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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르 남자세례명 4인 목록

피어나네 2023. 4. 17.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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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세례명 네스토르는 네스또르, 네스똘, 네스톨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남자세례명 네스토르 4분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네스토르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네스토르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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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스토르
천주교 남자세례명
4인 목록

 

 

 

 

네스토르 남자세례명 목록

 

  1. 네스토르 (2월 25일)

  2. 네스토르 (3월 4일)

  3. 네스토르 (9월 21일)

  4. 네스토르 (10월 8일)

 

네스토르 천주교 남자세례명 4인 목록

 

 

1. 네스토르

 

  • 세례명 축일
    2월 25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Nestor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50/1년 마기두스

 

 

네스토르 세례명과 같은 이름

네스또르, 네스똘, 네스톨.

 

 

네스토르 이야기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팜필리아(Pamphylia, 오늘날 터키에 속한 고대 소아시아 남부)와 프리지아(Phrygia, 고대 소아시아 중서부) 지방의 총독이었던 폴리우스는 가장 잔인하게 그리스도인들을 살해했던 인물이다.

그 당시 성 네스토르는 팜필리아 지방 지중해 연안, 오늘날 터키 안탈리아(Antalya)의 라라 해변(Lara Beach) 지역에 있었던 마기두스라는 도시의 주교였다. 그는 그리스도인들뿐만 아니라 이교도들에게도 존경과 사랑을 받던 이상적인 사목자였다.

폴리우스 총독은 자신이 다스리는 지방 전역으로 군인과 관리들을 보내 그리스도인을 찾아내 이교도의 우상 앞에 희생 제물을 바치도록 강요했다. 군인들이 도착한다는 연락을 받은 그는 자신이 박해의 주요 대상임을 알고 있었지만, 도시 밖에 있는 신자들의 안전을 걱정해 피하기보다는 집에서 기도하면서 군인들을 기다렸다.

군인들이 도착하자 성 네스토르 주교는 두려워하지 않고 당당히 군인들을 따라나섰다. 그리고 재판관 앞으로 끌려가서 심문을 받았다. 재판관이 그에게 힐문하였다.

“그대는 황제의 칙령을 모르고 있단 말인가?” 그러자 성 네스토르는 “나는 전능하신 분의 명(命)만을 알고 있소.” 하고 대답했다. 재판관이 배교하고 신상 앞에 희생 제물을 바치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위협하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내가 두려워하는 것은 오로지 하느님의 매뿐이라오.”

그는 총독이 있는 인근의 페르게(Perge)로 보내져 모진 고문을 당했다. 총독은 십자가의 주님을 고백하는 사람들도 같은 고통을 겪어야 한다며 성 네스토르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했다. 그는 십자가를 메고 처형장으로 가면서 주위에 서성거리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권고하였다.

“모두 무릎을 꿇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기도하십시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신자와 비신자까지 모두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총독을 놀라게 했다고 한다.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26일 목록에서 그를 기념했으나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2월 25일로 옮겨서 그를 기록하였다. 동방 정교회는 2월 28일에 그의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네스토르

 

  • 세례명 축일
    3월 4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Nestor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

 

 

네스토르 세례명과 같은 이름

네스또르, 네스똘, 네스톨.

 

 

네스토르 이야기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5세기 이후부터 타우리카 케르소네소스(Taurica Chersonesos, ‘타우리카 반도’라는 뜻)라고 부르는 곳에 여러 개의 식민 도시를 건설했는데, 오늘날 우크라이나 남쪽 흑해로 돌출해 있는 크림반도의 케르소네소스가 대표적 항구도시였다.

오늘날 이곳은 우크라이나의 항구도시인 헤르손인데, 2014년 러시아가 무력을 통해 크림반도를 강제 병합하면서 현재 러시아 영토가 됐지만, 국제사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로마 제국 시대에 이곳은 종종 죄인들의 유배지로 사용되었는데,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때 신자들도 이곳으로 유배되기도 했다.

교황 성 클레멘스 1세(Clement I, 11월 23일)가 크림반도의 채석장으로 유배 와서 강제 노동에 시달리다가 목에 닻을 매단 채 흑해 바다로 던져져 순교한 역사가 있다.

그러면서 박해자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 지역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시작했다. 4세기 초에 케르소네소스에 주교좌가 설정되었고, 예루살렘 총대주교는 이 지역을 복음화하기 위해 많은 선교사를 파견했다.

그러면서 4세기에 많은 그리스도인이 이교도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3월 4일 목록에서 순교 시기는 조금씩 다르지만, 케르소네소스(크림반도)에서 사목하다가 순교한 거룩한 주교들로 성 바실리우스(Basilius), 성 에우게니우스(Eugenius), 성 아가토도루스(Agathodorus), 성 엘피디우스(Elpidius), 성 아이테리우스(Aetherius), 성 카피톤(Capiton), 성 에프렘(Ephraem), 성 네스토르, 성 아르카디우스(Arcadius)의 이름을 전해주었다.

전승에 따르면, 성 네스토르와 성 아르카디우스 주교는 크림반도가 아닌 키프로스(Cyprus)에서 순교했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케르소네소스에서 순교한 거룩한 주교들의 이름을 동방 정교회와 같은 날인 3월 7일로 옮겨서 기록하였다. 그리고 성 네스토르와 성 아르카디우스 주교의 이름을 3월 7일 목록에서 삭제했는데, 3월 4일이나 다른 날에도 더는 기록하지 않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네스토르

 

  • 세례명 축일
    9월 21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Nestor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2년경 가자

 

 

네스토르 세례명과 같은 이름

네스또르, 네스똘, 네스톨.

 

 

네스토르 이야기

팔레스티나의 가자 지역은 콘스탄티누스 대제 이후 많은 주민이 집단으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기도 했고, 도시에서 3km 정도 떨어진 지중해와 면한 오늘날의 리말(Rimal) 해변에는 이미 오래전부터 주교좌가 있던 마이우마(Maiuma)라는 고대 도시가 있었다.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가 통치하면서 로마의 전통을 살리고자 유일신을 믿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는 일이 발생했다.

이때 열심히 그리스도교를 믿던 성 에우세비우스(Eusebius)와 성 네스타부스(Nestabus)와 성 제노(Zeno)가 그들의 집에 있다가 이교도들에게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그들은 형제지간으로 이전에 가자에서 있었던 이교도 신전의 우상 파괴 사건과 관련되었다는 혐의를 받고 감옥에 갇혀 매질을 당했다.

흥분한 군중들은 원형 경기장에 모여 그들이 신전을 파괴한 죄를 지었다며 무조건 강력한 처벌을 요구했고, 악의적 의도를 지닌 선동가에 의해 폭도로 돌변한 군중들은 집단으로 난동을 부리며 감옥 문을 부수고 그들을 끌어냈다. 그리고 돌과 막대기 등 닥치는 대로 들고 때리며 자백을 강요했다.

세 명의 형제는 온갖 참혹한 고문을 당해 살이 찢어지고 두개골과 뼈가 깨지고 부러지는 등 눈 뜨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죽임을 당한 뒤 길가에 버려졌다. 폭도들은 그들의 시신을 불태우고 남은 뼈마저 낙타와 나귀 등 짐승의 뼈와 섞어 찾을 수 없도록 만들었다.

세 명의 형제들이 참혹하게 순교할 때 성 네스토르라는 한 청년도 그들과 함께 참혹한 고문과 매질을 당했다. 폭도가 된 군중들은 그가 죽은 줄 알고 길가에 버렸는데, 성 에우세비우스 형제의 사촌인 또 다른 성 제노(12월 26일)가 집으로 데려가서 보니 아직 살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처가 깊어 며칠을 견디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세 명의 순교자들의 뼈는 그 후 어느 신심 깊은 부인이 밤에 가서 몰래 골라낸 후 질그릇에 담아 순교자들의 사촌인 성 제노에게 건네주었다.

성 제노는 순교자들의 유해를 모시고 해안가 도시인 마이우마로 피신해 숨어 살았다. 그는 순교자들의 유해를 테오도시우스 1세 황제(379~395년 재위)의 통치 때까지 잘 간직했고, 나중에 가자의 항구 도시가 된 마이우마의 주교가 되었다.

성 제노 주교는 그의 사촌형제이자 순교자인 성 에우세비우스와 성 네스타부스와 성 제노를 위한 성당을 건립했다. 그리고 그는 선종하는 날까지 가난한 이들을 돕고 그들을 위한 음식을 마련하기 위해 직조 일을 했다.

옛 “로마 순교록”은 형제 순교자인 성 에우세비우스와 성 네스타부스와 성 제노 그리고 그들과 함께 순교한 성 네스토르를 9월 8일 목록에 기록해 기념했다. 그런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1일로 옮겨 네 명의 거룩한 순교자들을 기록하고 기념하도록 했다.

성 제노 주교에 대해서는 12월 26일을 유지하면서 9월 21일 기념하는 네 명의 순교자와의 관계와 행적 등 좀 더 자세한 설명을 추가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네스토르

 

  • 세례명 축일
    10월 8일

  • 호칭 구분
    성인

  • 가톨릭 성인 이름
    Nestor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4세기초  테살로니카

 

 

네스토르 세례명과 같은 이름

네스또르, 네스똘, 네스톨.

 

 

네스토르 이야기

테살로니카의 성 데메트리우스(Demetrius, 10월 8일)의 제자이자 동료로 알려진 성 네스토르는 비록 그의 순교에 대한 기록이 세세한 점에서 의심스러운 점은 있지만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테살로니카에서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전승에 따르면, 당시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군중들의 즐거움을 위해 골리앗과 같은 힘과 체격을 지닌 리아이우스(Lyaeus)라는 검투사를 내세워 원형경기장에서 결투를 벌이게 했다. 이때 많은 그리스도인이 무고한 희생자가 되어 원치 않는 경기에 나가 처참히 검투사의 칼날에 쓰러져나갔다.

이에 성 네스토르는 더 이상의 희생을 막고자 리아이우스와 대결을 신청했다. 그는 먼저 감옥에 있는 성 데메트리우스를 만나 그의 축복을 청했다. 그리고 원형경기장에 나가 하느님의 도우심을 청하는 기도를 바치고 대결을 벌여 리아이우스에게 치명상을 입혔다.

이에 화가 난 막시미아누스 황제는 직접 자신의 칼로 성 네스토르를 참수하도록 명했다. 동방교회에서는 그의 축일을 10월 27일에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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