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세례명/세례명 이름 찾기

수산나 여자세례명 6인 목록

피어나네 2023. 1. 9.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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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세례명 수산나는 수잔, 수잔나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천주교 여자세례명 수산나 6인 자료를 한눈에 볼 수 있게 모았어요. 축일로 구분한 아래 세례명 목록을 클릭하면 해당하는 수산나 가톨릭 성인의 스토리로 이동합니다. 본받고 싶은 수산나를 찾아 가톨릭 성인의 믿음과 가치를 발견해 보세요.

 

 

 

 

본받고 싶은 세례명 찾기

수산나
여자세례명
6인 목록

 

 

 

 

수산나 여자세례명 목록

 

  1. 수산나 (1월 18일)

  2. 수산나 (5월 24일)

  3. 강경복 수산나 (5월 29일)

  4. 수산나 (8월 11일)

  5. 수산나 (9월 19일)

  6. 우술임 수산나 (9월 20일)

 

수산나 천주교 여자세례명 6가지

 

 

1. 수산나

 

  • 세례명 축일
    1월 18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Susann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3년

 

 

수산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수잔, 수잔나.

 

 

수산나 이야기

성녀 아르켈라이스(Archelais)와 성녀 테클라(Thecla) 그리고 성녀 수산나는 로마냐(Romagna) 지방의 처녀들로 박해를 피해 이탈리아 남부 캄파니아(Campania)의 놀라(Nola)로 피신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곳에서 체포되어 살레르노(Salerno)로 이송된 후 잔인한 고문을 받고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수산나

 

  • 세례명 축일
    5월 24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Susanna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세기

 

 

수산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수잔, 수잔나.

 

 

수산나 이야기

성녀 수산나와 성녀 마르키아나(Marciana) 그리고 성녀 팔라디아(Palladia)는 성 멜레티우스(Meletius)가 지휘하던 부대 군인들의 부인들이다. 그들은 자녀들과 또 다른 사람들과 함께 갈라티아(Galatia)에서 순교하였다. 그들의 행전은 전설적이다. 교회 미술에서 그들은 종려가지를 들고 있는 세 명의 여성 순교자로 그 옆에 어린이들이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강경복 수산나

 

  • 세례명 축일
    5월 29일

  • 호칭 구분
    복녀

  • 가톨릭 성인 이름
    姜景福 Susanna

  • 신분과 직업
    양인, 궁녀,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762-1801년 한국

 

강경복 수산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강 수산나, 강수산나, 수잔, 수잔나.

 

 

강경복 수산나 이야기

강경복(姜景福) 수산나(Susanna)는 1762년 양인 집안에서 태어나 궁녀가 되었으며, 순교할 때까지 동정으로 생활하였다. 그녀가 살던 집은 ‘양제궁’이었는데, 사람들은 이를 ‘폐궁’(궁궐에서 쫓겨난 왕실의 친족이 거처하던 집이라는 뜻)이라고도 불렀다. 그 집의 주인은 송 마리아와 그녀의 며느리 신 마리아였다. 이들은 일찍부터 천주교에 입교하여, 주문모 야고보 신부나 여회장 강완숙 골룸바와 자주 오가고 있었다.

1798년 무렵, 집주인 송 마리아는 강 수산나를 불러 천주교 교리를 설명해 주면서 이를 믿도록 권유하였다. 이때부터 강 수산나는 다른 궁녀들과 함께 교리를 배우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다. 또 집주인들과 함께 자주 강 골룸바의 집으로 가서 주 야고보 신부가 집전하는 미사나 신앙 집회에 참석하곤 하였다. 그러다가 주 야고보 신부에게 세례를 받은 이후로는 더욱 열심히 교리를 실천하였다.

1801년 2월, 신유박해가 일어났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주문모 야고보 신부는, 노비인 남구월의 안내를 받아 양제궁으로 피신하였다. 이때 강 수산나는 어머니가 사는 집에 갔다가 우연히 ‘포졸들이 천주교 신자들을 찾으러 다닌다.’는 말을 듣고는 급히 양제궁으로 가서 이 소식을 전하였다. 이 때문에 주 야고보 신부는 다행히 그곳을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피신할 수 있었다.

주 야고보 신부가 피신한 뒤 강 수산나도 양제궁을 몰래 빠져나와 다른 곳으로 피신하였다. 그러나 얼마 안 있어 뒤따라온 포졸들에게 체포되고 말았다.

포도청으로 압송된 강 수산나는 곧바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여기에 굴하지 아니하고, “이미 천주교에 깊이 빠져 있으므로, 비록 죽음을 당할지라도 마음을 바꿀 수는 없습니다.”라고 고백하였다. 그러자 포도청에서는 그녀를 상급 재판소인 의금부로 이송하였으며, 그녀는 이곳에서 더 혹독한 문초와 형벌을 받아야만 하였다. 이때 그녀는 정신이 혼미해진 탓에 잠시 마음이 약해져 “다시는 천주교를 믿지 않겠습니다.”라고 진술하였다.

의금부에서는 이러한 진술을 듣자 강 수산나를 형조로 내려보냈다. 그러자 그녀는 의금부에서 잠시 마음이 약해졌던 것을 크게 뉘우치면서 다시 신앙을 굳게 증언하였다. 박해자들이 주문모 야고보 신부를 밀고하고 마음을 돌이켜 신앙을 버리도록 강요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이제 신앙을 위해 형벌과 죽음을 달게 받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 그러므로 문초가 끝나자 다음과 같이 마지막으로 신앙을 고백하였다.

“저는 천주교에 깊이 빠져서 이를 올바른 도리라고 생각하였으며, 양제궁에 거처하면서 주문모 신부님을 찾아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후 천주교 신앙을 믿는 마음이 갈수록 굳어져 왔으니, 형벌을 당해 죽는다고 할지라도 조금도 신앙을 버릴 생각이 없습니다.”

강경복 수산나는 마침내 강완숙 골룸바 등 동료들과 함께 사형 판결을 받게 되었다. 그런 다음 1801년 7월 2일(음력 5월 22일)에 서소문 밖으로 끌려 나가 참수형으로 순교하였으니, 이때 그녀의 나이는 39세였다.

강경복 수산나는 대전교구에서 열린 제6회 아시아 청년대회에 참석하고자 한국을 사목방문한 교황 프란치스코(Franciscus)에 의해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동료 순교자 123위와 함께 시복되었다.

 

시복미사가 거행된 광화문 광장 일대는 수많은 순교자와 증거자가 나온 조선시대 주요 사법기관들이 위치해 있던 곳이며, 또한 처형을 앞둔 신자들이 서소문 밖 네거리 · 당고개 · 새남터 · 절두산 등지로 끌려갈 때 걸었던 순교의 길이었다. 윤지충 바오로와 123위 동료 순교자들은 매년 5월 29일에 함께 축일을 기념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수산나

 

  • 세례명 축일
    8월 11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Susann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95년 로마

 

 

수산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수잔, 수잔나.

 

 

수산나 이야기

로마의 사제인 성 가비누스(Gabinus, 2월 19일)의 딸인 성녀 수산나는 매우 아름다운 처녀로 교황 성 카이우스(Cajus, 4월 22일)의 조카였다.

 

그녀는 아버지와 사촌간인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로부터 자신의 아들과 결혼하라는 요구를 뿌리쳤을 뿐만 아니라, 그녀에게 결혼을 종용하도록 파견되었던 궁중 관리인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2월 18일)와 막시무스(Maximus)까지 개종시켰다.

 

분을 참지 못한 황제는 성 클라우디우스와 그의 아내 성녀 프레페디냐(Praepedigna, 2월 18일)는 물론 그들의 두 아들과 막시무스를 쿠메에서 죽이고, 성녀 수산나와 그의 아버지는 참수시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수산나

 

  • 세례명 축일
    9월 19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Susanna

  • 신분과 직업
    동정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362년

 

 

수산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수잔, 수잔나.

 

 

수산나 이야기

성녀 수산나는 이교인 사제인 아르테미우스(Arthemius)와 유대인 여인인 마르타(Martha)의 딸로 부모가 사망한 후 그리스도교로 개종하였다. 그녀는 팔레스티나(Palestina)의 엘레우테로폴리스(Eleutheropolis)에서 여부제로 활동하다가 체포되어 투옥되었다. 성녀 수산나는 배교자 율리아누스 황제 때에 지방 장관 알렉산데르의 명에 의해 감옥에서 기도하던 중에 순교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우술임 수산나

 

  • 세례명 축일
    9월 20일

  • 호칭 구분
    성녀

  • 가톨릭 성인 이름
    禹述任 Susanna

  • 신분과 직업
    과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803-1846년 한국

 

 

우술임 수산나 세례명과 같은 이름

수잔, 수잔나, 우 수산나, 우수산나.

 

 

우술임 수산나 이야기

성녀 우술임 수산나는 경기도 양주에 살던 어느 양반집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열다섯 살 때에 인천에 살던 어느 신자에게 시집을 가서 남편의 권고로 입교하여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1828년에 한 번 잡혀 사형선고를 받을 뻔했으나, 마침 해산이 임박하였으므로 몇 주일 동안 갇힌 생활 끝에 풀려 나왔는데 이때 받은 형벌로 인한 상처 때문에 일평생을 고생하며 지냈다고 한다.

그 후 남편을 여의고 서울로 올라온 수산나는 여러 교우 집으로 다니며 하인노릇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으나 덕행이 뛰어나 사람들의 눈을 끌게 되었다. 그녀는 기도에 전념하였으며, 천주를 사랑하는 뜻으로 천한 일들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녀는 늘 “내 마음에 걸리는 것은 다만 순교할 기회를 놓친 것뿐이다.”라고 하였는데, 하느님 섭리로 그 기회를 다시 얻게 되도록 기도하였다고 한다.

1846년 병오박해 때에 수산나는 여교우들과 함께 석정동의 김대건 신부 댁에서 생활하고 있다가 김 신부가 체포된 후 이 아가타(Agatha)의 집에 있다가 그녀와 함께 잡혔다.

 

포청에서 수산나는 치도곤, 태형, 주리 등의 혹형을 당하였지만 배교한다는 소리를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매질하라는 명령에 따라 수 없는 매를 맞고 결국 44세의 나이로 순교하였다.

 

이때가 1846년 9월 20일이었다. 그녀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시성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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