 다하여 기어가다가 전투용 도끼를 맞고 절명하였다.

가르니에 신부의 장상은 그를 이렇게 말하였다.

“웃으면서 선을 말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가르니에 신부는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가브리엘 랄르망

 

  • 가톨릭 성인 이름
    Gabriel Laleman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06-1649년 캐나다

 

 

가브리엘 랄르망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랄망.

 

 

가브리엘 랄르망 자료

성 가브리엘 랄르망은 1630년에 예수회원이 되어 외국 선교에 헌신하였으나 건강은 늘 좋지 못하였다. 2년 동안 캐나다 퀘벡에서 사목한 후 그는 성 요한 드 브레뵈프(Joannes de Brebeuf)와 합류하여 인디언 휴런족(Huron) 선교에 나섰다.

그곳에서 6개월 정도 활동할 즈음에 이로쿼이족(Iroquois)의 습격을 받아 2명의 사제가 포로가 되어 생 이나스까지 호송되었다.

여기서 그들은 몸서리치는 고문을 받았는데 브레뵈프 신부는 몇 시간 내에 운명하였으나, 아주 묘하게도 가브리엘 랄르망 신부는 그날 밤은 넘겼지만 결국은 살해되고 말았다.

랄르망 신부는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노엘 샤바넬

 

  • 가톨릭 성인 이름
    Noel Chaban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06-1649년 캐나다

 

 

노엘 샤바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노엘 샤바넬 자료

프랑스의 망드 근교에서 출생한 성 노엘 샤바넬(또는 나탈리스 샤바넬, Natalis Chabanel)은 1630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며, 1643년에 캐나다 뉴 프랑스의 휴론(Huron) 인디언들의 선교사로 떠났다. 그

는 에타리타의 인디언 마을에서 성 카롤루스 가르니엘(Carolus Garnier) 신부의 보좌로 활동하다가, 이웃 마을인 생트 마리를 방문하고 돌아오는 길에 어느 배교자 인디언에 의하여 무참히 살해되었다.

노엘 샤바넬은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고,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루치오

 

  • 가톨릭 성인 이름
    Luc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5년경

 

 

루치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기오, 루치우스, 루키오, 루키우스.

 

 

루치오 자료

성 유스티누스(Justinus, 6월 1일) 순교자의 초기 기록에 따르면, 성 프톨레메우스(Ptolemaeus)는 로마에서 당시 행실이 좋지 않았던 한 부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순결한 삶을 살도록 가르쳤다.

그리스도인이 된 부인은 남편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예비신자 모임에 인도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방탕하고 나태하여서 모임에 나가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남편과 헤어졌다. 이에 앙심을 품은 남편이 아내를 고발했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러자 화가 난 남편은 부인과 자기에게 교리를 가르친 성 프톨레메우스가 자기 부인과 부적절하게 행동했다고 고발하였다. 불결한 지하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은 성 프톨레메우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황제 치하의 우르비키우스(Urbicius) 총독 앞으로 끌려가서 공개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선고를 받아 처형되었다.

그가 재판을 받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성 루키우스(또는 루치오)는 총독의 결정에 항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죄를 범한 일이 없는데 왜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오?”

결국 성 루키우스 역시 자유롭게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동료 한 명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고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르네 구필

 

  • 가톨릭 성인 이름
    Rene Goupi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08-1642년 캐나다

 

 

르네 구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나또, 레나뚜스, 레나토, 레나투스.

 

 

르네 구필 자료

프랑스의 앙주(Anjou)에서 태어난 성 르네 구필은 예수회에 입회하였으나 건강 때문에 수도원을 떠나야만 했다. 그 후 그는 완쾌되어 캐나다의 퀘벡으로 갔으며 그곳에서 다른 예수회의 선교사와 합류하였다.

그는 휴런족(Huron) 인디언 선교단의 평신도 보조자가 되어 봉사하기 시작하였다. 1642년에 성 이사악 조그와 함께 여행하던 중에 이로쿼이족(Iroquois) 인디언들의 포로가 되어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캐나다에서 순교한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르네 구필은 레나투스 구필(Renatus Goupil, 또는 레나토 구필)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바로

 

  • 가톨릭 성인 이름
    Va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군인,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초

 

 

바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루스.

 

 

바로 자료

“로마 순교록”은 이집트에서 성 바루스(또는 바로)가 겪은 수난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막시미아누스 황제 치하의 군인이던 바루스는 이집트에서 거룩한 일곱 명의 수도자가 감옥에 갇혀 있을 때 그들을 찾아가서 먹을 것을 넣어주곤 하였는데, 그들 중 한 명이 선종하자 자신이 그 자리에 들어가서 살았다. 그 후 혹심한 고문이 시작되어 나머지 수도자들과 함께 거룩하게 순교하였다.”

전승에 따르면, 그는 7명의 수도자를 지키는 군인으로 나약한 믿음의 소유자였는데, 한 수도자의 죽음을 목격한 후 신앙심이 살아나 그들과 합류했고 모진 고문을 받고 나무에 매달려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바오로(십자가의)

 

  • 가톨릭 성인 이름
    Paul of the Cros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94-1775년

 

 

바오로(십자가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파울로, 파울루스, 폴.

 

 

바오로(십자가의) 자료

이탈리아의 오바다(Ovada) 태생인 성 바오로 프란치스코 다네이(Paolo Francesco Danei)는 몰락한 어느 귀족의 맏이로 태어났고, 부모의 신앙 유산을 물려받은 탓인지 15세 때에 이미 카스텔라초의 자기 집에서 엄격한 고행과 보속을 행하였다.

1714년 그는 터키인들과 싸우는 베네치아(Venezia) 공국의 군대에 입대하였으나, 기도와 보속생활에 이끌려 명예 제대를 하고 귀향하였다.

그는 결혼도 마다하면서 몇 해를 은거하던 중 1720년에 예수의 성명과 흰 십자가가 그려진 고난의 문장을 검은 옷에 단 성모님의 환시를 보았는데, 이때 그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설교하는 수도회 설립을 명하셨다고 한다.

그의 환시가 올바른 사실임을 인정한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부터 수도회 설립에 관한 허가를 받게 된 바오로(Paulus)는 40일간의 피정을 통하여 회칙 초안을 마련하였다. 그는 자기 동생인 요한 밥티스타와 함께 로마(Roma)로 가서 교황청의 허가를 신청하였다.

처음에는 거절당하였으나 1725년의 방문에서는 교황 베네딕투스 13세(Benedictus XIII)로부터 수련자를 받아도 좋다는 허가를 받고, 1727년에는 자신이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들은 몬테 아르젠타리오에 수도원을 세웠는데, 처음에는 규칙이 너무 엄격했던 탓으로 많은 수련자를 잃었다고 한다. 1737년에는 첫 수도원의 문을 열었고, 1741년에는 교황 베네딕투스 14세로부터 개정 회칙을 승인받았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지극히 거룩한 십자가와 고난의 맨발 성직 수도회'(예수 고난회)가 전세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바오로는 자신의 뜻과는 달리 초대총장으로 선출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탈리아 전역을 누비며 선교 여행을 하였고, 그의 설교는 놀라운 힘을 발휘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렸다. 또한 그는 초자연적인 은혜로써 축복을 내렸고, 치유의 기적과 원거리에서 동시에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기적 등이 나타났다.

그는 당대 최고의 설교가였다. 그는 예수 고난회의 최종 승인을 1769년 교황 클레멘스 14세(Clemens XIV)로부터 받았다. 또한 그의 노력에 의하여 여자 수도회 수녀들이 코르네토에 첫 수도원을 갖게 되었다. 그는 3년 동안의 병고로 고생하다가 1775년 10월 18일 로마에서 운명하였고, 1867년 비오 9세(Pius IX) 교황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베드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eter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신비가

  • 활동 연도와 지역
    1499-1562년 알칸타라

 

 

베드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드루스, 페드로, 페트루스, 피터.

 

 

베드로 자료

에스파냐 중서부 에스트레마두라(Extremadura)의 알칸타라 지방장관의 아들로 태어난 성 베드로 가라비토(Petrus Garavito)는 살라망카(Salamanca) 대학에서 법률을 공부하였고, 16세 때에 만하레테스(Manxarretes)에 있는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엄격한 보속 생활을 실시하던 중에 바다호스(Badajoz)로 파견되었고, 1524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에스트레마두라 지방에서 설교하면서, 로브레딜로(Robredillo), 플라센시아(Plasencia), 라파(Lapa) 그리고 에스트레마두라 수도원의 원장으로 봉사하였으며, 라파 수도원을 봉쇄수도원으로 요청하여 허가를 받기도 하였다.

또 한때 그는 궁중의 전속사제로 일하다가 1538년에는 관구장이 되었다. 그는 다소 엄격한 규칙을 만들었는데, 그것을 관구 총회에서 통과시키지 못하자 관구장직을 사임하였다.

이때부터 그는 리스본(Lisbon) 교외 아라비다(Arabida) 산에서 성 마리아의 마르티누스 수도원의 형제들과 함께 은수자 생활을 시작했는데, 수많은 수도자들이 그들의 생활에 매력을 느끼고 따르려고 하였다.

관구 내에서 자신의 규칙이 통과되지 못하자 그는 코리아(Coria) 교구의 주교로부터 승인을 얻은 후 새 수도원을 세울 허가를 교황 율리우스 3세(Julius III)로부터 받았다. 이것이 바로 알칸타라의 성 베드로의 프란치스코회의 시작이었다.

일이 이렇게 되자 다른 수도원들도 그의 규칙을 받아들임으로써 결국 1561년에는 성 요셉 관구가 설립되었는데, 많은 반대를 물리치고 콘벤투알 프란치스코회의 관할 아래 두게 되었다.

1560년 그는 아빌라의 성녀 테레사(Teresa of Avila, 10월 15일)를 만나서 그의 고해신부 겸 상담자가 되었으며, 카르멜 개혁운동을 격려하였다. 그는 “기도와 묵상론”을 썼는데, 이것이 후일 성 프란치스코 드 살(Franciscus de Sales, 1월 24일)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그는 1562년 에스트레마두라에서 사망하였고, 1622년 4월 18일 교황 그레고리우스 15세(Gregorius XV)에 의해 시복된 후 1669년 4월 28일 교황 클레멘스 9세(Clemens IX)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리고 그는 1862년부터 브라질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는 위대한 신비가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베라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er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89/590년 카바용

 

 

베라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라누스, 베랑.

 

 

베라노 자료

성 베라누스(또는 베라노)는 프랑스 남동부 보클뤼즈(Vaucluse)에서 태어나 540년에 사제품을 받았고 나중에 카바용의 주교가 되었다. 그와 동시대를 살았던 투르(Tours)의 성 그레고리우스(Gregorius, 11월 17일) 주교는 성 베라누스의 기적에 대한 기록을 남겨주었다.

당시 보클뤼즈 지역의 동굴에 살며 농부들의 양을 잡아먹는 무시무시한 용을 쫓아냈고, 그 외에도 여러 치유 기적을 행했다고 전해주었다.

성 베라누스는 585년에 마콩(Macon) 교회회의에 참석했고, 587년 킬데베르트 2세(Childebert II) 왕의 아들인 테우데리크 2세(Theuderic II)에게 세례를 주었다. 그는 카바용에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돌보는 탁월한 덕과 자선사업으로 유명했고, 지역 수도원의 질서를 회복하고 후원하는 등 많은 활동을 했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로마로 여행하는 길에 많은 기적을 행했다고 한다. 11세기 초에 그의 유해 일부가 프랑스 중북부의 오를레앙(Orleans) 옮겨져 성인으로 공경을 받았다.

13세기에 그의 이름으로 봉헌된 카바용 주교좌성당으로 대부분 돌아왔으나 일부는 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Liguria)의 알벤가(Albenga) 대성당으로 보내져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베로니코

 

  • 가톨릭 성인 이름
    Beron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베로니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베로니꼬, 베로니꾸스, 베로니쿠스.

 

 

베로니코 자료

옛 “로마 순교록”은 10월 19일 목록에서 성 베로니쿠스(또는 베로니코)와 동정녀인 성녀 펠라기아(Pelagia) 그리고 다른 49명의 그리스도인이 박해 중에 신앙을 지키다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Antiochia)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하지만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자료의 불충분으로 인해 더는 그들에 대해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아퀼리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quil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20-695년경 에브뢰

 

 

아퀼리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귈리노, 아귈리누스, 아뀔리노, 아뀔리누스, 아퀼리누스.

 

 

아퀼리노 자료

성 아퀼리누스(또는 아퀼리노)는 620년경 프랑스 북서부 노르망디(Normandie) 지방에 있는 바이외(Bayeux)에서 귀족 가문의 아들로 태어나 궁중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랐다. 그는 군인이 되어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 2세(Clovis II)의 군대에 복무하며 서고트족과의 전투에 참전하였다.

660년 오랜 군인 생활 끝에 샤르트르(Chartres)로 돌아온 그는 그곳에서 결혼한 후 아내와 함께 에브뢰로 이주하였다. 그들 부부는 온전히 하느님께 자신을 봉헌하며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을 돕는데 여생을 보내기로 약속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에브뢰에서 10여 년을 조용히 자선사업에 헌신하며 살았는데, 그곳의 주교인 성 아이테르누스(Aeternus)가 선종하자 성덕이 높은 성 아퀼리누스가 그곳의 주교직을 계승해야 한다는 여론이 거세게 일어났다.

그는 비록 원하지 않았으나 어쩔 수 없는 분위기 속에서 아내의 동의를 얻어 금욕 서약을 한 후 주교로 착좌하였다. 그러나 주교보다는 은수자 생활이 더 알맞다고 느낀 그는 항상 기회를 엿보다가 마침내 주교좌성당 옆에 움막을 짓고 하루의 많은 시간을 보속과 고행 그리고 기도를 바치며 지냈다. 만년에 그는 시력을 잃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안토니오 다니엘

 

  • 가톨릭 성인 이름
    Anthony Danie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01-1648년 캐나다

 

 

안토니오 다니엘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대니얼,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앙투안,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토니오 다니엘 자료

프랑스 디프 태생인 성 안토니우스 다니엘(Antonius Daniel, 또는 안토니오)은 처음에 법학을 공부하였으나 곧 이를 포기하고 1621년 루앙(Rouen)의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는 그곳에서 4년 동안 가르치면서 동시에 신학을 공부하여 1630년에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는 잠시 외(Yeu)의 대학교에 봉직하다가 다른 세 명의 사제와 함께 케이프 브리턴 섬과 아르카디아, 뉴프랑스(New France, 캐나다)의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1년 후에 그는 다시 퀘벡으로 갔다.

그는 휴런족(Huron) 인디언들과의 선교활동이 대성공을 거두자, 인디언 아동들을 위한 학교를 퀘벡에 세웠다. 그러나 휴런족과 늘 적대관계에 있던 이로쿼이족(Iroquois)들에 의하여 순교하였다. 때는 1648년 7월 4일이었고, 온타리오주(Ontario) 힐스데일 근교의 테노스테이의 인디언 마을에서 죽음을 맞이하였다.

다니엘은 캐나다에서 순교한 동료 예수회원 7명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에우스테리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uster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5세기살레르노

 

 

에우스테리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우스떼리오, 에우스떼리우스, 에우스테리우스.

 

 

에우스테리오 자료

성 에우스테리우스(또는 에우스테리오)는 이탈리아 캄파니아(Campania) 지방 살레르노의 제4대 주교였다는 기록만이 남아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에트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Ethbi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킬데어

 

 

에트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뜨비노, 에뜨비누스, 에뜨빈, 에트비누스, 에트빈.

 

 

에트비노 자료

성 에트비누스(Ethbinus, 또는 에트비노)는 15세 때 아버지를 잃었는데, 그의 어머니가 성 삼손(Samson, 7월 28일)의 지도를 받고 성장하도록 배려하였다. 후일 그는 프랑스 북서부 브르타뉴(Bretagne)에서 성 빈발로에(Winwaloe)의 지도하에 수도생활을 시작하면서 열심히 생활하였다.

어느 날 그의 스승과 함께 길을 가는 도중에 길가에 버려진 가련한 나환자 한 사람을 보았다.

“이 불쌍한 벗을 위해 할 만한 일은 없겠는가?” 하고 스승이 물었다.

이때 에트비누스는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했던 대로 하겠습니다. 그를 일으켜 함께 걷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하고 대답하였다.

스승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굳은 믿음과 하느님의 권능에 대한 신뢰심을 엿보고 만족해하였다. 그는 마침내 그 나환자를 치유하였다고 한다.

에트비누스의 수도원이 프랑크족들에 의해 파괴되자 그는 아일랜드로 피신하여 그곳의 킬데어 부근 숲속에서 거의 20년 동안 살다가 운명하였다. 그의 덕행과 기적 이야기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로마 전례력에는 그의 이름이 나오지만 아일랜드 교회력에는 나오지 않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요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946년 릴라

 

 

요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자료

불가리아에서 태어난 성 요한(Joannes)은 초창기 불가리아 수도승 가운데 한 명으로 60여 년 동안이나 로도페(Rhodope) 산맥에 있는 릴라 산에서 은수생활을 하였다.

여기서 그는 릴라 대수도원을 세웠는데, 1947년에 공산 정부에 의하여 기상 관측소로 개조될 때까지 수세기를 이어온 유명한 수도원이었다.

그는 생전에 사람들을 돕기 위해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유명하였으며, 야생 동물들과도 자유롭게 지냈다. 그는 현재 불가리아 사람들로부터 불가리아 정교회의 가장 중요한 성인 중 한 명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요한 드 라랑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de Laland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46년 캐나다

 

 

요한 드 라랑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드 라랑드 자료

프랑스 디에프(Dieppe) 출신인 성 요한(Joannes)은 일찍이 캐나다의 퀘벡으로 갔다가 그곳에 있던 예수회 선교사들의 평신도 보조자가 되었다.

1646년 그는 성 이사악 조그(Isaac Jogues)를 수행하여 이로쿼이(Iroquois) 인디언 지역을 여행하다가 모호크족(Mohawk)들에게 체포되어 뉴욕(New York)주의 알바니 교외 오세르네논에서 참수치명 당하였다.

요한은 캐나다에서 순교한 동료 예수회원 7명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요한 드 브레뵈프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de Brebeuf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93-1649년 캐나다

 

 

요한 드 브레뵈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드 브레뵈프 자료

프랑스 노르망디(Normandie)의 콩데(Conde)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성 요한(Joannes)은 어려서부터 사제가 되길 원하였다. 그러나 사제직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 의문스러울 정도로 몸이 약하였다. 하지만 그는 1617년에 루앙(Rouen)의 예수회에 입회하여 1615년에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 후 그는 선교사를 지원하여 캐나다 퀘벡 주로 떠났으며, 주로 인디언 휴런족(Huron)이 많이 거주하는 동부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하였다. 캐나다로 온 이후 그는 인디언들 사이에서 34년 동안이나 전교활동을 개척한 유명한 선교사가 되었다.

그의 고초는 필설로 다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1629년 영국인들이 퀘벡을 점령하고 예수회원들을 몰아낼 때 그도 쫓겨나서 하는 수 없이 프랑스로 돌아왔다. 그러나 그는 1633년 다시 캐나다로 돌아와 같은 지역에서 선교활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였다.

1637년 천연두가 만연하여 수천 명의 인디언들이 사망한 사건이 벌어졌는데, 선교사들이 재앙을 몰고 온 악마로 간주되어 인디언 마술사들로부터 큰 곤욕을 치렀다. 하지만 요한은 그 와중에도 인디언들 곁을 떠나지 않고 1640년까지 함께 거주하였다.

그가 잠시 퀘벡으로 갔다가 다시 인디언 부락으로 왔을 때, 프랑스와 가장 적대적이던 이로쿼이(Iroquois) 인디언들로부터 체포당하여 처참하게 살해당하였다.

그런 와중에서도 그가 보인 용기와 성덕은 수많은 인디언들을 감동시켜, 그가 죽고 난 후에도 약 7천 명의 인디언 개종자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그는 휴런족을 위해 프랑스어-휴런어 사전과 그들의 언어로 된 교리서를 저술하였다.

성 요한과 더불어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은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이사악 조그

 

  • 가톨릭 성인 이름
    Isaac Jogu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선교사,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07-1646년 캐나다

 

 

이사악 조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이삭, 아이작, 이사꼬, 이사꾸스, 이사코, 이사쿠스, 이사크, 이삭, 이자크.

 

 

이사악 조그 자료

성 이사악 조그는 1624년에 예수회에 입회하였고, 2년 뒤에 캐나다로 가는 선교사의 일원으로 파견되어 모호크족(Mohawk)들에게 주로 복음을 전하였다. 그는 슈피리어호(Lake Superior)의 동쪽 통로를 관통하고 개척한 최초의 유럽 사람이다.

1642년 그는 이로쿼이(Iroquois) 인디언에게 체포되어 1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다가 처참하게 손이 잘리는 등의 고문을 받았는데, 다행스럽게도 어느 네덜란드 사람의 도움으로 탈출하는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3년이 채 못 되어 그는 다시 돌아왔다. 그 후 그는 또다시 체포되어 칼로 난자당한 끝에 마지막으로 도끼로 쳐 죽이는 잔인한 형벌을 받고 순교하였다.

그는 캐나다에서 인디언들에 의해 희생된 다른 7명의 동료 예수회원들과 함께 1930년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성되었으며, 그들은 캐나다의 수호성인들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는 이사쿠스 조그(Isaacus Jogues, 또는 이사코 조그)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토마스

 

  • 가톨릭 성인 이름
    Thoma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187-1257년 비비유

 

 

토마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도마, 토머스.

 

 

토마스 자료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Normandie)의 비비유 지방 태생인 토마스 엘리에(Thomas Helye)는 ‘기적을 행하는 사람’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는 어릴 때부터 신심이 지극했고 성장해서는 고향 마을의 교사 및 교리 선생이 되었다.

그의 교수법이나 강의 내용이 좋아서 이웃 마을 셰르부르(Cherbourg) 주민들의 초청으로 그곳 아이들도 가르쳤으나 병으로 인하여 중도에서 그만두었다.

병에서 회복된 그는 로마(Roma)와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를 순례한 후 사제가 되었는데 그에게는 설교의 특은이 내렸다는 평을 들었다.

그는 마치 선교사인양 설교하는 일에 전념했고, 병자와 죄인들을 방문했으며 가난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의 대변자로 활약하였다. 그는 인근의 아브랑슈, 바이외(Bayeux) 그리고 리지외(Lisieux) 등 수많은 지역을 무리하게 다닌 결과 중병을 얻어 결국 망슈(Manche)의 보빌(Vauville) 성에서 선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프톨레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Ptolem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5년경

 

 

프톨레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프똘레마이오스, 프똘레마이우스, 프똘레메오, 프똘레메우스, 프롤레마이우스, 프톨레마이오스, 프톨레메우스, 프톨레미, 프톨로마이오스, 프톨로메오, 프톨로메우스.

 

 

프톨레메오 자료

성 유스티누스(Justinus, 6월 1일) 순교자의 초기 기록에 따르면, 성 프톨레메우스(Ptolemaeus, 또는 프톨레메오)는 로마에서 당시 행실이 좋지 않았던 한 부인을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고 순결한 삶을 살도록 가르쳤다.

그리스도인이 된 부인은 남편을 개종시키려고 노력하다가 예비신자 모임에 인도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러나 남편이 방탕하고 나태하여서 모임에 나가지 않으므로 하는 수 없이 남편과 헤어졌다. 이에 앙심을 품은 남편이 아내를 고발했지만 무혐의로 풀려났다.

그러자 화가 난 남편은 부인과 자기에게 교리를 가르친 성 프톨레메우스가 자기 부인과 부적절하게 행동했다고 고발하였다. 불결한 지하 감옥에 갇혀 고초를 겪은 성 프톨레메우스는 안토니누스 피우스(Antoninus Pius) 황제 치하의 우르비키우스(Urbicius) 총독 앞으로 끌려가서 공개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사형선고를 받아 처형되었다.

그가 재판을 받을 때 그 자리에 있던 성 루키우스(Lucius)는 총독의 결정에 항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사람은 죄를 범한 일이 없는데 왜 사형선고를 내리는 것이오?”

결국 성 루키우스 역시 자유롭게 그리스도인임을 고백하고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다른 동료 한 명과 함께 사형선고를 받고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성 프톨레메우스는 성 프톨로메우스(Ptolomaeu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필립보 하워드

 

  • 가톨릭 성인 이름
    Philip Howar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평신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57-1595년 영국

 

 

필립보 하워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리버, 필리뽀, 필리뿌스, 필리포, 필리포스, 필리푸스, 필립, 필립부스, 필립뽀, 필립뿌스, 필립포, 필립푸스, 호워드.

 

 

필립보 하워드 자료

성 필리푸스 하워드(Philippus Howard, 또는 필립보 하워드)는 1557년 6월 28일 영국 잉글랜드 런던(London)의 스탠드(Strand)에서 노퍽(Norfolk)의 네 번째 공작인 토마스 하워드(Thomas Howard)와 그의 첫 번째 부인인 애런들(Arundel)의 12대 백작 헨리 피츠앨런(Henry Fitzalan)의 딸인 메리 피츠앨런(Mary Fitzalan)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왕실 가족과 함께 웨스트민스터(Westminster)에 있는 화이트홀 궁(Whitehall Palace)에서 세례를 받고 대부가 되어준 에스파냐의 왕 펠리페 2세(Philip II)의 이름을 따서 필리푸스로 이름을 지었다. 그는 종교 개혁의 격변기에 태어나 14살에 이복동생인 앤 다크르(Anne Dacre)와 결혼했다.

그의 아버지 토마스 하워드 공작은 1569년 10월 1일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에게 대항하는 음모를 꾸몄다가 체포되어 1572년 여왕의 명에 의해 참수형을 당했다. 그로 인해 성 필리푸스 하워드는 노퍽의 공작 지위를 계승하지 못하였다.

그는 1574년 케임브리지(Cambridge)의 세인트 존스 대학(St. John’s College)을 졸업하고 18세경에 평소 선망하던 여왕의 궁전에 들어갔지만, 더 할 수 없는 모욕과 고통을 받았다. 그는 여왕의 박해를 피하고자 어려서부터 가톨릭적 분위기에서 성장한 아내를 무시하며 여왕의 환심을 사려고 노력하기도 했다.

1580년 외조부가 사망하면서 애런들의 13대 백작이 된 그는 다음 해에 런던탑에서 성 에드문두스 캠피언(Edmundus Campion, 12월 1일)과 성 랄프 셔윈(Ralph Sherwin, 12월 1일)과 프로테스탄트 신학자들 사이에 벌어진 논쟁에 참여했다가 가톨릭에 대한 깊은 인상과 함께 영적 회심을 경험했다.

그는 이전의 경박한 삶을 포기하고 아내와 화해했으며, 1582년 예수회 신부의 도움으로 가톨릭 신자로 개종하였다. 그의 개종은 진심에서 우러나온 행위였다. 그는 틈만 나면 신심 서적들을 저술하거나 번역하여 영국 내의 가톨릭 운동에 이바지했다. 그리고 일주일에 3일씩 단식함으로써 건강이 좋지는 않았지만 매일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나 기도를 바친 열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하지만 그의 개종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과 정계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그는 여왕에 대항하는 몇몇 음모에 연루되었다는 의심을 받자 1583년 플랑드르(Flandre) 지방으로 피신하려고 했다. 그러나 엘리자베스 여왕이 런던에 있는 그의 집을 방문해 가택 연금 지시를 내려 실패하고 말았다.

1584년 9월에 다시 잉글랜드를 탈출하려고 했으나 하인의 배신으로 배가 출항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체포되어 법원에서 막대한 벌금과 함께 종신형을 선고받고 1585년 4월 25일 런던탑에 갇혔다. 잠시 풀려나 자유를 얻기도 했지만, 다시 체포되어 런던탑에 갇혔고 1589년 4월 반역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러나 사형 집행은 여왕이 서명을 미루면서 실행되지는 않았다.

그는 10여 년을 런던탑 감옥에서 지내며 아내와 자신이 갇힌 뒤에 태어난 아들을 볼 수 있도록 여왕에게 탄원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여왕은 그에게 ‘한 번만 프로테스탄트 예배에 참석하면 아내와 아이들을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명예와 재산도 회복될 것’이라고 했지만, 그는 끝내 이에 굴복하지 않았다.

결국 1595년 10월 19일 주일에 홀로 런던탑 안에서 숨을 거두었다. 그의 유해는 1971년에 애런들 주교좌 성당에 모셔졌고, 애런들 교구의 수호 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필리푸스 하워드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 중 한 명으로 성인품에 올랐다.

그의 축일은 개인적으로는 순교일인 10월 19일에 기념하고, 시성 후에는 40위 순교자의 일원으로서 시성일인 10월 25일에 기념해 왔었다.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이후 40위 순교자들의 축일은 5월 4일로 옮겨져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과 함께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전례 안에서 기념하고 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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