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3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마르가리타, 루크레시아, 펠리치타, 총 3분 목록이에요.
11월 23일이 영명축일인 여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11월 23일 남자세례명 골룸바노, 그레고리오, 바울리노, 시시니오, 암필로키오, 클레멘스 1세, 트루도, 파테르니아노, 총 8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11월 23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3가지
11월 23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마르가리타
- 가톨릭 성인 이름
Margaret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과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464년 사보이아
마르가리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마르가리타 자료
사보이아 공국의 아마데우스(Amadeus) 왕과 교황 클레멘스 7세(Clemens VII)의 여동생 사이에서 태어난 마르가리타(Margarita)는 두 자녀를 둔 홀아비인 테오도레(Theodore)란 사람과 결혼하였다.
그녀 자신에게는 자식이 없었지만 남편을 극진히 섬겼을 뿐만 아니라, 제노바(Genova)에 기근과 전염병이 극성을 부릴 때에는 자신을 온전히 잊어가면서 주민들을 간호하여 큰 명성을 얻었다.
그러던 중 1418년에 남편과 사별한 후 그녀는 성 빈첸시오 페레리우스(Vincentius Ferrerius, 4월 5일)의 도움을 받아가며 기도생활에만 몰두하면서 25년을 살았다.
또한 그녀는 주님의 환시를 보는 도중에 질병과 중상 그리고 박해의 세 글자가 적힌 화살 세 개를 받았다고 하는데, 이것은 모두 그녀가 받을 고통을 의미했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사실로 나타났는데, 그녀는 위선자라는 고발과 동시에 중병에 걸렸으며 또 발도파 이단이라는 누명을 썼다. 그녀는 이 모든 난관을 극복하고 운명하였다. 그녀는 1669년 교황 클레멘스 9세에 의해 시복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루크레시아
- 가톨릭 성인 이름
Lucreti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6년 메리다
루크레시아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루끄레띠아, 루끄레씨아, 루크레씨아, 루크레티아.
루크레시아 자료
성녀 루크레티아(또는 루크레시아)는 에스파냐 서남부의 메리다에서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펠리치타
- 가톨릭 성인 이름
Felicity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과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5년경 로마
펠리치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펠리시티, 펠리치따스, 펠리치타스, 펠리키따스, 펠리키타스, 필리서티.
펠리치타 자료
성녀 펠리치타(Felicitas)는 로마 교회에서 오래전부터 공경해온 순교자이다.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I, 9월 3일)가 그녀의 무덤 위에 건립된 대성당에서 그녀의 순교에 관한 축일 강론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성녀 펠리치타라는 이름 외에 그녀에 대해 확실히 알려진 사실은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이 11월 23일 목록에서 기록했듯이, 로마의 살라리아 누오바 길(Via Salaria nuova)에 있는 막시무스(Maximus) 카타콤바에 그녀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다는 것뿐이다.
반면 옛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에서 일곱 아들의 어머니인 성녀 펠리치타가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안토니누스 황제(161~180년 재위)의 명령에 따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성녀 펠리치타와 그녀의 일곱 아들에 관한 전설은 이미 6세기에 교황 성 대 그레고리우스 1세의 강론에서 언급된 뒤부터 전해지고 있다. 그에 따르면 성녀 펠리치타는 세례를 받고 개종한 로마의 부유하고 경건한 부인으로 남편과 사별한 뒤에는 오로지 하느님을 섬기며 기도 생활과 자선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녀는 신앙의 열정으로 귀족 집안이던 자기 집 안에 있던 이교 신상들을 모두 제거하였다. 그러자 분노한 이교도의 사제들이 그녀를 당국에 고발하였다. 결국 성녀 펠리치타와 그녀의 일곱 아들은 황제의 명으로 총독 앞으로 끌려가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제물을 바치라는 강요를 받았다. 이때 그녀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이 나를 위협하지만 나는 두렵지 않습니다. 내 안에 계시는 하느님의 영이 모든 고난을 이기도록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자 총독이 죄 없는 자녀들마저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하지만 그녀는 “만일 그들이 신자라면 영원히 살도록 힘쓸 것이나, 그렇지 않으면 영원한 불을 기다려야 할 뿐입니다.”라고 대답해서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황제는 그들 형제를 네 명의 재판관에게 보내 각기 다른 형벌로 처형했고, 마지막으로 어머니인 성녀 펠리치타가 순교의 월계관을 얻었다.
한편 이들 형제는 1969년 전례 개혁 이전까지 ‘일곱 명의 거룩한 형제’ 순교자로 불리며 7월 10일을 축일로 기념해왔다. 하지만 이들 일곱 명의 순교자들과 성녀 펠리치타와의 연관성은 희박하다.
그들에 관한 이야기는 구약성경 마카베오 하권 7장에 나오는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를 본떠서 인위적으로 각색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7월 18일에 기념하는 성녀 심포로사(Symphorosa)와 일곱 아들 또는 일곱 명의 동료 순교자들 이야기와도 유사성이 크다.
개정 “로마 순교록”은 일곱 명의 거룩한 순교자들이 로마에 있는 네 개의 지하 묘지에 묻혀 있고, 로마 교회는 그들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억하며 함께 기념한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즉 프리스킬라(Priscilla) 묘지에 성 펠릭스(Felix)와 성 필리푸스(Philippus), 조르다니(Giordani) 묘지에 성 비탈리스(Vitalis)와 성 마르티알리스(Martialis)와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막시무스(Maximus) 묘지에 성 실라누스(Silanus), 프래텍스타투스(Praetextatus) 묘지에 성 야누아리우스(Januarius)가 묻혀 있다. 그 외에 성녀 펠리치타와의 연관성이나 일곱 명의 형제 관계 등에 관한 언급은 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그 외 세례명 날짜로 찾기
그 외 세례명 이름으로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