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레오폴도 남자세례명 3인 목록

pieonane 2024. 3. 11.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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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레오폴도는 레오폴두스, 레오폴드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레오폴도 3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레오폴도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레오폴도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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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오폴도
천주교 남자세례명
3인 목록

 

 

 

 

레오폴도 남자세례명 목록

 

  1. 레오폴도 (4월 2일)

  2. 레오폴도 만딕 (7월 30일)

  3. 레오폴도 (11월 15일)

 

레오폴도 천주교 남자세례명 3인 목록

 

 

1. 레오폴도

 

  • 세례명 축일
    4월 2일

  • 호칭 구분
    복자

  • 가톨릭 성인 이름
    Leopold

  • 신분과 직업
    수사

  • 활동 연도와 지역
    1732-1815년 가이체

 

 

레오폴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오폴두스, 레오폴드.

 

 

레오폴도 이야기

이탈리아 페루자(Perugia)의 가이체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레오폴두스(Leopoldus, 또는 레오폴도)는 요한(Joannes)이란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인근 사제의 도움으로 교육을 받았으며, 18세 되던 해인 1751년에 치보톨라(Cibotola)에서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하여 레오폴두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1757년에 사제가 된 그는 주로 사순절 순회설교를 담당했는데 대단한 인기를 얻었다.

그는 프란치스코회 선교사와 설교자들이 은퇴한 뒤에 머무를 수도원을 지으려고 하였으나 난관이 너무나 많아서 지체하다가, 결국에는 스폴레토(Spoleto) 교외 몬테 루코(Monte Luco) 언덕 위에 자신의 소망을 이룩할 수 있었다.

1808년 나폴레옹의 침략 때에 그는 77세의 고령으로 투옥되었고, 나폴레옹의 실각과 더불어 몬테 루코로 다시 돌아왔으나 몇 달 후에 선종하였다. 그는 1893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레오폴도 만딕

 

  • 세례명 축일
    7월 30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pold Mandic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866-1942년 카스텔누오보

 

 

레오폴도 만딕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오폴두스, 레오폴드.

 

 

레오폴도 만딕 이야기

1866년 5월 12일 달마티아(Dalmatia)의 카스텔누오보에서 태어난 성 레오폴두스 만딕(Leopoldus Mandic, 또는 레오폴도)은 매우 작은 키에 건강이 좋지 않았지만 겸손함, 침착함, 하느님의 현존 앞에 자신의 전부를 내놓을 수 있는 위대한 능력을 지녔었다.

그는 우디네(Udine)의 카푸친회에 입회하여 1884년 수련기를 보내고, 이탈리아의 파도바(Padova)와 베네치아(Venezia)에서 수학한 후 1890년 사제품을 받으며 레오폴두스라는 이름을 받았다.

동유럽에서 선교를 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에도 불구하고 그는 베네치아 지방에서 소임을 받았으며 파도바에서 40년 동안 살게 되었다. 인종과 종교가 다른 지역에서 성장한 그는 교회의 완벽한 일치로의 재건을 꿈꾸고 노력했다.

유명한 아르스(Ars)의 성 요한 마리아 비안네(Joannes Maria Vianney, 8월 4일)처럼 성 레오폴두스의 특별한 은사는 사람의 마음을 읽는 것이었다. 자신을 ‘새장에 갇힌 새’로 표현했듯이 그는 고해신부와 영적 지도자로서 활동했다.

1962년 성 레오폴두스의 복자품에 관련된 결의문에서 라라오나(Larraona)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그분의 일상은 이러했다. 아침 일찍 미사를 지낸 후 고해소에 하루 종일 앉아 고백을 들었다. 어떠한 불만도 없이 40년 동안 이 소임을 충실히 해냈다.”

1942년 7월 30일, 평소와 같이 미사를 준비하다 쓰러진 그는 병자성사를 받고 형제들의 성가를 들으며 선종하였다. 그는 용서와 평화를 증진하는 중심이 되었고, 그의 삶은 화해의 성사(고해성사)의 중요성과 이 성사를 통해 지상 여정에서 얻게 되는 안식의 중요성에 대해 사제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컸다.

그의 시복 시성은 단기간에 추진되었다. 당시 교회법은 후보자가 복자품에 오르기 전에 50년이 경과할 것을 규정하고 있었지만, 성 레오폴두스의 성덕이 너무도 명백해서 30년이 조금 지난 1976년 5월 2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다.

이어 1983년 10월 16일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시성되었다.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서는 그의 축일은 5월 12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레오폴도

 

  • 세례명 축일
    11월 1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Leopold

  • 신분과 직업


  • 활동 연도와 지역
    1075-1136년 오스트리아

 

 

레오폴도 세례명과 같은 이름

레오폴두스, 레오폴드.

 

 

레오폴도 이야기

성 레오폴두스(Leopoldus, 또는 레오폴도)는 오스트리아의 가르스에서 태어나 독일로 가서 파사우(Passau)의 성 알트만(Altman, 8월 8일) 주교의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23세의 나이로 부왕을 승계하였다.

1105년에 그는 황제 하인리히 5세의 딸인 아녜스와 결혼하였다. 그는 18명의 자녀를 두었는데 그중의 한 명은 유명한 역사가인 프라이징(Freising)의 오토(Otto)이다.

성 레오폴두스는 클로스터노이부르크(Klosterneuburg), 하일리겐크로이츠(Heiligenkreuz), 클라인마리아첼(Kleinmariazell) 등지에 수도원들을 세웠다. 그러나 그는 1125년 독일 황제로 대관하는 것은 거부하였다.

그는 40년 동안 통치하였는데, 온전히 그리스도인다운 자세로 권력을 행사하였으므로 국민들로부터 ‘선한 사람’이란 칭호를 얻었고, 1485년에 교황 인노켄티우스 8세(Innocentius VIII)의 의해 시성되고, 1663년에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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