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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 남자세례명 16가지

피어나네 2023. 4. 13.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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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13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귀노코, 다다, 마르시오, 마르티노 1세, 마일스 제라드, 막시모, 아가토도로, 야고보, 에드문도 캐터릭, 요한 록우드, 우르소, 카르포, 퀸틸리아노, 파필로, 프란치스코 디킨슨, 헤르메네질도, 총 16분 목록이에요.

 

4월 13일이 영명축일인 남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4월 13일 여자세례명 마르가리타, 아가토니카, 이다 (동정녀), 이다 (과부), 총 4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4월 1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6가지

 

 

 

 

4월 13일 남자세례명 목록

 

  1. 귀노코

  2. 다다

  3. 마르시오

  4. 마르티노 1세

  5. 마일스 제라드

  6. 막시모

  7. 아가토도로

  8. 야고보

  9. 에드문도 캐터릭

  10. 요한 록우드

  11. 우르소

  12. 카르포

  13. 퀸틸리아노

  14. 파필로

  15. 프란치스코 디킨슨

  16. 헤르메네질도

 

4월 13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16가지

 

 

1. 귀노코

 

  • 가톨릭 성인 이름
    Guinoch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838년 스코틀랜드

 

 

귀노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귀노꼬, 귀노꾸스, 귀노쿠스, 귀노크, 귀녹
.

 

 

귀노코 자료

스코틀랜드의 주교 성 귀노쿠스(또는 귀노코)는 애버딘(Aberdeen) 성무일도 안에서 기념하고 있고 또 뷰캔(Buchan)에서 특별한 공경을 받고 있다. 일부 학자들은 성 귀노쿠스가 케네스(Kenneth) 왕의 고문이었다고 믿고 있다. 그들은 성 귀노쿠스의 기도가 하루 동안 7번의 전투에서 픽트족(Picts)과 싸워 물리친 케네스 왕을 도왔다고 한다. 그는 귀노크(Guinoc)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다다

 

  • 가톨릭 성인 이름
    Dada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다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다다스.

 

 

다다 자료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다다와 성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는 불가리아 도나우(Donau) 강 유역 도로스토룸(Dorostorum) 출신의 형제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오조비아(Ozob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막시무스는 독서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마르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530년경

 

 

마르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스, 마르시우스, 마르씨오, 마르씨우스, 마르티오, 마르티우스.

 

 

마르시오 자료

성 마르티우스(또는 마르시오)는 젊어서부터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기로 하고 세속을 끊어버렸다. 그 후 그는 산속에 은둔소를 짓고 평화롭게 지내면서 성덕과 영적 특은을 받으므로 점차 위대한 성인으로 자라고 있었다. 그는 기도와 땅을 일구는 시간만 있는 사람처럼 살면서 높은 덕을 쌓아갔다.

그래서 그의 주위에는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들어 공동체를 이루며 살았는데, 하루는 이곳에 도둑이 들어 움막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챙겨들고 나가려던 참이었다. 성 마르티우스는 그의 행동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지켜보고 있었으나, 제자들이 도둑을 붙들자 이렇게 말하였다.

“그가 갖고 싶은 것은 다 주어라.”

그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와서 “평화롭게 가라”고 말하였다. 그는 90세까지 장수하다가 선종하였다. 성 마르티우스는 마르스(Mars)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르티노 1세

 

  • 가톨릭 성인 이름
    Martin I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교황,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655년

 

 

마르티노 1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르띠노, 마르띠누스, 마르티누스, 마틴, 말딩.

 

 

마르티노 1세 자료

이탈리아 중부 토스카나(Toscana)의 토디(Todi)에서 태어난 성 마르티누스(Martinus, 또는 마르티노)는 로마로 온 뒤부터 그의 학덕과 신심이 널리 알려졌다. 부제 때 그는 교황 테오도루스 1세(Theodorus I)의 대사 자격으로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에 갔었고, 649년 5월 14일 교황이 선종한 후 새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당시 교황 선출 후 황제에게 승인받던 관행을 지키지 않고 같은 해 7월 5일 교황좌에 올랐다. 그럼으로써 종교 문제에 관한 한 황제로부터 독립하고자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황제가 그를 합법적인 교황으로 인정하지 않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교황이 된 후 가장 먼저 단의설(單意說, monotheletismus) 이단에 대한 교회의 정통 교의를 확고히 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즉위한 해에 바로 라테라노(Laterano)에서 교회 회의를 소집해 단의설 이단을 단죄하고, 단의설 이단에 대한 언급을 금지하고 교회 문제에 직접 관여하고자 한 헤라클리우스 황제의 칙령 엑테시스(Ecthesis)와 콘스탄스 2세 황제의 칙령 티포스(Typos)를 거부했다.

아울러 교회 회의를 통해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인 바오로(Paulus)와 그의 선임자들을 파문했다. 그리고 정통 교의를 담은 20개의 규정을 발표했다.

성 마르티누스 1세 교황의 결정은 아프리카와 영국 그리고 에스파냐의 주교들에게 지지를 받았지만, 테살로니카의 주교나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로부터는 강한 반대에 부딪혔다.

이미 파문 받은 콘스탄티노플의 바오로 총대주교는 콘스탄스 2세 황제의 티포스 칙령에 서명하도록 더욱 강력한 정책을 사용할 것을 황제에게 요구했고, 황제 또한 자신의 종교 정책에 도전한다고 생각해 즉시 교황을 체포해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하도록 라벤나의 총독인 올림피우스(Olympius)를 파견했다.

하지만 올림피우스는 교황이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황제의 명을 실행하지 않았다. 이에 황제는 신임 총독 테오도루스 칼리오파스(Theodorus Calliopas)를 군대와 함께 로마로 파견하며, 교황이 비합법적으로 선출되었기에 파문되어야 한다며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압송해 오도록 했다.

당시 병중에 있던 교황은 라테라노 대성당에 은신했으나, 653년 6월 17일 총독과 군인들이 대성당까지 들어오자, 자신 때문에 로마의 대중들이 피해를 받을까 두려워 항거하지 않고 황제에게 간다고 선포했다. 그는 6월 19일 병든 고령의 몸을 이끌고 에게해를 출발해 길고도 고통스러운 여정을 시작했다.

낙소스(Naxos)에서 거의 1년 정도 머물렀지만 아무도 그를 도울 수 없었다. 654년 9월 17일 콘스탄티노플에 도착한 그는 오랫동안 대중의 조롱과 모욕을 받았다. 감옥으로 이송된 후에도 거의 3개월 정도 배고픔과 추위에 시달리며 잔혹한 대우를 받았다.

그해 12월 19일에는 정통 교의에 대한 심문이 아닌 올림피우스의 반역에 동조했다는 반역죄 혐의로 심문을 받고, 갖가지 정치적 죄목들을 부과해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 후 감옥에서 다시 3개월 정도 지낸 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의 간청으로 황제에 의해 유배형을 받고 크림(Kyrm) 반도에 있는 케르소네수스(Chersonesus)로 유배를 떠났다.

유배지에 도착한 교황 성 마르티누스 1세는 추위와 굶주림 그리고 잔혹한 대우와 고문의 후유증으로 655년 9월 16일 하느님의 품으로 떠났다. 그의 시신은 유배지 인근 성모 성당에 매장되었다가 후에 로마의 성 마르티노 성당(San Martino ai Monti)으로 이장해 모셨다.

로마 교회는 정통 교의를 지키다가 유배지에서 온갖 수난을 겪고 삶을 마감한 그를 순교자로서 공경했는데, 그는 교황 중에서 순교자로 공경 되는 마지막 인물이다.

그의 축일은 과거 11월 12일에 기념했으나, 1969년 보편 전례력 개정 이후 동방 교회와 함께 4월 13일에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도 4월 13일에 교황이자 순교자인 성 마르티누스 1세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마일스 제라드

 

  • 가톨릭 성인 이름
    Miles Gerar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50?-1590년 영국

 

 

마일스 제라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게라르도, 게라르두스, 제라르도, 제라르두스, 제라르드.

 

 

마일스 제라드 자료

마일스 제라드는 1550년경 잉글랜드 북서부 그레이터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의 위건(Wigan) 근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1579년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으로 가서 공부하고 다시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1583년 4월 7일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589년 8월 말에 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영국 선교를 위해 출발하기 전까지 랭스의 영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프란치스코 디콘슨(Franciscus Dicconson)으로도 불리는 프란치스코 디킨슨(Franciscus Dickenson)은 1564년 잉글랜드 북동부 요크셔(Yorkshire)의 오틀리(Otley)에서 태어났다.

1582년 사제가 되기 위해 잉글랜드를 떠나기 전까지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는 프랑스의 두에와 랭스의 영국 대학에서 수학한 후 1589년 3월 18일 수아송(Soissons)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마일스 제라드와 동료들은 잉글랜드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1589년 11월에 프랑스 북부의 됭케르크(Dunkirk) 항구로 갔는데, 선원이 두 명 이상은 태울 수 없다고 해서 마일스 제라드와 프란치스코 디킨슨이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런던(London)으로 향하던 배가 항로를 벗어나 켄트(Kent)의 도버(Dover) 항구에 도착하자 검색을 받고 가톨릭 사제임이 드러나 바로 체포되고 말았다.

그들은 곧 런던으로 이송되어 감옥 안에서 악명높은 가톨릭 사제 사냥꾼인 리차드 톱클리프(Richard Topcliffe)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끝까지 거부하여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켄트의 로체스터(Rochester)로 끌려가 1590년 4월 13일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마일스 제라드와 프란치스코 디킨슨은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4월 13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그들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막시모

 

  • 가톨릭 성인 이름
    Maxim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독서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막시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막시무스, 막씨모, 막씨무스.

 

 

막시모 자료

성 막시무스(또는 막시모), 성 다다(Dadas)와 성 퀸틸리아누스(Quintilianus)는 불가리아 도나우(Donau) 강 유역 도로스토룸(Dorostorum) 출신의 형제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오조비아(Ozob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막시무스는 독서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아가토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Agathodor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노예,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0/250년?

 

 

아가토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가또도로, 아가또도루스, 아가토도루스.

 

 

아가토도로 자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의 페르가몬(Pergamon)에 살았던 성녀 아가토니카(Agathonica)는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란 이유 때문에 로마 총독 앞에 끌려가서 이교신상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권고를 죽음으로써 거절하였다. 화가 치민 형리들이 그녀와 아이들을 떼어 놓고 협박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아이들은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이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녀의 용모가 빼어났으므로 유혹의 손길까지 뻗히고 또 옷도 벗겼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당한 후 그녀는 “주님, 저는 주님을 증거하려 하오니, 주 예수님, 저를 도우소서.” 하며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룩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한편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의하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소아시아 리디아(Lydia) 왕국 고르두스(Gordus)의 주교인 성 카르푸스(Carpus)와 티아티라(Thyatira)의 부제인 성 파필루스(Papylus) 그리고 그들의 노예인 성 아가토도루스(또는 아가토도로)가 성녀 아가토니카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페르가몬에서 로마 총독 발레리우스 앞에 끌려가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산채로 불 태워지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녀 아가토니카는 성 파필루스 부제의 누이라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야고보

 

  • 가톨릭 성인 이름
    Jame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1392년 체르탈도

 

 

야고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야고버, 야고부스, 야코보, 야코부스, 자크, 제임스.

 

 

야고보 자료

이탈리아 피렌체(Firenze) 교외 체르탈도 태생인 야고보 구이디(Jacobus Guidi)는 부친과 모친을 따라서 어릴 때부터 카말돌리회 수도자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자신의 성소를 빨리 발견하였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고향에 있는 성 클레멘스(Clemens)와 성 유스투스(Justus) 수도원에 입회하여 카말돌리회의 수도자가 되었다.

그는 40여년을 수도원 성당의 본당사제로서 지냈다. 그의 신심과 엄격한 생활은 그를 만나는 사람에게 모두 큰 감명을 주었고, 그의 청빈 정신은 부모의 유산조차 마다할 정도로 철저하였다. 두 번이나 원장직을 거절하다가 세 번째에 그 직분을 수락하였지만, 6개월 뒤에 사임하고 다시 평수사로 되돌아갔다고 한다. 그는 평수사로서 10년을 더 살다가 운명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에드문도 캐터릭

 

  • 가톨릭 성인 이름
    Edmund Catherick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605?-1642년 영국

 

 

에드문도 캐터릭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드먼드, 에드몬드, 에드문두스, 에드문드, 카테릭, 캐서릭, 케서릭, 케터릭.

 

 

에드문도 캐터릭 자료

에드문두스 캐터릭(Edmundus Catherick, 또는 에드문도 캐터릭)은 1605년경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Lancashire)에서 태어난 듯하다. 그는 가톨릭 집안의 후손으로 사제가 되기 위해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에서 교육받고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635년경 영국 선교를 위해 잉글랜드로 돌아와 요크셔(Yorkshire)를 중심으로 사목 활동을 전개하며, 감시의 눈을 피하려고 어머니의 결혼 전 성(姓)으로 추정되는 허들스턴(Huddleston)이란 가명을 사용했다. 그는 7년 정도 선교사로 활동하다가 와틀라스(Watlas) 인근에서 체포되어 요크 성(城)에 갇혔고, 재판에서 요한 록우드(Joannes Lockwood) 신부와 함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들의 사형은 당시 국왕이던 찰스 1세(Charles I)가 잠시 요크의 영지에 머무르던 1642년 4월 13일 집행되었다. 에드문두스 캐터릭과 요한 록우드 신부는 요크의 거리를 가로질러 처형장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에드문두스 캐터릭은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4월 13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에드문두스 캐터릭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요한 록우드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Lockwood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55?-1642년 영국

 

 

요한 록우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락우드,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록우드 자료

요한 록우드(Joannes Lockwood)는 1555년경 영국 잉글랜드의 요크셔(Yorkshire)에서 소워비(Sowerby)의 귀족 가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1579년 동생과 함께 사제직을 준비하기 위해 프랑스의 랭스(Reims)로 갔다. 그는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이탈리아 로마(Roma)의 영국 대학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동생이 먼저 사제품을 받은 후 요한 록우드는 1597년 1월에 사제품을 받고, 이듬해 4월 영국 선교를 위해 출발했다. 그는 선교 활동 중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가 1610년 국외로 추방당했다. 그 후 다시 잉글랜드로 돌아와서 활동하다 체포되어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다행히 형의 집행이 유예되어 풀려났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게이튼비(Gatenby)에서 세 번째로 체포되어 1642년 4월 13일 찰스 1세(Charles I) 왕의 통치 중에 가톨릭 사제라는 이유로 에드문두스 캐터릭(Edmundus Catherick) 신부와 함께 요크의 거리를 가로질러 처형장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요한 록우드는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4월 13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요한 록우드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우르소

 

  • 가톨릭 성인 이름
    Urs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396년 라벤나

 

 

우르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우르수스.

 

 

우르소 자료

이탈리아 라벤나의 주교로 20년간 사목했던 성 우르수스(또는 우르소)는 비록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얼마 없음에도 불구하고 라벤나에서 성인의 축일을 축하하면서 새롭게 부활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카르포

 

  • 가톨릭 성인 이름
    Carp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0/250년? 고르두스

 

 

카르포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까르뽀, 까르뿌스, 카르푸스.

 

 

카르포 자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의 페르가몬(Pergamon)에 살았던 성녀 아가토니카(Agathonica)는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란 이유 때문에 로마 총독 앞에 끌려가서 이교신상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권고를 죽음으로써 거절하였다. 화가 치민 형리들이 그녀와 아이들을 떼어 놓고 협박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아이들은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이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녀의 용모가 빼어났으므로 유혹의 손길까지 뻗히고 또 옷도 벗겼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당한 후 그녀는 “주님, 저는 주님을 증거하려 하오니, 주 예수님, 저를 도우소서.” 하며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룩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한편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의하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소아시아 리디아(Lydia) 왕국 고르두스의 주교인 성 카르푸스(또는 카르포)와 티아티라(Thyatira)의 부제인 성 파필루스(Papylus) 그리고 그들의 노예인 성 아가토도루스(Agathodorus)가 성녀 아가토니카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페르가몬에서 로마 총독 발레리우스 앞에 끌려가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산채로 불 태워지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녀 아가토니카는 성 파필루스 부제의 누이라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퀸틸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Quintili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03년

 

 

퀸틸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귄실리아노, 귄실리아누스, 귄틸리아노, 귄틸리아누스, 뀐띨리아노, 뀐띨리아누스, 퀸실리아노, 퀸실리아누스, 퀸틸리아누스.

 

 

퀸틸리아노 자료

성 막시무스(Maximus), 성 다다(Dadas)와 성 퀸틸리아누스(또는 퀸틸리아노)는 불가리아 도나우(Donau) 강 유역 도로스토룸(Dorostorum) 출신의 형제로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때 오조비아(Ozobia)에서 순교하였다. 성 막시무스는 독서자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파필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apy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부제,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0/250년? 티아티라

 

 

파필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빠삘로, 빠삘루스, 파필루스.

 

 

파필로 자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의 페르가몬(Pergamon)에 살았던 성녀 아가토니카(Agathonica)는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란 이유 때문에 로마 총독 앞에 끌려가서 이교신상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권고를 죽음으로써 거절하였다. 화가 치민 형리들이 그녀와 아이들을 떼어 놓고 협박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아이들은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이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녀의 용모가 빼어났으므로 유혹의 손길까지 뻗히고 또 옷도 벗겼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당한 후 그녀는 “주님, 저는 주님을 증거하려 하오니, 주 예수님, 저를 도우소서.” 하며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룩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한편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의하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소아시아 리디아(Lydia) 왕국 고르두스(Gordus)의 주교인 성 카르푸스(Carpus)와 티아티라(Thyatira)의 부제인 성 파필루스(또는 파필로) 그리고 그들의 노예인 성 아가토도루스(Agathodorus)가 성녀 아가토니카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페르가몬에서 로마 총독 발레리우스 앞에 끌려가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산채로 불 태워지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녀 아가토니카는 성 파필루스 부제의 누이라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프란치스코 디킨슨

 

  • 가톨릭 성인 이름
    Francis Dickenson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64-1590년 영국

 

 

프란치스코 디킨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디켄슨, 디콘슨, 방지거, 프란체스꼬, 프란체스꾸스, 프란체스코, 프란체스쿠스, 프란치스꼬, 프란치스꾸스, 프란치스쿠스, 프랜시스.

 

 

프란치스코 디킨슨 자료

마일스 제라드(Miles Gerard)는 1550년경 잉글랜드 북서부 그레이터맨체스터(Greater Manchester)의 위건(Wigan) 근방에서 태어났다. 그는 사제가 되기 위해 1579년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으로 가서 공부하고 다시 랭스(Reims)의 영국 대학에서 학업을 마치고 1583년 4월 7일 그곳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그는 1589년 8월 말에 다섯 명의 동료와 함께 영국 선교를 위해 출발하기 전까지 랭스의 영국 대학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프란치스코 디콘슨(Franciscus Dicconson)으로도 불리는 프란치스코 디킨슨(Franciscus Dickenson, 또는 프란체스코 디킨슨)은 1564년 잉글랜드 북동부 요크셔(Yorkshire)의 오틀리(Otley)에서 태어났다.

1582년 사제가 되기 위해 잉글랜드를 떠나기 전까지 그의 초기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는 없다. 그는 프랑스의 두에와 랭스의 영국 대학에서 수학한 후 1589년 3월 18일 수아송(Soissons)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마일스 제라드와 동료들은 잉글랜드로 가는 배를 타기 위해 1589년 11월에 프랑스 북부의 됭케르크(Dunkirk) 항구로 갔는데, 선원이 두 명 이상은 태울 수 없다고 해서 마일스 제라드와 프란치스코 디킨슨이 먼저 출발하기로 했다. 그런데 런던(London)으로 향하던 배가 항로를 벗어나 켄트(Kent)의 도버(Dover) 항구에 도착하자 검색을 받고 가톨릭 사제임이 드러나 바로 체포되고 말았다.

그들은 곧 런던으로 이송되어 감옥 안에서 악명높은 가톨릭 사제 사냥꾼인 리차드 톱클리프(Richard Topcliffe)에게 혹독한 고문을 받았다. 그들은 엘리자베스 1세(Elizabeth I) 여왕에 대한 충성 서약을 끝까지 거부하여 반역죄로 사형선고를 받고, 켄트의 로체스터(Rochester)로 끌려가 1590년 4월 13일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마일스 제라드와 프란치스코 디킨슨은 1929년 12월 1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순교한 날인 4월 13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 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그들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 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헤르메네질도

 

  • 가톨릭 성인 이름
    Hermenegild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왕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585년

 

 

헤르메네질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헤르메네길도, 헤르메네길두스, 헤르메네길드, 헤르메네길트, 헤르메네질두스, 헤르메네질드.

 

 

헤르메네질도 자료

성 헤르메네길두스(Hermenegildus, 또는 헤르메네질도)는 에스파냐 서고트족(Visigoths)의 레오비길두스(Leovigildus) 왕과 그의 첫 번째 부인인 테오도시아(Theodosia)의 아들로서 아리우스(Arius) 이단에 젖어 있던 부친의 영향을 받고 자랐다.

그러나 열렬한 정통파 신앙인인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의 시제베르트(Sigebert) 왕의 딸과 결혼함으로써 올바른 신앙을 되찾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그의 부친은 아들에게 준 모든 소유와 지위를 박탈하려 하였다. 그러자 헤르메네길두스는 이를 완강히 거부하며 아리우스 이단과의 투쟁을 선언하고 전투에 들어갔다.

그러나 차츰차츰 아들의 입장을 이해한 부친이 화해하고 그전의 지위를 회복시켰으나, 계모로 들어선 고스빈다(Gosvinda)는 자신이 낳은 아들을 후계자로 삼으려는 계략으로 그를 투옥시키고 군인들을 보내어 살해하였다.

그는 아리우스 이단을 죽음으로 거부하여 정통 신앙을 지킨 순교자로서 높은 공경을 받는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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