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3일에 해당하는 여자세례명 마르가리타, 아가토니카, 이다 (동정녀), 이다 (과부), 총 4분 목록이에요.
4월 13일이 영명축일인 여자세례명은 어떤 이름이 좋을까요?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천주교 세례명 상세정보로 이동합니다. 어울리는 세례명을 지금 바로 찾아보세요.
4월 13일 남자세례명 귀노코, 다다, 마르시오, 마르티노 1세, 마일스 제라드, 막시모, 아가토도로, 야고보, 에드문도 캐터릭, 요한 록우드, 우르소, 카르포, 퀸틸리아노, 파필로, 프란치스코 디킨슨, 헤르메네질도, 총 16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4월 13일
천주교 여자세례명
4가지
4월 13일 여자세례명 목록
1. 마르가리타
- 가톨릭 성인 이름
Margaret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287-1320년 치타디카스텔로
마르가리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가렛, 마르가리따, 말가리다, 말가리따, 말가리타.
마르가리타 자료
1293년경 치타디카스텔로의 몇몇 부인들이 본당으로 기도하러 갔다가 부모로부터 버려진 6-7세 된 여아를 발견했는데 불행하게도 맹인이었다. 이 맹인 소녀 마르가리타(Margarita)는 이집 저집에서 보호받다가 마침내 어느 수녀원에서 자라게 되었다. 그러나 이 수녀원이 그리 성스럽지 못하여 그녀를 학대하자 어느 부부가 제공한 조그마한 집에서 살기 시작하였다.
13세 때 그녀는 도미니코회의 3회원이 되면서부터 하느님께 온전히 의지하는 봉헌생활을 시작하였다. 하느님께서는 그녀에게 치유의 은혜를 허락하셨다. 그래서 그녀는 많은 이들의 병을 고쳐주었으며, 부모가 일터로 가고 없는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하였다.
그녀는 조그마한 학교를 세우고 그들을 교육했는데, 자신이 맹인임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사람보다 훨씬 뛰어나게 활약하였다. 마르가리타는 33세의 나이로 운명할 때까지는 별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죽은 이후 비범한 인물로서 높은 공경을 받기 시작하였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1609년 교황 바오로 5세(Paulus V)에 의해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아가토니카
- 가톨릭 성인 이름
Agathonic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0/250년?
아가토니카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가또니까, 아가토니까.
아가토니카 자료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나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소아시아의 페르가몬(Pergamon)에 살았던 성녀 아가토니카는 참으로 하느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았다.
그녀는 그리스도인이란 이유 때문에 로마 총독 앞에 끌려가서 이교신상에게 제물을 바치라는 권고를 죽음으로써 거절하였다. 화가 치민 형리들이 그녀와 아이들을 떼어 놓고 협박하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 아이들은 하느님의 것이니, 그분이 돌보아 주실 것입니다.”
그녀의 용모가 빼어났으므로 유혹의 손길까지 뻗히고 또 옷도 벗겼다고 한다. 이런 수모를 당한 후 그녀는 “주님, 저는 주님을 증거하려 하오니, 주 예수님, 저를 도우소서.” 하며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거룩한 순교의 월계관을 받았다.
한편 에우세비우스(Eusebius)의 기록에 의하면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중에 소아시아 리디아(Lydia) 왕국 고르두스(Gordus)의 주교인 성 카르푸스(Carpus)와 티아티라(Thyatira)의 부제인 성 파필루스(Papylus) 그리고 그들의 노예인 성 아가토도루스(Agathodorus)가 성녀 아가토니카와 함께 체포되어 순교하였다고 한다.
그들은 페르가몬에서 로마 총독 발레리우스 앞에 끌려가서 이교도의 신상에 희생 제사를 드리라는 요구를 거부하고, 산채로 불 태워지는 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성녀 아가토니카는 성 파필루스 부제의 누이라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이다 (동정녀)
- 가톨릭 성인 이름
Ida - 호칭 구분
복녀 - 신분과 직업
동정녀 - 활동 연도와 지역
+1300년? 루뱅
이다 (동정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이다.
이다 (동정녀) 자료
성녀 이다는 고데프리두스 3세(Godefridus III)의 딸로 17세 때에 프랑스 불로뉴의 백작 에우스타키우스 2세(Eustachius II)와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매우 행복하였고 또 이들 부부는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였다.
그녀는 이때 그 당시 유명한 성인이던 성 안셀무스(Anselmus, 4월 21일)의 영적 지도를 받아 날로 덕행이 높아졌다. 그래서 그녀는 불로뉴와 바스콘비에이유에 수도원을 세웠고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남편과 사별한 후에는 더욱 세상과 거리를 두고, 외부에는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70세의 수를 누리며 살다가 선종하여 성 바아스트(Vaast)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로렌(Lorraine)의 성녀 이다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이다 (과부)
- 가톨릭 성인 이름
Ida - 호칭 구분
성녀 - 신분과 직업
과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113년 불로뉴
이다 (과부) 여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이다.
이다 (과부) 자료
성녀 이다는 고데프리두스 3세(Godefridus III)의 딸로 17세 때에 프랑스 불로뉴의 백작 에우스타키우스 2세(Eustachius II)와 결혼하였다. 이 결혼은 매우 행복하였고 또 이들 부부는 서로를 진실로 사랑하였다.
그녀는 이때 그 당시 유명한 성인이던 성 안셀무스(Anselmus, 4월 21일)의 영적 지도를 받아 날로 덕행이 높아졌다. 그래서 그녀는 불로뉴와 바스콘비에이유에 수도원을 세웠고 수많은 성당과 수도원을 재건하였다.
남편과 사별한 후에는 더욱 세상과 거리를 두고, 외부에는 일체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오로지 수덕생활에만 전념하였다. 그녀는 70세의 수를 누리며 살다가 선종하여 성 바아스트(Vaast) 수도원 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녀는 로렌(Lorraine)의 성녀 이다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그 외 세례명 날짜로 찾기
그 외 세례명 이름으로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