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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남자세례명 27가지

피어나네 2023. 2. 14.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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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에 해당하는 남자세례명 노스트리아노, 니콜라오 팔레아, 디오니시오, 마론, 메토디오, 모세, 바소, 바시아노, 발렌티노, 비탈리스, 아가토, 아브라함, 아욱센시오, 아폴로니오, 안젤로, 안토니노, 안토니오, 암모니오, 에페보, 엘레우카디오, 요한 밥티스타, 제노, 치리온, 치릴로, 콘란, 프로쿨로, 프로톨리코, 총 27분 목록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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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4일 여자세례명 펠리쿨라, 총 1분 목록은 여기에 있어요.

 

 

 

 

세례명 어떤 이름이 좋을까?

2월 1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7가지

 

 

 

 

2월 14일 남자세례명 목록

 

  1. 노스트리아노

  2. 니콜라오 팔레아

  3. 디오니시오

  4. 마론

  5. 메토디오

  6. 모세

  7. 바소

  8. 바시아노

  9. 발렌티노

  10. 비탈리스

  11. 아가토

  12. 아브라함

  13. 아욱센시오

  14. 아폴로니오

  15. 안젤로

  16. 안토니노

  17. 안토니오

  18. 암모니오

  19. 에페보

  20. 엘레우카디오

  21. 요한 밥티스타

  22. 제노

  23. 치리온

  24. 치릴로

  25. 콘란

  26. 프로쿨로

  27. 프로톨리코

 

2월 14일 천주교 남자세례명 27가지

 

 

1. 노스트리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Nostria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50년 나폴리

 

 

노스트리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노스뜨리아노, 노스뜨리아누스, 노스트리아누스.

 

 

노스트리아노 자료

이탈리아 나폴리의 주교인 성 노스트리아누스(또는 노스트리아노)는 용맹하게 아리우스주의(Arianism)와 펠라지우스주의(Pelagianism)에 맞서 싸웠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 니콜라오 팔레아

 

  • 가톨릭 성인 이름
    Nicholas Palea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신부

  • 활동 연도와 지역
    +1255년

 

 

니콜라오 팔레아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니고나오, 니꼴라오, 니꼴라우스, 니콜라스, 니콜라우스.

 

 

니콜라오 팔레아 자료

이탈리아 바리(Bari) 인근 지오비나조(Giovinazzo)의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니콜라우스 팔레아(Nicolaus Palea, 또는 니콜라오 팔레아)는 볼로냐(Bologna)에서 공부를 하던 중에 우연히 성 도미니코(Dominicus, 8월 8일)의 설교를 듣게 되었다.

그는 성인의 강론을 너무도 감명 깊게 들었기 때문에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기를 간청하였다. 귀족 출신으로 고향에 영지까지 갖고 있던 그는 자신의 유산으로 페루자(Perugia)에 도미니코회 수도원을 지었고, 트라니(Trani)에도 또 다른 수도원을 세웠다.

한때 그는 로마(Roma) 관구의 관구장까지 역임하였다. 제라르 드 프라셋은 그를 일컬어 ‘거룩하고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였다. 페루자에서 선종한 그에 대한 공경은 1828년 교황 레오 12세(Leo XII)에 의해 승인되었다.

교회미술에서 그는 자작나무와 책을 들고 있는 도미니코회 수도자로 표현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3. 디오니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Dionys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디오니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데니스, 드니, 디오니시우스, 디오니씨오, 디오니씨우스.

 

 

디오니시오 자료

성 디오니시우스(또는 디오니시오)와 성 암모니우스(Ammonius)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는데, 그 장소는 아마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여겨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4. 마론

 

  • 가톨릭 성인 이름
    Mar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435년 시리아

 

 

마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마로.

 

 

마론 자료

오론테스(Orontes) 강 부근 시리아의 한 산에서 고적한 생활을 하던 성 마론은 주로 야외생활을 했다. 그는 꼭 필요할 경우에만 염소 가죽을 덮은 움막에서 지냈는데, 그 움막을 사용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는 어느 날 버려진 신전을 하나 발견하자 이를 개조하여 하느님께 봉헌하고 기도의 집으로 가끔 이용하였다. 그를 지극히 존경하던 성 요한 크리소스토무스(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는 그에게 편지를 보내 그로부터 무슨 말을 듣고 싶어 했지만 성공하지 못한 듯하다. 그는 선 채로 기도했는데 나이가 들어서는 지팡이로 자신의 몸을 받치고 기도했다.

그는 말씀을 청하는 사람들에게 극히 짧은 말로 권고하였다. 이런 그에게 하느님은 사람들의 영육을 치유하는 능력을 허락하셨으며, 놀라운 영적 지혜로 사람들을 권면할 수 있게 해주셨다. 레바논 사람들도 성 마론을 큰 성인으로 공경하고 있다. 그는 마로(Maro)로도 불린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5. 메토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Metho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대주교,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820/825?-885년

 

 

메토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메토디우스.

 

 

메토디오 자료

성 키릴루스(Cyrillus)와 그의 형인 성 메토디우스(또는 메토디오)는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 고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 키릴루스는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어린 나이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왕립 학교에 보내져서 성 포티우스(Photius, 2월 6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다가 사제가 되었으며, 그 후 그 대학에서 스승 성 포티우스를 능가하는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성 메토디우스는 옵시키온(Opsikion) 지방의 슬라브 식민지 가운데 한 지역을 맡는 총독이 되었다가 사직한 후로는 은수자가 되었다.

이들 형제는 보스포루스(Bosporus)의 수도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황제 미카엘 3세가 러시아의 드니에프르(Dnieper) 강과 볼가(Volga) 강변에 사는 카자르족(Khazars)을 회개시키도록 파견하자 그들은 카자르 언어를 배워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선교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성 키릴루스는 이후 몇 달 동안 교황청립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성 메토디우스는 소아시아 헬레스폰트(Hellespont)의 폴리크로니온(Polychronio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863년에는 모라비아(Moravia) 왕국의 왕 로스티슬라프(Rostislav)의 요청에 따라 성 포티우스 주교는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를 모라비아인들의 개종을 위해 파견하였다.

비록 그들을 개종시키는 일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두 형제의 슬라브어 실력은 대단하였다. 성 키릴루스는 선교를 위해 성서를 고대 슬라브어로 번역하였고, 그리스 문자에 기초하여 슬라브 알파벳을 만들었다. 최종 확정된 키릴 문자는 아직도 현대 러시아어와 많은 다른 슬라브 언어의 알파벳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성 키릴루스는 성 메토디우스의 도움으로 복음서와 시편, 바오로 서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고, 전례서들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여 전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독일 성직자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동안 라틴어만 사용하던 교회의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한 것과 또 그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왔으므로 혹시 서방교회의 이단의 일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파사우(Passau)의 독일 주교가 사제 후보자 선발을 거부한 것이 그들의 선교활동에 치명적인 해를 끼쳤다. 이 사건으로 두 형제는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로부터 소환되었는데 그들이 로마(Roma)로 가던 중에 교황이 서거하였다.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하드리아누스 2세(Hadrianus II)는 두 형제의 방문에 매우 호의적이었고, 두 형제는 크림(Krym) 반도에서 서거한 교황 성 클레멘스 1세(Clemens I, 11월 23일)의 유해를 인도하여 교황의 따듯한 영접을 받았다. 하드리아누스 2세 교황은 그들의 정통성을 확신하게 되었고 또 전례에서 슬라브어 사용을 인가하였다.

그들이 로마에 머무는 동안 성 키릴루스는 수도자가 되었고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모라비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869년 2월 14일 수도원에서 운명하여 로마의 성 클레멘스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한편 성 메토디우스는 교황 특사로서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돌아갔다. 하드리아누스 2세 교황은 모라비아와 판노니아(Pannonia)를 독일 교계제도에서 독립시켜 대교구로 승격시켰고, 성 메토디우스를 판노니아와 모라비아 지방 전체를 관할하는 시르미움(Sirmium)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870년 독일의 왕 루드비히 2세와 독일 주교들은 라티스본(Ratisbon, 오늘날의 레겐스부르크) 시노드에서 성 메토디우스를 쫓아내기로 결정하고 그를 가두었다.

그는 3년간 스바비아(Swabia)에서 귀양생활을 하다가 교황 요한 8세(Joannes VIII)의 중재로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 교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한 8세 교황은 슬라브 지역에 대한 사도좌의 관할권을 지키기 위해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적인 개정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계속 적대적인 시선으로 성 메토디우스의 활동을 지켜보던 독일 교회는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그의 정통성을 문제삼아 성 메토디우스를 이단자로 고발하였고, 880년 그는 로마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교황에게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뛰어난 변론을 한 끝에 결국 교황은 교서 “인두스트리애 투애”(Industriae tuae)를 통해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을 다시 인가하였다.

882년 교황의 뜻에 따라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성 메토디우스는 제자 두 명의 도움으로 동생의 뒤를 이어 성서와 그리스어로 된 교회법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

독일 교회와 성 메토디우스 간의 투쟁은 그의 일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결국 그 모든 투쟁은 그가 건강 악화로 인해 885년 4월 6일 파스카 목요일에 자신의 주교좌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니 그는 참으로 힘든 생애를 살았다.

그러나 성 메토디우스와 성 키릴루스는 ‘슬라브 민족의 선교사’로 불리며, 동유럽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가 행한 전례는 오늘날의 러시아 전례가 되어 러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그대로 전해온다.

그들의 축일이 전 세계로 확대된 것은 188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의 회칙에 의해 이루어졌고, 198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회칙 “슬라브인의 사도들”(Slavorum Apostoli)을 통해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 함께 이들을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6. 모세

 

  • 가톨릭 성인 이름
    Mose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평신도,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모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모이세스, 모제스.

 

 

모세 자료

성 키리온(Cyrion), 성 바시아누스(Bassianus), 성 아가토(Agatho)와 성 모세(Moyses)는 모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 순교자들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화형을 받아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성 키리온은 사제였고, 성 바시아누스는 독서자, 성 아가토는 구마자 그리고 성 모세는 평신도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7. 바소

 

  • 가톨릭 성인 이름
    Bass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바소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수스, 바쏘, 바쑤스.

 

 

바소 자료

성 바수스(또는 바소)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그리고 성 프로톨리쿠스(Protolicus)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일부 고대 기록에는 이들과 함께 순교한 9명의 동료를 추가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8. 바시아노

 

  • 가톨릭 성인 이름
    Bassi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독서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바시아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바시아누스, 바시안, 바씨아노, 바씨아누스.

 

 

바시아노 자료

성 키리온(Cyrion), 성 바시아누스(Bassianus, 또는 바시아노), 성 아가토(Agatho)와 성 모세(Moyses)는 모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 순교자들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화형을 받아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성 키리온은 사제였고, 성 바시아누스는 독서자, 성 아가토는 구마자 그리고 성 모세는 평신도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9. 발렌티노

 

  • 가톨릭 성인 이름
    Valentine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69년 로마

 

 

발렌티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발렌띠노, 발렌띠누스, 발렌타인, 발렌티누스, 밸런타인.

 

 

발렌티노 자료

옛 “로마 순교록”에는 2월 14일 목록에서 두 명의 발렌티누스(Valentinus, 또는 발렌티노) 성인을 언급하고 있다. 한 사람은 로마의 사제로 많은 이들을 치유하고 복음을 전하다가 클라우디우스 2세 황제의 박해 때인 269년에 순교하여 플라미니아 거리(Via Flaminia)에 묻혔다.

다른 한 사람은 로마에서 북동쪽으로 약 100km 정도 떨어진 테르니(Terni)의 주교로 신앙 때문에 모진 매를 맞고 감옥에 갇혔으나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결국 그 지방 총독인 플라키두스의 명으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한다.

교회의 많은 학자들에 따르면 테르니의 주교인 성 발렌티누스가 로마로 압송된 후 순교했고, 나중에 그의 유해가 테르니로 옮겨졌다고 한다. 그의 순교에 대해서는 5세기경에 기록된 “성 히에로니무스의 순교록”(Martyrologium Hieronymianum)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두 명의 순교자가 실제로 현존했는지는 학자들에 따라 주장이 다르다. 두 명의 성 발렌티누스가 실존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고, 또 다른 이들은 테르니의 성 발렌티누스 주교가 로마로 이송되어 처형되었고, 그로 인해 로마와 테르니에 두 개의 전통이 생겼을 뿐 실제로는 동일 인물이라고 본다.

본래 한 사람의 이야기가 달리 전해진 것일 뿐 같은 사람이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이 더 많은 것이 사실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역시 2월 14일 목록에서 로마의 밀비오(Milvio) 다리 근처 플라미니아 거리에 성 발렌티누스 순교자가 있다고 한 명에 대해서만 간단히 기록하고 있다. 사제인지 주교인지 그 신분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았다.

중세의 대표적 성인전인 “황금 전설”(Legenda aurea / Legenda sanctorum) 등에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군사력 강화를 위해 금혼령을 내렸고, 이로 인해 많은 젊은이가 결혼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평소 가난하고 병든 이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도와주던 성 발렌티누스는 비밀리에 연인들의 결혼식을 주례하다가 체포되어 황제에게 끌려가 배교를 강요당했다. 그러나 그는 황제 앞에서도 당당히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전하며 오히려 황제의 개종을 권유하기도 했다.

결국 성 발렌티누스는 그리스도교 신자라는 죄목으로 아스테리우스(Asterius)라는 로마의 재판관에게 넘겨졌다. 그는 아스테리우스 재판관과 그리스도교 신앙과 예수님에 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재판관은 성 발렌티누스를 시험하기 위해 앞을 보지 못하는 자신의 수양딸을 데려왔다. 그리고 만약 그녀의 시력을 회복시켜 주면 무엇이든 들어주겠다고 했다.

성 발렌티누스가 그녀의 눈에 손을 얹어 기도했고, 아스테리우스의 딸은 기적적으로 다시 볼 수 있게 되었다. 이에 감동한 재판관은 성 발렌티누스의 말대로 집 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파괴하고 3일간 금식한 후 온 가족과 함께 세례성사를 받고 개종하였다.

그리고 이미 체포되어 있던 그리스도인들도 모두 풀어주었다. 그러나 이 사실이 퍼져나가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고, 성 발렌티누스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한다.

성 발렌티누스의 축일을 연인들의 축일로 기념하게 된 것은 대략 14세기부터이다. 연인들을 위해 몰래 결혼식을 주례한 성인의 이야기가 전해지면서 성 발렌티누스의 축일은 연인들의 축일이 되었다.

연인들은 이날 서로 특별한 형태의 카드(편지)를 주고받기도 했는데, 이날을 선택한 것은 이 시기가 새들이 짝짓기하는 기간의 시작이었기 때문으로 보기도 한다.

그 외에도 남성의 여성에 대한 기사도적 사랑의 표현에서 나타난 풍습으로 보기도 한다. 즉, 이 전통에 따르면 매년 2월 14일이 되면 젊은 여인들이 ‘발렌틴’(Valentin), 이른바 자신을 흠모해 시중을 들 기사를 선택하면 그 기사가 젊은 여인에게 선물을 바쳤다고 한다.

이러한 관습은 아직도 영국의 몇몇 지역에서 존속하고 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나라에서 2월 14일을 ‘연인의 날’ 또는 ‘발렌타인데이’로 부르며 주로 ‘초콜릿을 선물하는 날’로 지내는 것은 일부 상인들의 상업적 마케팅 때문에 생긴 현상으로, 성 발렌티누스 성인의 삶이나 신앙과는 거리가 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0. 비탈리스

 

  • 가톨릭 성인 이름
    Vitali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비탈리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비딸리스.

 

 

비탈리스 자료

성 비탈리스와 성녀 펠리쿨라(Felicula) 그리고 성 제노(Zeno)는 로마 순교록에서 로마(Roma)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성 비탈리스와 성녀 펠리쿨라가 성 제노와 약간의 연관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성 제노는 말머스베리(Malmesbury)의 윌리엄(William)의 언급에 의하면 아피아 거리(Via Appia)에 세워진 옛 성당의 수호성인이었다. 일부 성인전 작가들은 성 제노가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의 형제라고 하나 이것은 오류로 여겨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1. 아가토

 

  • 가톨릭 성인 이름
    Agath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구마자,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아가토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가또.

 

 

아가토 자료

성 키리온(Cyrion), 성 바시아누스(Bassianus), 성 아가토와 성 모세(Moyses)는 모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 순교자들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화형을 받아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성 키리온은 사제였고, 성 바시아누스는 독서자, 성 아가토는 구마자 그리고 성 모세는 평신도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2. 아브라함

 

  • 가톨릭 성인 이름
    Abraham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422년경 하란

 

 

아브라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브람, 에이브러햄.

 

 

아브라함 자료

시리아(Syria) 태생인 성 아브라함은 자신의 고향에서 은수자로 살았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려는 열정을 억누르지 못하여 이교도들만 사는 레바논의 리바누스(Libanus) 산의 어느 마을로 내려갔다. 

그는 처음에 과일 장사를 하다가 주민들의 심성을 살핀 후부터 복음을 전하였으나 냉대만 받았다. 그래도 그는 더욱 인내하고 온화한 자세를 갖추었지만, 그들의 손에 한 번 죽을 번한 경험을 늘 기억하면서 또 다른 방법을 궁리하였다.

마침내 그는 돈을 구하여 감옥에 갇힌 사람들을 석방시켜 개종시키는 방법을 사용하여 상당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는 3년 동안 선교하여 상당한 개종자를 얻게 되자 어느 사제에게 그들을 맡기고 자신은 사막으로 돌아갔다.

그 얼마 후에 그는 메소포타미아 지방 하란의 주교로 임명되어 본격적인 선교활동을 전개했다. 테오도시우스 2세 황제는 그의 덕을 흠모하여 그가 임종하였을 때 성인의 옷 한 점을 얻어서 그의 축일이 되면 그 옷을 직접 입고 예배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3. 아욱센시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uxent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은수자,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473년 비티니아

 

 

아욱센시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욱센시우스, 아욱센티오, 아욱센티우스, 아욱쎈씨오, 아욱쎈씨우스.

 

 

아욱센시오 자료

페르시아 사람 아다스(Addas)의 아들인 성 아욱센티우스(또는 아욱센시오)는 시리아에서 태어나 테오도시우스 황제의 시종무관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시종무관직을 그만 두고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 근교 옥시아(Oxia) 산의 한적한 곳에서 은수자 생활을 하였다.

그는 후일 마르키온 황제 앞에서 에우티케스(Eutyches)의 그리스도 단성설에 대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고, 칼케돈(Chalcedon) 근교의 스코파(Skopa) 산에서 은수 생활을 계속하여 그의 성덕이 온 나라에 퍼졌다. 그의 주위에는 수녀 공동체를 세우려는 수많은 여인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4. 아폴로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pollo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아폴로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아뽈로니오, 아뽈로니우스, 아폴로니우스.

 

 

아폴로니오 자료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프로쿨루스(Proculus)와 성 에페부스(Ephebus) 그리고 성 아폴로니우스(또는 아폴로니오)는 테르니(Terni)의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 주교 순교자의 시신을 돌본 보호자였다. 그들은 후에 체포되어 레온티우스(Leontius) 총독의 명령으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은 로마에서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온 이교도 학생들로 크라톤(Craton)이라는 가정교사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크라톤은 자기 아들이 심한 병으로 고통을 받자 성 발렌티누스 주교를 청했고, 성 발렌티누스가 밤새 기도해 아이의 병이 낫자 가족 모두 세례성사를 받았다.

크라톤의 세 제자도 세례를 받고 성 발렌티누스의 제자가 되었다. 제자들은 스승인 성 발렌티누스가 순교하자 그의 유해를 가져와 테르니로 모셨다.

그들은 많은 이교도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고 이로 인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사람들이 그들을 감옥 밖으로 탈출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총독은 한밤중에 그들의 참수형을 집행했다.

그들의 시신은 동료 신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성 발렌티누스 주교 무덤 근처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5. 안젤로

 

  • 가톨릭 성인 이름
    Angelus

  • 호칭 구분
    복자

  • 신분과 직업
    은수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265-1325년 구알도

 

 

안젤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겔로, 안겔루스, 안젤루스, 앤젤러스, 엔젤러스.

 

 

안젤로 자료

이탈리아 중부 움브리아(Umbria)의 변경인 구알도에서 태어난 안젤루스(또는 안젤로)는 극도의 단순성과 순진무구함 그리고 예모에 있어서 돋보였다. 청년 시절에 어느 걸인으로부터 빵을 빼앗은 일이 그의 양심을 괴롭히는 최고의 과오였다고 한다. 그 후 그는 늘 그 행동에 대해 후회하다가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여러 차례 성지를 순례하였다. 한 번은 이탈리아에서 에스파냐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까지 맨발로 여행하여 신심을 단련하다가 돌아오는 길에 카말돌리회의 평수사로 입회하였다. 그 후 얼마 뒤에 그는 자신의 소망인 독수 생활을 할 허가를 받아 거의 40년 동안이나 자신의 성소에 충실하였다.

그는 1325년 1월 25일에 운명했는데, 인근 지역에 이상한 종소리가 울려 퍼져서 주민들이 그의 암자로 찾아가 보니 운명해 있었다고 전한다. 그에 대한 공경은 1825년에 승인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6. 안토니노

 

  • 가톨릭 성인 이름
    Antonin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수도원장

  • 활동 연도와 지역
    +830년 소렌토

 

 

안토니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또니노, 안또니누스, 안토니누스.

 

 

안토니노 자료

성 안토니누스(또는 안토니노)는 이탈리아 남부 안코나(Ancona)의 피체눔 태생으로 젊어서 몬테카시노(Monte Cassino)의 수도원에 들어간 듯하다.

그러나 베네벤토(Benevento)의 시코 공작의 파괴 공작에 따라 이 수도원을 떠나 소렌토로 가서 그곳의 주교인 성 카텔루스(Catellus, 1월 19일)와 함께 지냈다.

그들은 곧 가까운 친구가 되었고 함께 성 미카엘(Michael)의 환시를 보았다. 그 후 소렌토 주민들이 그에게 함께 지내기를 요청해서 그는 독수생활을 포기하고 성 아그리피누스(Agrippinus) 수도원에 정착하여 원장이 되었다.

그가 운명할 때 자신의 육신을 소렌토 시내나 시외에 묻지 말라고 유언했기 때문에 그의 수도자들이 성벽 속에 안장했는데, 1354년과 1358년에 사라센인들이 침략했을 때 안토니누스 성인에게 기도하여 침략군을 물리치고 승리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소렌토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7. 안토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nthony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안토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안또니오, 안또니우스, 안소니, 안토니우스, 앤서니, 앤소니, 앤터니.

 

 

안토니오 자료

성 바수스(Bassus)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또는 안토니오) 그리고 성 프로톨리쿠스(Protolicus)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일부 고대 기록에는 이들과 함께 순교한 9명의 동료를 추가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8. 암모니오

 

  • 가톨릭 성인 이름
    Ammon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암모니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암모니우스.

 

 

암모니오 자료

성 디오니시우스(Dionysius)와 성 암모니우스(또는 암모니오)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하였는데, 그 장소는 아마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로 여겨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19. 에페보

 

  • 가톨릭 성인 이름
    Epheb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에페보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에페부스.

 

 

에페보 자료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프로쿨루스(Proculus)와 성 에페부스(또는 에페보) 그리고 성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테르니(Terni)의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 주교 순교자의 시신을 돌본 보호자였다. 그들은 후에 체포되어 레온티우스(Leontius) 총독의 명령으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은 로마에서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온 이교도 학생들로 크라톤(Craton)이라는 가정교사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크라톤은 자기 아들이 심한 병으로 고통을 받자 성 발렌티누스 주교를 청했고, 성 발렌티누스가 밤새 기도해 아이의 병이 낫자 가족 모두 세례성사를 받았다. 크라톤의 세 제자도 세례를 받고 성 발렌티누스의 제자가 되었다. 제자들은 스승인 성 발렌티누스가 순교하자 그의 유해를 가져와 테르니로 모셨다.

그들은 많은 이교도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고 이로 인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사람들이 그들을 감옥 밖으로 탈출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총독은 한밤중에 그들의 참수형을 집행했다.

그들의 시신은 동료 신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성 발렌티누스 주교 무덤 근처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0. 엘레우카디오

 

  • 가톨릭 성인 이름
    Eleuchadi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112년 라벤나

 

 

엘레우카디오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엘레우까디오, 엘레우까디우스, 엘레우카디우스.

 

 

엘레우카디오 자료

그리스(Greece)에서 태어난 성 엘레우카디우스(또는 엘레우카디오)는 이탈리아 라벤나의 초대주교인 성 아폴리나리스(Apollinaris, 7월 23일)에 의해 개종하였다.

그는 주교의 부재기간 동안 교회를 돌보다가 성 아데리투스(Aderitus, 9월 27일)를 계승해서 라벤나의 세 번째 주교가 되었다. 그의 축일은 2월 15일에 기념하기도 한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1. 요한 밥티스타

 

  • 가톨릭 성인 이름
    John Baptist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설립자

  • 활동 연도와 지역
    1561-1613년 알모도바르

 

 

요한 밥티스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밥띠스따, 밥티스트, 얀, 요안네스, 요한네스, 이반, 장, 쟝, 조반니, 조안네스, 조한네스, 존, 죤, 지오반니, 한스, 후안.

 

 

요한 밥티스타 자료

성 요한 밥티스타(Joannes Baptista a Conceptione)는 에스파냐 톨레도(Toledo)의 알모도바르 델 캄포에서 태어나 톨레도와 바에자에서 공부한 뒤에 삼위일체 수도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나 그는 1597년에 개혁 삼위일체 수도원을 발데페냐스(Valdepenas)에 세워 2년 후인 1599년에 로마 교황청의 승인을 얻었다.

이들이 소위 '맨발의 개혁자들'이다. 숱한 난관 끝에 이 개혁자들은 그의 생전에 34개의 수도원을 세웠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2. 제노

 

  • 가톨릭 성인 이름
    Zeno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제노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없음.

 

 

제노 자료

성 비탈리스(Vitalis)와 성녀 펠리쿨라(Felicula) 그리고 성 제노는 로마 순교록에서 로마(Roma)에서 순교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성 비탈리스와 성녀 펠리쿨라가 성 제노와 약간의 연관이 있다는 것을 제외하고는 그들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성 제노는 말머스베리(Malmesbury)의 윌리엄(William)의 언급에 의하면 아피아 거리(Via Appia)에 세워진 옛 성당의 수호성인이었다. 일부 성인전 작가들은 성 제노가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의 형제라고 하나 이것은 오류로 여겨진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3. 치리온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o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치리온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키리온.

 

 

치리온 자료

성 키리온(또는 치리온), 성 바시아누스(Bassianus), 성 아가토(Agatho)와 성 모세(Moyses)는 모두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출신 순교자들로 함께 기록되어 있다. 그 이유는 그들이 모두 화형을 받아 순교하였기 때문이다.

성 키리온은 사제였고, 성 바시아누스는 독서자, 성 아가토는 구마자 그리고 성 모세는 평신도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4. 치릴로

 

  • 가톨릭 성인 이름
    Cyril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신부, 선교사

  • 활동 연도와 지역
    826/827-869년

 

 

치릴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시릴, 시릴로, 시릴루스, 치릴루스, 키릴로, 키릴로스, 키릴루스.

 

 

치릴로 자료

성 키릴루스(Cyrillus, 또는 치릴로)와 그의 형인 성 메토디우스(Methodius)는 그리스의 테살로니카(Thessalonica)에서 고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성 키릴루스는 콘스탄티누스(Constantinus)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어린 나이에 콘스탄티노플(Constantinople)의 왕립 학교에 보내져서 성 포티우스(Photius, 2월 6일)의 문하생으로 공부하다가 사제가 되었으며, 그 후 그 대학에서 스승 성 포티우스를 능가하는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성 메토디우스는 옵시키온(Opsikion) 지방의 슬라브 식민지 가운데 한 지역을 맡는 총독이 되었다가 사직한 후로는 은수자가 되었다.

이들 형제는 보스포루스(Bosporus)의 수도원에서 살고 있었는데, 황제 미카엘 3세가 러시아의 드니에프르(Dnieper) 강과 볼가(Volga) 강변에 사는 카자르족(Khazars)을 회개시키도록 파견하자 그들은 카자르 언어를 배워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다.

선교 여행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돌아온 성 키릴루스는 이후 몇 달 동안 교황청립 대학의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성 메토디우스는 소아시아 헬레스폰트(Hellespont)의 폴리크로니온(Polychronion) 수도원의 원장이 되었다.

863년에는 모라비아(Moravia) 왕국의 왕 로스티슬라프(Rostislav)의 요청에 따라 성 포티우스 주교는 성 키릴루스와 성 메토디우스를 모라비아인들의 개종을 위해 파견하였다.

비록 그들을 개종시키는 일에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으나 두 형제의 슬라브어 실력은 대단하였다. 성 키릴루스는 선교를 위해 성서를 고대 슬라브어로 번역하였고, 그리스 문자에 기초하여 슬라브 알파벳을 만들었다. 최종 확정된 키릴 문자는 아직도 현대 러시아어와 많은 다른 슬라브 언어의 알파벳으로 사용되고 있다.

또한 성 키릴루스는 성 메토디우스의 도움으로 복음서와 시편, 바오로 서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고, 전례서들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여 전례를 거행하였다.

그러는 동안 그들은 독일 성직자들의 원성을 사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그 동안 라틴어만 사용하던 교회의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한 것과 또 그들이 콘스탄티노플에서 왔으므로 혹시 서방교회의 이단의 일파가 아닌가 하는 의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파사우(Passau)의 독일 주교가 사제 후보자 선발을 거부한 것이 그들의 선교활동에 치명적인 해를 끼쳤다. 이 사건으로 두 형제는 교황 성 니콜라우스 1세(Nicolaus I, 11월 13일)로부터 소환되었는데 그들이 로마(Roma)로 가던 중에 교황이 서거하였다.

후임 교황으로 선출된 하드리아누스 2세(Hadrianus II)는 두 형제의 방문에 매우 호의적이었고, 두 형제는 크림(Krym) 반도에서 서거한 교황 성 클레멘스 1세(Clemens I, 11월 23일)의 유해를 인도하여 교황의 따듯한 영접을 받았다. 하드리아누스 2세 교황은 그들의 정통성을 확신하게 되었고 또 전례에서 슬라브어 사용을 인가하였다.

그들이 로마에 머무는 동안 성 키릴루스는 수도자가 되었고 그 이름이 널리 알려졌으나 건강이 악화되어 모라비아로 돌아가지 못하고 869년 2월 14일 수도원에서 운명하여 로마의 성 클레멘스 대성전에 안치되었다.

한편 성 메토디우스는 교황 특사로서 모라비아의 슬라브족에게 돌아갔다. 하드리아누스 2세 교황은 모라비아와 판노니아(Pannonia)를 독일 교계제도에서 독립시켜 대교구로 승격시켰고, 성 메토디우스를 판노니아와 모라비아 지방 전체를 관할하는 시르미움(Sirmium)의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870년 독일의 왕 루드비히 2세와 독일 주교들은 라티스본(Ratisbon, 오늘날의 레겐스부르크) 시노드에서 성 메토디우스를 쫓아내기로 결정하고 그를 가두었다. 그는 3년간 스바비아(Swabia)에서 귀양생활을 하다가 교황 요한 8세(Joannes VIII)의 중재로 자유의 몸이 되어 자기 교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요한 8세 교황은 슬라브 지역에 대한 사도좌의 관할권을 지키기 위해 전례에서 슬라브어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제한적인 개정을 허용하였다. 그러나 계속 적대적인 시선으로 성 메토디우스의 활동을 지켜보던 독일 교회는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그의 정통성을 문제삼아 성 메토디우스를 이단자로 고발하였고, 880년 그는 로마로 소환되어 조사를 받았다.

그러나 교황에게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과 자신의 정당성에 대한 뛰어난 변론을 한 끝에 결국 교황은 교서 “인두스트리애 투애”(Industriae tuae)를 통해 그의 정통성을 인정하고 전례에서의 슬라브어 사용을 다시 인가하였다.

882년 교황의 뜻에 따라 콘스탄티노플을 방문한 성 메토디우스는 제자 두 명의 도움으로 동생의 뒤를 이어 성서와 그리스어로 된 교회법전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였다.

독일 교회와 성 메토디우스 간의 투쟁은 그의 일생을 두고 계속되었다. 결국 그 모든 투쟁은 그가 건강 악화로 인해 885년 4월 6일 파스카 목요일에 자신의 주교좌에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계속되었으니 그는 참으로 힘든 생애를 살았다.

그러나 성 메토디우스와 성 키릴루스는 ‘슬라브 민족의 선교사’로 불리며, 동유럽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에서 큰 공경을 받고 있다. 그리고 그가 행한 전례는 오늘날의 러시아 전례가 되어 러시아, 세르비아, 우크라이나 등지에서 그대로 전해온다.

그들의 축일이 전 세계로 확대된 것은 1880년 교황 레오 13세(Leo XIII)의 회칙에 의해 이루어졌고, 1985년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는 회칙 “슬라브인의 사도들”(Slavorum Apostoli)을 통해 성 베네딕투스(Benedictus)와 함께 이들을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5. 콘란

 

  • 가톨릭 성인 이름
    Conran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주교

  • 활동 연도와 지역
    +6세기경?

 

 

콘란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꼰란.

 

 

콘란 자료

스코틀랜드의 오크니(Orkney) 제도는 성 팔라디우스(Palladius, 7월 7일)와 성 실베스테르(Silvester)의 노력으로 복음의 씨앗이 뿌려졌는데, 그 지방의 중심지인 메인랜드 섬의 커크월(Kirkwall)에서는 성 콘란 주교가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그의 생애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지만 절제 있는 생활과 뛰어난 성덕으로 가톨릭 교회가 크게 꽃피우게 했음은 확실하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6. 프로쿨로

 

  • 가톨릭 성인 이름
    Procul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273년

 

 

프로쿨로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쁘로꿀로, 쁘로꿀루스, 프로쿨루스.

 

 

프로쿨로 자료

로마 순교록에 의하면 성 프로쿨루스(또는 프로쿨로)와 성 에페부스(Ephebus) 그리고 성 아폴로니우스(Apollonius)는 테르니(Terni)의 성 발렌티누스(Valentinus, 2월 14일) 주교 순교자의 시신을 돌본 보호자였다. 그들은 후에 체포되어 레온티우스(Leontius) 총독의 명령으로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

전승에 의하면 그들은 로마에서 공부하기 위해 아테네에서 온 이교도 학생들로 크라톤(Craton)이라는 가정교사의 집에서 살고 있었다.

크라톤은 자기 아들이 심한 병으로 고통을 받자 성 발렌티누스 주교를 청했고, 성 발렌티누스가 밤새 기도해 아이의 병이 낫자 가족 모두 세례성사를 받았다.

크라톤의 세 제자도 세례를 받고 성 발렌티누스의 제자가 되었다. 제자들은 스승인 성 발렌티누스가 순교하자 그의 유해를 가져와 테르니로 모셨다. 그들은 많은 이교도를 그리스도교로 개종시켰고 이로 인해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다.

사람들이 그들을 감옥 밖으로 탈출시킬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총독은 한밤중에 그들의 참수형을 집행했다. 그들의 시신은 동료 신자들에 의해 수습되어 성 발렌티누스 주교 무덤 근처에 안장되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27. 프로톨리코

 

  • 가톨릭 성인 이름
    Protolicus

  • 호칭 구분
    성인

  • 신분과 직업
    순교자

  • 활동 연도와 지역
    연대미상

 

 

프로톨리코 남자 세례명과 같은 이름

프로똘리꼬, 프로똘리꾸스, 프로톨리꼬, 프로톨리꾸스, 프로톨리쿠스.

 

 

프로톨리코 자료

성 바수스(Bassus)와 성 안토니우스(Antonius) 그리고 성 프로톨리쿠스(또는 프로톨리코)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Alexandria)에서 바다에 던져져 순교하였다. 일부 고대 기록에는 이들과 함께 순교한 9명의 동료를 추가하고 있다.

 

(출처 : 가톨릭 굿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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